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mber One Star Instructor Master Baek RAW novel - Chapter 273
272화. 나쁜 놈들 전성시대 (2)
“젠장……. 알겠어. 도와주면 될 거 아니야.”
달리 방법이 없었다.
향낭을 인질로 잡힌 헌원강은 결국 백기를 들었다. 여민이 비밀 임무를 완수할 때까지 협조하기로.
헌원강이 퉁명스러운 어조로 물었다.
“그래서 네 임무는 뭔데?”
“그건 필요할 때 알려 줄게요.”
“뭐?”
“괜히 지금 말했다간 선배한테 약점 잡힐 수도 있잖아?”
여민은 헌원강에게 빼앗은 향낭을 흔들며 한쪽 눈을 찡긋했다. 헌원강은 오늘따라 저 눈웃음이 그렇게 얄미울 수가 없었다.
“모든 사람이 다 너 같은 줄 알아? 이 사기꾼 같으니.”
“뭐래. 나만 사기 쳤어? 선배도 위지천한테 똑같이 사기 쳤잖아.”
“……봤어?”
“안 봐도 뻔하지. 선배가 그걸 힘으로 뺏어 왔겠어? 무복에 베인 곳 하나 없는데?”
헌원강이 민망한 듯 고개를 돌리며 헛기침을 했다. 여민은 피식 웃었다.
“잘 들어요, 선배. 이건 무공 실력을 겨루는 시험이 아니야. 누가 더 상대를 잘 속이느냐, 또는 잘 이용하느냐를 평가하는 시험이라고요.”
“나도 알거든?”
“아는 사람이 위지천한테는 왜 그렇게 미안해하는데?”
“……갑자기 위지천 얘기가 왜 나와?”
“위지천한테 사기 친 게 미안해서 아까 나한테 쉽게 속은 거잖아. 평소 같았으면 선배가 그렇게 쉽게 빈틈을 보였겠어?”
“…….”
다 맞는 말이라 헌원강도 할 말이 없었다. 여민이 그의 등을 찰싹 때리며 말했다.
“정신 바짝 차리라고, 이 순딩아. 하여튼 인상은 사나우면서 알고 보면 제일 여리다니까.”
“건방지게 후배 자식이…….”
그러나 헌원강은 입술만 삐죽거릴 뿐 제대로 된 반박을 하지 못했다.
여민은 이번 시험의 의도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는 학생 중 한 명이었다.
어려서부터 산전수전 다 겪으며 성장한 영향일 것이다.
“따라와요.”
휘익!
여민은 어디로 가는지도 말해 주지 않았다. 그녀가 긴 다리로 경공을 펼치자 순식간에 거리가 벌어졌다.
헌원강이 서둘러 따라붙으며 물었다.
“네 임무도 나처럼 다른 사람 물건을 뺏는 거냐?”
“선배랑은 상관없으니 안심해요. 그랬으면 진작 임무 끝냈지.”
“너 근데 오늘따라 유독 말이 짧다?”
“그래서 싫어?”
여민이 돌아보며 피식 웃는 순간, 헌원강은 저도 모르게 헛기침을 했다.
‘왜 웃으면서 돌아보고 지랄이야.’
백수룡에게 빙백신공을 배우기 시작한 후, 여민은 머리카락이 하얗게 변하는 것을 막아 주는 약을 더 이상 먹지 않았다. 때문에 그녀의 머리는 이제 완연한 백발이었다.
달빛 아래 은은하게 빛나는 백발이 흩날리며, 소녀의 얼굴에 신비로운 분위기를 더해 주었다.
긴 팔다리로 경공을 펼치는 모습은 마치 지상에 강림한 선녀 같……
짜악!
스스로의 뺨을 친 헌원강이 눈을 부릅뜨고 여민을 노려봤다. 얼마나 세게 쳤는지, 뺨이 순식간에 부어올랐다.
“혼자 뭐 하는 짓이야?”
“미인계 따위엔 안 넘어가!”
“……뭐래.”
여민은 한심하다는 듯 한숨을 내쉬고는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입가에 작은 미소가 맺힌 것은 스스로도 알지 못했다.
잠시 후, 청룡학관 본관 지붕에 도착한 여민은 몸을 낮췄다. 헌원강도 따라서 몸을 낮췄다.
“일단 여기서 상황을 살피다가 움직일 거예요.”
“임무가 뭔지는 끝까지 안 알려 줄 거야?”
“누가 사기꾼인지 그것부터 먼저 확인한 다음에.”
“사기꾼?”
“그걸 알아내야 나도 임무를 할 수 있거든.”
알쏭달쏭한 말에 헌원강이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여민의 시선이 학생회관으로 향하는 것을 보고 말했다.
“우리 중에 거짓말하는 놈을 찾는 거야?”
“……비슷해요.”
여민이 의외란 표정으로 헌원강을 바라봤다. 그리고 일말의 기대를 담아 물었다.
“선배가 보기엔 누가 가장 사기를 잘 칠 것 같아요?”
“……백룡장 안에서라면 너나 상웅 선배를 꼽겠지만, 수업에는 별로 안 친한 놈들도 있어서 잘 모르겠는데…….”
강의를 듣는 학생은 총 열두 명.
그중 헌원강이 잘 안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절반도 되지 않았다.
여민도 크게 기대는 하지 않았기에 그 대답에 실망하지는 않았다.
“내 생각엔, 우리 중에 가장 위험한 사기꾼은 수업을 제일 열심히 들은 모범생일 확률이 높아요.”
“그게 누군데?”
“한 명밖에 더 있어?”
헌원강은 한 학기 동안 수업을 가장 열심히 들은 모범생이 누군지 생각했다.
아니, 생각할 것도 없었다. 곧바로 한 명의 얼굴이 떠올랐으니까.
“독고준? 에이, 설마…….”
독고준이라니.
사기꾼이라는 단어와 가장 안 어울리는 녀석이 아닌가.
“그 설마가 사람 잡을걸?”
그러나 여민은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학생회 건물을 바라봤다.
“벌써 몇 명은 잡혔을지도 모르고.”
* * *
독고준이 자리에 앉으며 말했다.
“이렇게 모여 줘서 고맙다.”
독고준은 자신을 포함해 총 여덟 명의 학생들을 동맹으로 만드는 데 성공했다.
사 학년 거상웅.
독고준 본인과 학생회 소속의 청룡쌍걸.
그리고 존재감이 희미한 네 명의 학생들.
‘위지천, 헌원강, 여민, 야수혁을 뺀 전원이 모였군.’
여기 있는 여덟 명은 서로의 비밀 임무를 공유했고, 본격적인 작전을 수립하기로 했다.
“본격적인 임무 수행은 내일부터 시작하는 게 좋을 것 같아.”
독고준은 자연스럽게 임시 동맹의 머리가 되어 회의를 주도했다. 학생회장실이 그들의 회의실이었다.
“두 조로 나눠서 움직이는 게 좋을 것 같아. 일 조는 바깥에 있는 추격자들을 유인해서 따돌리고, 이 조는 그 틈에 직접 임무를 수행하는 거지. 혹시 다른 의견 가진 사람?”
기다렸다는 듯 거상웅이 손을 들었다.
“선배님. 말씀하십시오.”
“조는 어떤 기준으로 나눌 생각이지?”
“일 조는 경공과 체력이 뛰어난 학생들로, 이 조는 은신과 잠입에 유리한 학생들로 분담하는 게 맞을 것 같습니다.”
“이런. 나는 뚱뚱해서 눈에 띄니까 이 조는 무리겠는데?”
“꼭 그래서는 아니지만, 일 조 조장을 맡아 주시면 마음이 든든할 것 같습니다. 선배님께선 유일한 사 학년이시니, 학관 지리에도 누구보다 익숙하실 테고요.”
학생회장답게 독고준은 청산유수의 언변으로 회의를 주도했다.
뛰어난 무공에 공명정대하기로 알려진 성품, 그리고 학생회장이라는 권력까지.
이 동맹 안에서 독고준을 견제할 수 있는 사람은 거상웅이 유일했다.
자연스럽게 두 사람이 회의의 중심이 되었다.
거상웅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좋아. 대신, 향낭을 이 조 것까지 일 조에 넘겨줘.”
“……향낭을 말입니까?”
“추격자들은 향낭 냄새를 맡고 쫓아올 거야. 그러니 이 조는 그걸 어딘가에 숨기거나 냄새를 지운 후에 움직여야 해. 그럴 바에는 일조가 다 가지고 다니면서 날파리들을 홀리는 게 낫지. 우린 어차피 미끼니까.”
맞는 말이긴 했지만, 독고준은 그 말을 순수하게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건, 저희를 못 믿겠다는 말로 들립니다만.”
거상웅이 사람 좋게 껄껄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하지. 난 이 조를 못 믿어. 너희가 너희 임무만 끝내고 가 버리면, 우린 그대로 닭 쫓던 개가 되잖아? 그런 일은 미연에 방지해야지.”
향낭이 없으면 시험에서 탈락한다.
하지만 일 조가 이 조의 향낭까지 가지고 있으면, 이 조는 딴생각을 할 수가 없었다.
일종의 보험이자 인질.
그것이 영 마음에 안 드는지, 독고준이 눈썹을 찌푸렸다.
“선배님. 저희는 서로를 믿고 움직여야 합니다.”
“글쎄. 이 수업에서 우리가 배운 건 그런 게 아닐 텐데?”
“…….”
“…….”
두 사람의 눈빛이 허공에서 팽팽하게 부딪쳤다.
긴장된 분위기에 다른 학생들은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고 눈치만 봤다.
결국, 독고준이 먼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알겠습니다. 대신 이 조의 밀지는 저희가 가져가겠습니다. 똑같이 보험의 의미로요.”
“좋아. 그렇게 하자고. 다들 밀지 꺼내서 탁자에 올려놔!”
다들 향낭에서 밀지를 꺼내 탁자의 중심으로 모았다.
거상웅이 그 모습을 보며 말했다.
“남은 건 누구 임무부터 해결할지 순서를 정하는 거군. 제비뽑기로 할까?”
“제가 가장 마지막에 하겠습니다.”
독고준이 탁자에서 자신의 밀지를 슬쩍 가져오며 말했다.
언뜻 보기에는 모두에게 순서를 양보하는 모습으로 보였다.
하지만 거상웅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이봐, 학생회장.”
“말씀하십시오. 선배님.”
“지금 나랑 장난하나?”
“……무슨 말씀이신지?”
“어디서 밑장 빼기야!”
콰앙!
솥뚜껑만 한 주먹으로 탁자를 내리치자, 탁자에 쩌저적- 금이 갔다.
동시에 학생회장실 문이 열리고 학생회 소속 학생들이 놀란 표정으로 뛰어 들어왔다. 몇몇은 이미 무기를 잡은 모습이었다.
“선배님. 대체 왜 이러십니까?”
극도의 긴장감이 감도는 회의실.
독고준은 표정이 사라진 얼굴로 거상웅을 바라봤다. 그 눈빛은 싸늘하기 그지없었다.
그러나 거상웅은 눈 하나 깜빡하지 않았다.
“네 밀지. 이리 줘 봐.”
“찢어 버리시려고요?”
“아니. 위조인지 아닌지 확인하려고.”
“…….”
분위기가 더욱 싸늘하게 변했다. 두 사람을 제외한 모든 학생이 눈을 부릅뜨고 독고준을 바라봤다.
“너 아까 잠깐 자리 비웠지? 생각해 보니, 그 시간이면 종이 쪼가리 하나 위조하는 건 간단하겠더라고.”
“절 모함하시는 겁니까?”
“모함인지 아닌지는 확인해 보면 알겠지.”
회의는 점점 파국으로 치달았다. 더 이상 돌이킬 수 없는 분위기였다.
거상웅의 입가에 비릿한 미소가 맺혔다.
“당당하면 밀지를 다시 보여 줘 봐. 만약 내가 헛짚은 거면 무릎이라도 꿇고 사과하지.”
그러나 그 순간, 독고준의 입꼬리가 천천히 올라갔다.
“그러실 필요 없습니다.”
““배신자!””
존재감이 희미한 네 명의 학생이 벌떡 일어나서 거상웅 주변으로 모였다.
그러나 방 안에는 이미 학생회 소속 학생들의 숫자가 훨씬 더 많은 상황.
거상웅이 주위를 둘러보며 말했다.
“설마 학생회의 무력을 동원해서 우릴 공격할 건가?”
그 말에 독고준의 눈썹이 크게 꿈틀거렸다. 자존심이 크게 상한 듯했다.
“제 시험입니다. 절대로 그런 짓은 안 합니다.”
“정말로?”
“전부 나가도록! 내 시험은 내가 알아서 하겠다.”
학생회장의 명령에 학생회 소속 학생들이 우르르 빠져나가려고 할 때였다.
“나는 생각이 좀 다른데.”
거상웅은 의아한 얼굴로 자신을 돌아보는 학생들에게 말했다.
“날 도와서 독고준을 공격하는 사람에겐 한 명당 은자 열 냥씩을 지급하지.”
“무슨……!”
돈은 귀신도 부린다.
그리고, 거상웅은 돈을 부린다.
다른 수업 같았으면 돈으로 무인을 매수하는 행위는 비겁하다며 지탄받을 테지만, 이 시험에선 수단과 방법을 가릴 필요가 없었다.
“너무 적은가? 그럼 이십 냥으로 올리지. 다들 큰돈을 쉽게 벌 기회를 놓칠 거야?”
거상웅은 그렇게 말하며, 묵직한 주머니 하나를 꺼냈다.
그리고 아직 망설이는 학생들에게 거부할 수 없는 제안을 했다.
“좋아. 삼십 냥. 나 금룡상단의 후계자야. 돈 지랄이 뭔지 제대로 보여 줄 수 있다고.”
“사, 삼십 냥이면…….”
은자 삼십 냥은 학생들이 만지기엔 엄청나게 큰돈.
일부 학생회 학생들의 눈빛이 흔들릴 정도였다. 몇몇은 안면몰수하고 무기에 손을 올렸다.
“하하! 잘 생각했어! 설마 날 돕는다고 학생회장이 쫓아내기야 하겠어? 원래 이런 시험인데?”
거상웅은 이번 시험에서 자신의 장점을 최대한 발휘할 생각이었다.
독고준이 이를 악물며 말했다.
“……각자 판단대로 행동하도록. 뒷일은 걱정하지 마라. 이걸로 뭐라 하진 않을 테니.”
독고준은 과연 성인군자였다. 그는 자신이 불리해지는 것을 알고도 학생회 회원들의 배신을 용납해 주겠다고 말했다.
거상웅의 입가에 승자의 미소가 걸렸다.
‘좋아. 분위기가 이쪽으로 넘어왔어.’
독고준은 자존심이 굉장히 높은 인간이다.
아무리 나쁜 물이 들었어도, 자기 권력을 함부로 휘두르는 짓을 할 리가 없었다.
그건 정파무인으로서의 자존심이 걸린 문제니까.
‘하지만 난 다르지.’
무가에서 태어난 아들과 상인 가문에서 태어난 아들의 차이.
그리고 백수룡에게 맞으면서 배운 학생과 수업으로만 배운 학생의 차이였다.
“독고 후배. 이쯤 됐으면 순순히 항복하고 진짜 밀지 내용을 실토하는 게 어때? 나도 무작정 자네를 몰아붙이기만 할 생각은 없다고.”
은자 삼십 냥이라는 제안을 받아들인 학생회 회원들이 무기를 뽑아 독고준을 겨눴다. 그 숫자가 열 명이 넘었다.
“후배가 아무리 강해도 이 숫자는 감당 못 해. 알지? 그러니까…….”
그런데…… 독고준은 웃고 있었다.
“……왜 웃어? 아직 상황 파악이 안 돼?”
“선배님. 세상에는 돈으로 움직일 수 없는 것도 있습니다.”
같잖은 소리에 거상웅은 코웃음을 쳤다.
“우정? 사랑? 그딴 걸 말하려고? 지금 이 상황에서?”
“아니요. 저희 부회장 말입니다.”
“뭐……?”
그 순간, 거상웅은 등골이 오싹한 느낌에 급히 숨을 멈췄다.
털썩. 털썩. 털썩.
거상웅을 돕기로 한 학생들이 하나둘 바닥에 쓰러졌다.
‘독!’
그러나 독이라는 것을 깨달았을 때는 너무 늦은 상황이었다. 거상웅은 몸에서 힘이 빠지고, 시야가 어지러워지는 것을 느꼈다. 이미 중독된 것이다.
“호호호.”
오싹한 여인의 웃음소리와 함께, 당소소가 문을 열고 회의실 안으로 들어왔다.
그녀는 탁자 위에 놓인 향낭 중 하나를 집어 들어 뺨에 대고 비볐다.
“이것이 다음 학기에 그분과 만나게 해 줄 비밀의 열쇠…….”
향낭에 코를 킁킁대는 부회장의 모습에, 독고준은 한숨을 푹 쉬었다.
그렇다고 뭐라 할 수는 없었다. 당소소 덕분에 일이 쉽게 풀렸으니까.
“부회장. 전부 네가 예측한 대로 됐다. 놀라운 선견지명이었어.”
“분명 여기에 그분의 손길도 닿았…… 네? 당연하죠. 저런 단순한 사내의 생각을 예측하는 건 아무것도 아니에요.”
당소소가 또각또각 걸어 거상웅에게 다가왔다.
그러곤, 거상웅이 떨어뜨린 묵직한 주머니를 들어올리며 싱긋 웃었다.
“선배님. 후원해 주신 돈은 학생회 운영비로 잘 쓸게요.”
“너, 이 사기꾼 자식들. 설마 처음부터……!”
거상웅은 독고준과 당소소를 번갈아 노려봤다.
두 녀석에게 완전히 당했다는 것을 깨닫자 피가 거꾸로 솟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그럴수록 독이 빨리 퍼졌다.
“내 피 같은 도온……!”
털썩.
거상웅은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