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mber One Star Instructor Master Baek RAW novel - Chapter 293
292화. 종업식 (4)
“멍청한 놈.”
맹주는 비무대 위, 수세에 몰린 천무대주를 노려보며 중얼거렸다.
단 일 합이었다.
그렇게 조심하라 당부까지 했건만, 병신같이 방심을 하다가 일격을 허용했다. 손에 쥔 검을 놓치는 망신까지 당하면서 말이다.
‘실전이었으면 방금 전에 죽었겠지.’
맹주는 누구보다 천무대주의 실력을 잘 알았다.
알기에 더욱 실망스러웠다.
천무대주가 방심하지 않고 처음부터 전력을 다했다면, 설령 맹주 자신이었어도 일격에 저렇게 만들 수는 없었을 것이다.
‘이게 다 실전 경험이 부족한 탓이지.’
맹주의 호위부대?
천무대의 실상은 의장대나 다름이 없었다.
무림맹의 연회에서나 무공을 뽐내는 귀한 집 도련님들.
오단의 무력대들이 실전에서 구르며 피땀을 흘릴 때, 그들은 자신들이 특별한 계급이라도 되는 것처럼 어깨에 힘을 주고 다녔다. 종종 맡았던 임무도 실력에 비해 쉬운 것들뿐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경험 부족이 드러나리라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현실은 맹주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심각했다. 열이 확 뻗쳤다.
‘대주가 저 모양이니, 다른 녀석들도 별다를 것 없을 테지.’
맹주의 호랑이 같은 눈이 천무대의 무인들을 훑었다. 맹주와 눈이 마주친 무인들이 고개를 푹 숙였다.
“쯧쯧.”
혀를 찬 맹주는 다시 비무대 위로 시선을 돌렸다.
‘그에 비하면, 저 녀석은…….’
백수룡을 바라보는 맹주의 시선에는 경탄이 어렸다.
일격에 천무대주의 검을 날려 버린 검술도 일품이었지만, 그 전에 이루어진 수 싸움이 더 놀라웠다.
도발로 상대를 흥분시켜 평정심을 흐트러뜨리는 것부터 시작해, 과감하게 돌진해서 천무대주의 공격을 유도한 것, 겉멋에 취한 상대의 초식을 파훼해 일격에 깨부수고, 전력으로(과연 그게 전력인지는 모르겠지만) 달려들어 검을 날려 버리기까지.
심리전, 준비성, 과감한 실행력까지.
일련의 과정 중 뭐 하나 나무랄 것 없이 완벽했다.
“같은 시간 동안 한 놈은 제 잘난 맛에 검날이나 갈고 있었고, 한 놈은 상대를 철저하게 분석하고 나왔으니……. 결과가 저럴 수밖에.”
그 결과가 저것이었다.
“천무대주 실력이 이것밖에 안 되나?”
“큭……!”
비무대 위.
백수룡은 고양이가 쥐를 가지고 놀듯 조천상을 몰아세우고 있었다.
“회피할 때 보법이 어설퍼. 화산파에서 제대로 안 배웠나?”
“사문을 모욕하지 마라!”
“모욕?”
피식 웃은 백수룡은 창룡검을 몽둥이처럼 휘둘렀다. 조천상은 쌍장을 휘둘러 쏟아지는 공격을 막기에 급급했다.
“본인은 무림맹 총사범이다. 맹원의 무공을 지도하는 것이 내 일이야. 부족한 부분을 지적하는 것이 모욕인가?”
“방심만 하지 않았어도……!”
“방심?”
빠악!
벼락처럼 휘둘러진 검이 천무대주의 옆구리를 때렸다. 검면이었기에 망정이지, 날로 쳤으면 내장이 쏟아졌을 것이다.
물론 검면으로 친다고 해서 멀쩡한 건 아니었다.
“커헉!”
눈이 뒤집힐 것 같은 통증에 조천상이 크게 휘청였다. 그 와중에 수공으로 매화산수(梅花散手)를 펼쳐 백수룡의 접근을 경계했으나, 백수룡은 제자리에 서서 혀를 찰 뿐이었다.
“방심한 게 자랑이냐? 방심하다 당했으면 더 부끄러워해야지.”
“으으으윽!”
조천상은 억울해서 미칠 것 같았다.
방심만 하지 않았다면, 실력만 제대로 발휘했다면 절대 이렇게 일방적으로 흘러갈 비무가 아니었다.
너무나 억울한 마음에, 평소였으면 하지 않을 변명을 하고야 말았다.
“비겁하게, 친선 비무에서 처음부터 전력을 다하는 경우가 어디 있나…….”
“비겁?”
백수룡의 입꼬리가 호선을 그리며 올라갔다.
그러나 눈은 전혀 웃고 있지 않았다.
“새끼가 입을 열 때마다 변명이네. 넌 진짜 안 되겠다.”
소매를 걷어붙인 백수룡이 본격적으로 덤벼들었다. 그의 신형이 한 줄기 섬광처럼 질주했다.
“얕보지 마라!”
조천상은 소나기처럼 쏟아지는 백수룡의 공격을 보법으로 피하고, 수공으로 맞서고, 장법으로 밀어내면서 어떻게든 활로를 찾으려고 노력했다.
매화산수(梅花散手), 낙화추영장(落花追影掌)과 같은 화산파의 절기들이 그의 손에서 펼쳐졌다.
퍼버버버벙!
뒤늦게나마 정신을 차린 천무대주의 무공은 굉장히 뛰어났다. 전신을 휘감은 자하기에 무복이 미친 듯이 펄럭이고, 손을 휘저을 때마다 가공할 장력이 사방에 뿜어졌다.
“그래. 제법이긴 하네.”
하지만 천무대주는 평생 검을 연마한 검객이었다.
검을 놓친 검객은 실력의 절반도 제대로 발휘하기 어렵다.
휘익!
빈틈을 파고든 백수룡의 검 끝이 조천상의 명치를 찔렀다. 호신강기로 막아 보지만, 망치로 때리는 듯한 둔탁한 충격이 몸을 때렸다.
“커헉!”
숨이 턱 막힌다. 조천상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백수룡은 공격을 멈추지 않았다. 더 가까이 붙으며 조천상의 옆구리에 주먹을 꽂아 넣었다.
퍼억!
내공이 실린 주먹은 바위도 부순다. 인간이라면 뼈가 부러져도 이상하지 않은 공격. 조천상의 몸이 크게 휘청였다.
백수룡은 공평하게 반대편 옆구리에도 주먹을 꽂아 넣었다. 퍼억! 다리가 풀린다. 쓰러지기 직전에 복부에 정권을 강하게 찔러 넣었다.
“커허억!”
입에서 피를 토하며 길게 날아간 조천상이 비무대 바닥을 뒹굴었다.
“진짜 아프겠다…….”
“선생님이 우리는 엄청 봐준 거였어…….”
“저렇게 때려도 사람이 안 죽나?”
비무를 지켜보고 있던 백룡장 제자들이 몸을 부르르 떨었다.
재수 없는 천무대주가 당하는 모습은 속이 시원했지만, 맞을 때마다 몸이 저절로 반응했다.
그만큼 차원이 다른 매타작이었다.
학생들보다는 천무대주가 훨씬 더 고수였기에, 백수룡도 사정을 봐주지 않고 무자비하게 두들겼다.
“아직, 안 끝났다…….”
그러나 조천상이 휘청거리면서도 자리에서 바로 일어나 기수식을 취했다. 눈에 독기가 가득했다.
“호오. 맷집은 제법이네.”
백수룡은 조금 감탄했다.
죽일 작정으로 때린 것은 아니지만, 한동안은 일어나지 못하게 할 작정으로 공격했다.
하지만 조천상은 다시 일어났다.
순간순간 몸을 틀어서 충격을 줄였고, 호신강기를 활용해서 위험한 공격은 어떻게든 막아 낸 덕분이었다.
‘확실히 실력은 있어. 그걸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을 뿐.’
백수룡이 이런저런 생각으로 공격을 잠시 멈췄을 때였다.
““우와아아아아!!””
그때까지 숨도 쉬지 못하고 비무를 지켜보던 관중들이 함성을 쏟아 냈다. 청룡학관이 떠나갈 듯한 함성과 함께, 각자가 참았던 감상을 토해 냈다.
“청룡신협이 화산검호를 압도하다니!”
“압도? 이건 유린이라고 하는 것이 더 어울리지 않나!”
“어른과 어린아이의 싸움도 이렇진 않을 텐데…….”
“무림십존에 버금간다는 실력을 스스로 증명하는군.”
“하지만 좀 아쉬워. 화산검호가 방심하다 검을 놓쳤으니…….”
“그게 어디 청룡신협 잘못인가? 화산검호가 미숙하게 대처한 탓이지.”
관중석의 모두가 경악한 표정으로 비무대를 바라보고 있었다.
누구도 이렇게까지 비무가 일방적일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하지만 정작 백수룡은 별다른 감흥을 느끼지 못했다.
그의 관심은 오직 독기를 품고 자신을 노려보는 천무대주에게 향했다.
“본 사범은 너 같은 놈을 가장 혐오한다. 재능을 믿고 뺀질거리는 놈들, 가문이나 문파의 위세를 믿고 자기 자신이 뭐라도 된 줄 착각하는 놈들. 본 사범 앞에서는 모두 평등하다. 앞으로 잘 새겨 두도록.”
마지막 말은 천무대의 무사들을 향한 것이기도 했다. 불길한 미래를 예감한 천무대 무인들이 부르르 떨었다.
조천상은 입가에 묻은 피를 손등으로 대충 닦으며 백수룡을 노려봤다.
“당신이 나에 대해 뭘 안다고 함부로…….”
“몰라. 그리고 안 궁금해.”
“이익……!!”
조천상은 피가 나도록 이를 악물었다.
‘내 손에 검만 있었더라면!’
구차하다는 것은 스스로도 알고 있었다.
첫 공격에서 검을 놓쳤을 때, 비무의 승패는 결정된 것이나 다름없었다는 것도.
‘하지만 난 아직 아무것도 보여 주지 못했어.’
지더라도 이렇게 질 수는 없었다. 화산의 검은 이렇게 약하지 않다. 조천상의 시선은 백수룡의 뒤쪽에 떨어져 있는 자신의 검을 향했다.
‘검만 되찾을 수 있다면…….’
상대의 뻔한 생각을 백수룡이 읽지 못할 리 없었다. 그가 피식 웃으며 물었다.
“검만 있으면 나한테서 이길 수 있을 것 같나?”
“…….”
“좋아. 해 보자고.”
“무슨?”
백수룡은 천무대주의 검을 주인에게 던져 주었다. 조천상은 얼떨결에 검을 잡았다.
“……무슨 생각이지?”
“이대로는 져도 완전히 승복 못 할 것 아니야?”
백수룡의 입가에 의미심장한 미소가 맺힌 순간, 백룡장 제자들은 차마 더 이상 못 보겠다는 듯 고개를 돌렸다.
“얼마나 제대로 패려고…….”
“아주 작살을 내려나 봐.”
하지만 순진한 천무대주는 백수룡의 호의에 적지 않게 감격한 표정이었다. 말투마저 조금 바뀌었다.
“……거절하지 않겠소.”
내내 미간을 구기고 비무를 지켜보던 맹주의 눈에도 이채가 스쳤다.
“이거……. 다 끝난 줄 알았더니, 재미있게 돌아가는군.”
전력을 다한 천무대주의 검은 결코 만만치 않을 것이다.
물론 그럼에도 백수룡이 질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지만…….
‘최소한 저 녀석이 숨겨 둔 밑천을 어느 정도는 꺼내게 할 수 있겠지.’
백수룡을 바라보는 맹주의 눈이 예리하게 빛났다.
* * *
다시 검을 쥔 순간, 조천상의 기세가 일변했다.
사박.
하단세와 함께 가볍게 내딛는 보법에 화산파 무학의 정수가 담긴다. 신비한 자색의 기운이 전신을 휘감는다. 자하신공(紫霞神功). 검을 들지 않았을 때보다 색이 훨씬 짙었다.
‘검을 든 것만으로 사람이 바뀌는군.’
백수룡도 더 이상 상대를 경시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지금껏 일방적으로 수세에 몰리던 어리숙한 무인이 아니었다.
고절한 경지에 이른 검객이, 만전(萬全)의 태세를 갖추고 검을 겨눴다.
“……이쪽은 준비되었소.”
자만이나 방심에서 나온 말이 아니었다. 이미 패했어야 할 자신에게 한 번 더 기회를 준 것에 대한 감사의 인사였다.
“과연, 작정하고 나오니 꽤 살벌하네.”
백수룡도 마주 내공을 끌어올렸다.
맹주가 보고 있으니 역천신공은 사용할 수 없다. 하지만 그가 가진 절세신공은 역천신공이 전부가 아니었다.
콰콰콰콰콰-!
발밑에서 시작된 공력의 여파가 돌개바람을 일으켰다. 청의무복이 미친 듯이 펄럭이고, 머리카락이 사방에 휘날렸다.
백수룡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선공은 양보하지.”
“사양하지 않겠소.”
휘익!
조천상이 질풍처럼 내달렸다.
한번 크게 당한바, 처음부터 전력을 다해 검을 휘둘렀다. 백수룡도 창룡검을 마주 뻗었다.
쩌어어어어엉!!
그 전과 비교할 수 없는 굉음이었다. 관중들 중 내공이 약한 학생들은 손으로 귀를 틀어막았다.
“크윽……!”
“무슨 충격이!”
불만을 터트릴 시간도 없었다. 모두 두 초고수의 움직임을 잠시도 놓치지 않기 위해 눈을 부릅떴다.
쩌엉! 쩌엉! 쩌저저정!
그러나 대부분의 관중에게 보이는 것은 검이 충돌하는 순간 튀는 거센 불티와 흐릿한 잔상뿐이었다.
관중들 가운데 이 대결을 제대로 감상할 수 있는 사람은 얼마 되지 않았다. 그들조차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세상에…….”
“둘 다 괴물이로군…….”
두 초고수의 충돌에 비무대가 점점 폐허로 변했다. 사방으로 뻗어 나간 검기가 바닥에 할퀸 상흔을 만들고, 진각을 밟을 때마다 바닥이 움푹 꺼졌다.
한 치의 양보도 없는 팽팽한 격전.
잔영으로 흐릿하게 보이는 두 사내의 무복이 찢어져 있었고, 바닥에는 핏물이 후두둑 떨어졌다.
격렬하게 맞붙던 두 초고수가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동시에 멈춰 섰다.
“…….”
“…….”
서로를 살피는 눈빛이 절세의 보검처럼 예리했다.
한 번의 실수가 패배는 물론이고 심각한 상처로도 이어질 수도 있는 상황.
백수룡이 흐릿하게 웃으며 중얼거렸다.
“……확실히 검으로만 상대하는 건 쉽지 않겠어.”
“무슨…….”
싸아아아아아-
느닷없이 북풍한설의 차가운 바람이 불어닥쳤다.
바람이 시작된 곳은 바로 백수룡의 왼손이었다. 빙백환이 새하얀 바람을 뿜어내며 맹렬하게 진동했다.
맹주가 눈을 빛내며 중얼거렸다.
“빙공을 익혔구나. 그것도 대단한 신공이야. 숨기고 있던 것이 그것이더냐?”
멀리서 느끼기에도 어마어마한 냉기였다.
가까이 닿기도 전에 몸이 둔해질 것이다. 실제로 조천상의 움직임이 눈에 띄게 느려졌다.
“크윽…….”
이를 악물고 자하신공을 끌어올려 버텨 보지만, 검만으로도 버거운 상대가 빙공까지 펼치기 시작하니 막아 낼 도리가 없었다.
결국 팽팽하던 싸움의 균형이 무너졌다.
백수룡은 상대의 작은 빈틈을 놓치지 않고 파고들었다.
쩌어어엉!!
천무대주가 또 한 번 검을 놓쳤다. 이번에는 방심했다는 말이 통할 수 없는, 완벽한 패배였다.
“…….”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찢어진 손아귀를 바라보던 조천상은 허탈한 웃음을 터트리곤, 고개를 들어 백수룡을 바라봤다.
“내가 졌소이다.”
“졌소이다?”
백수룡이 삐딱하게 바라보자, 조천상은 뒤늦게 정중하게 포권을 취했다.
“제가 졌습니다. 총사범님.”
무림맹 천무대주의 완전한 패배 선언!
그 순간, 엄청난 승부를 보여 준 두 사람에게 환호와 박수가 쏟아졌다.
우와아아아아아!
처음부터 끝까지, 청룡신협 백수룡의 완벽한 승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