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mber One Star Instructor Master Baek RAW novel - Chapter 260
259화. 손님 받아라!
상대가 백수룡임을 확인한 남궁수는 국자를 천천히 아래로 내렸다.
“……몰래 들어오기에 또 도둑이 든 줄 알았다.”
국물 요리를 하다가 달려 나왔는지, 국자의 둥그런 부분에 야채 건더기가 들러붙어 있었다. 제때 막지 못했으면 저 건더기가 뺨에 붙었을 것이다.
하지만 백수룡은 국자에 붙은 건더기보다 방금 남궁수가 한 말이 더 신경 쓰였다. 그가 눈썹을 꿈틀거리며 물었다.
“또? 도둑이 들었었어?”
“내가 잡은 것만 세 번째다.”
남궁수는 대수롭지 않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백수룡을 따라 담장을 넘은 학생들이 마당에 내려섰다.
“……남궁수 선생님?”
“선생님이 왜 여기 계세요?”
“저, 저 앞치마는 뭐야.”
“다들 조심해! 환영진일지도 몰라!”
“누가 인피면구를 쓴 걸지도…….”
앞치마 차림에 국자를 든 남궁수를 본 학생들은 잠시 현실을 부정했다.
물론, 그렇다 해도 국자가 검으로 변하지는 않았다.
“전부 무사히 귀환했군.”
이 사내는 수치심이라는 걸 모르는 걸까.
남궁수는 앞치마에 국자를 들고도 평소와 다름없는 고고한 표정을 유지했다.
학생들을 슥 훑은 그가 국자를 까딱이며 물었다.
“저녁 식사는 했나?”
“여기 와서 먹으려고 아직……. 그보다 네가 여기 왜 있냐니까?”
“안으로 들어가서 이야기하지. 밖에 듣는 귀가 많다.”
남궁수는 마치 손님을 맞이하는 집주인처럼 행세했다.
몸을 돌려서 익숙하게 안채로 들어가는 모습이, 백룡장에서 머문 게 하루 이틀이 아닌 듯 보였다.
“대체 뭔……. 일단 들어가자.”
백수룡은 제자들과 함께 남궁수를 따라 안으로 들어갔다.
마침 안채에서 군침 도는 냄새가 퍼져 나오고 있었다. 다들 배가 꽤나 고팠다.
“우웅?”
몰래 반찬을 하나씩 집어 먹고 있던 남궁미가 기척을 느끼고 고개를 돌렸다. 순간 소녀의 눈이 동그랗게 변했다.
“오라버니? 뒤에는 누구…….”
백수룡은 물론이고, 뒤따라오는 학생들도 거지나 다름없는 차림이었다.
영물들과 험난한 전투를 치른 후 녹림도들의 옷을 빌려 입은 탓이었다. 이후에도 마을에 들르지 않고 운기조식과 수련을 병행하며 옷이 더 해졌으니, 지금은 웬만한 거지도 저리 가라 할 정도였다.
잠시 눈동자를 굴리며 생각하던 남궁미가 아! 하면서 손바닥을 부딪쳤다.
“거지들한테 밥 주려고 데려오신 거예요?”
“비슷하다.”
“이 자식이? 비슷하긴 뭐가 비슷해.”
한차례 구시렁거린 백수룡이 죽립을 벗었다. 달빛 아래 드러난 얼굴을 본 남궁미가 벌떡 일어났다.
“선생님!”
소녀는 총총걸음으로 뛰어왔다.
백수룡은 남궁세가의 은인이었다. 게다가 얼굴도 엄청 잘생겨서, 남궁미는 오라버니 다음으로 백수룡을 좋아했다.
백수룡이 남궁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물었다.
“잘 지냈냐?”
“네에! 왜 이렇게 늦으셨어요?”
“얘들 수련 좀 시키느라고.”
남궁미의 시선이 백수룡 뒤쪽의 제자들을 향했다. 거지꼴을 면치 못한 제자들이 손을 흔들었다.
“언니! 오라버니들!”
남궁미가 백수룡의 제자들과 알고 지낸 건 얼마 되지 않았지만, 열 살 소녀의 친화력은 무적이었다.
소녀는 헤실헤실 웃으며 학생들에게 다가갔다.
그때였다.
캬앗!
야수혁의 품에서 고개를 내민 털뭉치가 소녀를 경계했다.
소녀의 시선이 털뭉치의 새하얀 털을 향했다.
작고 하얀 생명체.
동그란 눈과 앙증맞은 발.
부드럽고 포슬포슬한 털뭉치…….
침을 꼴깍 삼킨 남궁미가 야수혁에게 다가가며 말했다.
“저…… 고양이 한 번만 만져 봐도 돼요?”
“이거 호랑이다.”
고양이든 호랑이든 상관없는 듯했다. 남궁미가 털뭉치에게 손을 뻗었다.
캬앗!
털뭉치는 낯선 이의 손을 허락하지 않았다. 앞발로 남궁미의 손을 쳐 내고, 작은 이빨을 드러내며 경계했다.
하지만 남궁미도 무림세가의 딸이었다. 고양이의 하악질에 겁먹을 만큼 소심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 모습에 더욱 애가 탔다.
“귀여워!”
남궁미와 털뭉치는 야수혁을 가운데에 두고 뱅글뱅글 돌며 쫓고 쫓기는 추격전을 벌였다. 야수혁은 심히 귀찮은 표정이었다.
“미야.”
남궁수가 앞치마를 벗어 한쪽에 개어 두면서 동생을 불렀다.
“식사 자리다. 얌전히 있지 못하겠느냐.”
“네…….”
시무룩해진 남궁미가 남궁수의 옆자리로 가서 앉았다. 하지만 시선은 계속 털뭉치를 향하고 있었다.
남궁수는 주인이 손님들에게 말하듯 입을 열었다.
“둘이 먹으려 했던 터라 차린 건 별로 없지만, 시장이 반찬이라 생각하고 먹도록.”
“직접 만들었다고?”
차린 것이 없다기엔 반찬만 십여 가지가 넘었다.
게다가 남궁수가 직접 만든 음식은 무척 맛있었다.
며칠 동안 짐승 고기와 열매만 먹은 일행의 눈이 번쩍 뜨였다.
“맛있어…….”
“이거 정말 선생님이 만든 거예요?”
다들 궁금한 것도 잊고 식사에 집중했다. 특히 아직 한창 성장기인 학생들은 게걸스럽게 먹어 댔다.
“……먹을 만한가 보군.”
먹을 만한 정도가 아니었다. 산해진미가 따로 없었다. 학생들은 입으로 쉼 없이 음식을 삼키며, 말없이 엄지를 치켜세웠다.
상 위의 음식이 전부 사라진 후에야 대화를 나눌 여유가 생겼다. 그만큼 음식이 맛있었다는 이야기였다.
백수룡이 차를 마시며 물었다.
“이제 좀 들어 보자. 네가 왜 여기 있는 거야? 밖에 모여든 사람들은 또 뭐고.”
기품 있게 젓가락을 내려놓은 남궁수가 백수룡을 바라봤다. 그의 미간이 살짝 모였다.
“백수룡. 너는 지금 유명세를 호되게 치르는 중이다.”
“그거야, 어느 정도 예상이야 했지만…….”
악인곡에서 돌아왔을 때보다 조금 더 심한 정도일 줄 알았는데.
설마 야밤에 집 밖에서 수십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진을 치고 있을 줄이야.
남궁수는 밖에 있는 자들의 면면을 백수룡에게 설명해 주었다.
“너에게 비무를 청하러 온 무인들, 어떻게든 줄을 대러 온 자들, 널 살피러 온 구파일방의 정보원들, 근처에 있으면 떡고물이라도 떨어질까 기대하며 어슬렁거리는 한량들, 제자로 받아달라고 온 자들, 구걸하러 온 거지들, 도둑들, 그리고…….”
“그만, 그만!”
백수룡이 가만히 듣고 있다가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내가 아무리 남궁세가에서 명성을 떨쳤기로서니…… 이건 너무 과한 거 아니야?”
남궁수는 한숨을 쉬었다.
예상은 했지만, 보름이 넘게 산에서 수련만 하다 온 백수룡은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
“전혀 과하지 않다. 새로운 십존으로 이름이 오르내리는 무인에게 이 정도 관심은 당연한 법이다.”
“……새로운, 뭐?”
백수룡은 자신이 잘못 들었나 하고 되물었다. 제자들도 놀란 토끼처럼 눈을 동그랗게 떴다.
“무림십존. 최근 공백이 생긴 자리에 네 이름이 언급되고 있다.”
“……!!”
무림십존.
무림에서 가장 강하다는 열 명의 고수.
천하제일인이라고 말할 만한 압도적인 절대고수가 없는 현 무림에서, 천하제일에 가장 가까운 열 명의 무인을 일컫는 말이기도 했다.
혹자는 강호는 넓고 고수는 모래알처럼 많기에, 그 안에서 열 명을 추리는 것은 의미 없는 짓이라 말하기도 했다.
은퇴한 전대의 고수들, 속세에 관심이 없는 재야의 고수들 중에는 십존 못지않은 고수들이 얼마든지 있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그런 고수들이 기존의 십존을 죽이고 새로운 십존이 되는 경우도 있었다.
그럼에도 무림십존이라는 위치가 가진 상징성은 어마어마했다.
한 명 한 명이 절세고수가 아닌 자가 없었고, 십존을 보유한 문파나 가문은 당대에 큰 부귀영화를 누렸다.
때문에, 그만큼 그 자리를 노리는 자들도 많았다.
“내가 십존이라고?”
백수룡은 백대고수에도 이름을 올린 적이 없었다.
굳이 구분하자면, 최근에서야 이름을 날리기 시작한 신성에 불과했다.
그런데 갑자기 십존이라니?
“아직 십존으로 확정된 것은 아니다. 유력한 후보 중 한 명으로 언급되고 있을 뿐이지.”
“그것도 말이 안 되잖아.”
“원래는 말이 안 되는 일이지만…….”
남궁수가 낮게 한숨을 쉬었다. 어쩐지 백수룡에게 미안해하는 기색이었다.
“내 아버님께서 너에 대해…… 굉장히 좋게 말씀하셔서 그렇게 됐다.”
“남궁가주께서? 그건 또 무슨 소리야?”
철혈검 남궁천.
남궁세가의 현 가주는 재앙을 겪은 세가를 수습하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었다.
그 과정에서 무림맹, 구파일방, 오대세가의 주요 인사들과 회합을 몇 차례 가졌는데, 누군가가 청룡신협에 대해 묻는 말에 대답한 것이 모든 일의 화근이었다.
청룡신협의 무위는 결코 내 아래가 아니오.
그 몇 마디가 엄청난 파장을 몰고 왔다.
부친인 창천검왕 때문에 십존에 오르지 못했을 뿐, 철혈검의 무공은 십존에 들기에 부족함이 없다고 알려져 있었다.
그런데 철혈검이 청룡신협의 무공이 자신의 아래가 아니라고 공언했다. 자연스레 청룡신협의 무공도 십존에 버금간다는 소문이 흘러나올 수밖에 없었다.
“좋은 의미로 하신 말씀이겠지만…… 보다시피 덕분에, 골치가 아프게 됐다.”
남궁수가 멀쩡한 자기 집을 두고 백룡장에서 며칠째 머물고 있는 이유이기도 했다.
“소문이 퍼지자 널 보려고 수많은 무인들이 찾아왔다. 네가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고 해도 막무가내였지. 결국 나와 학생주임 선생님이 번갈아 가면서 이곳을 지키는 중이었다.”
소문이 돌고 며칠 만에 도둑이 세 번이나 들었다. 남궁수가 정체도 확인하지 않고 국자부터 휘두른 이유였다.
“네가 돌아왔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더 심해질 거다. 며칠 후면 임시 휴관도 끝나는데, 출퇴근이나 제대로 할 수 있을지 모르겠군.”
자신이 처한 상황을 알게 된 백수룡은 팔짱을 끼고 한숨을 쉬었다.
“이거 참…… 골치 아프게 됐군.”
백수룡이 무인으로서의 명성을 원했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무림십존은 너무 일렀다.
스스로 느끼기에도, 아직 그들의 수준에 닿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또한 너무 큰 명성에는 대가가 따르기 마련이었다. 지금처럼 말이다.
‘그럼 우린 십존의 제자가 되는 거야?’
‘언젠가 이렇게 될 줄 알았어요. 선생님이 항상 우리보다 더 강해지니까…….’
‘젠장. 주화입마 걸렸을 때 때렸어야 했는데. 그때가 마지막 기회였을지도 몰라.’
‘선배는 철없는 소리 좀 하지 마요.’
두 선생이 심각한 분위기에서 대화를 나누자, 제자들이 구석에서 저희들끼리 수군거렸다.
백수룡이 한숨을 내쉬며 물었다.
“귀찮은데 그냥 다 쫓아내면 안 되나?”
남궁수가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다른 자들은 적당히 쫓아낼 수 있겠지. 하지만 문제는 너에게 도전하기 위해 찾아오는 무인들이다.”
남궁수가 담장 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밖에 모여 있는 수십 개의 기 가운데 특출난 몇 개가 느껴졌다.
“저들은 날이 밝으면 대문을 두드릴 거다. 그리고 정중하게 비무를 요청하겠지. 네가 왔다는 사실은 이미 알려졌을 테니 더 이상 기다리지 않을 거다.”
“끄응…….”
비무 요청에 일일이 상대해 주다간 몸이 몇 개라도 모자랄 것이다.
그렇다고 모두 거절할 수도 없었다. 한두 번이야 가능하겠지만, 전부 거절하면 기껏 쌓아 올린 명성에 금이 갈 것이다.
‘그건 또 싫단 말이지.’
백수룡이 대문파나 가문의 출신이었다면 아무런 문제도 없었을 것이다. 소속된 집단의 울타리가 알아서 그를 보호했을 테니까.
하지만 백수룡은 하늘에서 뚝 떨어진 고수나 마찬가지였다. 구파일방과 오대세가 출신도 아니었다.
호승심 강한 무인들, 가르침을 원하는 무인들, 천하에 명성을 떨치고자 하는 무인들이 찔러 보기에 이만한 상대도 없었다.
“한마디로, 내가 제일 만만하다 이거군.”
“……본가의 실책이다. 아버님도 이렇게 될 거라곤 예상하지 못하셨을 거다.”
남궁수가 대신 사과했다. 남궁세가를 기준으로 생각하면 아무 일도 없을 일이었다.
“됐어. 예상보단 좀 빠르지만, 어차피 겪어야 할 일이었으니까.”
백수룡은 손가락으로 탁자를 톡톡 두드리며 말했다.
“정리를 좀 해 보지. 내 소문을 듣고 불청객들이 잔뜩 몰려왔는데, 그냥 쫓아냈다간 소문이 나쁘게 돌거라 이거지?”
“그렇지.”
“꼭 나쁘게 생각할 건 없을 것 같은데.”
“……?”
어차피 피할 수 없는 일이다.
그렇다면 저 불청객들로부터 뭐라도 얻어낼 방법을 생각해야 한다.
일방적으로 주기만 하는 건 성미에 안 맞으니까.
생각을 정리한 백수룡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좋아. 내일부터 손님을 받아 주자고.”
“……진심인가?”
그 순간, 백수룡의 입가에 악동 같은 미소가 번졌다.
“그 대신, 이곳에 방문한 고수들도 그냥은 못 돌아갈 거야. 얘들아!”
““네?!””
“손님 받을 준비 해라.”
다음 날.
백룡장의 문이 활짝 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