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mber One Star Instructor Master Baek RAW novel - Chapter 253
252화. 청룡녹림 연합 전선야수혁의 물음에, 부채주가 잠시 생각하더니 대답했다.
“비허가 영업장까지 다 하면 다섯쯤 됩니다.”
비허가 영업장?
요즘 산적들은 나라에 허가도 받고 영업하나?
처음 듣는 녹림 업계 이야기에 백수룡과 다른 제자들은 고개를 갸웃했지만, 야수혁은 바로 이해한 듯 다음 질문으로 넘어갔다.
“인원은?”
“전부 합치면 이백 명은 될 겁니다. 그런데, 무슨 일로 그러시는지…….”
야수혁은 대답 대신 백수룡을 돌아보며 말했다.
“산적 이백이면, 반나절 안에 산에 있는 토끼굴이 몇 개인지까지 알아낼 수 있어요. 정확히 뭘 찾으면 돼요?”
야수혁은 마물을 잡기 위해, 인근의 산적들에게 협조를 구하자고 말하고 있었다.
영물들이 아예 하늘로 승천한 게 아닌 이상, 산에서 그들의 눈을 완전히 피할 수는 없을 테니까.
백수룡도 좋은 의견이라고는 생각했다.
다만, 인근의 산적들이 순순히 협조해 줄지가 문제인데…….
‘뭔가 생각이 있으니 하는 말이겠지.’
백수룡은 녹림 출신의 제자에게 한번 맡겨 보기로 했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야수혁이 이렇게 주도적으로 나선 적은 없었으니 말이다.
“거대한 뱀이나 호랑이, 녀석들이 숨을 만한 동굴, 연못, 평소와 다르게 기가 지나치게 뭉쳐 있는 곳, 그 외에도 뭐든 수상한 게 있으면 전부 나한테 보고하면 된다.”
고개를 끄덕인 야수혁이 부채주를 돌아보며 그대로 전달했다.
“방금 들은 내용, 녹림맹의 이름으로 협조문 만들어서 싹 돌려.”
“……예?”
깜짝 놀란 부채주가 눈을 부릅떴다.
녹림맹의 이름으로 공문을 돌리라니?
함부로 맹의 이름을 팔았다간, 훗날 녹림맹의 고수에 의해서 처절하게 응징을 당할 수도 있었다.
‘니들은 볼일 끝나고 떠나면 그만이지만, 우린 계속 여기서 먹고 살아야 한단 말이다!’
그대로 말할 수는 없는 노릇이라, 부채주는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다른 핑계를 댔다.
“공문을 돌리려면 산채와 채주의 이름을 걸어야 합니다. 헌데 아시다시피 전 채주님은 돌아가셨고, 저희 산채는 이름이 안 알려진 영세한 곳이라 효과가 있을지…….”
“산채 이름이 뭔데?”
그러고 보니 아직까지 이 산채의 이름도 알지 못했다.
백수룡과 제자들도 조금 궁금했는지 귀를 기울였다.
“……전 두목의 이름을 따서 구일(丘一)채입니다.”
“녹림맹에 등록된 건 확실하지?”
“물론이지요! 하지만 저희같이 영세한 산채에서 함부로 녹림맹을 언급하면 큰일 납니다. 뒤를 봐주는 산채도 없고요.”
“…….”
야수혁이 말없이 팔짱을 끼고 바라보자, 부채주가 지레 겁을 먹고 목을 자라처럼 움츠렸다.
중년의 사내가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백수룡과 다른 제자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대협들. 제발 사정 좀 봐주십시오. 녹림맹 이름을 함부로 팔았다간, 저희 나중에 진짜 큰일 납니다요.”
“……알았으니까 잠깐 나가 있어 봐.”
야수혁은 부채주에게 말해, 잠깐 밖에 나가 있게 했다.
이번에는 야수혁이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어디까지나 협조를 요청하려는 것이지, 녹림의 형제들을 곤란에 빠지게 할 생각은 없었다.
‘방법이…….’
한 가지 있기는 했다.
그것도 아주 확실한 방법이.
다만 그 방법을 사용하면, 지금까지의 일상에 금이 가게 될지도 모른다.
야수혁은 잠시 갈등했다. 하지만 고민은 길지 않았다.
‘언젠가는 해야 할 말이었어.’
결정을 내린 야수혁은 백수룡과 백룡장 동기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지금까지 말 안 하고 숨긴 게 있어요. 아니, 상웅 선배만 알고 있겠죠.”
야수혁의 표정이 전에 없이 비장했다. 다들 무슨 이야기를 하려나 하고 그를 바라봤다. 눈치 빠른 몇몇은 이미 알아챈 듯 고개를 끄덕였다.
“다들 상상도 못 했겠지만…….”
야수혁은 눈을 질끈 감으며 질러 버렸다.
“사실 저 녹림 출신입니다!”
결국 말해 버렸다!
야수혁은 차마 선생님, 선배들, 동기의 눈을 똑바로 마주 볼 자신이 없어서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선생님한테 더 이상 무공을 못 배우게 될지도 몰라. 선배들하고는 어색해지겠지. 백룡장에서 나가야 할지도…….’
사파로 취급받는 단체 중에서도 가장 천한 취급을 받는 녹림.
산을 오가는 행인들의 돈을 갈취하고, 아무렇게나 사람을 죽이는 인간 백정들의 집합소.
야수혁이 아는 녹림은 절대 그렇지 않지만, 세상의 편견은 쉽게 고쳐지지 않는 것이었다. 형님들이 정체를 숨기라고 한 것도 그런 편견 때문이었다.
“…….”
야수혁은 잠시 기다렸다.
자신을 향한 분노든, 경멸이든, 비난이든, 피하지 않고 마주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래서?”
“어쩌라고?”
“그게 왜?”
“난 또 뭔 얘기를 하려나 했네.”
“네가 정파였으면 더 놀랄 뻔했어…….”
아무도 놀라지 않아서, 오히려 야수혁이 크게 당황했다.
“왜 아무도 안 놀라? 나 녹림 출신이라니까? 흉악무도한 산적인데…….”
“자랑이다.”
따악!
야수혁의 정수리에 별이 반짝였다.
하지만 정수리의 통증보다, 이어진 백수룡의 말이 더 충격이었다.
“녀석아. 너 산적인 건 다들 알고 있었다.”
“예에? 말도 안 돼. 지금까지 감쪽같이 속였다고 생각했는데…….”
“……진심이냐?”
백수룡뿐만 아니라 다들 알고 있었다는 듯 피식피식 웃었다. 야수혁은 망연자실한 표정이 되었다.
“상웅 선배만 아는 줄 알았는데……. 혹시 선배가 미리 말했수?”
“네 연기가 형편없어서 말할 필요도 없었다.”
거상웅이 껄껄 웃으며 말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헌원강은 별것도 아닌 일로 분위기를 잡는다며 등을 퍽퍽 때렸고, 여민은 요즘 산적들은 벌이가 어떠냐고 물었다.
유일한 일 학년 동기이자, 가장 정파 샌님처럼 생긴 위지천은 빙긋 웃더니 전음을 보냈다.
[사실 나도 혈교 출신이야. 아, 이건 아직 비밀이니까 아무한테도 말하면 안 돼.]전음으로 뭔가 엄청난 말을 들은 것 같았지만, 정신이 다소 멍했던 야수혁은 한쪽 귀로 흘려들었다.
“그럼 다들 알고도…….”
야수혁이 녹림 출신이라는 사실은 모두가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 사실을 처음 알았을 때도, 지금도, 달라진 건 아무것도 없었다.
다들 자신을 아무렇지 않게 대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긴장이 풀린 듯, 야수혁이 히죽 웃으며 말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진작 말할 걸 그랬네.”
묵은 체증이 내려가면서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백수룡이 그를 보며 말했다.
“아까 녹림맹 이름으로 공문을 보낸다더니. 거기에 네 이름을 적을 생각인 거냐?”
역시 눈치 백 단인 백수룡이었다. 야수혁이 뒤통수를 긁적이며 말했다.
“사실은, 양아버지 이름을 좀 빌리려고요.”
“양아버지?”
“고아가 됐던 저를 거두어 준 분이에요.”
야수혁은 구일채의 부채주를 다시 불러들였다.
백룡장 식구들이 알게 된 이상, 자신의 정체를 밝히는 데도 더는 거리낄 것이 없었다.
“협조문에 이렇게 적어. ‘녹의수사의 아들’이 녹림의 형제들에게 도움을 청한다고.”
부르는 대로 받아 적던 부채주가 입을 떡 벌리더니, 고개를 들어 야수혁을 바라봤다.
“누, 누, 누구의 아들이요?”
놀란 것은 부채주뿐만이 아니었다.
고개를 갸웃거리며 녹의수사라는 이름을 되뇌어 보던 거상웅은, 이내 표정이 창백하게 변해서 소리쳤다.
“녹의수사 주표!”
천하십대상단의 아들답게, 거상웅은 녹림 72채의 주요 산채와 그 채주들에 대해서도 대부분 알고 있었다.
“녹의수사가 누군데 그래?”
현 녹림에 별 관심이 없는 백수룡이 물었다. 헌원강과 위지천, 여민도 비슷한 반응이었다.
그들의 태연한 반응에 거상웅이 헛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녹의수사 주표. 녹림 72채 중에서도 한 손에 꼽는 염라채의 채주로…… 유력한 차기 녹림왕 후보입니다.”
“……!!”
즉, 야수혁은 단순히 녹림 출신이 아니라 녹림왕이 될지도 모르는 사내의 직속이라는 소리였다.
“그리고…… 십대악인 중 한 명이기도 합니다.”
다들 눈을 크게 뜨고 야수혁을 바라봤다.
야수혁이 단순히 산적이라는 사실을 밝혔을 때와는 이야기가 완전히 달랐다.
거상웅이 심각한 표정으로 야수혁에게 말했다.
“너 이거 걸리면 퇴학 정도가 아니라 죽을 수도 있어. 녹의수사한테 원한 가진 사람이 적지 않아.”
“원래 거기까진 밝힐 생각이 없었는데. 선생님이랑 선배들은 아무렇지도 않아 하니까…….”
“우린 우리고, 다른 사람들은 안 그래. 너희들도 꼭 비밀은 지켜 줘야 한다.”
거상웅은 다른 후배들에게도 신신당부했다.
다들 어디 가서 떠벌리고 다닐 성격은 아니었지만, 주의하지 않으면 실수로라도 입에서 나올 수 있었으니까.
“알았어. 아무튼, 이 녀석 양아버지가 끗발이 끝내준다 이거지?”
“녹림왕이면 돈도 엄청 많겠다. 그럼 너도 완전 금수저네?”
헌원강은 대수롭지 않게 고개를 끄덕였고, 여민은 잿밥에 더 관심이 많은 듯 보였다.
[나도 팔대가문 출신이야!]그리고 위지천은 환하게 웃으며 야수혁에게 전음을 보냈다. 같은 극악무도한 사파 출신이라는 사실에 동질감이 더욱 강해진 것 같았다.
“어, 그러냐…….”
팔대가문이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야수혁은 일단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백수룡은 그런 야수혁의 모습을 보면서 생각했다.
‘인연이란 게 참 묘하군.’
그는 전생에 녹림투왕 맹호악에게서 받은 것이 무척 많았다. 지금 강사를 할 수 있는 것도, 녹림십팔식으로 기초를 단련해 둔 덕분이니까.
그런데 이번 생에 만난 제자 중 하나가 차기 녹림왕으로 유력한 사내의 양아들이라고 한다.
전생의 인연이 이렇게 이어진다는 사실에 기분이 무척 묘했다.
광마의 무공이 헌원강에게 이어졌고.
검존의 무공이 위지천에게 이어졌다.
빙월신녀의 무공은 여민에게 이어졌으며.
녹림투왕의 무공은 모두의 신체를 단단하게 다져 주면서, 거상웅과 야수혁에게 그 오의(奧義)가 이어지고 있었다.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녹의수사도 한번 만나 봐야겠군. 만약 그가 맹사부의 후계자로 어울리는 사내라면…….’
본래 녹림으로 돌아가야 했던 것들을 돌려줄 생각이었다.
물론, 당장의 문제를 해결한 후에 생각할 문제였다.
짝!
백수룡이 손뼉을 치자 모두의 시선이 집중됐다. 그는 아직도 얼떨떨한 표정을 짓고 있는 구일채의 부채주에게 말했다.
“부채주는 최대한 빨리 공문을 작성해서 돌리도록. 이제 문제없는 거지?”
“……저, 공문을 돌린다 한들 저쪽에서 믿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어째서?”
백수룡이 미간을 찌푸리며 묻자, 부채주가 어깨를 움츠리며 대답했다.
“녹의수사의 아드님이 이런 곳에 방문하셨다고 하면, 저 같아도 믿지 않을 겁니다…….”
“…….”
딴에는 맞는 말이었다.
이 일대는 넓게 보면 남궁세가의 영역이었고, 그 탓에 큰 산채가 들어서지 못했다.
고만고만한 산채들이 영업하고 있는 상황에서, 갑자기 녹의수사라는 거물의 이름으로 공문이 온다면?
의심부터 할 확률이 높았다.
“그럴 경우엔 어떻게 할까?”
머릿속에 떠오르는 방법은 있었지만, 백수룡은 먼저 야수혁에게 의견을 물었다.
“정식 공문을 보여 줘도 안 믿으면, 제 양아버지를 무시하는 거예요.”
우둑, 우두둑.
야수혁이 목을 좌우로 꺾었다. 두 눈이 먹이를 노리는 호랑이처럼 사납게 빛났다.
“그러니까, 안 믿으면 믿게 해 줘야죠.”
야수혁은 산적보다 더 산적 복장이 잘 어울리는 청룡채, 아니 청룡학관 선배들과 동기를 바라보며 씩 웃었다.
마침 백수룡도 제자와 비슷한 생각을 떠올린 참이었다. 그의 입가에도 야수혁과 비슷한 미소가 맺혔다.
“마침 너희가 딱 다섯 명이니, 각자 한 군데씩 들러서 공문을 전달하면 되겠다.”
잠시 후, 부채주가 다섯 장의 정식 협조 공문을 완성했다. 거기에는 구일채의 직인이 선명하게 찍혔다.
제자들에게 공문을 한 장씩 나눠 준 백수룡이 말했다.
“지금부터 마물을 잡기 위한, 청룡학관과 녹림의 연합 전선을 구축한다. 가서 잘 ‘설득’하고 와라.”
설득의 의미를 누구보다 잘 아는 제자들이 새어 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
“크흐흐…….”
“맡겨 주십쇼.”
“누구보다 잘 설득하고 오겠습니다.”
“다녀오겠습니다, 형님!”
휘익! 휘이익!
다섯 제자가 녹림도들을 설득하기 위해 산채를 떠났다. 내공을 마음껏 사용할 수 있도록 혈도는 이미 풀어준 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