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mber One Star Instructor Master Baek RAW novel - Chapter 291
290화. 종업식 (2)
종업식 당일.
학생들은 설레는 마음으로 대연무장에 모였다.
오늘은 한 학기가 끝나고 방학을 맞는 날.
받아 든 성적표가 마음에 들지 않아 울상을 짓는 학생들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홀가분한 표정이었다.
“……올해 청룡학관은 한 학기 동안 큰 변화를 겪었습니다.”
단상 위에 선 관주님의 훈화 말씀이 끝나기를 기다리며, 학생들은 각자의 방학 계획을 떠올렸다.
집으로 돌아가 몇 달 만에 가족을 만나고, 친한 친구들과 함께 전부터 계획해 두었던 여행을 떠나고, 혹은 시간이 없어서 미루기만 했던 취미를 시작해 보는 등.
학관의 규율에서 벗어나 자유를 누릴 생각에, 학생들은 벌써부터 마음이 부풀었다.
상황이 이러니, 관주의 훈화가 귀에 들어올 리 없었다.
‘허허. 다들 마음이 콩밭에 가 있구나.’
노군상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는 웃으며 훈화를 빠르게 마무리했다.
“……올해 천무제, 좋은 결과를 내기 위해 학생들과 선생님들 모두 최선을 다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만큼 기대도 크겠지요. 하지만 결과와 상관없이, 여러분의 노력은 결코 헛되지 않을 겁니다.”
“…….”
노군상은 손자들을 바라보는 할아버지와 같은 따뜻한 시선으로 학생들을 둘러봤다.
그리고 마지막 당부의 말을 남겼다.
“그러니 부디, 방학 동안 다치지 않고 잘 쉬다 오너라.”
노군상이 빙긋 웃으며 단상에서 물러나는 순간, 우레와 같은 박수가 터져 나왔다.
짝짝짝짝짝!
학생들은 이제 곧 방학이라는 생각에 잔뜩 들떴다.
관주님의 훈화 말씀이 끝났으니, 이제 사회자가 종업을 선언하면 방학인 것이다!
몇몇은 빨리 학관에서 나가려고 벌써부터 내공을 끌어올리고 있었다.
“정숙! 모두 자리를 지키도록!”
그러나 올해 종업식은 예전과 달랐다.
종업식의 사회를 맡은 부관주 곽철우가 내공을 담아서 외쳤다.
“이어서 맹주님의 말씀이 있겠습니다.”
한쪽에서 손님으로 자리를 지키고 있던 맹주가 단상 위로 올라오자, 학생들은 의문 어린 시선을 보냈다.
여기저기서 웅성거림이 생겼다.
“맹주님이 왜?”
“밖에서 친구들이 기다리는데…….”
“빨리 끝나겠지?”
쿵-!
맹주의 가벼운 발 구름이 지진 같은 진동을 일으키자, 웅성거림이 모두 사라졌다.
강렬한 존재감을 뽐내며 단상 위에 선 맹주가 말했다.
“반갑다. 본좌는 무림맹주 야율황이다. 우선 한 학기 동안 열심히 수련한 학생들에게 고생했다는 말을 전하마. 본좌가 이렇게 단상에 서게 된 이유는…….”
학생들은 얼떨떨해하면서도, 위압감 넘치는 맹주의 말에 집중했다.
“……그리하여, 혈교의 위협에 대비하기 위해, 무림맹과 청룡학관은 역사적인 동맹을 맺기로 결정하였다.”
청룡학관과 무림맹의 동맹 선언!
놀라운 소식에 다들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동안 소문이 떠돌기는 했지만, 공식적으로 발표된 것은 처음이었다.
‘동맹이라고? 정말?’
‘우리가 무림맹 휘하로 들어간다고 들었는데…….’
‘둘이 다른 거야?’
‘바보야. 당연히 다르지.’
강사들도 학생들의 수군거림을 막을 수 없었다.
게다가 놀라운 소식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또한, 올해부터 청룡학관 사 학년들 중 선별된 인원은 무림맹의 수습 맹원으로서 실무 경험을 쌓게 될 것이다.”
“!!!”
당사자인 사 학년들이 가장 크게 놀랐다.
그들은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을 부릅떴다가, 천천히 얼굴 가득 화색이 돌았다. 고학년인 삼 학년들도 마찬가지였다.
무림맹은 학생들이 졸업 후 가장 희망하는 직장이지만, 경쟁률이 워낙 높아서 대부분은 엄두도 내지 못하는 곳이었다.
‘몇 개월의 수습 맹원 경험만으로도, 다른 곳에 취업할 때 큰 도움이 될 거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강사들의 얼굴에도 흐뭇한 미소가 맺혔다.
하지만 그 사실에 기뻐했던 것도 잠시…….
청룡학관 학생들과 강사들은 놀라운 사실을 하나 더 알게 되었다.
“오십 년 전, 무림은 혈교를 무너뜨리기 위해 커다란 희생을 치러야 했다. 그 전쟁에서 나는 아버지와 같았던 스승을 잃고, 친형제와 같았던 사형제들을 모두 잃었다. 당시 가증스러운 혈교 놈들은 함정을 파고…….”
‘맹주님이 말이 너무 많아!’
무림맹주는 학생들이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긴 훈화를 준비했다.
평소에는 그리 말이 많은 편이 아니지만, 혈교와 관련된 이야기만 나오면 흥분하는 성격 탓이었다.
맹주가 비장한 표정으로 열변을 토했다.
“나 때는 말이다, 열다섯이면 이미 마두의 피를 수없이 묻히고 다녔다. 그에 비하면 너희들은 안전한 곳에서 편안하게 무공을 수련하고 있지.
너희를 탓하자는 것은 아니다. 천하가 평화로웠던 탓이지. 하지만 혈교의 위협이 다시금 목전에 다가온 지금, 너희도 마음가짐을 바꿔야 할 것이다. 언제든 전쟁은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다시 말하지만 나 때는 혈교가…….”
학생들이 싫어하는 ‘나 때는~’이 반복되자, 학생들이 하나둘 지루함에 몸을 비틀기 시작했다.
결국 노군상이 단상으로 나서서 맹주를 말렸다.
“맹주. 이쯤 하면 학생들도 충분히 교훈을 얻은 것 같소이다.”
“아직 준비한 게 남았는데…….”
“다음에 합시다. 다음에.”
결국 맹주는 아쉬움 가득한 얼굴로 훈화를 마무리했다.
“모두 더욱 용맹정진하도록!”
우와아아아!
드디어 끝났다는 생각에, 우레와 같은 함성과 박수가 쏟아졌다.
눈치 없는 맹주만이 학생들이 자신의 훈화에 감동한 것으로 알고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더 할 걸 그랬어, 하고 아쉬워하면서.
“음, 그럼 마지막으로…….”
맹주의 입에서 그 말이 나왔을 때, 학생들 중 절반 이상이 속으로 비명을 질렀다.
‘아까 마지막이라며!’
내공을 실은 맹주의 목소리가 청룡학관 전체에 울려 퍼졌다.
“청룡학관과 무림맹의 친목을 도모하는 의미에서 친선 비무를 준비했다. 관전을 원하는 학생들은 보고 가도록 해라.”
친선 비무?
원망 가득한 눈으로 맹주를 바라보던 학생들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비무라는 말에 호기심이 동하지 않을 무인은 없었다.
“친선 비무라면……?”
“무림맹이랑 청룡학관 대표가 붙는단 말이지?”
“누구랑 누구? 혹시…….”
가장 중요한 것은 친선 비무를 벌이는 사람이 누구냐는 것.
학생들의 기대감 어린 시선이 여기저기로 향할 때, 청룡학관 측에서 노군상이 먼저 백수룡을 호명했다.
“백수룡 선생!”
동기들과 나란히 서 있던 백수룡이 한 걸음 앞으로 나서자, 학생들의 웅성거림은 시장통처럼 시끄러워졌다.
이에 질세라, 무림맹주가 청룡신협의 상대를 호명했다.
“천무대주!”
키가 백수룡에 못지않게 크고 호리호리한 체형의 사내가 앞으로 나섰다.
큰 키만 아니었다면 여인이라고 오해할 만큼 선이 고운 사내.
허리에 찬 검의 하얀 검집 위로, 흐드러지게 핀 매화가 그려져 있었다.
백수룡의 상대가 누군지 알아본 학생들이 소리쳤다.
“화산검호(華山劍豪)다!”
화산검호 조천상.
당대 화산파 장문인의 제자로, 어려서부터 자질이 출중하기로 소문난 천재 검객.
천무학관을 수석으로 졸업하고, 고작 이십 대 후반의 나이에 천무대주가 된 입지전적인 인물이었다.
검을 다루는 학생들 중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고절한 검객이었다.
“청룡신협과 화산검호의 대결이라니!”
“완전 대박이잖아!”
청룡신협과 화산검호.
두 사람은 비슷한 연배에, 둘 다 검을 다루기에 더욱 큰 흥미를 끌었다.
그런 반응을 확인한 맹주가 외쳤다.
“비무는 반 시진 후에 시작될 것이니, 집에 가고 싶은 사람은 가도 좋다!”
종업식이 끝나고 방학이 시작되었지만, 아무도 청룡학관을 떠나지 않았다.
잠시 후 시작될 비무를 직접 보지 않으면, 두고두고 후회할 테니까.
* * *
대연무장을 중심으로 열 개가 넘는 대형 천막이 원형으로 세워졌다. 수백 명이 앉아서 관전할 수 있도록 의자를 준비했다.
“비무대와 가장 앞 좌석 사이의 간격이 너무 좁은 것 아닌가? 검기라도 튀면…….”
“맨 앞에는 맹주님과 관주님, 뒤로도 최고수들이 앉을 거니 크게 상관없을 걸세.”
“선생님! 이 자리는 옆에 있는 천막에 가려서 안 보입니다!”
학생들부터 선생들까지.
비무를 기다리는 모두의 얼굴에 흥분한 기색이 역력했다.
청룡신협과 화산검호.
명성이나 업적이 아직 무림십존에 미치지는 못하지만, 곧 시대를 풍미하게 될 고수들 간의 대결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누가 이길까?”
한쪽에서는 비무의 결과를 두고 학생들 사이에 내기판이 벌어졌다.
의견은 분분했다.
“당연히 백수룡 선생님 아니야? 최근에 누리는 명성은 십존과 맞먹는다고!”
“천무대주를 무시하지 마. 그의 검이 머지않아 십존의 경지를 넘볼 거라는 이야기, 못 들어 봤어?”
“그거야말로 소문 아닌가? 백수룡 선생님은 남궁세가에서 혈교의 장로를 죽였어.”
“쌓아 온 실적으로 보면 화산검호도 못지않아. 천무대주가 쉬워 보여?”
“하! 내가 이 이야기는 안 하려고 했는데…….”
생각보다 학생들의 의견은 양쪽이 팽팽했다.
사실, 백수룡의 무공이 정말로 무림십존에 버금간다고 생각하는 학생은 거의 없었다.
또한 백수룡은 학관에서 매일 보는 얼굴이었다. 명성에 비해 상대적으로 편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반면, 화산검호는 말 그대로 소문으로만 듣던 고수였다.
화산파 무공을 익힌 무인 특유의 고아한 분위기.
여기에 아름다운 외모가 더해져, 마치 인세에 내려온 신선과도 같은 분위기를 풍겼다.
“분위기만 보면 역시 화산검호가…….”
“비무를 분위기로 하나?”
쿵!
내기에 건 전낭 더미가 모인 탁자 위로, 남다르게 묵직한 전낭 하나가 떨어졌다.
“나는 선생님이 이기는 건 당연하고, 승부가 백 초식 안에 끝난다는 데 걸지.”
거대한 그림자가 도박판 위로 드리워졌다. 그 상대를 확인한 학생들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거상웅 선배?”
거상웅뿐만이 아니었다. 백룡장의 다른 제자들도 속속 내기에 참여했다.
“백 초식? 나는 칠십 초식이면 충분할 것 같은데.”
여민은 그동안 악착같이 모아 온 쌈짓돈을 전부 백수룡의 승리에 걸었으며,
“전 오십 초식에 걸게요. 당연히 선생님이 이긴다는 쪽에요!”
위지천은 오십 초식 안에 청룡신협이 승리한다는 쪽에 걸었다. 소년의 눈은 스승의 승리를 조금도 의심치 않았다.
“오십? 사십? 야, 털뭉치. 어디에 거는 게 좋을 것 같냐?”
캬악!
“좋아. 나도 오십이다.”
야수혁은 은호로 점을 쳐서 백수룡이 오십 초식 안에 승리한다에 걸었다.
“쯧쯧. 니들 아직도 그 인간을 그렇게 몰라? 우리가 뭘 상상하건 그 이상을 보여 줄 거라고.”
헌원강은 어리석은 선후배들에게 고개를 저어준 후, 가장 과감하게 돈을 걸었다.
“청룡신협 백수룡이 삼십 초식 안에 이긴다에 전 재산과 이 흑도를 건다!”
“너, 너무해! 그거 우리 할아버지가 만들어 준 칼이잖아요!”
“어차피 선생님이 이길 건데 상관없잖아?”
문제는 헌원강의 목소리가 너무 컸다는 점이었다.
“……불쾌하기 짝이 없군.”
천무대의 무사들이 그 이야기를 들었다.
마침 근처를 지나가던 천무대 부대주가 싸늘한 시선으로 헌원강을 돌아봤다.
“비무가 장난으로 보이나? 이런 내기는 두 무인을 모욕하는 짓이나 마찬가지다.”
“……옙. 죄송합니다.”
거기까지만 했으면 됐을 것이다.
혀를 차면서 모욕을 더 할 필요는 없었다.
“청룡신협도 안쓰럽군. 이런 녀석들을 제자랍시고 가르쳐야 한다는 것 아닌가?”
순간, 헌원강의 눈빛이 사납게 돌변했다.
이런 말을 얌전히 듣고만 있으면 청룡학관의 망나니가 아니었다.
“거, 말이 심한 거 아닙니까?”
“심하다고? 내가?”
“막말로, 내기 자체보다 청룡신협이 이길 거라고 하니까 화난 거잖아요. 누가 바보로 보이나.”
“뭐라고? 하……!”
부대주는 ‘뭐 이런 놈이 있나.’ 하는 표정으로 헌원강을 바라봤다.
천무대는 무림맹에서도 최정예 무인들이었다.
고작 학관, 그것도 청룡학관의 애송이 따위가 눈 똑바로 뜨고 쳐다볼 위치가 아니었다.
‘다른 곳에서 만나면 눈도 마주치지 못할 놈이…….’
부대주는 살심이 무럭무럭 치솟는 것을 느꼈으나, 다른 무사들이 그를 만류했다.
“어린애들입니다. 괜히 상대하지 말고 가시지요.”
“……운이 좋은 줄 알거라.”
몸을 돌린 부대주는 들으라는 듯이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못 배운 것이 티가 나는군. 하긴 청룡학관 출신이니, 언행이 시정잡배 같은 것도 어쩔 수 없겠지. 이래서 사람이 출신이 중요해.”
“저 자식이!”
울컥한 헌원강이 쫓아가서 따지려고 했으나, 그보다 먼저 나선 사람이 있었다.
“방금 시정잡배라고 했나?”
“…….”
천무대 부대주는 자신을 막아선 사내를 보며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하필이면…….’
청룡학관에서 관주와 백수룡 다음으로 상대하기 곤란한 자.
남궁세가의 삼공자가 싸늘한 얼굴로 앞을 막아섰다.
“왜 말을 못 하지? 방금, 청룡학관 학생들의 출신이 시정잡배와 같다고 했나?”
“……그렇게는 말하지 않았는데.”
“비슷하게는 했다는 말이군.”
남궁수의 표정이 더욱 싸늘해졌다. 부대주의 표정에도 짜증이 어렸다.
상대가 남궁세가의 아들이라고 해도, 부대주 역시 크게 꿀리지 않는 신분이었다.
‘다 망해 가는 남궁세가의 아들 따위가 뭐가 두렵다고.’
그런 생각이 들자 더욱 자신감이 생겼다.
“어쩌라는 거요? 적당히 하고 넘어가시오. 모욕을 참는 것도 한계가 있소.”
“누가 누굴 모욕했는지 모르나 보군.”
남궁수는 피식 웃더니 부대주를 휙 지나치면서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천무학관 출신들은 하나같이 뛰어난 줄 알았는데, 미꾸라지 한 마리가 물을 흐리는군.”
“지금 뭐라……!”
남궁수는 품에서 전낭을 꺼내, 학생들이 전낭 더미를 올려 둔 탁자 위에 올렸다.
쿵!
“백수룡의 승리에 전부 걸지.”
“예, 예?”
학생들이 놀라서 되묻는 가운데, 남궁수는 천무대 부대주를 돌아봤다. 그 눈빛은 한없이 도발적이었다.
“그쪽도 걸겠나?”
“무슨 유치한 장난을…….”
“왜? 자신 없나?”
남궁수의 한쪽 입꼬리가 올라갔다.
명백한 비웃음. 이곳에 없는 누군가와 상당히 닮은 웃음이었다.
“쫄리면 뒈지시든가.”
“……감히!”
비무는 시작되지도 않았지만, 비무대 밖에서는 이미 불꽃이 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