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mber One Star Instructor Master Baek RAW novel - Chapter 289
288화. 뭐 이런 도둑놈이
오늘도 평화로운 백룡장.
어김없이 학생들의 비명으로 아침을 열었다.
“꾸에엑!”
돼지 멱따는 소리와 함께 허공에 붕 떠올랐던 헌원강이 바닥에 처박혔다.
쾅!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헌원강의 몸 위로 거상웅, 야수혁, 여민, 위지천이 차례대로 떨어졌다. 바닥이 네 차례나 더 들썩이며 흙먼지가 피어올랐다.
“콜록! 콜록! 비켜, 이 돼지 새끼들아! 숨 막힌다고!”
맨 밑에 깔린 헌원강이 바둥거리며 선후배들을 밀어냈다.
헌원강은 이 상황이 무척 억울했다.
“젠장! 왜 맨날 내가 맨 밑에 깔리는 거야?”
“그거야, 원강이 네가 제일 먼저 처맞고 날아와서 그렇지.”
거상웅이 후배의 얼굴을 손으로 밀어내며 몸을 일으켰다.
구시렁거릴 시간이 없었다.
아침 수련은 이제 막 시작이었으니까.
“이것들이, 곧 방학이라고 아주 빠져가지고.”
이른 아침이라 머리도 제대로 묶지 않은 백수룡이 걸어 나왔다. 검을 어깨에 대충 걸치고, 옷도 헐렁한 잠옷 차림이었다.
“벌써부터 놀고먹을 생각에 설레지? 그렇게 기말고사를 개판으로 만들어 놓고 말이야.”
백수룡이 미간을 가늘게 좁히자 제자들이 움찔했다.
학관을 난장판으로 만들어 놓은 것이 사실이었으니까.
청룡신협으로 명성을 떨친 백수룡의 시험이었기에 망정이지, 다른 과목 같았으면 시험 중지는 물론이고 정학이나 퇴학 처분을 받을 수도 있었다.
그때, 여민이 손을 들고 소심하게 반항했다.
“하지만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라고 한 건 선생님이었잖아요.”
“옳소!”
“우리는 배운 대로 했다!”
“이게 다 선생님한테 물든 건데요!”
“청출어람! 근묵자흑! 토사구팽!”
“……야. 마지막은 아니야.”
다른 제자들도 억울함을 가득 담아 항변하는 가운데, 백수룡은 피식 웃었다.
“누가 뭐래? 잘했다. 몇 개는 나도 예상 못 했을 정도로 기발했어. 한 학기 동안 모두 열심히 노력했다는 게 느껴졌다.”
혼날 줄 알았던 제자들의 눈이 동그래졌다.
생각지도 못했던 칭찬에 눈시울이 조금 붉어지기도 했다.
““선생님…….””
“하지만.”
당연히 여기서 끝이 아니다.
표정을 싹 굳힌 백수룡이 눈썹을 치켜뜨며 말했다.
“결국 한 놈도 임무를 성공시키지 못했다는 것이 말이 되냐? 내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임무를 완수하랬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학관을 난장판으로 만들랬어?”
““그, 그건…….””
백수룡이 검 끝을 바닥에 질질 끌며 걸어왔다.
자신이 다가가는 만큼 뒷걸음질 치는 제자들을 향해, 백수룡은 싱긋 웃으며 말했다.
“내가 먼저 갈까?”
너희가 선공이라도 해야 눈곱만큼이라도 승산이 있지 않겠느냐는 말이었다.
결국 또 헌원강이 선두로 나서며 소리쳤다.
“젠장! 이러나저러나 마찬가지야! 백수룡 조지기 백삼십팔번으로 간다!”
“……이상하게 숫자가 항상 십팔로 끝나는 것 같다?”
“문답무용!”
그렇게 처맞고도 또다시 선두로 달려가는 헌원강을 보며, 다들 한숨을 푹 내쉬었다.
“쟤는 학습 능력이 없나?”
“어쨌든 덕분에 맨 밑에 안 깔려서 좋긴 하니까요.”
다들 투덜거리면서도 헌원강을 뒤따라 백수룡을 포위했다.
사방에서 덮쳐오는 제자들의 기파를 느끼며, 백수룡은 피식 웃었다.
‘확실히 다들 많이 성장했어.’
이제는 방심하고 있다가는 옷깃을 베일 정도는 되니까.
백수룡은 창룡검을 검집에서 뽑으며 중얼거렸다.
“아직 내가 원하는 수준이 되려면 한참 멀었지만.”
쩌저저저저정!
그렇게 연무장에 또 한차례 폭풍이 휩쓸고 지나간 후.
백수룡은 바닥에 대자로 뻗어서 숨을 헐떡이는 제자들에게 말했다.
“알다시피 며칠 후면 종업식이다. 그리고 방학이지.”
종업식에서 기말고사 성적을 포함한 한 학기 성적이 발표된다.
그리고 약 두 달 동안의 방학.
학생들은 각자 성적표를 들고 집으로 돌아가 가족과 시간을 보내거나, 기숙사 등에 머물러 개인 수련을 할 수도 있었다.
“방학 때는 다들 어쩔 생각이냐?”
“저는 집에 다녀오려고요. 아버지가 이번 방학 땐 꼭 오라고 하셔서…….”
헌원강이 상체를 일으키며 말했다.
최근 가전무공인 진천도를 복구한 헌원세가는 조금씩 과거의 영광을 되찾아가는 중이었다.
게다가 헌원강도 ‘파천도’라는 별호를 이으며 무림에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으니, 돌아가면 큰 환대를 받을 것이다.
“저도 산채에 다녀오겠습니다. 형님들한테 보고도 해야 하고요.”
야수혁도 방학 때는 녹의수사를 만나고 올 계획이라고 했다.
“저, 저는 상검연 합숙 수련에 다녀올게요. 한 달 정도…….”
위지천은 결국 유이란이 제안한 상검연 합숙 수련에 함께 가기로 했다.
“이 자식. 혼자 청춘이라 이거지?”
“후배야. 응원한다.”
“젠장. 난 땀내 나는 사내들이나 잔뜩 보러 가는데…….”
헌원강과 거상웅이 위지천의 양쪽으로 어깨동무를 하며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 그러다 여민에게 등짝을 얻어맞고 펄쩍 뛰었다.
“흠흠. 저는 방학에는 집에서 숙식하면서 백룡장으로 출퇴근할 생각입니다.”
집에서 강제로 내쫓겼던 거상웅은 방학 때는 집에서 머물러도 된다고 금룡장주에게 허락을 받았다.
“전 딱히 갈 곳 없어요. 여기 남아서 계속 수련이나 하게요.”
여민은 아무 일정이 없었다. 선후배들에 비해 늦게 익히기 시작한 빙공을 방학 동안 열심히 수련해서 따라잡을 계획이었다.
그런데 설마, 백수룡이 방학 때 백룡장을 비울 줄은 몰랐다.
“나는 방학 기간에 이곳에 거의 없을 거다.”
“예?”
“왜요?”
모두의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에, 오히려 백수룡이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나는 뭐 맨날 여기 남아서 주구장창 일만 할 줄 알았어?”
“아니이…….”
“그래도…….”
선생님이 방학 때 백룡장을 비운다니, 괜히 섭섭한 기분이 들어 입술이 삐죽 튀어나오는 제자들이었다.
방학을 기다린 것은 학생들만이 아니었다.
백수룡은 방학 기간을 이용해, 예전부터 생각해 두었던 몇몇 장소에 들렀다 올 생각이었다.
“볼일이 끝나면 불시에 가정방문 하러 갈 수도 있으니까, 다들 방심하지 말고 수련들 열심히 하고 있어라.”
“네…….”
백수룡은 아쉬워하는 제자들의 머리를 툭툭 두드려 주었다.
“그럼 방학 계획은 각자 더 정리해서 내게 알려 주고…….”
백수룡은 하려던 말을 멈추고 고개를 홱 돌렸다.
그의 입가에 미소가 맺혔다.
“아침부터 손님이 왔군.”
그 순간, 내공이 담긴 목소리가 백룡장 밖에서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청룡신협 계십니까? 무림맹에서 왔습니다!”
맹주의 목소리는 아니었다. 하지만 목소리에 담긴 내공이 상당히 깊었다.
‘고수다.’
백수룡은 어떻게 할까 잠시 고민하다가, 놀란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제자들에게 말했다.
“너희는 들어가 있어.”
제자들이 방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확인한 백수룡이 대문 쪽을 향해 외쳤다.
“잠깐 기다려 주십시오!”
백수룡은 방으로 들어가 몸을 씻고, 옷을 갈아입고, 옷매무새를 단정히 한 후에 대문으로 가서 활짝 문을 열었다.
“제가 백수룡입니다만, 어떻게 오셨습니까?”
대문 앞에는 백의 무복 차림에 왼쪽 가슴에 ‘천무(天武)’라는 두 글자가 선명한 무인이 서 있었다.
맹주의 친위대인 천무대 소속 무인이었다.
“잠깐이 꽤 길군요.”
백수룡에게 모욕을 당했다고 생각하는지, 사내의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백수룡이 태연하게 웃으며 말했다.
“죄송합니다. 수련을 하던 중이어서, 땀범벅인 채로 손님을 맞이할 수는 없었습니다.”
“손님을 들인 후에 몸을 씻으셔도 되는 것 아닙니까?”
“손님을 들이고 말고는 제 선택입니다. 이렇게 이른 시간에 불쑥 찾아오신 것치고는 바라는 게 많으시네요.”
“…….”
말문이 막힌 사내는 입술을 꽉 깨물고 백수룡을 노려보았다. 백수룡도 그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불쑥 찾아온 점은 사과드리겠습니다.”
예상치 못한 상대의 사과에 이번에는 백수룡이 조금 놀랐다.
‘이거 봐라?’
백수룡도 이쪽에 주도권이 있음을 알리려고 일부러 늦게 나온 것이 맞았다.
상대도 그것을 분명히 알 것이다.
하지만 필요 이상으로 도발에 반응하지 않는다.
정신수양이 상당히 잘된 무인이라는 의미였다.
‘하긴. 그쯤 되니까 맹주의 친위대로 뽑혔겠지.’
괜히 떠보는 것은 그만두기로 했다. 백수룡은 용건을 물었다.
“어쩐 일로 오셨습니까?”
“맹주께서 오늘 오전 중에 방문해도 되는지 여쭤보라고 하셨습니다.”
그 순간, 백수룡의 입꼬리가 저절로 올라가 호선을 그렸다.
‘어지간히 똥줄이 탄 모양이군.’
그 성격 급한 맹주가 수하를 먼저 보내 방문해도 되는지 물었다.
이쪽의 눈치를 본다는 의미였다.
아마 맹주 본인보다는 총군사의 조언에 따른 행동일 것이다.
“예. 괜찮다고 전해 주십시오.”
“알겠습니다.”
천무대 무인이 돌아가고 반 시진도 지나기 전에, 맹주가 총군사 제갈소진과 함께 나타났다.
두 사람의 좌우로 서른 명에 달하는 천무대의 무인들이 맹주를 호위했다. 한 명 한 명이 서릿발 같은 기세를 뿜어냈다.
‘그래도 맹주 한 명만 못하군.’
야율황은 어디에 있어도 압도적인 존재감을 뿜어내는 사내였다.
패도적인 기세를 온몸에 두른 채로 성큼성큼 걷는데, 발걸음에 한 치의 망설임이 없었다.
내가 바로 무림맹의 지존이다, 라며 온몸으로 말하는 듯했다.
백수룡 앞까지 걸어온 맹주가 말했다.
“내가 너무 이른 시간에 찾아온 것인가?”
전과 달리 예의를 갖춘 말투다.
백수룡은 자꾸만 입꼬리가 올라가려는 것을 겨우 참았다.
밤새 자신의 제안에 대해 고민하느라 얼마나 고민했을까.
“아닙니다. 안으로 드시죠.”
고개를 끄덕인 맹주가 천무대를 돌아보며 말했다.
“천무대는 이곳에서 외부의 출입을 경계하라.”
““예!””
백수룡이 돌아서서 맹주와 총군사를 백룡장 안으로 안내했다.
그 순간, 유난히 날카로운 시선 하나가 백수룡의 등을 찌를 듯이 노려봤다.
* * *
맹주는 돌려서 말하지 않았다.
그는 백수룡이 권한 자리에 앉기도 전에 먼저 말했다.
“일전의 무례는 정식으로 사과하겠네.”
커다란 주먹으로 포권을 취한 맹주는 고개마저 살짝 숙였다.
밖에 있는 천무대 무인들이 보았다면 경악을 금치 못했을 것이다.
그들이 아는 맹주는 결코 쉽게 고개를 숙이는 사내가 아니었으니까.
“솔직히 말하지. 무림맹의 모든 정보력, 그리고 개인적인 인맥까지 동원해 자네에 대해서 알아보았네.”
“그럴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조사해 보니 어떠셨습니까?”
어땠냐고?
맹주는 지난밤, 그리고 오늘 새벽까지 받아 본 보고서를 읽고 눈을 의심했다. 몇 번이나 다시 읽었는지 모른다.
가장 먼저 백수룡이 언급한 사천당문, 염제의 보은패를 진짜 가지고 있음을 확인했다.
‘게다가 남궁세가는 생사신의의 보은패를 넘겨줬다고?’
두 번째로는 백수룡이 남궁세가의 신입 강사 연수에서, 혈교의 마공을 읽고 만박자도 못 찾아낸 허점을 찾아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혈교 무공의 파훼식을 만들 수 있다는 말도 충분히 설득력이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 놀라운 점은 백수룡의 인맥이었다.
백수룡이 가르친 제자들을 조사하던 중, 그 안에서 승상의 이름이 나온 것이다.
‘백수룡의 인맥이 황궁까지 이어져 있다고?’
가볍게 가르친 수준이 아니었다. 최근 청룡학관의 재정이 풍족해졌는데, 풍족해진 자금의 출처가 바로 황궁이었다.
여기까지 알아냈을 때, 맹주는 백수룡이 했던 말이 허언이 아님을 깨달았다.
-동맹을 해 달라고 매달려야 할 쪽은 제가 아니라 맹주님입니다.
“……무림의 소문은 과장되게 마련인데, 자네는 오히려 축소된 감이 있더군.”
맹주가 허탈하게 웃더니 말을 이었다.
“게다가 노군상 선배는 숫제 협박을 하지 뭔가.”
-맹주. 행여나 청룡신협을 힘으로 어떻게 해 볼 생각은 마시게. 그랬다간 혈교와 싸우기 전에 청룡학관과 싸워야 할 게야.
수십 년 전, 혈교도들에게 미친개라 불리던 무인의 눈빛이었다. 맹주는 결코 그 경고를 무시할 수 없었다.
“그래서, 결론을 내리신 겁니까?”
맹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분명 자기중심적이고 오만하지만, 자존심 때문에 제대로 된 판단을 못 할 만큼 우둔한 사내는 아니었다.
청룡학관을 무림맹 휘하의 편제에 넣는 것보다, 백수룡을 무림맹의 간부로 끌어들여 오대학관을 통제하도록 하는 것이 훨씬 효율적인 방법이었다.
“무림맹은 청룡학관과 동등한 동맹을 제안하네. 또한 자네에게는 무림맹 총사범 자리를 제안하겠네.”
파격적인 제안이었지만, 백수룡은 그런 당연한 걸 가지고 생색을 내냐는 투로 대꾸했다.
“총사범이요? 저는 부맹주 자리를 요구했습니다만?”
“그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을 자네도 알지 않나.”
무림맹에서 맹주의 권위가 크다고는 하지만, 전부 그 마음대로 할 수는 있는 것은 아니었다.
“부맹주는 오단의 단주들 중 과반수의 동의가 있어야 임명할 수 있네. 나 혼자서 처리할 수 있는 일이 아니야.”
“맹주님이 단주들을 설득하면 되지 않습니까?”
맹주는 고개를 저었다.
“불가능하네. 그 녀석들은 모두 다음 대 맹주 자리를 노리고 있어. 그런데 내가 갑자기 부맹주를 임명하면 찬성하겠나?”
“흐음. 이러시면 곤란한데…….”
“사정을 좀 봐주게.”
이제 아쉬운 소리를 해야 하는 쪽은 맹주였다.
그가 백수룡이 가진 조건들을 포기하지 못하는 한, 협상의 주도권은 백수룡에게 있을 수밖에 없었다.
백수룡은 고민하는 척하면서, 속으로는 주판을 굴렸다.
‘부맹주 자리는 별로 아쉽지 않아. 애초에 그냥 던져본 거였으니까.’
총사범만 해도 오단의 단주와 동등한 지위다. 부맹주보다 오히려 이쪽이 백수룡이 정말로 원하던 자리였다.
‘그렇다고 순순히 물러날 이유는 없지.’
백수룡은 어쩔 수 없이 자신이 양보한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알겠습니다. 대신, 청룡학관과 무림맹이 협약을 하나 맺도록 하죠.”
맹주는 “끄응” 하고 못마땅한 기색을 드러냈지만, 일단 들어 보라는 총군사의 전음을 듣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떤 협박, 아니 협약인가?”
“올해부터 청룡학관 졸업 예정인 학생들을 대상으로, 무림맹에서 수습 맹원으로 삼 개월에서 반년 정도 실무 경험을 쌓을 수 있게 해 주십시오. 물론 비용도 무림맹이 전부 전담해 주시고요.”
“뭐 이런 도둑놈이…….”
“싫으면 말고요.”
“끄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