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mber One Star Instructor Master Baek RAW novel - Chapter 300
299화. 산신령
“당신! 대체 어쩌자고 그런 말을 한 거야!”
사냥꾼 사내는 오두막에 돌아오자마자 아내에게 버럭 소리를 질렀다. 화가 많이 났는지 얼굴이 대추처럼 붉었다.
“천벌 받고 싶어서 그래? 함부로 입을 놀린 다른 사냥꾼들이 어떻게 됐는지 알면서…….”
“아이가 있었잖아요.”
아내는 아까부터 같은 말을 반복했다.
동굴에서 만난 무인들 틈에 있었던 여자아이.
자꾸만 그 아이가 눈에 밟혔다.
젖도 몇 번 물려 보지 못하고 떠나보낸 딸의 모습이 겹쳐 보인 탓이었다.
“당신은 기억 안 나요? 그날도 오늘 같은 날이었잖아요. 폭우가 쏟아져서 앞도 잘 보이지 않는데, 애는 열이 펄펄 끓고, 품에 안고서 겨우 의원을 찾아갔는데…….”
어린 딸의 몸은 이미 싸늘하게 식어 있었다.
그 기억을 떠올린 사냥꾼 사내가 이를 악물었다.
“젠장! 알았으니까 그만해!”
차라리 아까 그 동굴에 가지 않았다면.
아무것도 보고 듣지 못했다면 좋았을 텐데…….
갈등하는 사내에게, 아내가 애원했다.
“여보. 우리 오늘 일은 비밀로 해요. 그 사람들한테 큰돈도 받았잖아요.”
“당신이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알아. 나도 그러고 싶어. 하지만 그러다 들키기라도 하면…….”
사냥꾼 사내는 괴로운 표정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그 역시 아내와 같은 생각이었다.
‘그 어린것이 무슨 죄가 있다고…….’
하지만 산신령은 거역하기에는 너무나 두려운 존재였다.
만약 무림인을 만났다는 사실을 고하지 않는다면…….
“무림인을 만났나 보구나.”
““……!!””
등 뒤에서 들려온 낯선 목소리에, 두 사람은 동시에 홱 돌아섰다.
새하얀 장포에 수염을 기른, 신선 같은 노인이 뒷짐을 진 채로 서 있었다.
키는 훌쩍 컸고, 얼굴은 선하게 웃고 있었다.
……하지만 저 웃는 얼굴에 속아선 안 된다.
그가 바로 이 산의 사냥꾼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존재였다.
“사, 산신령님……. 누추한 곳엔 갑자기 어떻게…….”
바닥에 납작 엎드린 사냥꾼 부부의 몸이 덜덜덜 떨렸다.
산신령은 변덕이 아주 심한 존재였다.
기분이 좋은 날에는 커다란 호랑이를 잡아다 오두막에 가져다주기도 하지만, 기분이 나쁜 날에는 말대꾸를 한다는 이유로 사람을 찢어 죽이기도 한다.
‘밖에 비가 저렇게 오는데, 한 방울도 젖지 않다니…….’
다행히 오늘은 산신령의 기분이 좋아 보였다.
산신령이 긴 수염을 쓸어내리며 허허 웃었다.
“일부러 들으려고 한 것은 아닌데, 너희 목소리가 크더구나. 그래. 어떤 무림인들을 만났느냐?”
태연하게 묻는 목소리는 산들바람처럼 부드러웠다. 그러나 사냥꾼 부부의 안색은 점점 더 창백해졌다.
“그게…….”
“혹시 말하기 싫은 게냐? 내가 너희를 위해 무공도 가르쳐 주었거늘. 은혜를 이런 식으로 갚으면 안 되지.”
“…….”
“…….
동굴에서는 말하지 않았던 이야기.
사냥꾼 부부는 산신령에게 무공을 배웠다.
물론 제자라고 할 만큼 대단한 수준은 아니었다.
‘고작 몇 수를 배운 게 전부지만…….’
하지만 그 몇 수를 배운 것만으로, 전보다 사냥을 하기가 훨씬 쉬워진 것은 물론이고, 산적이나 무림인들 앞에서도 배짱을 부릴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그 대가는 만만치 않았다.
산신령은 이름처럼 신령스러운 존재가 아니었으니까.
“무공을 가르쳐 준 대가로, 너희가 보고 들은 모든 것을 내게 알려 주기로 하지 않았더냐?”
“마, 맞습니다…….”
일종의 계약이었다.
여기 있는 사냥꾼 부부뿐만이 아니라, 다른 사냥꾼들, 약초꾼들, 나무꾼들 중에도 산신령에게 무공을 배운 자들이 여럿이었다.
계약을 거절한 자들도 있었지만…… 지금은 모두 죽고 없다.
산신령이 그림에 나오는 신선처럼 웃으며 말했다.
“다행히 내가 오늘은 기분이 아주 좋다. 수십 년을 기다려 온 신공의 완성이 거의 가까워졌기 때문이지.”
“축하드립니다!”
“추, 축하드립니다.”
그때였다.
산신령의 소매에서 어린아이 팔뚝만 한 두께의 금색 거머리가 기어 나왔다.
꾸물꾸물.
금색 거머리는 산신령의 팔을 타고 어깨까지 올라왔다.
“이 녀석. 그새를 못 참고 또 배가 고파진 게냐?”
산신령이 웃으며 손을 내밀자, 거머리는 산신령의 손등에 이빨을 박아 넣고 피를 쪽쪽 빨아먹었다.
“허허. 요즘은 나도 네 먹성이 감당이 안 되는구나.”
“…….”
몇 번이나 보아 온 광경이지만, 사냥꾼들은 마치 자신들의 몸에서 피가 빠져나가는 기분을 느꼈다.
덜덜덜…….
저 금색 거머리가 피를 빨아 먹는 사람이 산신령뿐만이 아님을 알기 때문이다.
지금껏 산신령의 명령을 거부한 자들, 몰래 도망쳤다가 잡혀 온 자들, 사냥꾼이 직접 잡아 오거나, 겁 없이 도전했다가 죽임을 당한 무인들.
전부 저 금색 거머리에게 피가 빨려서 미라처럼 말라 죽었다.
‘처음에는 몸의 절반만 금색이었는데…….’
그동안 얼마나 많은 사람의 피를 빨아 먹었는지, 이제는 꼬리 끝부분을 제외한 대부분이 금색이었다.
예전에 얼핏 듣기로, 저 꼬리까지 완전히 금색으로 물들면 산신령의 비원(悲願)이 이뤄진다고 들었다.
“이제 그만 먹으려무나. 조금 있다가 신선한 피를 잔뜩 먹여 줄 터이니.”
“…….”
금색 지렁이를 쓰다듬는 산신령의 팔에는 화상으로 얼룩진 흉터가 가득했다.
산신령은 태연하게 사냥꾼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그래. 아까 어디서 무인들을 보았다고 했지?”
“저, 전부 다 말씀드릴 테니, 부디 노여움을 풀어 주십시오……!”
사냥꾼 사내는 도저히 그 공포를 이길 수 없었다. 그는 동굴에서 있었던 일을 천천히 말하기 시작했다.
“동굴에서 무림인 일행을 만났습니다. 숫자는 넷이고, 남자 둘에 여자 둘이었습니다.”
사냥꾼은 백수룡 일행에게 들었던 이름을 말했다. 물론 그것이 전부 가명이라는 것은 알지 못했다.
전부 처음 듣는 이름이었기에, 산신령은 바로 가장 궁금한 것을 물었다.
“무공은 강해 보이더냐?”
“……별로 세 보이지 않았습니다. 숫자는 많았지만, 싸우면 저희가 충분히 이길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거짓말이었다.
동굴에서 본 무림인 일행 중 어린 여자아이를 제외하면, 모두 상당한 고수로 보였다.
하지만 사냥꾼은 일부러 그들이 아주 약해 보였다고 거짓말을 했다.
‘산신령은 약한 무인에게는 관심이 없다. 운이 좋으면 그냥 보내 줄 것이다.’
예전에는 닥치는 대로 잡아다가 거머리에게 먹인 것으로 알고 있지만, 요즘 들어서는 먹이를 가려서 먹인다.
사냥꾼 자신보다 약한 무인은 아무런 가치도 없을 것이다.
그러니 제발…….
“제가 보기엔, 산신령님께서 신경 쓰실 만한 자들은 아닌 것 같습니다…….”
“제 생각도 같습니다.”
사냥꾼 사내와 아내의 눈이 잠시 마주쳤다.
입 밖으로 낼 수는 없었지만, 그 순간 두 사람은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 어린것한테는 아무런 잘못도 없어.’
‘언제까지 이런 짓을 하면서 살 수는 없어요.’
그들이 빨리 이 빌어먹을 산에서 벗어나길.
행여나 재앙 같은 산신령의 변덕이 닥치기 전에…….
“허어. 그래. 그렇구나.”
산신령이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말에 사냥꾼 부부가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그 순간.
산신령이 빙긋 웃으며 말을 이었다.
“무지렁이들은 거짓말도 참 어설프단 말이지.”
“사, 살려……!”
눈을 부릅뜬 사냥꾼이 뭐라고 말하기도 전에, 그의 옆에서 새하얀 벼락이 내리쳤다.
“꺄아아아악!”
벼락은 사내가 아닌 그의 아내에게 작렬했다. 새하얀 전류에 휘감긴 사냥꾼의 아내가 찢어져라 비명을 질러 댔다.
대체 언제 움직인 것인지, 산신령이 손으로 사냥꾼의 아내의 목을 움켜쥐고 있었다.
그의 손에 흐르는 뇌기에 감전당해, 아내의 몸이 펄떡펄떡 뛰었다.
“사, 산신령님! 살려 주십시오! 제발 제 아내를 살려 주십시오.”
“네가 내게 거짓을 고하고도 살기를 바라느냐?”
산신령은 상대의 미세한 표정 변화, 심장박동마저도 읽을 수 있는 고수였다. 어설픈 사냥꾼의 거짓말은 처음부터 통하지 않았다.
“전부, 전부 사실대로 말하겠습니다!”
결국 사냥꾼 사내는 울면서 모든 사실을 고했다.
몇 년 전에는 하나뿐인 자식을 잃었다. 아내마저 잃을 수는 없었다.
“그곳에 있었던 셋 모두 고수였습니다! 하나같이 비범해 보였습니다! 귀한 집 자식으로 보였고…….”
“아까는 넷이라고 하지 않았더냐?”
“한 명은 어린아이였습니다. 주,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몇 년 전에 죽은 저희 딸이 생각나서 그만……. 제발 제 아내만은…….”
“흥. 이제야 바른대로 말하는군.”
코웃음을 친 산신령은 사냥꾼의 아내를 내던지듯 내려놓았다.
털썩.
피부가 검게 탄 사냥꾼의 아내가 의식을 잃고 바닥에 널브러졌다. 사냥꾼이 기어가서 확인하니, 간신히 숨만 쉬고 있었다.
“어리석은 놈. 진작 말했으면 좋았을 것이 아니냐.”
“죄송합니다…….”
“그래서 놈들은 어디로 갔느냐?”
“……산을 넘을 거라고 하기에, 제가 지름길을 알려 주었습니다. 여보! 여보! 정신 좀 차려 봐!”
사냥꾼은 아내를 끌어안고 오열했다. 산신령은 귀찮다는 듯 사냥꾼을 발로 걷어찼다.
“그곳으로 안내하거라. 너희들 말이 사실이라면, 내 신통력을 발휘해서 너의 아내를 살려 줄 것이다.”
“저, 정말입니까?”
“물론이다. 허나 만약 거짓이 있다면, 둘 다 죽지도 살지도 못하는 꼴로 만들 것이다.”
“예, 예!”
사냥꾼은 허겁지겁 옷을 챙겨 입고, 아내를 등에 업었다. 다행히 비는 거의 그쳐 있었다.
그사이, 산신령은 사냥꾼이 무림인들에게 받았다는 전표를 확인했다.
“이건……!”
전표를 확인한 순간, 산신령의 눈이 부릅떠졌다.
예상보다 큰 액수 때문이 아니었다.
그 전표에 찍혀 있는 직인, 그것이 문제였다.
“남궁세가의 직인이라니……. 허. 이것 참으로 공교롭구나.”
벽력마(霹靂魔) 금천호.
은거하기 전의 산신령을 무림은 그렇게 불렀다.
벽력마는 남궁세가와 오래된 원한을 가지고 있었다. 그의 은거에도 남궁세가가 적지 않은 역할을 했다.
파지직……!
뇌기로 전표를 태워 버린 벽력마의 얼굴이 기괴하게 일그러졌다. 산신령이 아니라 흡사 지옥의 마귀처럼 보였다.
“……신공의 완성을 목전에 둔 상황에서 남궁세가 놈을 만나다니, 이것 또한 하늘의 뜻이 아니겠는가.”
산속에 은거한 후, 산신령으로 살아온 지 어느덧 수십 년이 흘렀다.
어느새 벽력마는 자신이 진짜 신이라도 된 것 같은 착각에 빠져 있었다.
꾸물꾸물.
벽력마는 어깨에 올라탄 금색 거머리의 머리를 천천히 쓰다듬었다.
“명성이 제법 있는 놈이었으면 좋겠구나. 신공을 완성한 본좌가 은거를 깨고, 다시 무림에 출도하기 전에 던질 출사표에 어울리도록 말이다.”
퍼어어엉!
벽력마는 사냥꾼의 오두막을 일 장에 부숴 버리고, 넋이 반쯤 나간 사냥꾼을 앞세워 사냥감들을 찾아 나섰다.
“안내해라.”
“예…….”
어둠 속에서 번들거리는 두 눈, 벽력마에 얼굴에 광기가 번져 나갔다.
마침 신공을 완성하기 위한 마지막 제물을 찾고 있던 차였다.
정순한 내공을 가진 무인이 필요했는데, 남궁세가 출신이 이 산을 지나갈 줄이야.
“하늘이 나를 돕는 것이지. 흐흐흐…….”
남궁세가의 자식을 마지막 제물로 바쳐 신공을 완성하다니. 이보다 짜릿한 복수의 시작이 어디 있단 말인가.
생각만 해도 즐거워 입이 찢어질 것 같았다.
이제 곧 신공이 완성되면……!
“천하가 본좌의 발아래 무릎을 꿇을 것이다! 크하하하!”
쿠르르릉-!
천둥이 마치 벽력마의 웃음처럼 울려 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