Number One Star Instructor Master Baek RAW novel - Chapter 242
241화. 남궁세가는 더 이상“이봐. 일어나.”
백수룡은 의식을 잃은 창천검왕을 깨우며 그의 몸에 난 상처를 살폈다.
마치 사람이 아닌 야수와 싸운 듯했다.
전신에 베이고 찔린 상처가 셀 수 없을 정도로 가득했다. 핏물로 얼룩진 무복에선 원래의 색을 짐작할 수 없었다.
‘아직까지 살아 있는 게 용하군.’
결정적인 상처는 복부를 관통한 검상이었다.
무인의 생명이라 할 수 있는 단전이 파괴되었다.
보통 사람이라면 이미 죽었어야 할 몸.
하지만 절세고수의 질긴 생명력은 아직도 창천검왕의 숨을 붙여 놓았다.
“제, 제발…….”
간신히 의식을 차린 창천검왕은 백수룡에게 손을 뻗었다. 그를 흑야마제로 오해한 듯했다.
물론, 백수룡은 그 모습에 일말의 동정심도 느끼지 않았다.
“꼴불견이군.”
혀를 찬 백수룡은 창천검왕의 맥문을 잡고 억지로 기를 불어넣었다.
몸 안에 따뜻한 기가 들어오자, 그의 눈에 서서히 초점이 점점 돌아왔다.
“너는…….”
백수룡을 알아본 창천검왕이 눈을 크게 떴다.
천천히 주위를 둘러본 그가 갈라진 목소리로 물었다.
“흑야마제는 어디 있느냐?”
“몰라. 내가 왔을 땐 당신 혼자 이 꼴로 있었어.”
“……적발적안의 사내는 보지 못했느냐?”
창천검왕은 기절하기 전에 흑야마제를 기습한 복면인을 떠올리며 물었다.
바람에 휘날리는 적발과 지옥의 불길 같았던 안광이 잊히지 않았다.
‘혈마!’
찰나의 순간, 과거 혈교의 주인이었던 절대고수의 모습이 떠올랐다.
헌데 그자가 혈마였다면, 어째서 자신이 아닌 흑야마제를 기습했단 말인가?
백수룡은 어깨를 으쓱하며 퉁명스레 되물었다.
“내가 어떻게 알아?”
그 대답에서 창천검왕은 무언가 이상함을 느꼈다.
생각해 보니 깨어난 이후로 계속 거슬렸다.
“……어째서 내게 이토록 무례하게 구는 것이냐?”
되살리기엔 이미 늦은 몸이긴 하지만, 백수룡은 자신을 보고 그 흔한 금창약조차 꺼내지 않았다.
오히려 경멸의 시선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당신에겐 예의를 갖출 가치가 없으니까.”
그 싸늘한 대답에 창천검왕이 허탈하게 웃었다.
“내가 죽어간다고 네가 날 얕보는구나. 고작 이 정도 사내였더냐.”
창천검왕은 애써 허리를 꼿꼿이 펴고 눈에 힘을 주었다. 복부에 꽂힌 검 때문에 쉽지만은 않았다.
생명이 빠르게 빠져나가고 있는 것이 느껴졌지만, 그는 남궁세가의 태상가주로서 마지막까지 위엄을 지킬 생각이었다.
“내 비록 무공을 다 잃고 죽어가고 있다지만, 남궁세가의 태상가주이자 무림의 선배다. 후배는 마땅히 예의를 갖추거라.”
백수룡이 황당하다는 듯 웃었다.
“어이가 없네. 내가 지금, 당신이 죽어가고 있어서 무시한다고 생각하는 거야?”
“그게 아니면 어찌……?”
“다 봤거든. 당신이 얼마나 역겨운 짓을 저질렀는지.”
“……무슨 소리를.”
창천검왕의 표정이 순간 굳었다. 백수룡은 그것을 놓치지 않았다.
“남궁가묘의 지하. 우물 아래에 묻힌 백골들. 당신이 한 짓이지?”
창천검왕은 대답하지 않고 투명한 눈으로 백수룡을 바라보기만 했다.
“그곳에 혈교의 흔적이 남아 있더군. 죽은 자들이 남긴 기록도 있었고.”
백수룡은 남궁가묘의 지하에서 본 것들을 모두 폭로했다.
물론 자신과 혈교의 관계에 대해서는 빼고, 창천검왕이 저지른 끔찍한 학살을 강조해서 말했다.
“이래도 발뺌할 건가?”
창천검왕은 꽤 오랫동안 침묵했다.
그리고 겨우 입을 열었다.
“처음에는 네가 혈교의 첩자라고 생각했다.”
“……무슨 개소리지?”
백수룡은 진심으로 놀랐으나 겉으로는 티를 내지 않았다.
‘대체 왜?’
지금껏 단 한 번도 혈교와 연관된 흔적을 보인 적이 없었다.
특히 창천검왕 같은 고수들 앞에서는 더더욱 조심했다.
때문에, 지금 그가 하는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백수룡이 혈교와 관련된 증거는 실제로 아무것도 없으니까.
창천검왕이 흐릿한 시선으로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
“널 처음 봤을 때, 과거 혈교와 전쟁을 치르면서 느꼈던 기분을 다시 느꼈다. 아주 위험한, 그리고 불길한 기분이 들었지.”
“단지 기분 때문에?”
“본좌와 같은 고수의 감을 무시하는 것이냐?”
“…….”
백수룡은 창천검왕이 느낀 기분이 무엇인지 왠지 알 것 같았다.
아마도 역천신공이 지닌 위압감일 것이다.
창천검왕은 마공을 연구하면서 직접 익히기까지 했다.
그로 인해 마공에 더 예민해진 감각으로, 백수룡에게서 알 수 없는 위압감을 느꼈던 것이다.
‘결국 심증뿐이었군.’
창천검왕이 백수룡을 빤히 쳐다보며 말을 이었다.
“……헌데 아닌 것 같구나. 네가 혈교의 첩자였다면 내게 이런 말을 할 리도 없고, 아직까지 날 살려 두었을 리도 없겠지. 네가 혈교도라면 말이야.”
창천검왕은 바람 빠진 웃음을 흘렸다.
그의 목소리가 점점 탁해지고 있었다.
백수룡이 싸늘하게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당신이 죽인 사람들 중엔 죄 없는 어린아이들도 있었어.”
“그래. 증거를 인멸하기 위해 모두 죽였다.”
창천검왕은 더 이상 자신이 저지른 짓을 부정하지 않았다.
죽음을 앞둔 인간은 그 어느 때보다 솔직해지기 마련이다.
심지어 상대가 이미 그 비밀을 어느 정도 알고 있는 자라면, 그리고 조용한 숲속에 이렇게 둘뿐이라면, 설령 평생을 지켜 온 비밀이라 해도 자물쇠가 풀리기 마련이었다.
“헌데 말이다.”
몸에서 점점 감각이 사라져가는 것을 느끼며, 창천검왕이 되물었다.
“내가 뭘 그리 잘못했단 말이냐?”
“……뭐?”
“어차피 죽을 놈들이었다. 내가 숨겨 주고, 몇십 년을 더 살게 해 줬지. 그 대가로 혈교의 마공과 재물을 요구했다. 놈들의 형편을 생각하면 제법 공정한 거래였다.”
정파의 위선자는 자신의 행동을 합리화하기 시작했다.
오히려 그의 눈에는 죄책감이 아닌 맹렬한 분노가 어렸다.
“그런데 자꾸만 무리한 것을 요구하더군. 자유를 달라고? 그야말로 주제도, 은혜도 모르는 버러지들이었다. 모조리 죽여 없애는 것이 마땅했어.”
고강했던 무공을 잃자, 뒤늦게 마공의 영향이 골수가 영향을 미치는 것일까.
창천검왕의 두 눈에 은은한 혈기가, 입가에는 비뚤어진 미소가 맺혔다.
문득 역겹다는 생각이 든 백수룡이 물었다.
“그렇게 당당하면 세상에 진실을 밝히지 그래?”
“푸흐흐……. 그것은 다른 이야기지.”
창천검왕은 또 한 번 바람 빠진 웃음을 흘렸다.
검이 박힌 상처가 벌어지며 피가 울컥울컥 새어 나왔지만 상관하지 않았다.
어차피 곧 죽을 몸이다.
지금 이 순간이, 살면서 가장 솔직해질 수 있는 시간이란 의미이기도 했다.
“나는 그날의 일을 후회하지 않는다. 과거로 돌아간다면 또 그리할 것이야. 나 창천검왕 남궁제학이 남궁세가를 천하제일세가로 만들었노라!”
저것은 죽기 전의 발악일까.
남궁제학은 피를 토하며 자신의 업적을 떠들어댔다.
백수룡이 조용히 말했다.
“당신이 말하지 않는다면 내가 말하겠어. 이곳에서 내가 보고 들은 걸 모두 폭로할 거야.”
그 순간, 푸하하! 하고 웃음이 터져 나왔다.
남궁제학이 안쓰럽다는 표정으로 백수룡을 바라봤다.
“어리석은 아이야. 대체 누가 네 말을 믿어 준단 말이냐?”
“…….”
“증거가 있느냐? 이미 모두 폐기했다. 네가 지하에서 본 백골들? 이미 다 썩어 문드러졌을 놈들이 무슨 증거가 되지? 놈들은 그저 시체일 뿐이다.”
그 시체들이 얼어붙어서 현장이 그대로 보존되었다는 사실을, 백수룡은 말하지 않았다.
상대가 말문이 막혔다고 생각한 남궁제학이 클클 웃었다.
“폭로? 마음대로 해 보거라. 나는 창천검왕이다. 존귀한 무림십존이고, 남궁세가를 천하제일세가로 만든 인물이며, 남궁세가 역사상 가장 위대한 가주였다. 살면서 수많은 음해를 받아 왔지. 네가 떠들어 봤자 하나가 더 늘어날 뿐, 나의 삶을 흠집 내지는 못한다.”
남궁제학의 얼굴에 잠시 혈색이 돌았다.
죽기 전에 잠시 기력을 되찾는, 회광반조 현상이었다.
“나는 끝까지 남궁세가를 지키다가 죽을 것이다. 지금도, 간악한 혈교의 공격에서 세가를 지켜 냈지. 이보다 더 위대한 최후가 어디 있단 말이냐. 하하…… 하하하하하!”
하고 싶었던 말을 모두 쏟아 낸 남궁제학의 얼굴은 더없이 후련해 보였다.
남궁제학은 입가에 미소를 띠며 눈을 감았다.
생의 불꽃이 정말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게 느껴졌다. 이대로 편안히 눈을 감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백수룡이 그 표정을 보며 빈정거렸다.
“아주, 죽어서도 속이 시원하겠어. 등선이라도 할 표정이야.”
“네가 어떤 말을 해도 내 부동심을 흔들 수는 없다.”
“정말 그럴까?”
그 순간, 백수룡의 입가에 의미심장한 미소가 맺혔다.
지금까지는 남궁제학이 일방적으로 떠들었다.
백수룡의 반격은 이제부터 시작이었다.
“당신 말대로, 당신의 악행에 대한 증거는 하나도 없어. 그런데 증인은 있지.”
“헛소리로 나를 흔들려 해 봤자…….”
백수룡이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이제 나오셔도 됩니다.”
“!!”
창천검왕이 감겨가던 두 눈을 부릅떴다.
누군가가 그들의 대화를 듣고 있었단 말인가?
내공을 잃고 감각이 무뎌진 탓에, 누군가 듣고 있다는 것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남궁제학은 흔들리는 수풀을 바라보며 간절히 바랐다.
‘제발. 남궁세가와 상관없는 자이기를……’
잠시 후, 어둠 속에서 한 사내가 걸어 나왔다.
이 순간 남궁제학이 가장 보고 싶지 않은 얼굴이었다.
“……아버님.”
남궁세가주, 철혈검 남궁천이 창백한 표정으로 걸어왔다.
남궁제학은 허둥지둥 변명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천아, 오해다, 그것이 아니다. 네가 잘못 들은 것이다. 이건, 이건…….”
“제 귀로 전부 다 들었습니다.”
남궁세가의 가주가 우울한 표정으로 말했다.
남궁천뿐만이 아니었다.
그의 뒤쪽으로 남궁수를 비롯해 남궁세가의 인물들이 하나둘 나타났다.
하나같이 얼굴이 창백했다.
“태상가주님…….”
“왜, 왜…….”
“그럼 이 모든 일이, 태상가주님 때문에 벌어졌단 말입니까?”
심지어 그들 뒤로는 사대학관의 신입 강사들 중 일부도 보였다.
다들 엄청난 충격을 받은 얼굴이었다.
“아, 아니다, 아니야, 그게 아니다!”
창천검왕이 손가락으로 백수룡을 가리키며 악을 썼다.
“저 녀석이다! 저 녀석이 사술로 내 정신을 조종했다! 나는 무공을 잃었다. 저항할 수가 없는 상태야. 아들아, 내 말을 믿어다오…….”
“아버님. 그만 말씀하십시오.”
남궁천이 다가와 아버지를 부축했다.
남궁제학은 방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표정으로 죽어가고 있었다.
초조하고, 불안하고, 공포에 몸을 떨고 있었다.
남궁천이 저보다 훨씬 젊어 보이는 아버지를 안으며 덤덤한 어조로 달랬다.
“예. 아버님께서 사술에 조종당하셨을 가능성도 충분히 고려하고 있습니다.”
“그, 그래. 바로 그것이다. 저놈이다. 백수룡. 저놈을 죽여야 해…….”
“그렇기 때문에 더욱 철저히 조사할 것입니다.”
“뭐, 뭐?”
남궁천의 표정이 심상치 않았다.
“남궁가묘의 지하를 확인해 보겠습니다. 본가의 무인들이 왜 마공을 익히게 된 건지, 그 이유를 반드시 알아내겠습니다.”
“처, 천아…….”
“만약 누군가가 아버님에게 사술을 건 것이 사실이라면, 남궁세가의 이름을 걸고 그자를 찾아서 죽이겠습니다.”
남궁제학의 표정이 점점 창백해진다.
그런 대답을 원한 것이 아니었다.
그리고 이어질 말은 더더욱 원하지 않았다.
“허나 만약, 아버님의 입에서 나온 말이 전부 사실이라면.”
“처, 천아…….”
남궁제학은 아들의 저런 표정을 알고 있었다.
그 누구도, 아버지인 자신도 꺾을 수 없는 고집을 부릴 때의 얼굴이었다.
한쪽 눈을 잃은 남궁세가의 가주가 엄중하게 선언했다.
“남궁가묘에 아버님을 모실 자리는 없을 것입니다.”
“네가! 네가 어떻게 내게……!”
남궁제학이 피를 토하며 발작을 일으켰다. 검이 꽂힌 복부에서 핏물이 번져 나갔다.
남궁천은 아버지의 몸을 꾹 눌러서 진정시켰다.
“진정하십시오. 아버님.”
“내가, 내가 본가를 위해 어떻게 했는데! 내가 남궁세가를 천하제일로 만들었다!”
남궁제학의 얼굴에서 점점 핏기가 빠져나가고 있었다.
이제 정말, 정말로 그에게 남은 시간이 없었다.
세상에서 가장 비참한 죽음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럴 수는 없다! 네가 내게 이럴 수는 없어!”
남궁천은 광기에 물들어 자신을 할퀴는 부친을 바라봤다.
철저하게 조사하겠다고 말했지만, 그는 아버지의 눈에서 이미 진실을 읽었다.
때문에, 거짓말로라도 위로를 해 줄 수 없었다.
묵묵히 잔인한 사실을 전할 뿐.
“아버님. 남궁세가는 더 이상 천하제일세가가 아닙니다.”
“나……는…… 커……헉……!”
남궁제학의 몸이 부르르 경련하더니 서서히 움직임이 멎었다.
숨이 멎는 순간까지 눈을 부릅뜬 채였다.
그리고 남궁제학이 눈을 감는 순간, 백수룡은 잠시 음양마존을 떠올렸다.
‘이제 편히 눈을 감으셔도 될 것 같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