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mber One Star Instructor Master Baek RAW novel - Chapter 274
273화. 나쁜 놈들 전성시대 (3)
“끄응…….”
거상웅이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때, 그는 자신의 팔다리가 구속돼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여긴 어디야?”
빛이 거의 들어오지 않는 공간이었다. 팔다리는 굵은 쇠사슬에 묶여 벽에 고정돼 있었고, 아직 중독의 영향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듯 머리가 띵했다.
옷은 상의가 벗겨져 있었는데, 마치 무거운 게 올려진 듯 온몸이 천근만근이었다.
“선배님. 깨어나셨습니까?”
“……독고준!”
거상웅은 어둠 속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독고준을 향해 맹수처럼 달려들었다. 그러나 팔다리에 묶인 쇠사슬이 팽팽해지며 그를 제지했다.
거상웅의 주먹은 독고준의 얼굴 한 치 앞에서 멈춘 채 부들부들 떨렸다.
“너 이 자식! 이거 안 풀어?”
거상웅이 아무리 신력을 타고났다 해도, 몸이 정상이 아닌 상태에서 두꺼운 쇠사슬을 끊어 낼 수는 없었다.
“이해해 주십시오. 선배님과 차분히 대화를 나누기 위해서는 이 방법뿐이었습니다.”
독고준은 의자를 가져와 거상웅 앞에 앉았다. 목소리가 몹시 차분했다.
“일단 좀 진정하시죠.”
“내가 지금 진정하게 생겼냐! 당장 이거 안 풀면…….”
“아직 본인의 처지를 잘 모르시는 모양인데.”
독고준의 싸늘한 목소리가 거상웅의 말을 끊었다. 날 선 목소리는 명백한 경고였다.
“좋게 말로 하니까 상황 파악이 안 됩니까?”
“……뭐?”
창문조차 없는 밀실.
일렁이는 횃불 아래로 독고준의 얼굴에 짙은 음영이 드리워졌다. 흡사 냉혹한 살인마의 얼굴이었다.
‘이 자식, 제대로 몰입했잖아!’
거상웅은 애써 태연한 척 주위를 둘러보며 화제를 돌렸다.
“……학생회 건물에 이런 감옥이 있었나?”
“폐관 수련을 위해서 만든 곳입니다. 이렇게 쓰게 될 줄은 저도 몰랐지만요.”
“용도가 많이 잘못된 것 같은데…….”
순간, 독고준의 입가에 가느다란 미소가 맺혔다.
“지내다 보면 조용하고 좋습니다. 방음 처리가 아주 잘돼 있어서, 안에서 아무리 소리를 질러도 새어 나가질 않거든요.”
“…….”
언제든지 널 고문해서 이 안을 비명으로 가득 채울 수 있다, 라고 해석하는 건 지나친 생각이겠지……?
거상웅의 이마에서 삐질삐질 식은땀이 흘렀다. 비로소 자신의 처지가 썩 좋지 않음을 이해했다.
“저, 저기 독고 후배. 왜 이렇게까지 하는 건데? 이건 그냥 시험이잖아? 너무 사파 역할에 몰입한 거 아니야?”
물론 거상웅도 기말고사 시험에 진지하게 임하고 있었지만, 독고준은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았다.
피식.
독고준의 한쪽 입매가 비틀렸다.
“선배님. 그거 아십니까?”
“응? 뭐?”
독고준이 의자에서 일어나더니 저벅저벅 걸어왔다. 거상웅은 움찔하며 벽 쪽으로 붙었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저는 지금까지 수강했던 모든 강의에서, 단 한 번도 수석을 놓쳐 본 적이 없습니다.”
“그, 그래서?”
“이번 시험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는 반드시 수석을 차지할 겁니다. 필요하다면 무슨 짓을 해서라도요.”
어둠 속에서 광기로 이글거리는 독고준의 눈을 본 순간, 거상웅이 속으로 소리쳤다.
‘이거 완전히 또라이 아니야!’
그러니까 시험에서 일등 하려고, 동맹을 전부 배신하고 선배를 납치, 감금, 협박하고 있다는 것 아닌가?
“너, 너 지금 웬만한 사파의 마두보다 더 악당처럼 보이는 거 알아?”
“칭찬 감사합니다. 누구보다 열심히 수업을 들었거든요. 그러니 이번에도 수석은 제 겁니다.”
“진짜 뭐 이런 게 다 있어?!”
독고준은 완벽주의자였다.
잘하는 것을 넘어, 뭘 하든 반드시 일등을 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성격.
그러나 평소에는 가문에서 배운 도덕과 윤리가 이런 완벽주의 성향을 억눌러 주었다.
양보. 배려. 이해.
명문정파 가문의 아들로서 당연히 지켜야 할 의무와 규범들.
하지만 의 기말고사 시험은, 독고준을 그런 의무와 규범에서 해방시켰다.
-지금까지 배운 것을 활용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밀지에 적힌 임무를 완수한 후 증거를 가져와라.
백수룡의 말을 떠올린 독고준의 입가에 비릿한 미소가 맺혔다.
남은 것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일등을 쟁취하는 것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 것. 이 시험의 유일한 규칙입니다. 저는 규칙대로 성실하게 시험에 임하는 중이고요.”
“……그런 것치고는 진심으로 즐거워 보이는데?”
“솔직히, 가끔은 이런 일탈도 나쁘지 않네요.”
거상웅은 질린다는 얼굴로 독고준을 바라봤다.
평소에 얌전한 녀석이 한번 막 나가기 시작하면 눈이 돌아간다는데, 지금의 독고준이 딱 그랬다.
“……나한테 원하는 게 뭐야?”
“몇 가지만 여쭤보겠습니다. 만족할 만한 대답을 들으면 풀어드리죠.”
“만족할 만한 대답을 못 들으면?”
독고준의 입가에 잔인한 미소가 맺혔다. 뒷일은 상상에 맡기겠다는 의미였다.
“위지천. 헌원강. 여민. 야수혁. 그 넷에 관한 정보가 필요합니다. 지금 어디 있는지, 그들의 임무가 뭔지, 무공 외의 약점은 뭔지, 선배님이라면 알고 계시겠죠?”
“……나보고 후배들을 배신하란 거냐?”
거상웅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자, 독고준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배신이라뇨? 겨우 기말고사에 너무 과몰입하시는 거 아닙니까.”
“야! 과몰입은 네가 제일 많이 했잖아!”
거상웅이 버럭 소리를 질렀으나 독고준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한 걸음 더 다가와 속삭였다.
“선배님. 이건 배신이 아니라 거래입니다. 어차피 이 시험에선 모두가 경쟁자입니다. 그들의 밀지에 적힌 임무가 ‘거상웅의 밀지를 빼앗아라’일 수도 있다는 생각은 안 해 보셨습니까?”
“…….”
죄책감을 희석시키려는 악마의 속삭임.
그러나, 거상웅은 한숨을 푹 내쉬며 고개를 저었다.
“아무리 선생님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라고 했지만, 그래도 후배들을 팔아넘기는 건 내키지 않아.”
“…….”
“우리끼리 싸우고 배신하는 건 괜찮다. 하지만 다른 누군가의 협박에 의해서 정보를 내놓는 건 완전히 다른 이야기지. 그 녀석들에 대해 해 줄 말은 아무것도 없다.”
거상웅의 표정은 단호했다. 그 어떤 설득이나 협박에도 꺾이지 않을 것처럼 보였다.
독고준은 한걸음 뒤로 물러났다.
“……개인적으론 그 신념을 존경합니다.”
“후후. 고맙군. 그럼 이제 이 쇠사슬 좀 풀어주겠…….”
“그러니 한번 시험해 보죠. 그 신념이 얼마나 단단한지.”
“뭐, 뭐?”
씨익 웃은 독고준이 다가와 거상웅의 복슬복슬한 가슴 털을 한 움큼 움켜쥐었다.
불길한 상상을 떠올린 거상웅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뭐, 뭘 하려는 거야?”
“이제 여름인데. 선배도 제모를 좀 하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필요 없……!”
독고준은 단숨에 거상웅의 가슴 털을 뽑았다.
“으아아악! 따가워어어!”
거상웅은 쇠사슬이 출렁일 정도로 버둥거렸지만, 독고준은 개의치 않고 또 한 움큼의 털을 움켜쥐었다.
“선배는 털이 참 많으시군요. 전부 뽑으려면 시간이 좀 걸리겠습니다. 고민할 시간도 충분하겠죠?”
거상웅의 비명이 밀실에 울려 퍼졌다.
“앗 따가워! 야! 따갑다고! 그만 좀 해 이 악마 같은 자식아-!”
거구의 버둥거림에 생겨난 바람에 횃불이 흔들릴 때마다, 독고준의 그림자도 불길하게 일렁였다.
* * *
독고준이 밖으로 나오자, 당소소가 다가오며 물었다.
“회장. 수확은 좀 있었어요?”
“생각보다 강단이 있는 사내더군. 끝까지 아무것도 불지 않았어.”
독고준이 손에 들러붙은 털을 툭툭 털어 냈다. 그 털의 정체를 짐작한 당소소가 눈살을 찌푸리며 뒤로 물러났다.
“……제모는 다 끝난 건가요?”
“가슴, 겨드랑이는 끝났어. 한 부위가 남긴 했는데……. 차마 거기까진 못 건드리겠더군.”
어딘지 알고 싶지도 않았다. 당소소는 찜찜한 표정으로 한 걸음 더 뒤로 물러났다.
“다음에는 음식으로 회유해 보죠. 거상웅 선배의 식탐은 유명하니까.”
“그건 부회장이 진행하도록 해.”
“알겠습니다.”
두 사람은 학생회장실로 이동했다.
이번 시험과 상관이 없는 학생회 학생들은 모두 내보내고, 두 사람만 있는 자리를 만들었다.
독고준이 물었다.
“남은 네 명의 위치는 파악했나?”
“위지천은 학생주임 선생님 숙소에 있는 걸 확인했고, 야수혁은 학관 외부로 나간 걸 확인했어요. 다만 헌원강, 여민의 행방은 아직 오리무중이에요.”
“흐음…….”
무언가를 고민하는 듯한 독고준의 표정에, 당소소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회장. 밀지를 다른 거로 바꾸실 건가요?”
“…….”
독고준은 자신이 처음 받은 밀지를 꺼내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처음 밀지를 펼쳤을 때 얼마나 당황했는지 모른다.
하지만 곧, 이 비밀 임무에 성공한다면 수석은 확실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자신이 이 임무에 성공한다는 건, 다른 모두가 탈락한다는 말과 같으니 말이다.
계획은 그때부터 시작되었다.
일단 수강생 전원을 학생회 건물로 데려오고, 몰래 당소소를 찾아가 조언을 구했다.
당소소라면 향낭을 꼭 필요로 할 테니까.
예상대로, 당소소는 적극적으로 독고준에게 협조했다.
-일단 위조 밀지를 하나 만들죠. 그리고 돌아가자마자 모두에게 밀지 내용을 공유하자고 하세요.
그리고 지금, 독고준은 일곱 장의 밀지를 손에 넣었다.
사실, 이중 상대적으로 쉬운 것으로 임무를 바꿔서 수행해도 된다.
하지만 독고준은 선택을 바꾸지 않았다.
“아니. 이대로 갈 생각이다.”
“회장이라면 그럴 줄 알았어요. 저도 최선을 다해서 돕도록 하죠.”
무척이나 든든한 말이었지만, 한 가지 이해되지 않는 게 있었다.
독고준이 미간을 가늘게 좁히며 물었다.
“부회장은 왜 날 계속 도우려는 거지? 이미 향낭 하나를 손에 넣었으니 이제 손을 떼도 그만인데.”
이 부분을 납득하지 않는 한, 독고준은 당소소도 완전히 믿을 수 없었다.
당소소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요즘 청룡신협의 다섯 제자들을 묶어 청룡오망(靑龍五?)이라 부른다는 거. 들으셨어요?”
청룡신협이 키우는 다섯 이무기.
백수룡의 다섯 제자들을 묶어 부르는 별호로, 백룡장을 방문한 무인들을 통해서 조금씩 퍼지고 있었다.
독고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들었다.”
“저는 제가 그 안에 들어가지 못한다는 걸 용납할 수 없어요.”
“……그래서?”
당소소에겐 커다란 야망이 있었다.
백수룡이 알면 소스라칠 만한 야망이.
그녀의 눈이 광기로 번들거렸다.
“회장을 도와 그 다섯 명을 모조리 낙제시켜서, 제가 그들보다 더 뛰어나다는 것을 증명하겠어요. 그리고 당당히 백룡장에 입성하는 거죠! 그땐 선생님도 절 거부할 수 없을걸요? 후후후…….”
생각지도 못한 대답에 독고준은 입을 딱 벌렸다.
그러니까, 백수룡에게 인정받으려고 이 모든 계략을 꾸미고 있다는 것인가?
‘예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부회장은 제정신이 아니야.’
팔뚝에 소름이 돋긴 했지만, 어쨌든 동기가 그렇다면 당소소는 누구보다 믿을 만한 아군이었다.
“……앞으로도 잘 부탁하지.”
“후후. 저야말로. 아, 그래서 지원군을 두 명 불렀어요.”
“지원군?”
“남은 네 명의 무공이 하나같이 비범하니까요. 이쪽에도 그들을 상대할 수 있는 실력자들이 있어야 하지 않겠어요?”
“누굴……?”
잠시 후, 독고준은 당소소가 말한 지원군이 누군지 알게 되었다.
“검룡. 오랜만이야.”
“유이란!”
검화 유이란.
‘상승 검법 연구회’의 회장이자, 독고준이 가진 검룡의 별호를 빼앗기 위해 절치부심 중인 검객.
독고준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검화라면 믿을 만하지. 다른 한 명은 누구지?”
그때, 큰 키의 호리호리한 청년이 학생회장실 문을 열고 들어왔다. 선한 얼굴에 장난기 어린 표정이 인상적이었다.
“후배. 잘 있었나?”
“……방백현 선배? 선배가 여길 어떻게……?”
방백현.
청룡학관의 전년도 학생회장이자, 천무제에서 유일하게 청룡학관의 자존심을 지킨 사람.
독고준이 개인적으로 존경하는 선배이기도 했다.
“폐관 수련에 드신 것 아니었습니까?”
“곧 무림맹주께서 오시거든. 그 전에 무용담 하나쯤은 만들어 두려고 나왔지.”
방백현은 여유로운 분위기가 흐르는 사람이었다. 또한 솔직한 성격이었다.
“요즘 청룡오망 이야기로 학관이 떠들썩하던데. 그 녀석들이 독고 너보다 강해?”
“……아마 비슷할 겁니다.”
“그래? 그럼 별문제 없네. 너도 나한테 한 번도 이긴 적 없잖아?”
방백현이 장난스럽게 웃으며 말하자, 독고준이 “끄응.” 소리를 내며 툴툴댔다.
“그건 작년까지의 이야기입니다. 올해는 한 번도 붙어본 적 없으니까요.”
“하하. 이 녀석 여전히 귀엽네.”
“서, 선배! 저도 이제 삼 학년입니다.”
방백현이 시원하게 웃으며 독고준의 머리를 흐트러뜨렸다. 장난을 쳐도 미워하기 힘든 유형이었다.
“이렇게 모여 주셔서 감사합니다. 선배님들.”
당소소가 선배들에게 공손하게 포권을 취했다.
명실상부 청룡학관 최고수들이라고 할 수 있는 삼사 학년 선배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이들이라면, 당소소의 야망을 실현시키는 데 부족함이 없었다.
“날이 밝는 대로, 청룡오망 사냥을 시작하겠습니다.”
각자 뚜렷한 목적을 가진 세 사람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위지천은 어디 있어? 난 그쪽.”
유이란이 눈을 빛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