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mber One Star Instructor Master Baek RAW novel - Chapter 284
283화. 무림맹주 (3)
맹주는 자리에 앉자마자 술을 찾았다.
“차 말고 술은 없나?”
안하무인 격의 행동에 백수룡과 함께 맹주를 따라온 남궁수는 눈살을 찌푸렸지만, 백수룡은 태연하게 대답했다.
“학생들한테서 압수한 게 있습니다. 대부분 싸구려 화주인데. 그거라도 드릴까요?”
“종류가 무슨 상관이겠나. 취하기만 하면 되지.”
잠시 후, 백수룡은 술과 잔 두 개를 가지고 돌아왔다.
맹주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잔이 두 개뿐인가? 사람은 셋인데.”
남궁수가 단호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학관 내에서의 음주는 금지되어 있습니다.”
“남궁가 삼공자는 샌님이었군.”
피식 웃은 맹주는 자신과 백수룡의 잔에 술을 가득 부었다. 그러곤 단숨에 목구멍 안으로 술을 털어 넣었다.
백수룡도 잔을 비웠다. 맹주가 빈 잔을 채우며 말했다.
“아까 내가 한 말. 자네들은 어떻게 생각하나?”
“청룡학관 학생들의 참전을 바라시는 거라면, 저는 반대입니다.”
이번에도 남궁수의 대답이었다. 맹주가 그를 바라봤다. 그냥 쳐다보는 것인데도 눈동자에서 불이 쏟아질 것 같았다.
“어째서?”
“아직 어리고 경험이 부족한 학생들이기 때문입니다.”
“저 나이면 한 명 몫은 충분히 할 수 있어야 한다. 경험은 채우면 돼. 무인은 언젠가 강호에 나서고, 결국 칼에 피를 묻히지. 저 녀석들이 언제까지 학생일 것 같나?”
맹주의 몸에서 흰색의 아지랑이가 은은히 피어올랐다.
그러나 남궁수는 흔들림 없는 눈으로 맹주를 쳐다봤다.
“졸업하기 전까지는 제 학생들입니다.”
무기를 부딪쳐야만 싸움이 아니다.
두 사람은 언성은 높이지 않았지만, 서로를 향한 말은 점점 날카로워졌다.
“학생들을 겁쟁이로 만들겠다는 말처럼 들리는군.”
“어째서 그렇습니까?”
“계속 그렇게 감싸고 돌면, 정작 싸워야 할 때가 와도 벌벌 떨면서 선생 뒤에 숨기밖에 더하겠나.”
“아무것도 모르고 전장에 끌려나가서 칼받이가 되는 것보단 낫습니다.”
“……청룡학관 선생들은 다 간이 부었나?”
“대체로 그런 편입니다.”
맹주와 남궁수가 설전을 벌이는 동안, 백수룡은 맹주의 일거수일투족을 관찰했다.
‘마치 전생의 맹사부를 보는 것 같군. 내가 만나 본 사람 중에서도 가장 완벽한 육체다.’
녹림십팔식으로 익히지 않고 어떻게 저 정도의 육체를 완성할 수 있는지, 경탄스러울 지경이었다.
과연 권왕이라는 별호는 아무나 갖는 것이 아니었다.
‘성격은, 듣던 대로 직선적이고 과격한 면이 있군. 하지만…….’
맹주는 말주변이 좋은 사내가 아니다.
살면서 말로 누군가를 설득해 본 적도 별로 없었을 것이다. 그럴 필요 자체가 없었겠지.
‘오히려 이게 상대하기 편해.’
적어도 창천검왕 같은 위선자는 아니다.
맹주가 안하무인 격으로 행동하고, 목적을 위해서라면 아군의 희생도 대수롭지 않게 여길 듯한 언행을 보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거기에 가식과 위선은 없었다.
“쯧. 남궁가 삼공자는 흔한 정파의 샌님이었군.”
“……그게 정파를 이끄는 무림맹주가 할 말입니까?”
맹주는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남궁수로부터 고개를 돌렸다. 그가 백수룡을 바라보며 씩 웃었다.
“아까부터 말없이 나를 염탐하던데. 뭔가 알아낸 게 있느냐?”
“맹주님이 솔직한 분이라는 것은 알겠습니다. 하신 말씀 중에 일리가 있는 부분도 있고요.”
맹주의 호랑이 같은 눈이 번뜩였다.
“자네는 어떤가? 남궁수 선생처럼 학생들이 전쟁에 참전하는 걸 반대하나?”
“……저는 찬성하는 쪽입니다.”
“백수룡!”
남궁수가 백수룡을 노려봤다. 맹주도 의외라는 반응이었다.
“아까 날 그렇게 망신 주기에, 날 싫어하는 줄 알았는데.”
“조금 전에는 시험을 방해받아서 정말로 짜증이 났습니다. 하지만 그건 그거고.”
백수룡은 목이 타는지 술을 마셨다.
“현실적으로 생각해 볼 때, 청룡학관 정도의 전력을 전쟁에 투입하지 않는 건 낭비라고 생각합니다. 혈교는 강하니까요.”
백수룡은 무림맹의 그 누구보다 혈교에 대해서 잘 알았다.
적이 얼마나 강한지, 어설프게 상대했다간 어떤 꼴을 당할지 예상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피를 흘리지 않고 전쟁에서 이길 수는 없습니다. 그렇다면 최대한 적게 흘려야 하는데, 힘을 하나로 모아서 최대한 빨리 끝내는 것이 정답이겠죠.”
맹주의 표정이 밝아졌다.
“그래! 그게 바로 내가 하고 싶은 말이다!”
“학생들은 전장에 나설 준비가 안 됐다. 무의미한 희생만 많아질 거란 걸 모르나?”
남궁수가 싸늘한 표정으로 백수룡을 노려보며 말했다.
백수룡은 덤덤히 그 시선을 받아넘겼다.
“지금부터 준비해야지. 천무제 준비와 함께 말이야.”
“지금 나랑 장난…….”
“장난하는 거로 보여?”
백수룡의 표정은 더없이 진지했다. 남궁수는 잠시 그를 노려보다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내가 여기 있을 이유가 더는 없는 것 같군.”
콰앙!
백수룡은 남궁수가 닫고 나가 버린 문을 잠시 응시했다.
‘남궁세가에서 겪은 일을 또다시 겪고 싶지 않은 거겠지.’
하지만, 남궁수도 결국엔 이해할 것이다.
청룡학관도 전쟁의 화마를 피해 갈 수 없다는 것을 말이다.
“하하하! 과연 혈교의 장로를 찢어 죽인 영웅답구나!”
반면, 맹주는 진심으로 기뻐했다.
혈교의 위협을 이 정도로 진지하게 인지하고 있는 상대를 만난 건 맹주도 무척 오랜만이었다.
그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맺혔다.
“크하하! 자네 같은 후배가 있으니, 이번엔 반드시 혈교 놈들을 박멸할 수 있으리라 믿네. 노군상 선배가 오면 똑같이 말해 주게. 그 양반이 맹의 공식적인 제안을 거절하는 바람에 내가 얼마나…….”
하지만 백수룡의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것과 별개로, 청룡학관이 무림맹의 명령을 따르는 것은 반대합니다. 관주님도 같은 생각이십니다.”
무림맹주의 웃음이 뚝 그쳤다. 호랑이 같은 두 눈에 노기가 끓어올랐다.
“지금 나를 우롱하는 건가? 방금 네 입으로 힘을 합쳐야 한다고 하지 않았느냐.”
“물론 그것도 진심입니다.”
콰앙!
탁자를 반으로 쪼갠 맹주가 굶주린 야수 같은 눈으로 백수룡을 노려봤다.
“쉽게 말해라. 알다시피 나는 인내심이 그리 많은 편이 아니다.”
백수룡은 잠시 뜸을 들였다.
무림맹주가 청룡학관을 방문할 거라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부터, 그는 많은 생각과 고민을 했다.
‘무림맹주를 적으로 만들어선 안 돼.’
혈교와의 전쟁에서 이기려면, 무림맹의 힘이 꼭 필요하다.
한때는 무림맹에 있을 혈교의 세작들 때문에 접촉하는 것이 꺼려졌지만, 무림맹주와 직접 이야기할 수 있게 된 지금은 상황이 크게 달라졌다.
‘무림맹을 이용해서 혈교를 친다.’
그러기 위해선, 청룡학관과 무림맹의 관계 정립이 우선이었다.
“청룡학관은 무림맹과 대등한 동맹을 원합니다.”
“대등한 동맹이라……. 재미있는 말이군.”
피식 웃은 맹주는 바닥을 구르고 있던 화주를 들어 병째로 들이켰다.
벌컥벌컥.
입가를 타고 흐른 술이 맹주의 두꺼운 목울대를 타고 흘렀다.
단숨에 병을 비워 낸 맹주가 그것을 바닥에 내려놓으며 말했다.
“너희 눈에는, 내가 어린아이들을 전쟁터에 내모는 전쟁광으로 보일 수도 있겠지.”
백수룡은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맹주는 큭큭 웃었다.
“오십 년 전에 말이다. 나는 겨우 열두 살이었다.”
오십 년 전.
정파 무림이 합심해 혈교를 무너뜨린 마지막 전쟁.
맹주는 그 당시 이야기를 시작했다.
“혈교는 내분으로 약해져 있었다. 무림맹의 세작이 그 사실을 알아냈고, 맹은 이번에야말로 혈교를 무너뜨릴 기회라 판단했지.”
듣기 쉽지 않은 이야기였다. 백수룡은 말없이 귀를 기울였다.
“당시 무림맹은 수많은 동맹을 가지고 있었다. 구파일방과 오대세가. 수많은 중소문파와 세가들. 모두가 뜻을 모아 혈교를 치기로 했다. 하지만 전쟁을 시작하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어째서입니까?”
“동맹이란 것들이 사사건건 트집을 잡았으니까. 편제는 어떻게 할 것인지, 자기 문파의 고수를 어느 부대에 배치할 것인지, 전쟁이 끝난 후에 전리품은 어찌 나눌 것인지…….”
옛일을 떠올린 맹주의 눈동자가 격렬한 분노로 흔들렸다.
“어찌어찌 준비를 끝내고 출정했지만, 나가서도 잡음이 많았다. 평소 앙숙이었던 문파의 무인들끼리 싸움은 흔한 일이었고, 배식 하나에도 자존심을 세웠지.”
“그래도 전쟁에선 이기지 않았습니까?”
백수룡의 말에 맹주가 허탈하게 웃었다.
“이겼지. 다 죽어 가는 혈교를 상대로 전력의 절반이 날아갔지만, 이기긴 이겼지.”
“…….”
당시 맹주의 스승이었던 태천신권은 제자들과 함께 무림맹 소속으로 전쟁에 참여했다.
하지만 전쟁이 끝났을 때 살아남은 사람은 태천신권의 가장 어린 제자였던 야율황, 현 맹주뿐이었다.
“스승님과 사형들이 최후의 발악을 하는 혈교의 고수들과 목숨 걸고 싸울 때, 함께 포위 공격을 하기로 한 부대가 나타나지 않았다. 알고 보니 싸움이 다 끝난 줄 알고 전리품을 챙기고 있었다더군.”
“…….”
“나는 사형제 중 가장 어리다는 이유로 후방부대에 배치되어 있어서 살아남았다. 그땐 차라리 죽었으면 했지만, 결과적으로 그 덕분에 무림맹주가 되었지.”
전쟁이 끝난 후, 소년이었던 야율황은 무림맹에 완전히 투신했다.
그리고 수십 년의 세월이 흘러 그는 무림맹주가 되었고, 마침 혈교의 움직임도 발견했다.
드디어 혈교에 복수할 날이 찾아온 것이다.
“이쯤 이야기했으면 내가 동맹을 신뢰하지 않는다는 것도 알겠지. 과거와 같은 실수를 반복할 생각은 없다. 혈교를 무너뜨리기 위해선, 하나의 조직으로 굴러가야 해.”
듣고만 있던 백수룡이 입을 열었다.
“청룡학관은 맹주님이 생각하시는 문제를 일으키지 않겠습니다. 제 이름을 걸고 약속할 수 있습니다.”
“다른 오대학관도 그럴 것 같나?”
“음…….”
백수룡이 쉽게 대답하지 못하자, 맹주는 오대학관의 중요성을 설명했다.
“오대학관은 각 지역의 거점이자 다수의 무인이 동시에 훈련할 수 있는 환경마저 갖추고 있다. 게다가, 자네처럼 숙련된 무공교관들까지 다수 보유하고 있지. 전쟁이 시작되면 가장 중요한 조직이 될 거다.”
맹주의 궁극적인 목표는 오대학관 전체를 무림맹 휘하 편제로 장악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최근 오십 년 동안 오대학관의 명성은 웬만한 대문파만큼이나 높아졌다.
특히 천무학관의 명성은 무림맹의 아성을 넘볼 정도였다.
“이것이 맹이 청룡학관을 반드시 휘하에 두어야 하는 이유다. 선례가 중요하니까.”
“……무슨 말씀인지는 알겠습니다.”
백수룡은 고개를 끄덕였다.
깊은 대화를 나누면서 맹주의 입장을 충분히 이해했다.
그 과정에서 맹주가 단순히 이기적이기만 한 사내가 아니라는 것도 알게 됐다. 그의 논리에도 일리는 있었다.
물론, 그렇다고 청룡학관을 무림맹 편제로 편입시키는 것에 찬성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 대신…….
“생각을 좀 해 봤는데,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간단한 방법이 하나 있습니다.”
“방법이 있다고?”
맹주는 미심쩍은 표정으로 백수룡을 바라봤다.
고개를 끄덕인 백수룡은 맹주를 똑바로 쳐다보며 당당하게 요구했다.
“무림맹에 자리 하나만 만들어 주십시오.”
“……뭐?”
“어찌 됐든 혈교와의 전쟁에서 이기는 게 목적 아닙니까?”
“그렇지. 그래서?”
백수룡이 자신만만하게 웃었다.
“무림맹이 반드시 이길 수 있도록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그러니 제게 그럴듯한 자리 하나만 만들어 달란 뜻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