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mber One Star Instructor Master Baek RAW novel - Chapter 280
279화. 진흙 속의 진주들
매극렴은 눈 앞에 펼쳐진 광경을 바라보며 깊게 탄식했다.
“정녕, 개판이 따로 없구나…….”
백 명이 넘는 학생들이 뒤엉켜 싸우며 난장판을 만들고 있었다.
처음에는 손자가 시험에서 내건 보상 때문에 벌어진 일인 줄 알았다. 그런데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소리를 들어 보면, 꼭 그런 것도 아니었다.
“시험도 끝났겠다! 다들 신나게 놀아 보자!”
대체 어떤 쌍놈의 자식이 외친 말인지는 모르겠으나, 놀랍게도 곳곳에서 그에 호응하는 외침이 들려왔다.
“으아아! 좀이 쑤셔서 죽는 줄 알았네!”
“진짜 시험 보느라 머리에 쥐 나는 줄 알았다고!”
“드디어 해방이다아!”
대체 기말고사가 끝난 것과 저 난장판에 뛰어드는 것이 무슨 상관이며, 왜 이렇게들 신이 난 게야?
매극렴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이놈들! 몸이 그렇게 근질거리면 연무장에 가서 초식이라도 한 번 더 수련할 것이지……!”
학생들은 무슨 축제라도 열린 것처럼 저 난장판에 몸을 던지고 있었다. 연막탄에서 흘러나온 시커먼 연기, 학생들이 일으킨 흙먼지가 뒤섞여 하늘 높이 솟구쳤다.
여기가 학관인지 전쟁터인지 분간이 안 될 지경이었다.
청룡학관 역사의 산증인으로서, 매극렴도 지난 수십 년 동안 처음 보는 난장판이었다.
‘백무흔 그놈이 학생일 때도 이 정도는 아니었거늘!’
그때도 기껏해야 술 마시러 담을 넘고, 어린 것들끼리 만나 연애질이나 하는 게 대부분이었다.
간혹 패싸움하는 놈들도 있었으나, 이렇게 백 명이 넘어가는 규모는 단 한 번도 없었다.
물론 백무흔 그 개잡, 아니 사위 놈은 그때도 특출나긴 했다.
시험이 끝나고 약빙과 무단 외박을 할 계획을 꾸미다 자신에게 걸렸을 때, 그때 죽였으면 오늘 이 꼴도 안 봤을 텐데…….
“허허…….”
적당히 해야 호통을 치고 말리기라도 할 텐데.
이건 규모가 워낙에 커서 매극렴도 당장 어찌해야 할지 엄두를 못 내고 있었다.
매극렴만이 아니었다. 다른 강사들도 밖으로 나와 그 난장판을 구경했다.
“이, 이게 대체 무슨 일입니까?”
“세상에…….”
“밖에서 보면 학관에 불이라도 난 줄 알겠습니다!”
오늘로 기말고사 일정이 모두 끝났기 때문에, 강사들도 대부분 나와서 이 진풍경을 구경하게 되었다.
“어쩌다가 일이 이렇게까지…….”
“저 난장판을 그냥 내버려 둬도 괜찮은 겁니까?”
“이러다 큰 부상자라도 나오면 어쩌려는 것인지…….”
무공을 가르치는 학관이기에 학생들이 다치는 일도 종종 생기지만, 그것도 납득될 만한 이유가 있을 때의 경우였다.
만약 저 난장판에서 학생들이 지나치게 흥분해 누군가 크게 다치거나 불구라도 된다면, 청룡학관의 명성에 먹칠을 하게 될 터였다.
“누가 좀 말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대체 누가 말입니까?”
“그거야 이 시험의 감독관이…….”
강사들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이 난장판의 원인을 제공한 사람에게로 향했다.
그곳에는 느긋하게 뒷짐을 진 채로 제자들이 만들어 낸 난장판을 구경 중인 백수룡이 있었다.
‘또! 또 저 인간이지!’
‘하여튼 무슨 일만 생기면!’
그러나 강사들은 속으로만 욕할 뿐, 청룡신협의 명성이 주는 위세에 눌려 직접 말하지는 못했다.
백수룡은 더 이상 만만한 신입 강사가 아니었다.
천하를 들썩이게 할 정도로 명성을 떨치는 초고수이자, 혈교의 위협으로부터 남궁세가를 구한 영웅.
이런 소란을 가장 싫어하는 남궁수조차 미간만 찌푸릴 뿐 가만히 있었다.
남궁수는 지끈거리는 관자놀이를 꾹꾹 누르며 한숨을 쉬었다.
“본가의 은인만 아니었으면…….”
다른 강사들이 아무도 나서지 않는 모습을 지켜본 매극렴은 자신이 나서야 할 순간이라고 생각했다.
“이보게, 백수룡 선생! 이게 대체 무슨 짓인가?”
손자를 아끼는 마음과는 별개였다.
만약 저 난장판에서 학생들이 크게 다치기라도 한다면, 청룡학관의 명성이 바닥에 떨어지는 것은 물론이고, 수룡의 강사 인생에 큰 오점이 남을 수도 있었다.
그것만은 반드시 막아야 했다.
‘과분한 명성이 너를 오만하게 만든 모양이구나. 내 오늘은 네게 망신을 주는 한이 있더라도 따끔하게 질책해야겠다!’
단단히 마음먹은 매극렴이 성큼성큼 다가가자, 백수룡이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머쓱하게 웃으며 말했다.
“하하. 요즘 애들 참 활기가 넘치죠?”
이놈이 어디서 은근슬쩍 애들 탓으로 넘어가려고 들어!
네놈이 이 난장판을 만든 원흉이잖아!
손자의 뻔뻔한 대답에 매극렴의 수염이 파르르 떨렸다.
둘만 있는 자리였다면 당장에 볼기짝을 후려쳤을 것이다.
“긴 말 할 것 없으니, 당장 저 시험을 멈추게. 이러다 누구 하나 다치는 꼴을 보고 싶은 겐가?”
“그 점이라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백수룡이 씩 웃었다.
“미리 악연호, 명일오, 제갈소영, 곽두용 선생에게 부탁해 두었습니다. 저 안에서 위험한 일이 생기면, 세 사람이 나서서 중재할 겁니다.”
피어오르는 연기와 흙먼지 때문에 자세히 보이지는 않았지만, 백수룡이 말한 네 강사는 난장판 안에 정체를 숨기고 들어가 있었다.
충분한 안전장치를 해 두었다는 말이었지만, 매극렴은 그 정도로는 물러서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도, 나는 저 난장판을 계속 지켜봐야 할 이유를 모르겠네. 저리 패싸움을 벌이는 것이 학생들에게 어떤 도움이 된단 말인가?”
매극렴의 말에 많은 강사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저런 난장판 속에서 규칙도 없이 벌어지는 집단전은, 그들이 보기엔 그저 패싸움에 불과했다.
“이 수업의 취지와 의도는 이해하네. 하지만 다른 학생들까지 끌어들이는 것은 과한 일이야. 어서 저 난장판을 멈추시게.”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아무래도 이건 좀 지나친 면이 있지요.”
매극렴이 나서자 용기를 얻은 다른 강사들도 한마디씩 덧붙였다.
그들의 말은 구구절절 정론이었으나, 백수룡은 매극렴의 말만 빼고는 대충 흘려들었다.
“학생주임 선생님.”
입가에 미소를 싹 지운 백수룡이 매극렴을 똑바로 바라봤다.
“저 아이들은 앞으로 저런 싸움에 익숙해져야 합니다.”
지금은 할아버지와 손자가 아닌, 아닌 강사 대 강사로서 마주 선 것이기 때문이었다.
“익숙해져야 한다니? 정파의 대들보가 될 아이들을 사파의 시정잡배로 만들 생각인가?”
매극렴이 하얀 눈썹을 꿈틀거리며 물었다. 그의 몸에서 날카로운 기세가 피어올랐다.
백수룡도 그 시선을 피하지 않고 똑바로 마주 봤다.
“최근 무림의 정세가 급격히 혼란스러워지고 있습니다. 저 아이들은 몇 년 안에 전쟁터에 나가야 할지도 모릅니다. 당장 내년이나 올해일 수도 있지요.”
“…….”
순간 매극렴은 말문이 막혔다. 백수룡이 말을 이었다.
“실전에서는 일대일 비무가 더 드뭅니다. 전쟁이라도 벌어지면 저런 난전이 기본이지요.”
“……저 난장판이 혈교와의 전쟁에 대비한 모의전이란 말이냐?”
매극렴이 눈을 가늘게 좁히며 묻자, 백수룡은 고개를 저으며 웃었다.
“진짜 전쟁에 비하면 저 정도는 놀이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잠시 말을 멈춘 백수룡은 자신을 바라보는 강사들을 죽 훑었다.
그의 시선이 남궁수에게서 멈췄다.
‘도와줘라, 좀.’
말로 하지 않아도 눈빛만으로 알 수 있었다.
한숨을 내쉰 남궁수가 입을 열었다.
“도움은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온실 속에서 자란 화초는 갑작스러운 환경의 변화에 취약합니다. 정파 학관의 아이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정해진 수업과 비무, 시험이 반복되면서 사고가 굳어 버리지요.”
남궁수의 시선이 병장기 부딪치는 소리와 고함이 난무하는 난장판으로 향했다.
“저 아이들 중 절반 이상은 사람을 진심으로 베어 본 적도, 혼자 무림을 돌아다녀 본 적도 없습니다.”
향낭이라는 목표 때문에 적과 아군을 구분할 수 없고, 매캐한 연기 속에서 언제 뭐가 날아올지도 모른다. 저 안에서 기습과 함정은 기본이었다.
목숨까지 건 싸움은 아니지만, 저 정도만으로도 학생들에겐 굉장히 놀랍고 다양한 경험이 될 것이다.
“……백수룡 선생의 수업 방식이 많이 과격한 것은 사실이나, 저 역시 이런 것도 한 번쯤은 필요하다고 봅니다.”
남궁수가 한숨을 쉬면서도 나서지 않은 이유였다.
아무리 백수룡이 가문의 은인이라 해도, 학생들을 상대로 터무니없는 짓을 했으면 가만히 지켜볼 그가 아니었다.
남궁수가 백수룡을 힐끗 바라봤다. 그가 눈으로 말했다.
‘이제 됐나?’
‘고맙다.’
눈인사로 남궁수에게 고마움을 표한 백수룡이 다시 매극렴을 바라봤다. 그가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
“무슨 말씀을 하셔도 시험 시간이 끝날 때까지는 멈출 생각이 없습니다.”
“허어…….”
매극렴은 여전히 완전히 납득하지 못한 표정이었지만, 남궁수까지 백수룡 편을 들고 나서자 더 따지는 것도 힘들어졌다.
결국, 매극렴 역시 한숨을 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까지 말한다면 알겠다. 단, 크게 다치는 아이가 없도록 신경 써야 할 것이다.”
“제가 책임지겠습니다.”
“누가 다친 후에 책임지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이냐. 예방을 말하는 것이다.”
매극렴은 주위를 둘러보며 다른 강사들에게 말했다.
“우리도 구경만 할 것이 아니라, 시험을 지켜보다가 부상자가 있으면 곧바로 끼어들어 구합시다. 다들 도와주시오.”
공교롭게도 노군상과 곽철우는 자리를 비운 상황이었다.
강사 경력으로도 무림의 배분으로도 매극렴의 말을 거절할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내가 구역을 나눠 줄 테니, 다들 가서 상황을 지켜보다 나서야 할 순간에 나서시오.”
““예!””
강사들은 매극렴의 지시에 따라 흩어졌다. 시험을 방해하지 않는 선에서 학생들의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서였다.
‘휴우.’
상황이 정리되는 모습을 보며 백수룡은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다행히 경위서는 쓰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이렇게까지 판이 커질 줄이야.’
태연한 척했지만, 사실 누구보다 당황한 사람은 바로 백수룡이었다.
학생들에게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라고는 했지만, 이렇게까지 난장판을 만들어 놓을 줄이야.
백수룡의 시선이 난장판 속에서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제자들을 향했다. 그의 눈이 가늘어졌다.
‘저 미친놈들 진짜.’
백수룡에게 청룡신협이라는 명성이 없었다면, 진작 다른 강사들이 강제로 시험을 중지시켰을 것이다.
“하여튼 어디서 못된 것만 배워서……. 흠흠.”
누워서 침 뱉기 같아서 백수룡은 하던 말을 멈췄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 ‘어디서’는 자신밖에 없었다.
이게 다 제자들을 되바라지게 키운 본인의 업보였다.
‘어쨌든, 시작을 했으니 끝까지 해 봐라. 뒷수습은 내가 할 테니까.’
백수룡은 난장판을 전체적으로 살피고 있는 매극렴에게 다가갔다. 아까부터 궁금한 게 있어서였다.
“할아버님. 그런데 관주님은 어디 가셨습니까? 아까부터 모습이 안 보이시던데요.”
노군상뿐만 아니라 부관주인 곽철우의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두 사람이 함께 자리를 비우는 것은 흔한 일이 아니었다.
“아까 무림맹의 연락을 받고 급히 가셨다.”
“……무림맹이요?”
백수룡의 표정이 살짝 굳었다. 최근 무림맹에서 올 연락은 하나뿐이었다.
매극렴이 고개를 끄덕였다.
“언뜻 듣기로는 무림맹주가 내일 중으로 학관을 방문할 모양이라는구나.”
역시나.
무림맹주와 관련된 호출이었다.
백수룡은 괜히 신경이 쓰여 무림맹 강서지부가 있는 방향을 바라봤다.
매극렴이 그런 백수룡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말했다.
“관주님은 네가 걱정할 분이 아니다. 지금은 저 아이들을 잘 지켜보거라. 한 학기 동안 네가 직접 가르친 제자들이 아니더냐.”
“……예. 알겠습니다.”
매극렴의 말이 맞았다.
백수룡은 다른 걱정은 접어두고, 난장판 속에서 싸우는 자신의 학생들에게 집중했다.
이번 시험에서 학생들이 최선을 넘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모습, 방법을 찾기 위해 고민하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고자 했다.
‘그래서 일부러 너희끼리 충돌하는 임무를 여럿 만들었지.’
처음부터 결과보다는 과정을 지켜볼 생각이었다.
어차피 임무에 성공할 사람은 거의 없을 거라고 예상하며 어려운 난이도로 문제를 만들었다.
일부는 예상보다 실망스러웠고, 일부는 기대에 충분히 부응했다. 기대를 훌쩍 뛰어넘는 녀석도 있었다.
그러나 결과에 상관없이, 백수룡은 학생들에게 같은 감정을 느꼈다.
‘다들 한 학기 동안 수고했다.’
다른 학생들과 섞어 놓고 냉정하게 보니, 학생들 개개인의 실력이 성장했다는 것이 확연히 눈에 들어왔다.
백수룡뿐만이 아니라, 난장판을 지켜보는 다른 강사들도 모두 놀라서 감탄을 연발했다.
“헌원강이 저렇게 도를 잘 다뤘나?”
“검재라더니. 위지천의 실력은 과연 명불허전이군!”
“야수혁 말입니다. 위지천에게 가려져서 그렇지, 저 녀석도 일 학년의 수준을 한참 벗어났습니다.”
“거상웅? 저 녀석 사 학년 거상웅 맞습니까? 허어. 못 본 사이에 훤칠해졌군요. 실력도 예사롭지 않고…….”
“백 선생의 제자 중에 여민이라고 있지 않습니까? 신출귀몰하게 움직이더니 아까부터 보이질 않는군요.”
다른 강사들의 입에서 제자들의 이름이 언급될 때마다, 백수룡은 자신의 일처럼 뿌듯했다.
다들 한 학기 동안의 성과를 보여 주고 있었다.
또한 다섯 제자들 외에도 두각을 드러내는 학생들이 곳곳에 보였다.
“다음 학기 수강생 명단이 슬슬 보이는군.”
백수룡이 진흙 속의 진주들을 바라보며 눈을 반짝일 때였다.
“그건 그렇고, 내 수염은 어디에 쓰려고 했느냐?”
“……예?”
아뿔싸.
아직 어깨에 올라와 있는 매극렴의 손에 묵직한 힘이 들어갔다. 백수룡의 이마에서 식은땀 한 방울이 흘렀다.
이 순간만을 기다린 걸까?
무림십존이라 해도 이 거리에선 도망치지 못한다.
백수룡이 어색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무슨 말씀이신지……?”
매극렴이 스산하게 웃었다. 한 자루 예리한 검을 연상시키는 미소였다.
“천이가 날 찾아와선 그러더구나. 네가 내 수염을 잘라오라고 시켰다고.”
“하, 하하……. 그게 아니라…….”
“어디 천천히 한번 설명해 보거라. 시험이 끝날 때까지 시간은 넉넉하니.”
백수룡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다. 그에게 내려진 시험은 지금부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