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mber One Star Instructor Master Baek RAW novel - Chapter 295
294화. 가지고 계신다면
“히히히.”
“흐흐흐.”
“헤헤헤.”
아침부터 제자들은 싱글벙글이었다.
방학이 시작되어 다들 집에 갈 생각에 기분이 좋은 것도 있었지만, 다른 이유도 있었다.
헌원강이 싱글벙글 웃으며 함께 식사 중인 백수룡에게 물었다.
“말석 선생님. 음식은 입맛에 좀 맞으십니까?”
“…….”
백수룡이 말없이 음식을 씹자, 야수혁도 흐흐 웃으며 한마디 보탰다.
“오늘은 특별히 맛있는 걸 해 드리려고 저희가 신경 좀 썼습니다. 어제 선생님이 무립십존의 ‘말석’에 공식적으로 등극하셨으니까요.”
“……그만해라.”
백수룡이 한숨을 내쉬자, 여민도 짓궂게 웃으며 한마디 보탰다.
“선생님. 여기 고기 반찬 좀 드셔 보세요. 말석에서 위로 올라가려면 잘 드셔야…….”
“그만하라고 했다?”
백수룡이 제자들을 홱 째려보자, 거상웅이 선배답게 후배들을 크게 나무랐다.
“어허! 너희들! 그만두지 못하겠냐? 천하에서 열 번째로 매운 주먹맛을 보고 싶어?”
“죄송합니다! 제가 감히 십존의 말석을 화나게 하다니…….”
헌원강이 과장되게 사과하며 고개를 숙이자, 얌전히 있던 위지천까지 입매를 씰룩이며 선생님 놀리기에 동참했다.
“다들 앞으로 주의하도록 하세요. 아시다시피 선생님이 실력은 말석이시지만, 성질머리는 능히 일석을 차지하실…….”
“이것들이 진짜!”
기어이 백수룡이 폭발했다. 숟가락으로 제자들의 이마를 강타했다.
빠바바박!
밥상머리에서 스승을 놀리다가 숟가락에 호되게 이마를 얻어맞은 제자들이 이마를 부여잡고 끙끙거렸다.
“아, 칭찬인데 왜 때려요! 무림에서 가장 강한 열 명의 ‘말석’에 든 걸 축하드리려고 다 같이 아침상까지 차렸는데!”
이마에 혹이 가장 크게 난 헌원강이 억울한 표정으로 항변했지만, 백수룡은 코웃음을 칠 뿐이었다.
“축하하는 거랑 깐족거리는 거랑 같냐?”
“겸사겸사…….”
“이걸 그냥 콱!”
“히익!”
헌원강이 움찔해서 머리를 막았지만, 숟가락은 머리를 노리다가 벼락처럼 궤도를 바꿨다.
빠악!
콧잔등을 얻어맞은 헌원강이 뒤로 발라당 넘어갔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놀리는 걸 그만두지 않는 헌원강이었다.
“과, 과연 이게 십존 말석의 실력…….”
“오냐. 헌원세가까지 기어가게 해 주마!”
“선생님! 참으세요!”
“이거 놔! 안 놔!?”
평소보다 조금 더 시끌벅적한 아침 식사가 끝나고, 제자들은 각자 짐을 챙겨서 대문 앞에 모였다.
다들 이마에 혹을 하나씩 달고도 여전히 싱글벙글이었다.
“흐흐. 우리 선생님이 십존이라니.”
“선생님 이름에 부끄럽지 않도록 열심히 수련하고 오겠습니다.”
“어딜 가든 잊지 말자! 우리가 바로 청룡신협의 제자다!”
“흐흐. 산채 형님들한테도 자랑하겠습니다.”
차례대로 헌원강, 위지천, 거상웅, 야수혁의 말이었다.
넷은 방학 동안 집에 다녀오거나 합숙 수련에 다녀올 계획이었다.
여민은 방학에도 백룡장에 머물 계획이라, 백수룡과 함께 네 명을 배웅했다.
“어휴. 이 천둥벌거숭이 같은 놈들…….”
백수룡은 까불거리는 사내놈들을 한 대씩 더 쥐어박으려다가 그냥 피식 웃었다.
제자들이 기뻐하는 모습이 눈에 보였기 때문이다.
정작 본인은 귀찮아졌다는 생각이 더 강한데, 이 녀석들은 어제부터 자기 일처럼 좋아서 난리였다.
십존의 말석.
어찌 보면 교묘한 말장난이었다.
다른 십존들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는 선에서, 맹주는 백수룡의 명성을 최대한 높일 수 있는 극찬을 선택했다.
백수룡의 명성이 올라갈수록, 그를 총사범으로 영입한 무림맹의 명성도 함께 올라갈 것이기 때문이었다.
물론 백수룡의 무공이 뛰어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정치적인 목적이 들어 있는 발언인 것도 사실이었다.
‘맹주 그 인간. 곰 같이 생겨서 은근히 여우라니까.’
물론 백수룡도 명성을 원하긴 했지만,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너무 큰 명성은 운신의 폭에 제약을 주고, 혈교로부터 주목을 받아 버리니 말이다.
‘남궁세가에서 한 일을 생각하면, 혈교의 주목을 피하는 건 이미 틀린 것 같지만…….’
잠시 상념에 빠져 있던 백수룡은, 뭔가 기대하는 눈빛으로 자신을 쳐다보는 제자들의 시선을 느꼈다.
떠나기 전에 마지막으로 뭔가 멋진 말이라도 해 주길 바라는 모양인데…….
백수룡은 피식 웃으며 제자들의 머리를 한 번씩 쓰다듬어 주었다.
“다들 방학 동안 사고 치지 말고, 다치지 말고, 수련 열심히 해라.”
이럴 땐 그저 평범한 인사면 충분하다.
제자들도 그 마음과 온기를 느꼈는지, 다들 씩 웃으며 스승에게 포권을 취했다.
““예! 다녀오겠습니다!””
그렇게 헌원강, 야수혁, 거상웅은 집으로 향했고, 위지천은 상검연 합숙에 합류하기 위해 떠났다.
“선생님. 저도 나갔다 올게요.”
여민은 방학 동안에도 백룡장에 있을 거라고 했지만, 오늘은 볼일이 있다며 다른 제자들을 배웅할 겸 함께 나갔다.
“……백룡장이 이렇게 휑해 보이는 건 또 처음이네.”
백수룡은 아무도 없이 텅 빈 백룡장을 둘러보며 중얼거렸다.
매일 제자들의 기합과 비명, 땀 냄새로 가득하던 연무장이 깨끗하게 정돈돼 있었다.
제자들이 가기 전에 깔끔하게 정리를 하고 간 탓이었다.
그 허전한 느낌이 무척 어색했다.
‘동기 녀석들은 저녁에 만나기로 했고, 남궁수는 어차피 내일 만나서 함께 갈 거고, 할아버님한테 미리 인사나 하고 올까.’
텅 빈 집에서 혼자 있는 것이 어쩐지 궁상맞게 느껴졌다. 백수룡이 밖으로 나가려 할 때였다.
똑똑-
“백수룡 선생님. 안에 계신가요?”
“음?”
잘게 떨리는 목소리.
백수룡은 문밖에서 들려온 목소리를 최근에 들어 본 기억이 있었다.
곧장 가서 문을 열자, 예상치 못했던 손님이 그 앞에 서 있었다.
“방백현 어머님? 어쩐 일이십니까?”
찾아온 손님의 정체는 서리애였다. 그녀가 창백한 표정으로 포권을 취하며 말했다.
“죄송합니다. 학관에 찾아가 여쭤봤더니, 오늘이 아니면 못 뵐 거라고 하셔서요.”
백수룡은 서리애의 낯빛을 유심히 살폈다. 전보다 초췌하고 힘이 없어 보였지만, 눈빛만은 맑았다.
‘주화입마는 많이 나아진 모양이군.’
적어도 방백현의 일로 따지러 온 것은 아닌 듯했다.
백수룡은 잠시 고민하다가 그녀에게 안으로 들어오라고 했다.
“일단 안으로 들어오시죠.”
“……감사합니다.”
잠시 후, 두 사람은 탁자를 사이에 두고 마주 앉았다.
서리애는 무슨 말을 하고 싶어서 온 눈치였으나, 쉽게 말을 꺼내지 못하고 백수룡의 눈치만 살폈다.
결국 백수룡이 먼저 말했다.
“방백현 군은 결국 통천대에 지원한 거로 알고 있습니다.”
“예.”
“반대하지 않으셨습니까?”
“……자식 이기는 부모가 있나요.”
서리애는 흐릿하게 웃었다.
백수룡이 기억하던 모습과는 전혀 다른, 차분하고 쓸쓸한 모습이었다.
“언제부터였는지 흐릿해요. 현이에게 너는 반드시 무림맹주가 되어야 한다고, 엄마가 시키는 대로만 하면 그렇게 될 수 있다고, 엄마 말을 듣지 않으면 콱 죽어 버리겠다고……. 제 착한 아들은 이런 엄마를 원망하는 법도 없이 따라주었답니다.”
“…….”
“그땐 그게 최선이라고 생각했어요. 다 아들을 위해서라고, 나중에 다 보상받을 테니 지금 좀 힘들어도 괜찮다고 스스로를 속였어요.”
백수룡은 잠자코 듣기만 했다.
다 타고 남은 재처럼, 서리애의 목소리에는 힘이 없었다.
“정신을 잃었다가 눈을 뜨니 현이가 그러더군요. 엄마는 마음이 아팠던 거라고. 자기는 무림맹주가 되지 않아도 괜찮다고. 그러니 자신을 믿어 달라고……. 열 살 이후로는 아무리 매를 들어도 울지 않던 아이가, 울면서 부탁하더군요.”
자리에서 일어난 서리애가 허리를 깊이 숙였다.
“꼭 인사를 드리고 싶었어요. 제 아들을 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선생님. 만약 이 은혜를 갚을 방법이 있다면…… 무엇으로든 갚겠습니다.”
서리애가 고개를 깊이 숙였다.
본인의 주화입마를 고쳐 줘서가 아니라, 아들을 구해 줘서 고맙다고 했다.
그녀의 인생에서 아들이 얼마나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지 알 수 있는 말이었다.
덤덤히 이야기를 듣고 있던 백수룡이 물었다.
“오늘은 그 이야기를 하러 오신 겁니까?”
“아닙니다. 사실은…….”
고개를 든 서리애가 투명한 눈동자로 백수룡을 바라봤다.
“선생님과 천무대주의 비무를 봤습니다. 빙공을 사용하시더군요.”
백수룡은 서리애가 찾아온 이유를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었다.
아마 빙백신공에 대해서 물으러 온 것이거나…….
“혹시 빙백환을 가지고 계십니까?”
“……그렇습니다.”
백수룡은 고개를 끄덕였다.
상대가 거의 확신하고 있는 이상, 부정해 봐야 소용이 없었다.
“설마 했는데……!”
서리애의 표정에 놀라움이 번졌다. 그리고 이내 허탈하게 중얼거렸다.
“그렇게 찾아 헤매던 물건이…… 이렇게 나타날 줄이야…….”
찾아 헤매던 물건이라고?
백수룡이 의문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자, 서리애가 질문으로 대답했다.
“빙백환을 어디서 어떻게 찾으셨는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기연이 있었습니다. 자세히는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기연…….
기연.
무림인들에게 만능으로 통하는 말이었다.
서리애는 뭔가를 더 묻고 싶은 눈치였지만, 백수룡의 단호한 표정을 보고는 그 생각을 접었다.
“선생님.”
이내 그녀는 수십 년 동안 숨겨 왔던 과거를 말하기로 결심했다.
그래야 지금부터 할 이야기를 제대로 설명할 수 있으니까.
“저는 북해빙궁 출신입니다.”
“주화입마를 치료할 때 짐작했습니다.”
“선생님은 북해빙궁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계신가요?”
“잘 모릅니다. 수십 년 전에 봉문했다는 것 정도만 알고 있습니다.”
혈교와 무림맹의 전쟁이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북해빙궁은 봉문을 선언했다.
본래도 폐쇄적인 탓에 사람들의 발길이 거의 없어, 겉으로 보기에 북해빙궁의 봉문은 혈교와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하지만 속사정을 들여다보면 아주 큰 연관이 있었다.
“약 육십여 년 전, 당시 소궁주셨던 빙월신녀께서 중원에서 실종되셨습니다.”
“…….”
“빙월신녀께서 십 년이 넘도록 궁으로 돌아오지 않자, 빙궁에서는 새로운 후계자를 차지하기 위한 싸움이 벌어졌습니다. 그 싸움으로 빙궁의 힘이 크게 약해졌습니다.”
백수룡도 전혀 몰랐던 이야기였다.
빙월신녀가 혈교에 납치된 후 혼란에 빠진 북해빙궁은 내란을 겪었고, 그로 인해 많은 피를 흘렸다.
중원 무림에는 지금까지도 알려지지 않은, 무림맹주조차 모를 이야기였다.
“그 후, 새로운 궁주께서는 궁도들의 중원행을 엄격히 금지하고 봉문을 결정하셨습니다. 내부부터 다시 다지기로 결정하신 것이죠.”
“하지만 빙궁은 신물의 회수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저를 비롯한 빙궁의 무인들이 빙백환을 회수하기 위해, 조용히 중원에 파견됐습니다.”
잠시 말을 멈춘 서리애가 쓸쓸한 웃음을 지었다.
“제 이야기는 별것 없는 이야기입니다. 신물을 찾기 위해 몇 년 동안 타지를 돌아다니다가, 우연히 한 남자를 만났습니다.”
두 사람이 만나 사랑에 빠졌고, 결실을 얻었다.
하지만 그들의 행복은 오래가지 못했다.
“……빙궁의 추적자들이 저를 찾아왔습니다. 그들은 저를 배신자로 취급하고, 죽이려 했습니다. 현이의 아버지는 그들을 모조리 죽이고 자신도 죽었습니다. 저는 겨우 도망쳤습니다.”
서리애는 덤덤한 표정으로 오래된 이야기를 했다. 더 이상 슬픔조차 느끼지 못하는 듯했다.
“북해빙궁은 매우 폐쇄적인 문파입니다. 또한 지엄한 율법을 따릅니다. 명령을 어기면 참형에 처합니다. 언제 또 추적자들이 쫓아올지 몰랐습니다.”
“살아남기 위해 저는 이름, 신분, 얼굴. 모두 위조해야 했습니다. 곧 태어날 아이에겐 아무런 잘못도 없으니까요.”
그리고 방백현이 태어났다. 그 작은 생명을 보며, 서리애는 맹세했다.
“보란 듯이 잘 키우겠다고 맹세했습니다. 현이는 무공에 재능도 있었습니다. 복수하고 싶었던 것 같기도 합니다. 출세를 시켜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살아남고, 복수를 하려면, 예를 들어 무림맹의 맹주가 된다면…….”
사랑은 집착이 되었고, 집착은 강박이 되었다. 강박은 결국 서리애를 서서히 주화입마에 빠뜨렸다.
그 모든 것이 결국 덧없는지도 모르고.
조용히 듣고 있던 백수룡이 물었다.
“그럼 전에 방백현이 천무학관에 입관하지 못했다는 이유가…….”
“제 가짜 신분이 들통날 테니까요. 천무학관은 학생의 부모까지 과거를 철저하게 조사하기로 유명합니다. 위험을 감수할 수는 없었습니다.”
이십 년 가까이 숨겨 왔던 과거를 밝힌 서리애는 후련한 표정이었다.
“제가 굳이 이런 이야기를 말씀드리는 이유는…….”
이곳에 오기 전, 서리애는 백수룡에게 이 말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수없이 고민했다.
하지만, 결국 하기로 했다.
결국 선택은 백수룡이 할 테니까.
“만약 선생님께서 빙백환을 가지고 계신다면, 그리고 직접 빙월신녀의 진전을 이으셨다면…….”
“그렇다면요?”
서리애는 백수룡이 자신의 주화입마를 고쳐 줄 당시 몸 안에 스며들던 냉기를 떠올렸다.
한 번도 느껴 본 적 없을 정도로 순수하고도 밀도 높은 냉기.
빙백신공, 그것도 궁주의 직계에게 전수되는 완전한 빙백신공을 익히지 않았다면 쌓을 수 없는 냉기였다.
“그렇다면 선생님은, 당대 북해빙궁의 궁주보다 더욱 정통성 있는 빙백신공의 계승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