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mber One Star Instructor Master Baek RAW novel - Chapter 308
307화. 쥐를 잡으려면 (3)
백수룡은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매달리는 거지들, 그리고 그들이 내뿜는 악취 때문에 정신이 혼미해질 지경이었다.
“아, 알겠습니다. 알았다니까요. 이러지 않아도 치료해 줄 생각이니, 일단 옷 좀 놓고 얘기하면 안 됩니까?”
그러나 개방의 장로들은 백수룡이 하늘에서 내려온 동아줄이라도 되는 것처럼 붙들고 놓아 주지 않았다. 그 숫자가 무려 여섯이었다.
“부탁이네! 제발 우리 사형 좀 살려 주시게!”
“우리 사형 목숨만 붙여 주면, 삼십 년 동안 쓴 내 밥그릇이라도 주겠네!”
“내 하나뿐인 가죽신을 주겠네. 아껴서 이십 년밖에 안 신었어!”
금이 잔뜩 간 밥그릇.
구멍이 숭숭 뚫린 가죽신.
그 외에 용도를 짐작할 수 없는 자질구레한 물건들.
개방의 여섯 장로들이 우리 방주님 좀 살려 달라며 주섬주섬 꺼낸 물건들이, 백수룡 앞에 쓰레기더미처럼 쌓였다.
‘하나같이 쓸모없는 것들뿐이잖아!’
처음에는 그중 하나쯤은 개방의 보물이라든가 비전의 영약(개방에서 준 영약을 직접 먹을 생각은 추호도 없었지만), 혹은 보물이 숨겨진 위치를 표시한 지도라도 있지 않을까 은근한 기대를 품었다.
하지만 이 쓰레기더미에서 가장 비싼 물건은 사용한 지 십 년밖에 안 됐다는 놋쇠 젓가락이었다. 그마저도 각각 길이가 달랐다.
‘누굴 거지로 아나!’
거지 왕초를 향한 늙은 거지들의 의리는 그야말로 눈물겨웠지만, 그들의 손에 붙잡힌 백수룡은 실시간으로 거지 같은 기분을 느끼는 중이었다.
심지어 이 거지들은 하나같이 상당한 고수여서 떼어내는 것도 쉽지가 않았다. 작정하고 공격하지 않는 한 말이다.
‘이 거지새끼들이 진짜…….’
뿌드득…….
일설에 의하면, 개방의 타구봉법(打狗棒法)은 사실 개가 아니라 방도들을 개처럼 패던 개방의 초대 방주가 돌연 깨달음을 얻어 만들었다고 한다.
백수룡은 지금 그 속설을 진지하게 믿어야 하나 고민할 때였다.
“장로님들!”
다행히 백수룡이 스스로 타구봉법의 오의를 깨닫기 전에 왕발이 장로들을 말리고 나섰다.
“이러면 백 대협이 곤란해하지 않습니까. 다들 방에서 나가십시오!”
다행히 개 같은 거지새끼들, 아니 개방의 장로들도 후개의 말은 들었다. 다들 뭐 마려운 강아지 같은 모습으로 방에서 쫓겨났다.
“죄송합니다. 스승님이 쓰러지신 후로,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신 분들이라…….”
“그렇습니까…….”
방금 나간 여섯 명은 개방의 장로들 중에서도 수십 년간 방주와 형제처럼 지내 온 사람들이라고 했다.
과거에는 지금의 방주와 함께 풍운칠개(風雲七?)라고 불렸다던가.
‘일곱 마리의 미친개가 아니고?’
백수룡은 옷매무새를 정리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장로들 손에 잡혔던 부분이 누렇게 변해 있었다…….
저 거지들과는 오늘 이후로 다시는 상종하고 싶지 않았다.
“헌데…… 정말 치료하실 수 있는 겁니까?”
“물론입니다.”
긴장한 표정으로 묻는 왕발에게 백수룡은 고개를 끄덕였다.
불가능한 일이었으면 애초에 말도 꺼내지 않았을 것이다.
“단, 이곳에 저 말고는 아무도 없어야 합니다.”
“예? 어째서…….”
불안한 표정으로 묻는 왕발에게, 백수룡은 단호하고 솔직하게 말했다.
“개방의 눈이 지켜보는 앞에서, 제 밑천을 드러내고 싶지 않습니다.”
“그건…… 알겠습니다.”
잠시 고민하던 왕발은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스승을 혼자 두고 나가려니 불안한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지만,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으로 청룡신협을 이곳에 데려온 사람은 그였다.
“믿겠습니다.”
왕발까지 밖으로 나간 후, 백수룡은 방 안에 기막을 둘러쳤다.
이 안에서 무슨 짓을 하더라도, 밖에서 알아채지 못하도록 소리와 기를 차단한 것이다.
“실패하면 밖에 있는 미친개들한테 물려 죽을지도 모르겠군.”
고개를 절레절레 저은 백수룡은 역천신공을 끌어올렸다. 그의 머리카락과 눈동자가 순식간에 붉게 물들었다.
그러곤 의식을 잃은 방주의 혈도 몇 곳을 짚은 후, 그의 몸 안에 역천신공의 기운을 불어넣었다.
독마의 생사독(生死毒).
예상했던 대로 방주의 몸 안에는 지독한 독기와 마기가 뒤섞여 생명을 갉아먹고 있었다.
‘이래서 독마의 독이 까다롭지.’
약으로 독을 치료하고자 약을 쓰면, 마기가 약기를 오염시킨다.
내가고수가 공력으로 마기를 씻어 내려 하면, 독 기운이 독사처럼 달려들어 시전자마저 중독시키려 든다.
뛰어난 의원인 동시에, 절세의 경지에 도달한 고수가 아닌 한 해독이 불가능한 것이다.
‘애초에 생사신의를 상대하겠다며 만든 독공이었으니까.’
독마가 자신의 독공 이름을 ‘생사독’이라 지은 것은, 생사신의마저 해독할 수 없는 독을 만들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결국은 불가능했지만.’
혈교의 장로였던 독마는 강했지만, 그 시대에도 신선으로 불리던 생사신의와 비교하기에는 부족했다.
그러나 달리 말하면, 생사신의가 아니면 독마의 독을 해독하기가 거의 불가능하다는 뜻이었다.
백수룡도 생사독을 ‘완전히’ 해독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하지만 독기와 마기를 분리한 후, 마기만 뽑아내는 것이라면 어렵지 않았다.
방주의 몸속을 관조하던 백수룡의 두 눈이 붉은 보석처럼 빛났다.
‘마공 주제에. 건방지게 대들지 마라.’
역천신공은 모든 마공의 정점에 있다.
천하에서 가장 패도적인 기운은 마공을 굴복시키고, 복종하게 만든다.
콰콰콰콰콰!
역천신공의 기운에 굴복한 생사독의 마기가 얌전해졌다. 마기가 저항하지 않으니, 독기도 덤비지 않고 얌전히 방주의 몸 안에 웅크렸다.
백수룡은 뽑아낸 생사독의 마기를 자신의 몸 안으로 흡수했다.
뽑아서 태워 버려도 되지만, 그랬다간 치료가 끝난 후 마공의 흔적이 방 안에 남을 수도 있었다.
‘개방의 거지들에게 그걸 보여 줄 수는 없지.’
생사독의 마기는 순조롭게 흡수됐고, 그럴수록 방주의 몸에 남은 독공의 흔적이 옅어졌다.
무언가 이상을 느낀 것은 마기를 절반쯤 흡수했을 때였다.
‘음?’
독과 완전히 분리했다고 생각했던 생사독의 마기에, 극미량의 독 기운이 묻어 있었던 것이다.
치익…….
방주의 단전에 닿은 백수룡의 손끝이 검게 물들기 시작했다.
그러나 백수룡은 당황하지 않았다. 오히려 눈을 부릅뜨고 입술을 꽉 깨물었다.
‘이 정도는 충분히 감당할 수 있어.’
생사독이 무서운 점은 두 기운이 뒤섞여서 해독이 어렵다는 것이다.
물론 독마의 독은 그 자체로도 끔찍한 맹독이지만, 백수룡은 지금이라면 이 정도 미량의 독은 충분히 감당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중간에 멈추면 이도 저도 아니게 돼.’
백수룡은 멈추지 않고 방주의 몸 안에 있는 마기를 모조리 빨아들였다.
털썩.
그러곤, 방주의 몸에서 모든 마기를 흡수하자마자 즉시 가부좌를 틀고 바닥에 앉았다. 몸 안에 들어온 미량의 독기를 해독하기 위해서였다.
치이익……!
백수룡의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히고, 머리에서 하얀 김이 피어올랐다.
역천신공으로 몸 안에 들어온 생사독의 마기는 모조리 태워 버리고, 독만 남겼다.
독마가 남긴 독과 역천신공이 싸우기 시작했다.
“끄윽…….”
꽉 다문 잇새로 신음이 새어 나왔다.
미량인데도 불구하고 독마의 독은 지독하고 끈질겼다. 몸 안에 거대한 불덩이가 타오르는 기분이었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길어도 한 시진은 넘지 않았을 것이다.
“후우…….”
백수룡은 천천히 눈을 떴다. 자신의 몸 안에 생긴 어떤 변화를 느끼면서.
“이건…… 예상 못 했는데…….”
생사독의 독 기운이 역천신공에 굴복해, 몸 안에 흡수됐다.
마음만 먹으면 독을 아예 없애 버릴 수도 있었지만, 백수룡은 굳이 그럴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독 기운이 더 이상 그에게 해를 끼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해가 되기는커녕.
‘독공으로 쓸 수는 없겠지만…….’
독에 대한 저항력이 크게 높아졌다.
전설로 내려오는 만독불침은 아니겠지만, 천독불침 정도는 충분히 될 것 같았다.
게다가 혈교의 독으로 한정한다면, 효과는 훨씬 더 뛰어날 것이다.
독마는 혈교에서 수많은 독을 개발한 독의 절대자였고, 생사독은 그가 만든 독공의 정수였으니까.
지금도 독마가 만든 독이 사용되고 있다면, 백수룡은 혈교의 독에 대해서는 거의 완벽한 내성을 지니게 된 것과 다름이 없었다.
“……기연이군.”
백수룡은 피식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전의 기연들처럼 무공의 경지가 깊어진 것은 아니지만, 이것 또한 굉장한 기연이었다.
앞으로 독에 대해서는 걱정할 일이 없어진 것과 다름이 없었으니까.
‘방주는?’
방주의 모습을 살피니, 가슴 정중앙에 검은 얼룩이 매우 옅어져 있었다. 안색도 훨씬 편안해 보였다.
백수룡은 기막을 해제하고 바깥에서 대기 중인 왕발을 불렀다.
“들어오십시오. ……후개만!”
문을 벌컥 열고 서로 들어오려면 여섯 장로가 백수룡의 서슬 퍼런 눈빛을 보고 움찔해서 물러섰다.
왕발이 그 틈을 비집고 들어왔다.
“스, 스승님……!”
왕발은 혈색이 돌아온 스승의 얼굴을 보았다.
여전히 눈은 뜨지 못하고 있었지만, 방주의 상태가 나아졌음은 누가 봐도 한눈에 알 수 있었다.
그가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백수룡을 돌아봤다.
“이, 이 은혜를 다 어떻게…….”
두고두고 오래오래 갚아라.
……라고 말하는 대신, 백수룡은 가식적인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독 기운은 아직 남았지만 마기는 모조리 제거했습니다. 독을 완전히 몰아내려면 해약이 있어야겠지만, 적어도 더 이상 몸 상태가 악화되지는 않을 겁니다.”
“사형!”
“으헝헝헝!”
어느새 풍운육개도 들어와 방주를 둘러싸고 있었다.
며칠을 넘기지 못할 거라고 했던 방주가 차도를 보이기 시작했으니, 참았던 감정이 폭발한 것이다.
‘방주는 복 받은 사람이군.’
백수룡은 그 모습을 부럽다는 듯이 바라봤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전생에 자신이 죽었을 때도 저렇게 울어 준 사람이 있었을까.
특히 그가 가르쳤던 제자들은…….
‘그 녀석들은 어떤 얼굴로 내 마지막을 지켜봤을까.’
“스, 스승님!”
왕발의 외침에 백수룡은 상념을 털어 냈다.
방주가 의식을 되찾았다. 힘겹게 눈꺼풀을 들어 올리고 있었다.
““사형!””
반쯤 눈을 뜬 방주는 무언가를 말하고 싶은 듯 입술을 달싹였지만,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 듯했다.
“다들 조용히 하십시오!”
왕발의 일갈에 풍운육개가 입을 다물었다.
그 모습을 본 방주가 희미하게 미소를 지었다. 그의 시선을 느낀 왕발이 다가가 스승의 손을 잡아 주었다.
“…….”
방주는 왕발의 손바닥에 손가락으로 무언가를 적었다.
그 안에 고수 아닌 사람이 없었으니, 모두가 방주가 쓴 글자를 읽을 수 있었다.
“맹(盟)……!”
단 한 글자를 쓰는 데 모든 힘을 다 쏟은 듯, 방주는 다시 의식을 잃고 잠들었다. 숨소리는 안정적이었다.
“…….”
“…….”
방주가 잠든 후에도, 한동안 모두가 침묵했다.
맹(盟).
방주가 후개의 손바닥에 쓴 글자가 뭘 의미하는지 모를 사람은 없었다.
뻔하지 않은가.
“무림맹…….”
왕발이 핏발선 눈으로 중얼거렸다. 장로들의 표정도 그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스승님을 공격한 흉수가 무림맹에 있거나, 최소한 이 일에 무림맹이 관련돼 있다는 뜻이겠지요.”
“……생사독은 혈교의 무공입니다.”
백수룡의 말에도 왕발의 표정은 전혀 흔들리지 않았다.
“그렇다면 무림맹에 혈교의 세작이 숨어 있다는 뜻일 겁니다. 아니면, 무림맹의 누군가가 혈교와 내통한 사실을 스승님에게 들켰을 수도 있지요.”
“…….”
“개방은 총력을 기울여 흉수를 찾을 것입니다.”
백수룡이 보기에도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타당했다.
하지만 한 가지 찝찝한 것이 있었다.
‘혈교가 이 상황까지 의도한 것이라면?’
자칫하면 무림맹과 개방의 관계가 틀어지거나, 최악의 경우에는 충돌할 수도 있었다.
눈이 뒤집힌 개방은 무림맹을 뒤집어서라도 흉수를 찾으려 할 것이고, 혈교를 찾는다고는 하나 개방의 들쑤심에 무림맹이 가만히 당해 줄 리도 없으니까.
‘무림맹이라…….’
그 안에 혈교의 쥐새끼가, 그것도 생사독을 익힌 놈이 숨어 있다면, 백수룡도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혹 무림맹에 없더라도, 쥐새끼는 분명 그 근처에서 기웃거리고 있을 테니까.
생각을 정리한 백수룡이 말했다.
“이번 일. 저한테 맡겨 주시지 않겠습니까?”
“예?”
그 순간, 왕발은 잠시 잊고 있던 사실을 떠올렸다.
백수룡은 무림맹 총사범이었다.
오단의 단주들과 동등한 지위이자, 무림맹 내에서 누구든 만날 수 있고 어디든 갈 수 있는 신분.
“제가 직접 흉수를 찾아보겠습니다. 그러니 개방은 아직 나서지 마십시오. 도움이 필요하면 따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어쩌시려고요?”
백수룡이 서늘하게 눈을 빛내며 말했다.
“쥐를 잡으려면 덫을 놔야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