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mber One Star Instructor Master Baek RAW novel - Chapter 262
261화. 검의 천재
“나와 비무를 하고 싶다고?”
추혼검객 조연일은 기가 찬다는 표정으로 눈앞의 소년을 바라봤다.
아직 솜털도 가시지 않은 애송이였다.
검을 잡은 것도, 길어 봤자 십 년쯤 되었을까?
“진심이냐? 한 수 가르침을 달라는 것도 아니고, 진검으로 비무를 하자고?”
“네!”
호흡이나 자세로 보아 기초는 제법 잘 잡힌 듯했지만, 추혼검객이라 불리는 자신의 상대가 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헌데, 천진난만한 얼굴로 하는 말이 가관이지 않은가?
“꽤 강한 검객이신 것 같아서요. 어떤 검법을 익히셨는지 직접 부딪쳐 보고 싶어서…….”
언뜻 칭찬인 것 같지만, 듣는 입장에서는 기분이 묘한 말이었다.
‘꽤 강한 검객’이라는 말은 자신보다 수준이 높은 고수에게는 쓰지 않는다.
비슷하거나 만만해 보이는 상대에게나 쓰는 표현.
추혼검객은 명백히 그렇게 느꼈다.
그의 눈빛이 싸늘하게 변했다. 은은한 살기마저 맺혔다.
“청룡신협이 네게 날 모욕하라고 시켰느냐?”
전혀 예상치 못했던 반응에 위지천이 깜짝 놀랐다.
“네? 아, 아니요! 저는 정말 추혼검객님과 겨뤄 보고 싶어서 온 건데요…….”
“네가 내게 비무를 신청한 것이, 맹세코 청룡신협과 아무런 관계도 없단 말이렷다?”
추혼검객의 매서운 추궁에, 위지천은 어깨를 움츠리며 대답했다.
“싸워 보면 도움이 될 거라고는 하셨지만…….”
“도움이 된다? 옳거니. 그거였군.”
추혼검객은 위지천이란 애송이가 자신을 도발하는 이유를 깨달았다.
그는 위지천의 ‘도움이 된다’라는 말을 ‘청룡신협에게 도움이 된다’라는 뜻으로 오해했다.
“교활한 작자 같으니. 제자를 통해서 내 실력을 먼저 가늠해 보려는 생각이구나.”
“……네? 누가요?”
청룡신협의 계획을 파악하자, 오히려 웃음이 나왔다.
추혼검객의 입가에 자부심 가득한 미소가 맺혔다.
‘그럼 그렇지. 청룡신협. 네가 나를 호적수로 인정했구나!’
청룡신협은 자신을 극도로 경계하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그래서 어린 제자를 보내 도발하고, 검술을 조금이라도 알아내려 하는 것 아닌가!
추혼검객은 흡족한 마음에 올라가려는 입꼬리를 억지로 내리며 말했다.
“네 스승이 내 검술에 대해서 알아내 오라고 시키더냐?”
“아니요. 선생님은 그런 말씀은 전혀 안 하셨는데요…….”
추혼검객은 위지천의 말을 무시했다.
그가 객잔에 모인 무림인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다들 들으셨소? 이것이 청룡신협이라는 자의 실체요. 제자를 보내어 내 검술의 약점이라도 찾으려고 한 모양이지. 하하하! 이 얼마나 얄팍한 생각이란 말인가!”
설마?
대부분의 무인들은 고개를 갸웃했지만, 일부는 고개를 끄덕여 동조했다. 대부분 제 실력에 과한 자신감을 지닌 이들이었다. 그들은 청룡신협을 술안주 삼아 씹어댔다.
“흐흐. 청룡신협이 추혼검객을 보고 겁을 집어먹은 모양이군.”
“쯧쯧.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어린 제자를 보내서 이게 뭐 하는 짓인가.”
“사실이라면 무척 실망스러운데…….”
“운이 좋아서 분에 넘치는 명성을 얻었으니 불안하기도 할 테지!”
분위기가 이상하게 흘러가자 당황한 건 위지천이었다.
“그, 그런 게 아닌데요!”
“돌아가서 네 스승에게 전해라. 실전으로 완성된 내 검술에 약점은 없다고.”
큭큭 웃으며 말한 추혼검객이 아차, 하며 짐짓 곤란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 말을 듣고 꽁지가 빠져라 도망치면 어쩌지?”
푸하하하하!
그의 능청에 구경꾼들 사이에서 폭소가 터졌다. 위지천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선생님은 그쪽한테 관심도 없다니까요! 그냥 제가 싸워 보고 싶은 거라고요!”
추혼검객은 피식 웃으며 위지천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려 주었다.
“네 실력으로는 내 실력의 삼 할도 이끌어낼 수 없으니, 돌아가서 내 말이나 똑바로 전하도록 해라. 교활한 스승에게 이용당해서 괜히 다치지 말고.”
‘교활한 스승’이라는 말이 결정적이었다.
위지천은 더 이상 스승을 조롱하는 상대의 언행을 참지 않았다.
“……날 무시하는 건 상관없지만.”
그 순간, 위지천의 기세가 일변했다.
당황해서 어쩔 줄 몰라 하던 소년은 더 이상 없었다.
위지천은 칼자루에 손을 올리며 추혼검객에게 경고했다.
“더 이상 선생님을 모욕하는 건 못 참아요.”
주인의 살기를 느낀 위지천의 애검, 검혼이 우우웅- 하고 검명을 울렸다.
그 순간, 추혼검객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이 녀석. 보통내기가 아니로군.’
하지만 딱 그 정도였다.
추혼검객은 여전히 위지천이 자신의 상대가 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기껏해야 학관에 다니는 꼬맹이다.’
재능이 출중해 검명을 울리는 경지에 도달했을지언정, 수많은 실전으로 검술을 갈고닦은 자신과 비교할 수는 없었다.
……괜히 긴장할 이유가 없었다.
“내 대답에는 변함이 없다. 돌아가서 청룡신협에게 전해라. 내 검법을 견식하고 싶다면 비겁하게 제자를 보내지 말고, 본인 눈으로 직접 보라고.”
“흐응.”
위지천의 입가에 비릿한 조소가 맺혔다. 한순간에 딴사람이 된 것 같았다.
“그거 아세요? 제가 당신과 검을 겨뤄 보고 싶다고 하니까, 선생님이 조언을 하나 해 주셨는데…….”
“조언?”
검을 잡은 위지천은 더 이상 어리숙한 소년이 아니었다. 상대를 베기로 마음먹은 사나운 검귀였다.
히죽.
어린 검귀의 입꼬리가 더 올라갔다. 혀로 입술을 핥으며 장난기 가득한 얼굴로 상대를 도발했다.
“지금 제 수준에는 추혼검객 정도가 딱 맞는 상대래요. 실력만 제대로 발휘하면 충분히 목을 벨 수 있을 거라던데.”
평소의 위지천이라면 결코 하지 않을 오만한 도발.
그만큼 효과는 대단했다.
추혼검객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졌다.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애송이가……!”
무인이 공개적인 장소에서 까마득한 후배에게 모욕을 당했다.
어리다고 넘어갈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섰다.
이 자리에서 위지천의 목이 날아간다 해도, 그 누구도 추혼검객에게 과하다 하지 않을 것이다.
“정녕 진검으로 비무를 원하느냐? 내 검에는 눈이 없다. 평생의 흉터가 생길 수도 있는데, 후회하지 않을 자신이 있나?”
추혼검객의 눈에도 살기가 맺혔다.
내뱉는 한마디 한마디에선 마치 맹수가 으르렁거리는 듯 낮은 울림이 퍼졌다.
객잔 안에서 지켜보던 무인들도 놀라서 침을 꿀꺽 삼켰다. 더 이상 누구도 농담 같은 건 하지 못했다.
위지천은 혀로 입술을 핥으며 대답했다.
“목이 베여도 후회하지 않을 테니까, 빨리 붙어 보시죠?”
“하! 그 기개는 마땅히 높이 사마. 따라 나와라!”
추혼검객의 몸에서도 사나운 살기가 피어올랐다.
별호에서 알 수 있다시피, 그는 살인을 마다하지 않은 무인이었다.
강호를 떠돌며 사파의 고수들을 추살하고 다닌 이유 자체가, 실전에서 자신의 검법을 완성하기 위해서였다.
정파 출신이 아니었다면 그의 별호는 추혼검귀가 되었을 것이다. 그만큼 살기가 짙은 검법을 사용했다.
‘꼬마야. 보는 눈이 많아 죽이진 않겠지만, 평생 잊지 못할 흉터를 만들어 주마.’
추혼검객은 적어도 위지천의 팔 하나쯤은 자를 생각이었다.
두 사람은 객잔 뒤편에 있는 마당으로 나갔다.
구경꾼들이 두 사람을 우르르 따라 나왔다.
“이, 이러다가 송장 하나 치우는 것 아닌가?”
“쯧쯧. 저 어린 녀석이 분을 못 이겨 스스로 무덤을 판 게지.”
“저 아이, 위지천이라고 올해 청룡학관에 수석 입학한 학생입니다.”
“그래 봤자 후기지수가 아닌가. 추혼검객은 몇 년 전부터 이름을 날린 고수란 말일세! 결과는 보나 마나 뻔하지.”
“추혼검객의 자비를 기대하는 수밖에…….”
구경꾼들 대부분이 위지천의 목이 날아가거나 최소한 사지 중 하나가 떨어질 거라고 예상했다.
하지만 드물게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도 있었다.
“글쎄……. 어쩌면 의외의 결과가 나올지도 모르지.”
개방 강서분타주, 대력수 왕손이 코를 후비며 마주 선 두 검객을 지켜보며 중얼거렸다.
느긋하고 지저분한 태도와 달리, 왕손의 작은 두 눈은 영활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위지천. 청룡학관 일 학년. 청룡신협 백수룡과 함께 청룡학관에 들어온 검의 천재.’
개방은 자타공인 천하제일의 정보단체였다.
하지만 개방이 가진 청룡신협 백수룡에 대한 정보는 표면적인 것뿐이었다.
‘청룡학관에 입사하기 전 청룡신협의 행적, 그리고 그의 무공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전혀 없다.’
위지천도 마찬가지였다.
스승과 마찬가지로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처럼, 과거의 행적을 전혀 알아낼 수 없었다.
‘청룡신협의 다섯 제자들 중에서도 가장 신비에 싸인 소년. 둘 사이에는 분명 연관성이 있어.’
왕손이 지금 위지천을 유심히 지켜보는 이유이기도 했다.
번호표 일 번을 받은 왕손은 이미 백수룡과 만나서 많은 것을 묻고 온 이후였다.
두 사람이 나눈 이야기 중에는 청룡신협이 아끼는 제자들에 대한 것도 있었다.
-천이요? 그 녀석은 검의 천재입니다.
위지천에 대한 질문에, 백수룡은 확신에 찬 표정으로 그렇게 대답했다.
-흔히 천재라고 말하면 근골이 뛰어나고, 오성이 뛰어난 아이들을 말하죠. 하지만 위지천은 그런 종류의 천재는 아닙니다.
-……근골과 오성이 뛰어나지 않은 무공의 천재도 있습니까?
-말씀드렸지 않습니까. 무공의 천재가 아니라, ‘검의 천재’라고요.
-그게 뭐가 다르다는 건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는 왕손에게, 백수룡이 의미심장하게 웃으며 말했다.
-머지않아 온 무림이 알게 될 겁니다. 제 말이 무슨 뜻인지.
“……어디 한번 보자고. 검의 천재가 무엇인지.”
왕손은 짧은 상념을 떨쳐 내고 두 검객에게 집중했다. 그들은 검을 들어 서로에게 겨누고 있었다.
“…….”
“…….”
찰나의 침묵.
그 순간 두 사람의 신형이 흐릿해지더니,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달려들어 검을 휘둘렀다. 간격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쩌엉!
충돌과 함께 충격파가 후욱 번졌다. 두 사람을 중심으로 바닥의 흙먼지가 휘몰아쳤다. 그 사나운 기파에 가까이 있던 자들이 깜짝 놀라 뒷걸음질 치다가 엉덩방아를 찧었다.
“제법이구나!”
추혼검객이 눈을 번뜩이며 외쳤다. 검을 회수한 그의 입가에 사나운 미소가 맺혔다.
“그쪽도.”
위지천의 입가에도 비릿한 미소가 맺혔다. 어린 검귀는 기세 싸움에서 전혀 밀리지 않았다.
추혼검객의 눈썹이 불쾌감으로 꿈틀댔다.
“건방도 여기까지다!”
두 검귀가 서로를 향해 다시 달려들었다. 추혼검객의 검이 맹수의 발톱처럼 바람을 찢었다.
촤아악!
추혼검객은 이번 공격에 칠성의 내공을 담았다. 첫 공격에는 고작 사성의 내공만을 담았었다. 꼬마가 생각보다 강했지만, 이번에는 압도하리라 확신했다.
쩌어엉!
하지만 결과는 처음과 같았다. 위지천은 한 걸음도 물러나지 않고 추혼검객의 검을 받아 냈다. 오히려 여유로워 보였다.
“너……!”
“슬슬 제대로 하시죠? 안 그러면…….”
어린 검귀의 눈이 살기로 번뜩인다. 그 시선은 상대의 급소를 노리고 있었다.
“목 날아갈지도 몰라요?”
휘릭!
위지천은 상대의 검을 쳐 내며 몸을 팽이처럼 회전시켰다. 회전력을 더한 검이 추혼검객의 목을 노렸다.
까앙!
“큭!”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다. 위지천은 몸을 계속 회전시켰다. 검 끝이 쉼 없이 천변만화하며 추혼검객의 전신 요혈을 노렸다.
까가가강!
추혼검객의 눈에 경악이 어렸다. 자신보다 스무 살은 어린 아이를 상대로 승기를 가져오기는커녕 막기에 급급했다. 그의 무복 위로 혈흔이 번졌다.
‘빌어먹을!’
수치심과 두려운 마음이 동시에 들었다. 잠시라도 눈을 떼면 목이 날아갈 것 같았다. 추혼검객은 방심하던 마음을 버리고 이를 악물었다.
“갈!”
내공을 단숨에 폭발시킨 추혼검객은 아껴뒀던 절초를 펼쳤다. 무색의 검기가 위지천의 허리를 두 동강 낼 기세로 날아갔다.
휘익!
위지천은 무리하지 않고 뒤로 훌쩍 물러섰다. 회심의 검기는 허무하게 허공을 벴다.
두 검객 사이에 거리가 벌어지자, 구경꾼들도 그때까지 참았던 숨을 뱉었다.
“허억……!”
“지, 지금 추혼검객이 밀리는 것 아니오?”
“믿기지 않는군. 저것이 일개 학생의 무위란 말인가!”
모두가 경악한 얼굴로 위지천을 바라봤다.
추혼검객은 이미 무림에 명성을 떨치고 있는 절정의 고수였다.
청룡신협에 비하면 그 명성이 부족하다고 하나, 도전자로서의 자격은 충분했다.
헌데 지금 그를 압도하고 있는 사람은 청룡신협이 아니라, 그의 제자 중 한 명이었다.
그것도 가장 어린 제자!
“놀랍군…….”
왕손도 눈을 부릅뜨고 위지천을 바라봤다.
백수룡에게 들어서 실력이 만만치 않으리라 예상은 했지만, 설마 저 정도일 줄이야.
‘추혼검객의 손속이 과해지면 끼어들어서 중재하려 했는데…….’
조금 더 지켜봐야겠지만, 지금으로선 그럴 필요가 없어 보였다.
“이상하다. 선생님 말이 틀릴 리가 없는데…….”
위지천은 검 끝을 바닥에 끌며 추혼검객에게 다가갔다.
끼기긱- 바닥이 긁히는 불쾌한 소리에, 추혼검객이 저도 모르게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어린 검귀가 고개를 갸웃하며 그에게 물었다.
도발이나 조롱이 아니었다. 그 눈동자는 한없이 투명했다.
“설마 이게 전부는 아니죠?”
“노오옴!”
분을 참지 못한 추혼검객이 위지천을 향해 다시 검을 휘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