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mber One Star Instructor Master Baek RAW novel - Chapter 259
258화. 네가 왜 여기 있어?
[세상은 더 큰 혼란에 빠질 것이다. 독각마룡과 같은 마물이 또다시 나타날 것이고, 괴력난신(怪力亂神)이라 불릴 괴이한 일들이 늘어날 것이니…….]푸른빛으로 물든 은호의 눈동자.
그 커다란 눈동자에 비친 자신의 얼굴이, 백수룡은 어쩐지 낯설게만 보였다.
[이것은 그대의 운명과도 무관하지 않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백수룡은 얼마 전 남궁세가에서 현천신녀를 만났을 때도 비슷한 말을 들었던 것을 떠올렸다.
-역천의 운명. 천기를 거스르고, 세상을 멸할 수도, 구할 수도 있는 운명을 타고났구나.
역천(逆天)의 운명.
그때는 남궁세가의 비밀을 파헤치느라, 그 말을 곰곰이 생각할 시간도 없었다.
하지만 은호를 만나서 같은 말을 듣게 된 지금, 백수룡의 머릿속은 복잡해질 수밖에 없었다.
“앞으로 세상에 닥칠 혼란이 내 운명과 무관하지 않다고?”
불현듯, 백수룡의 머릿속에 어떤 가정이 떠올랐다.
설마…….
백수룡은 굳은 표정으로 은호를 노려봤다.
“나 때문에…… 세상이 혼란에 빠진다는 뜻인가?”
혈교가 망하고 수십 년이 지난 후, 백수룡은 전생의 기억을 떠올렸다.
공교롭게도, 음지에 숨어 힘을 키우던 혈교가 다시 무림에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 것과 시기가 겹쳤다.
‘단순한 우연일까?’
우연이 아닐지도 모른다.
현천신녀와 은호의 말대로 자신이 역천의 운명을 타고났고, 그 운명이 세상을 혼란에 빠뜨리는 것이 필연이라면?
나로 인해 세상이 혼란으로 뒤덮인다면?
[맞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은호의 애매한 대답에, 백수룡이 그를 노려보았다.
“똑바로 말해. 뜬구름 잡는 소리나 하려고 날 여기까지 부른 건 아닐 거 아니야?”
[……역천의 운명을 타고났다고 해서, 반드시 세상을 멸망시키거나 혼란에 빠뜨리는 것은 아니다. 역천은 말 그대로 하늘(天)의 뜻을 벗어나는(逆) 일. 그 결과가 어찌 될지는 아무도 알지 못한다.]“그럼, 나랑 상관이 있다는 건 무슨 뜻이야?”
[…….]은호는 말없이 백수룡을 바라보았다. 신령스럽게 빛나는 눈동자는 백수룡이 하는 말의 진위를 가늠하는 듯했다.
[역시, 너는 아닌 듯하구나.]“날 시험한 거냐?”
백수룡은 눈을 가늘게 뜨고 은호를 노려봤다.
그제야, 지금까지 은호가 자신을 시험하고 있었음을 눈치챘다. 은호는 순순히 그 사실을 인정하고 사과했다.
[미안하구나.]“뭐가 아니라는 건데?”
[누군가가 역천의 힘을 퍼트리고 있다.]“……퍼트린다고?”
은호의 푸른 눈은 백수룡을 향하고 있었지만, 백수룡을 보고 있지 않았다.
그 눈은 먼 미래를 응시하고 있었다.
[세상 곳곳에서 역천의 기운이 움트고 있다. 그로 인해 오랫동안 잠들어 있던 존재들이 깨어나고, 섭리를 벗어난 일들이 벌어질 것이다.]역천의 힘은 말 그대로 하늘의 뜻을 거스르는 힘.
이를 달리 말하면, 하늘의 노여움을 받아 소멸하기 쉬운 힘이기도 했다.
백수룡이 가지고 태어난 천음절맥이 바로 그런 경우였다.
역천신공을 익히지 않았다면, 백수룡은 서른을 넘기지 못하고 단명했을 것이다.
“지금은 아니라는 거지?”
은호는 지친 모습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천기를 누설한 대가인지, 몸이 급속도로 쇠약해지고 있었다.
[역천의 힘을 퍼트리는 존재를 막아야 한다. 막지 못하면…… 순리가 뒤집힌 세상은 결국 파멸할 것이다.]미래를 내다본 신수가 세상의 종말을 예언했다.
백수룡은 심각한 표정으로 생각에 잠겼다.
누군가가 인위적으로 역천의 힘을 퍼트리고 있다고?
‘대체 누가?’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당연히 혈교였다.
혈교에서 무림을 정복하기 위해 사술을 연구한 건 한두 번이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백수룡이 알기로, 아무리 혈교라고 해도 역천의 힘을 다룰 수 있는 술법은 존재하지 않았다.
‘역천신공을 제외하면…….’
그 순간, 직관적으로 한 존재가 뇌리에 떠올랐다.
백수룡과 같은 역천신공을 익혔고, 무공과 술법의 경지가 모두 극에 이른 존재.
“혈마…….”
-다음에 또 오너라.
꿈속에서 떠날 때, 혈마가 나른하게 웃으며 자신을 바라보던 모습이 떠올랐다.
만약 혈마가 역천의 힘을 세상에 퍼트리고 있는 흉수라면?
[혈마? 그자가 네가 생각하는 흉수인가?]은호는 빛이 꺼져 가는 눈으로 백수룡을 바라보며 물었다. 백수룡은 애매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내가 아는 한, 그런 짓을 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존재는 그자밖에 없어. 하지만 이미 수십 년 전에 죽었는데…….”
[죽음을 직접 보았나?]백수룡은 고개를 저었다.
오십여 년 전.
내분으로 약해진 혈교를 무림맹이 기습했을 때, 혈마는 정파의 고수들의 합공에 죽었다고 알려져 있었다.
“……죽었을 거야. 살아 있었다면 혈교가 그렇게 허무하게 무너졌을 리 없으니까.”
백수룡은 혈마가 얼마나 두려운 존재인지 누구보다 잘 알았다.
가공할 무공과 술법은 물론이고,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교도들을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광신도로 만들 수 있는 자였다.
그가 살아 있었다면, 혈교가 수십 년이나 음지에 숨어 있었을리 없다.
“……아마 새로운 혈마의 짓이거나, 혈교가 뭔가 수작을 부리고 있는 거겠지.”
백수룡은 전대의 혈마가 살아 있을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은 일단 배제했다.
하지만 가슴 한편에 경계심은 남겨 두었다.
그 혈마라면, 죽음에서 부활한다 해도 놀랍지 않을 테니까…….
“네가 확인할 수는 없나? 놈이 살아 있는지 죽었는지.”
[……알 수 없구나. 천기를 보는 눈으로도 역천의 운명은 볼 수 없으니.]은호의 목소리가 점점 작아지고 있었다. 생명력이 다해가고 있다는 증거였다.
끼잉. 끼이잉.
얌전히 어미의 품에 안겨 있던 새끼 은호가 낑낑대며 어미에게 몸을 치댔다. 함께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본능적으로 아는 것이다.
할짝.
어미 은호는 새끼의 몸을 정성스럽게 핥았다. 어미의 애정이 백수룡에게 느껴질 정도였다.
은호의 기는 이제 눈에 띌 정도로 희미해졌다. 언제 생명이 꺼져도 이상하지 않았다.
[선계로 올라갈 날만을 기다리고 있었지. 하지만 한 가지 미련이 남아 오르지 못했다. 바로, 새끼를 낳는 것 말이다.]은호는 새끼의 이마에 자신의 이마를 맞댔다. 작은 털뭉치가 꼼지락거리며 기분이 좋은지 가르릉 울었다.
[나는 태어날 때부터 조금 특별했기에, 영물이 되기 전에도 다른 짐승과 짝을 이룬 적이 없었다.]어미 은호는 새끼의 모습을 눈에 가득 담았다.
[궁금했다. 새끼를 갖는 것은 어떤 것일까. 나를 닮은 작은 생명을 잉태한다는 것은…… 어떤 기분일까.]“…….”
백수룡은 어미 은호의 마지막 말을 가만히 들어주었다. 어미는 눈을 감고 새끼의 냄새를 맡았다.
[짝을 이룰 수 없었기에, 그 대신 평생 쌓아 온 내단을 반으로 나누어 새끼를 잉태했다.]은호가 독각사에게 패한 이유였다.
어미 은호는 출산의 여파로 힘이 크게 약해져 있었고, 독각사는 은호가 약해진 틈을 놓치지 않았다.
은호의 피를 마시고 살점을 뜯어먹은 독각사는 독각마룡으로 탈피했다. 은호로서는 겨우 도망치는 것이 한계였다.
“후회하지는 않나?”
[조금도.]백수룡의 물음에 은호는 웃었다.
사람과 호랑이의 표정은 다르지만, 백수룡은 은호가 기분 좋게 웃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녀는 품 안에서 치대는 새끼를 밀어냈다.
처음에는 끼잉, 끼잉거리며 저항하던 새끼가 결국 뒤로 물러났다. 두 귀가 아래로 축 처졌다.
[이 아이가 조금 더 클 때까지만 돌봐주겠나?]백수룡은 고개를 끄덕였다.
어미 은호는 그와 제자들의 은인이었다. 더한 부탁도 들어줄 수 있었다.
“그러지. 마침 애들도 좋아하는 것 같던데.”
[……고맙구나.]어미 은호의 목소리에 안도감이 느껴졌다.
그리고 그 순간, 은호의 하얀 빛이 흘러나와 백수룡의 몸에 스며들었다.
“이건…….”
찢어지고 상처 입은 백수룡의 혈도와 전신세맥으로 부드러운 기운이 스며들었다.
적어도 열흘은 요양만 해야 했을, 완전히 나으려면 한 달 이상은 걸릴 거라고 생각했던 내상이 대부분 회복되었다.
‘며칠만 더 회복하면 되겠어.’
하지만 그것이 은호가 가진 마지막 힘이었다.
푸스스스-
은호의 꼬리 끝부터 서서히 먼지로 화하기 시작했다.
“……소멸하는 건가? 아니면 선계로 올라가는 건가?”
은호는 대답 대신 가르릉 웃었다. 그리고 마지막 말을 남겼다.
[마지막으로 닿은 인연이 그대와 같은 인간이어서 다행이었다. 부디 이 세상과 저 아이를 지켜다오.]푸스스스-
은호의 몸이 완전히 먼지가 되어 흩어졌다. 동굴 안에 하얀 가루가 눈처럼 흩날렸다.
끼이잉…….
백수룡은 새끼 은호를 품에 안았다. 녀석은 의외로 덤덤히 어미의 죽음을 받아들였다.
그가 동굴 밖으로 나오자, 기다리고 있던 제자들이 몰려왔다.
“선생님!”
“얘기는 잘 끝났어요?”
“어미 은호는요?”
백수룡은 제자들에게 은호가 등선했다고 말했다.
실제로는 어떻게 됐는지 모르지만, 부디 그러길 바라는 마음이었다. 다들 잘됐다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이제 돌아가자.”
그렇게 짧지만 강렬했던 영물 사냥 실습이 끝났다.
돌아가는 길에는 일행이 하나 늘어 있었다.
* * *
청룡학관으로 돌아가는 길을 서두르지 않았다.
우선 독각마룡의 사체에서 나온 부산물을 수습했고, 제자들이 영물들을 사냥해 얻은 것도 챙겼다.
꽤 많은 내단과 부속물을 얻을 수 있었다. 덕분에 제자들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이거 다 팔면 우리 엄청 부자되는 거 맞죠?”
“팔아서 받은 돈으로 뭐 살까? 새 칼이랑 옷이랑…….”
“일단 술이지 술! 벌써부터 군침 도네. 쓰으읍!”
“너희들. 이왕 팔 거면 우리 상단에 팔아라. 특별히 시세보다 더 쳐 주마. 응?”
거상웅이 후배들을 상대로 흥정을 벌였다.
어떻게든 바가지를 씌우려는 상인과 한 푼이라도 더 받아 내려는 자들의 싸움이었다. 물론, 누구도 상인의 아들을 이길 수는 없었다.
“운기조식부터 해라.”
백수룡이 틈이 나는 대로 제자들에게 운기조식을 시켰다.
그들의 몸에는 각각 독각마룡에게서 얻은 백 년의 공력이 깃들어 있었다.
“단순히 몸에 흡수했다고 너희의 내공이 된 건 아니다.”
몸 안에 공력이 들어왔다 해도, 전부 내공으로 바뀌지는 않는다.
부단히 운기조식을 해야, 그중 일부를 자신이 익힌 무공에 맞는 내공으로 만들 수 있었다.
그 과정에서 자연적으로 손실되는 공력도 적지 않았다. 보통 영약을 섭취할 때, 기운을 절반만 흡수해도 다행이라고 했다.
‘절반만 제 것으로 만들더라도 또래에서 손에 꼽히는 내공을 얻겠지만…….’
백수룡은 기뻐하는 제자들 앞에서 코웃음을 쳤다.
“내공 좀 많아졌다고 좋아할 것 없다. 구파일방과 오대세가의 자식들도 영약을 밥 먹듯이 먹는다. 너희는 그 녀석들하고 겨우 조건이 비슷해졌을 뿐이야.”
들뜨지 말라고 일부러 그렇게 말했지만, 백수룡도 속으로 기쁘기는 마찬가지였다.
방금 말한 구파일방과 오대세가의 제자들은 전 무림에서 가장 촉망받는 기재들을 말하는 것이었으니까.
‘이제 천무학관 녀석들한테도 안 밀린단 말이지.’
천무제의 가장 큰 경쟁자들과 대등한 조건을 갖췄다. 이제 내공으로는 누구한테도 밀리지 않을 것이다.
“흠흠! 그러니까 좋다고 실실대지 말란 말이다.”
“선생님이 제일 좋아하는 것 같은데요?”
“웃음 참는 거 다 보여요.”
그렇게 일행은 틈나는 대로 운기조식하고, 무공을 수련하고, 내상을 치료하면서 천천히 청룡학관으로 귀환했다.
캬앗!
처음에는 종일 시무룩해 있던 털뭉치도 시간이 지나며 기운을 차렸다. 녀석은 주로 야수혁과 백수룡의 품을 오갔다.
그렇게 며칠 후, 일행은 남창에 도착했다.
백수룡이 손으로 죽립의 끝을 내려 얼굴을 절반 이상 가리면서 말했다.
“최대한 조용히 들어가자.”
악인곡에서 혈수귀옹을 베고 돌아왔을 때도 엄청난 인파가 그들을 맞이했다.
남궁세가에서의 일도 소문이 퍼졌을 테니, 그때보다 더하면 더하지, 못하진 않을 터.
‘그 난리를 또 치르는 건 사양이야.’
일부러 야심한 밤에 도착한 이유였다.
일행은 죽립을 써서 얼굴을 가리고, 최대한 조용히 백룡장으로 들어갈 계획이었다.
하지만 백룡장이 저 멀리 보이기 시작했을 무렵, 백수룡은 그 주위를 서성이는 사람들을 보고 기가 막혔다.
‘날파리들이 왜 이렇게 많아?’
적어도 수십 명은 되는 사람들이 백룡장을 감시하고 있었다. 무인도 보였고, 무인이 아닌 자도 있었다.
다행히 안으로 침입하려는 자는 없었다.
‘선생님. 어떡해요?’
백수룡은 눈빛으로 묻는 제자들에게 수신호를 보냈다.
‘담을 넘자.’
자기 집 담장을 몰래 넘는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이상했지만, 최대한 조용히 들어가서 쉬려면 이 방법뿐이었다.
다행히도 감시자들 중에 특출난 고수는 없었다.
‘내가 먼저 넘으마.’
휘익!
백수룡이 가장 먼저 담을 넘어 마당에 안착했다.
그런데 그 순간, 어둠을 가르며 예상치 못한 검격이 날아왔다.
‘흡!’
피하려 했지만 공격이 상상 이상으로 날카로워 막을 수밖에 없었다. 백수룡은 오는 길에 녹림채에서 빌려온 칼을 꺼내 공격을 막았다.
까앙!
어둠 속에서 불꽃이 튀기고, 그 순간 두 사람은 서로의 얼굴을 확인할 수 있었다.
백수룡은 깜짝 놀라 소리쳤다.
“네가 왜 여기 있어?”
“도둑인 줄 알았더니……. 집 주인이 돌아왔군.”
방금까지 요리를 하고 있었던 듯, 앞치마를 두른 남궁수가 국자를 겨누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