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mber One Star Instructor Master Baek RAW novel - Chapter 294
293화. 내가 보증하겠소
비무가 끝나고, 다음 날.
“훌륭한 비무였다. 본좌도 여러모로 생각할 거리가 많더군.”
“감사합니다.”
아침부터 마차에 짐을 싣는 일꾼들의 움직임이 부산스러웠다. 무림맹의 표식이 새겨진 튼튼한 마차에 온갖 물건이 실렸고, 맹의 무인들이 물건을 일일이 확인했다.
다들 이른 아침부터 바쁘게 움직이는 가운데, 무림맹주는 배웅을 나온 백수룡과 함께 전날 비무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맹주가 은근한 목소리로 물었다.
“자네가 마지막에 보여 준 빙공 말이야. 신공이라는 말이 부족하지 않던데, 왜 처음부터 쓰지 않았나?”
“솔직히 끝까지 숨기고 싶었습니다. 검으로만 제압할 수 있는 상대였다면 그렇게 했을 겁니다.”
백수룡은 한숨을 내쉬며 대답했다. 맹주는 그런 백수룡을 묘한 눈으로 바라보다가 물었다.
“……그 빙공, 어떤 무공인지 물어봐도 되겠나?”
“죄송하지만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음. 그렇다면 할 수 없지.”
타인의 무공에 대해서 자세히 캐묻는 것은 금기였다. 아쉽지만 맹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또 숨겨 둔 무공은 없고?”
“없습니다. 그리고, 있으면 있다고 솔직하게 말하겠습니까?”
백수룡은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되물었다. 맹주가 씩 웃었다.
“아쉽군. 천무대주가 처음부터 제대로 싸웠다면 자네가 가진 밑천을 더 털어 볼 수 있었을 텐데 말이야.”
“애초에 그런 목적으로 비무를 추진하셨습니까?”
“아예 아니라고는 말 못 하겠군.”
맹주는 장난스럽게 웃더니 솥뚜껑만 한 손으로 백수룡의 어깨를 퍽퍽 두드렸다. 제법 친밀감이 느껴지는 행동이었다. 웬만한 무인이었다면 어깨가 탈골됐을 거라는 게 문제였지만.
백수룡은 뭐라고 한마디 하려다가 그냥 피식 웃었다.
‘볼수록 맹사부랑 닮았다니까.’
거대한 체구며 무지막지한 힘, 천상천하유아독존의 성격까지.
얼굴만 조금 더 닮았다면 혈육이라고 의심했을지도 모른다.
그를 권왕이라 불리게 한 절세의 권공은 보지 못했지만, 과거의 맹호악과 비교해도 크게 꿇리지 않을 것 같았다.
‘적어도 창천검왕, 혹은 그 이상……. 완전 괴물이야.’
그 괴물이 백수룡에게 말했다.
“다음에 볼 땐, 자네가 정말 십존의 한자리를 꿰차고 있을지도 모르겠군.”
“……아직은 이르다고 생각합니다.”
“아직은 이르다? 크하하! 이토록 오만하게 느껴지는 겸손은 또 처음이군!”
맹주의 쩌렁쩌렁한 웃음소리에 마차의 말들이 놀라서 투레질을 했다.
한참 웃어대던 맹주가 웃음을 멈추고 백수룡을 바라봤다.
“하긴, 자네는 그렇게 말할 수 있는 자격이 충분하지.”
청룡신협과 화산검호의 비무.
팽팽하리라는 많은 사람들의 예상을 비웃듯, 백수룡은 조천상을 완전히 압도했다.
비무가 끝난 후에도 도시 전체가 밤새 비무 이야기로 시끄러웠다.
이 도시뿐이겠는가. 열흘이 지나기 전에, 전서구를 타고 전 무림에 소문이 퍼질 것이다.
“나는 말이지. 십존이니 백대고수니 하는 말을 그리 신뢰하지 않는다네. 막상 부딪쳐 보면 들었던 것과 다른 경우가 너무 많거든.”
무림에는 기인이사가 모래알처럼 많고, 은거고수가 속세에 나와 세상을 놀라게 하는 경우도 흔했다.
반대로, 고수라고 이름난 무인이었는데 알고 보니 허울만 멀쩡한 쭉정이인 경우도 많았다.
‘하지만 이 녀석은 진짜다.’
오히려 소문으로 들었던 것 이상으로 뛰어나서 의심이 들 정도였다.
혹시 혈교와 관련된 자는 아닐까?
아무리 무림에 기인이사가 많고, 괴력난신들이 날뛴다고 해도, 청룡신협이란 고수의 출현은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처럼 갑작스러웠으니까.
하지만 맹주의 그런 의심도, 백수룡의 비무를 보면서 대부분 풀렸다.
‘검법은 확실히 정파의 것이었고, 빙공은 북해빙궁과 관련돼 보였다. 둘 다 혈교와는 아무런 관련도 없어.’
빙궁이 수십 년 전 봉문한 이유는 여전히 의문이었지만……. 그걸 혈교와 연관 짓는 것은 억지였다.
청룡신협이 혈교와 관련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의심은, 맹주 자신의 과한 걱정이었던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
‘숨긴 무공이 더 있을지도 모르지만…… 마공을 익힌 낌새는 없었다.’
그리고 그건, 전부 백수룡이 의도한 것이었다.
‘이제야 겨우 의심에서 벗어난 것 같군.’
백수룡은 화산검호와의 비무에서 무극검을 주로 사용했고, 비무의 마지막에는 빙백신공을 펼쳤다.
무극검은 모용세가 출신인 검존 사부의 것이고, 빙백신공은 본래 북해빙궁의 것.
맹주쯤 되는 고수가 그것을 못 알아볼 리 없었다.
“하하하! 자네와 같은 고수가 이런 시기에 나타나다니. 이게 바로 난세에 영웅이 태어난다는 것 아니겠는가!”
맹주는 실로 단순한 사람이었다. 한 번 같은 편이라는 판단이 섰을 때부터, 백수룡에게 무한한 호의를 베풀었다.
“정말로 나와 함께 가지 않겠나?”
맹주의 권유에 백수룡은 고개를 저었다.
“지난번에도 말씀드렸지만, 따로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아쉽군. 자네를 데려가면 다른 오대학관을 설득하는 것이 훨씬 쉬워질 텐데 말이야.”
맹주는 진심으로 아쉬운지 입맛을 다셨다.
무림맹 사절단은 청룡학관을 시작으로 오대학관을 모두 순방할 예정이었다.
이 일정에 청룡신협이 합류한다면, 다른 오대학관을 설득하는 일도 훨씬 수월해질 터였다.
하지만 백수룡에겐 미리 세워 둔 방학 계획이 있었다.
“어쩔 수 없군. 대신 자네 이름을 실컷 팔 테니, 나중에 뭐라고 하지 말게.”
“……없는 말은 지어 내지 마시고요.”
“크하하! 아무렴 무림맹주인 내가 그런 짓을 하겠나!”
“……불안하지만 믿겠습니다.”
남궁세가에서 백수룡에게 구명의 은혜를 입은 주작학관과 백호학관은 어렵지 않게 힘을 실어 줄 것이다.
남은 것은 현무학관과 천무학관인데, 백수룡에게 호의적이었던 현천신녀를 떠올리면 현무학관도 반대할 것 같지는 않았다.
백수룡이 맹주에게 물었다.
“맹주님. 사절단의 경로가 어떻게 됩니까?
“남쪽으로 움직여서 주작학관, 백호학관, 현무학관, 마지막으로 천무학관에 들러 천무관주와 담판을 지을 생각이네.”
“그럼 현무학관에는 제가 가겠습니다. 마침 그쪽에 볼일이 있기도 하고요.”
“그래 주면 나야 좋지. 그리고…….”
활짝 웃던 맹주가 돌연 진지한 표정이 되었다.
동시에 투명한 기막이 펼쳐져 두 사람 주변을 에워쌌다.
지금부터 나눌 대화가 외부에 새어 나가지 않도록 차단한 것이다.
백수룡도 표정을 굳히며 물었다.
“갑자기 무슨 말씀을 하시려고 기막을 두르십니까?”
“본좌는 청룡학관이 오대학관의 새로운 중심이 되어 주길 바라고 있네.”
지난 며칠 동안, 맹주는 청룡학관의 강사들과 학생들을 유심히 살폈다.
훗날 동맹으로 혈교와 함께 싸우게 될 전력이니 당연한 일이었다.
그리고 깜짝 놀랐다.
“자네 제자들을 포함해서 일부 학생들은 상당히 수준이 높더군. 전체적으로, 예전과 달리 눈에 자신감이 차 있는 것도 좋고.”
맹주가 직접 본 청룡학관은 강사들이나 학생들이나 상당히 수준이 높았다.
어째서 천무제에서 십 년 연속으로 꼴찌를 했는지, 이해가 안 될 정도였다.
“내가 힘을 실어 주겠네. 지금의 청룡학관이라면, 그리고 자네라면 충분히 천무관주를 견제할 수 있을 것이야.”
천무관주.
십존의 일인이자, 무림맹주조차 쉽게 대할 수 없는 정파무림의 거인.
무림맹은 물론이고 구파일방, 오대세가, 십대상단, 오대학관, 심지어 관까지.
천하에 존재하는 큰 세력의 요직 중에, 그의 제자가 없는 곳이 없다고 할 정도였다.
맹주는 백수룡에게 그런 천무관주를 견제하는 역할을 맡기려 하고 있었다.
“많은 것을 바라는 것은 아니야. 무림맹과 오대학관의 마찰을 빚지 않도록, 중간에서 잘 조율해 주게. 적어도 주작학관과 백호학관은 자네에게 힘을 실어 줄 테니 말이야.”
그 정도라면……. 백수룡은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
“맹주님이 보시기에, 천무관주는 어떤 사람입니까?”
“속을 알 수 없는 사람일세.”
그 한마디로 충분했다.
속을 알 수 없는 아군은 미지의 적만큼이나 위험하다.
혈교와 싸워서 이기기 위해서는, 온 무림이 힘을 하나로 뭉쳐야 한다.
맹주와 백수룡은 그 부분에 대해서는 완벽하게 이해가 일치했다.
“알겠습니다. 그 부분은 제가 신경 쓰도록 하겠습니다.”
“크하하! 천군만마를 얻은 것처럼 든든하구나!”
“어차피 천무제에서 우승하고 나면, 싫어도 청룡학관이 오대학관의 중심이 될 테니까요.”
“흐음. 우승이라…….”
우승까지는 아무래도 힘들 것이다. 천무학관 학생들의 자질이 평균적으로 워낙에 뛰어난 탓에.
물론, 맹주도 굳이 그런 얘기는 하지 않았다.
“기대하지. 그때까지 혈교 놈들이 발호하지 않기를 바라야겠군.”
“저도 그러길 바랍니다. 뭐, 운명에 맡겨야겠지만요.”
두 사내는 마주 보며 씩 웃었다.
솔직하게 대화를 나누고 나니, 이제야 제대로 동맹을 맺은 느낌이었다.
맹주는 기막을 걷으며 말했다.
“유익한 대화였네. 시간이 날 때 무림맹에도 한번 들러주게나.”
“알겠습니다. 명색이 총사범인데, 가서 다른 녀석들 무공도 지도해 줄 생각입니다.”
오다가다 그 말을 들었는지, 천무대의 무사들이 움찔했다.
총사범에게 자신들의 대주가 어떻게 당하는지 봤으니, 백수룡의 눈빛만 봐도 오금이 저릴 수밖에 없었다.
“하하! 저희 천무대 전원이 기가 바짝 들었군요!”
밝은 목소리로 대화에 끼어든 사람은 천무대주 조천상이었다.
전날 패배의 여파가 남았을 법도 한데, 조천상의 얼굴은 오히려 밝아 보였다.
맹주가 어이가 없다는 듯 혀를 찼다.
“속없는 놈. 누가 보면 네가 비무에서 이긴 줄 알겠다.”
“제 실력이 모자라 진 것이니, 조금도 부끄럽지 않습니다.”
백수룡을 바라보는 조천상의 눈빛이 맑고 초롱초롱했다.
“총사범님. 우물 안 개구리에게 넓은 세상이 있음을 알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백수룡을 상관으로 대하는 태도가 깍듯했다.
두려워서가 아니라, 진심으로 상대에게 승복했기 때문이었다.
그 눈빛이 너무 순수해서, 영혼에 때가 잔뜩 묻은 백수룡이 오히려 당황스러울 정도였다.
“……그래. 앞으로도 정진하도록.”
“예! 앞으로도 많은 지도편달 부탁드립니다!”
맹주가 그 모습을 보더니 배를 잡고 큭큭큭 웃었다.
[보다시피 괜찮은 녀석이다.] [그래 보입니다. 재능도 대단하고요.]검의 재능으로만 따지면 백수룡의 전생을 통틀어서도 손에 꼽을 정도였다.
다음에 만났을 땐, 조천상의 검은 분명 더 날카롭게 다듬어져 있을 것 같았다.
‘다시 붙으면, 정말 만만치 않을지도.’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새 마차에 짐을 싣는 일이 모두 끝났다.
맹주가 말했다.
“이만 가야겠군.”
“살펴 가십시오.”
작별인사는 간단했다.
맹주는 노군상과도 인사를 나누고, 무림맹 강서지부장과도 인사를 나눴다.
‘올 땐 학관을 부술 기세로 쳐들어오더니, 갈 때는 온갖 환대를 받고 가는군.’
백수룡은 적당한 거리를 두고 맹주 일행을 배웅했다.
“선생님!”
익숙한 목소리에 고개를 돌리자, 한쪽에서 제갈소진과 함께 있던 방백현이 손을 흔들고 있었다.
백수룡과 눈이 마주치자 방백현이 고개를 꾸벅 숙였다. 표정이 꽤 밝아 보였다.
‘어머니하고 이야기가 잘된 모양이네.’
전에 이야기한 대로, 통천대로 들어가기로 한 모양이었다. 백수룡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그때였다.
맹주가 자신을 배웅하기 위해 나온 수많은 인파를 둘러보며 입을 열었다.
“가는 길까지 환대를 해 주어 고맙소. 무림맹과 청룡학관은 동맹으로서 혈교의 위협에 함께 맞설 것임을 다시 한번 약속드리오.”
모두가 맹주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서 있는 것만으로도 압도적인 존재감을 뿜어내는 거인.
천하에서 가장 강한 주먹을 가진 사내가 느릿하게 입을 열었다.
“어제의 비무를 통해, 본좌는 무림의 미래가 밝음을 확인했소. 청룡신협과 화산검호. 결과를 떠나 둘 다 아주 훌륭했지.”
맹주가 시선을 돌려 백수룡을 바라봤다.
그와 눈이 마주친 순간, 백수룡은 알 수 없는 불길함을 느꼈다.
씨익.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은 맹주가 목소리에 내공을 담아 말했다.
“나 무림맹주 야율황이 보증하겠소. 청룡신협 백수룡의 무공이 십존의 말석을 차지하기에 부족함이 없다는 것을!”
“!!”
“!!!”
“!!!!”
무림 전체에 엄청난 반향을 가져올 발언.
전날의 비무 결과를 놓고 이러쿵저러쿵 온갖 이야기를 떠들어대던 호사가들이 일제히 비명을 질렀다.
청룡신협! 청룡신협! 청룡신협!
새로운 십존의 탄생이다!
무림맹주가 청룡신협을 호적수로 인정했다!
우와아아아아아!
도시는 전날의 환호와는 비교도 되지 않은 소란에 휩싸였다.
마치 도시 전체에 축제라도 열린 듯한 분위기였다.
그 중심에 백수룡이 있었다.
“하하, 하하하…….”
사방에서 쏟아지는 시선 속에서, 백수룡은 혼자 어색하게 웃을 뿐이었다.
‘이런 미친…….’
백수룡은 사람 하나는 충분히 죽일 듯한 눈빛으로 맹주를 노려봤으나, 맹주는 홱 몸을 돌렸다.
“크하하하! 그럼 나는 이만 떠나 보겠소!”
그렇게 청룡학관을 방문했던 무림맹의 사절이 떠났다.
그리고, 모두가 기다려 온 방학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