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mber One Star Instructor Master Baek RAW novel - Chapter 311
310화. 신원보증인?
무림맹주 집무실.
자리에 앉자마자 추궁을 당할 것이란 백수룡의 예상과 달리, 맞은편의 멸사단주는 느긋한 표정이었다.
“차라도 한 잔 줄까? 아니면 술?”
“차 마시겠습니다.”
고개를 끄덕인 류설은 뒤따라 들어온 모용준을 바라봤다.
“들었지? 접객당에 가서 술 좀 받아 와.”
“제가 방금 차라고…….”
“이왕이면 비싼 거로.”
백수룡의 말은 깨끗이 무시당했다.
멸사단주 류설은 무림맹에서 알아주는 주당이었다. 그녀는 업무를 핑계 삼아 대낮부터 한잔할 생각에 입맛을 다셨다.
“맹주 영감이 귀한 손님 왔을 때만 꺼내는 거 있잖아. 삼백 년 묵은 하수오로 담근 거. 꼭 그걸로 달라고 해.”
“……나중에 맹주님이 돌아오셔서 확인해 보실 텐데요?”
모용준은 놀랍지도 않다는 얼굴로 한숨을 쉬었다.
둘만 있을 때는 이 새끼 저 새끼 하는 사이였지만, 지금은 손님이 있기에 류설에게 존대를 했다.
“누가 나 혼자 마신대? 손님이 왔잖아. 이건 접대라고. 맹주 대리 업무의 연장.”
“그딴 궤변을 늘어놓기엔, 총사범은 무림맹 소속입니다만…….”
“그럼 신임 총사범 축하주로 하자.”
“무림맹 정문을 부숴서 잡혀 온 사람한테 축하주는 조금…….”
쾅!
탁자를 내리친 류설이 하나뿐인 눈으로 부단주를 죽일 듯 노려봤다.
“자꾸 쫑알거릴래? 나보고 이 천금 같은 기회를 날리라고?”
“……알겠습니다.”
결국 모용준은 술을 가지러 밖으로 나갔다. 백수룡은 그가 “아오. 저 주정뱅이 X.”이라고 욕하는 것을 들었지만, 류설은 아무것도 못 들은 것처럼 생긋 웃었다.
백수룡을 바라보는 그녀의 눈이 개구쟁이처럼 빛났다.
“접객당에 맹주 영감이 꿍쳐 둔 귀한 술이 있거든. 이럴 때 아니면 언제 마셔 보겠어?”
“그럼 처음부터 그냥 술을 시키지, 저한테는 왜 물어본 겁니까?”
“난 동생이 풍류공자처럼 생겨서 술을 좋아하는 줄 알았지.”
“참나…….”
그때, 류설이 백수룡을 향해 몸을 기울이며 목소리를 낮췄다.
“있잖아, 나중에 맹주 영감이 물어보면 동생이 술을 먹겠다고 한 거로 하자. 그럼 나도 오늘 네가 사고 친 거 조금은 참작해 줄 테니까. 내 말 무슨 뜻인지 알지?”
그렇게 말하곤, 류설은 이 얘기는 둘만의 비밀이라며 하나밖에 없는 눈을 찡긋했다.
‘괴짜로군.’
특출난 고수들 중에 괴짜가 아닌 사람을 찾기가 더 힘들다지만, 멸사단주는 규율을 중시하는 무림맹에는 특히 어울리지 않는 성격으로 보였다.
그리고 이렇게 가까이에서 마주하니, 백수룡은 더욱 선명하게 느낄 수 있었다.
‘확실히 마공을 익혔어.’
아주 희미하지만, 백수룡은 멸사단주에게서 불길하고 끈적끈적한 기운을 느꼈다.
‘어떤 마공인지는 모르겠지만…….’
멸사단주에게 느껴지는 마공의 기운은 아주 희미했다.
전생에 수많은 마공을 섭렵한 백수룡도 이렇게 가까이서 마주하지 않았다면, 그리고 역천신공을 익히지 않았다면 눈치채기 힘들었을 것이다.
즉, 마음먹고 숨기면 오단의 단주들도 속일 수 있었다는 뜻.
이 사실만으로도 멸사단주는 유력한 용의자였다.
‘하지만……. 맹주를 속일 수 있을까?’
백수룡은 단순히 감만으로 자신과 혈교의 관계를 의심하던 맹주를 떠올렸다.
‘하루 이틀이라면 모를까. 십 년이 넘도록 속이는 건 불가능해.’
백수룡이 가까이에서 관찰하는 만큼, 류설도 하나뿐인 눈으로 백수룡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녀가 하얀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뭘 그렇게 빤히 봐? 아직 술 한 잔도 안 했는데, 벌써 내 미모에 취했니?”
단순한 농담에 불과했지만, 실제로도 멸사단주 류설은 아름다웠다.
왼쪽 눈을 가린 안대마저도 이색적인 매력으로 느껴질 정도였다.
하지만 백수룡은 그녀에게서 이성으로서의 호감을 느끼지 못했다.
오히려 굉장히 위험한 짐승처럼 느껴졌다.
‘장난기 가득한 이 모습이 과연 진짜일까, 아니면…….’
백수룡은 그녀의 말투, 행동, 지금까지 나눈 대화 내용을 모두 머릿속에서 다시금 떠올렸다.
아직 아무것도 확신할 수 없다.
하지만 분명하게 알 수 있는 것은, 멸사단주 류설은 지금 백수룡이 어떤 인간인지 가늠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럴 리가요.”
그렇기에 백수룡도 속내를 드러내지 않으며 가식적으로 웃었다.
대답이 못마땅한지 류설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그 대답은 뭐야. 내 외모가 별로라는 얘긴가?”
“나쁘진 않은데. 제 취향은 아닙니다.”
“후배 주제에 되바라진 것 봐라? 너 사회생활 그렇게 하면 앞으로 힘들어진다?”
“선배도 딱히 사회생활을 잘했을 것 같진 않은데요?”
피식.
“너, 재밌다.”
피식.
“그런 말, 종종 듣습니다.”
두 사람은 닮은 미소로 서로를 바라보며 웃었다.
백수룡은 의천단주와 대치하던 순간보다, 멸사단주와 편하게 마주 앉은 지금 이 순간에 훨씬 더 큰 긴장감을 느꼈다.
“멸사단주님.”
“그냥 선배라고 불러.”
“선배. 뭐 하나만 물어봐도 됩니까?”
류설은 의자에 몸을 편하게 기대며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술이 올 때까진 사담이나 나누지. 밖에서 있었던 일을 추궁하는 건, 어차피 부단주한테 시킬 생각이었거든.”
본인에게 허락도 받았겠다. 백수룡은 과감하게 선수를 쳤다.
“마공은 어쩌다 익혔습니까?”
“……!!”
류설은 소스라치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지만, 갑자기 백수룡을 공격하거나 살기를 드러내지는 않았다.
그 반응에 백수룡은 확신했다.
‘역시. 맹주는 알고 있었군.’
다른 사람이라면 모를까.
혈교를 그토록 증오하는 맹주가 사파의 무공을 못 알아볼 리 없었다.
즉, 멸사단주는 맹주의 용인하에 마공을 익혔다는 말인데……. 그것도 이상하긴 마찬가지였다.
류설이 멍한 표정으로 물었다.
“……설마 맹주 영감이 나에 대해서 말했어?”
“아니요. 그냥 제 기감이 남들보다 예민한 편입니다.”
“말도 안 돼. 소림 무공을 익혔다는 의천단주도 지금까지 못 알아봤는데…….”
백수룡은 개방의 인명록에 적혀 있던 멸사단주 류설에 대한 정보를 떠올렸다.
멸사단주 류설.
약 이십 년 전, 변방에서 패악을 부리던 사파의 마라(魔羅)문을 멸문시키고 구해 낸 아이.
당시 함께 구출한 아이들은 모두 부모를 찾아 주었으나, 류설과 일부 아이들은 마라문에 의해 부모가 살해당해서 오갈 데가 없어진 상황이었다.
맹주는 그 아이들을 모두 무림맹으로 데려와 입맹시켰다.
류설은 그중에서도 군계일학의 재능을 발휘했다.
무공을 익힌 지 고작 삼 년 만에 멸사단 소속이 되었고, 십 년 후에는 멸사단주가 되었다.
‘하지만 어디에도 멸사단주가 마공을 익혔다는 말은 없었어.’
엄청난 비밀을 들켰는데도 불구하고, 류설은 잠시 허탈한 표정을 짓더니, 이내 피식피식 웃기 시작했다.
“맞아. 난 마공을 익혔어. 그것도 아주 지독하고 무시무시한 마공을 익혔지.”
마침 방으로 돌아온 모용준이 그 말을 들었다.
“류설!”
문을 부술 듯이 열고 들어온 모용준의 표정은 무섭게 일그러져 있었다. 그를 본 류설이 어깨를 으쓱했다.
“화내지 마. 이 녀석이 먼저 눈치챘다고.”
“……정말입니까?”
백수룡이 고개를 끄덕이자, 모용준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가 백수룡에게 애원 조로 말했다.
“이 사실은 맹주님과 저 외에는 아무도 모르는 비밀입니다. 만약 알려지면…….”
“나는 물론이고 맹주 영감까지 아주 많이 곤란해질걸?”
“멍청아! 남의 일처럼 말하지 마!”
“들킨 건 난데 왜 네가 더 지랄이야?”
류설은 모용준이 가져온 술을 병째로 들고 꿀꺽꿀꺽 마셨다. 해탈한 것 같기도 했다.
그 대신 모용준이 백수룡의 눈치를 보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총사범님. 멸사단이 무림맹에서 어떤 위치인지는 알고 계십니까?”
“어느 정도는.”
멸사단은 무림맹 내에서도 천덕꾸러기 집단이었다.
출신부터 그랬다.
멸사단에는 중소문파, 낭인, 심지어 전직 사파였다가 투항한 무인들도 뒤섞여 있었다.
하지만 단주가 마공을 익힌 것은 차원이 다른 문제였다.
‘맹주가 이 사실을 알고도 묵과한 게 알려진다면, 무림맹주 자리도 위험하겠군.’
백수룡은 본의 아니게 맹주의 약점을 하나 알게 된 셈이었다.
하지만 궁금증이 다 해결된 것은 아니었다.
“어떻게 할지는 더 들어 보고 결정하겠습니다. 멸사단주. 왜 마공을 익힌 겁니까?”
한순간에 심문을 하는 사람과 받는 사람의 입장이 바뀌었다.
“이게 뭔…….”
류설은 황당함에 머리를 긁적이다가 이내 한숨을 푹 내쉬었다.
“간단히 말하면, 마라문주가 친부였어.”
“…….”
“이십 년 전에 맹주가 내 친부를 죽였고, 그 과정에서 내 한쪽 눈도 이렇게 됐지.”
류설은 왼쪽 눈의 안대를 손가락으로 만지작거렸다. 그러곤, 술병으로 입술을 축이면서 말을 이었다.
“맹주 영감이 나보고 선택하라고 하더라고. 여기서 아비랑 같이 죽던가, 아니면 자신을 따라 무림맹에 가던가. 별 수 있어? 살려면 시키는 대로 해야지.”
그 이야기를 들은 백수룡의 감상은 간단했다.
‘둘 다 미쳤군.’
자기가 죽인 악인의 딸을 무림맹으로 데려온 맹주나, 친부를 죽인 원수를 따라온 류설이나. 둘 다 정상은 아니었다.
“마공을 폐기할 수는 없었습니까?”
“이미 몸 안에 자리 잡은 후였어. 없애려면 단전을 박살 내야 되는데, 그럴 바엔 차라리 죽는 게 나아. 어쩔 수 없이 다른 무공과 함께 조심조심 꾸준히 연마했지. 아, 후배가 생각하는 그런 마공은 아니야. 사람 피를 마시거나 생살을 뜯진 않거든.”
옆에서 조마조마한 표정으로 듣고 있던 모용준이 단주의 머리를 쥐어박았다.
“넌 이 상황에서 그걸 농담이라고 하냐?”
“그럼 잘못했다고 싹싹 빌까?”
류설은 코웃음을 치더니, 백수룡을 향해 눈을 찡긋해 보였다.
“이렇게까지 말했는데. 비밀 지켜 줄 거지?”
“……일단은 알겠습니다.”
백수룡은 마지 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멸사단주에 대한 의심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그녀에게 맹주에 대한 오래된 증오가 마음속 깊이 남아 있다면?
‘무림맹을 배신할 동기는 차고 넘쳐.’
멸사단주가 익힌 마공에 대한 의문은 해결됐다. 하지만 이건 혈교와 관련된 증거는 아니었다.
결국 유력한 용의자인 것은 변함이 없었다.
“주절주절 내 얘기만 했네. 이제 후배 얘기도 좀 해 봐.”
술병을 내려놓은 류설이 자세를 바로 하고 앉으며 물었다.
“대체 출근 첫날부터 거하게 일을 저지른 이유가 뭐야? 정문은 왜 부쉈어?”
무림맹에 숨어 있는 혈교의 쥐새끼를 찾기 위해서.
-라고 솔직하게 말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백수룡은 미리 생각해 둔 이유를 말했다.
“오랜 평화에 익숙해진 무림맹에 경각심을 일깨우기 위해서였습니다. 겸사겸사 무인들의 훈련 상태를 파악하고, 문제점을 파악하기 위해서였죠.
“문제점?”
“문제가 꽤 많더군요.”
류설이 얼굴을 찌푸렸다. 모용준도 인정할 수 없다는 듯 눈썹을 꿈틀거렸다.
“뭐가 문제였는데? 난 우리 애들 대처가 꽤 좋았다고 생각하는데?”
류설은 멸사단을 엄격하게 훈련시키기로 유명했다.
그건 의천단을 비롯한 다른 오단도 마찬가지였다.
서로 경쟁하듯 훈련한 덕분에, 지금의 무림맹은 최강의 힘을 보유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고?
“대응이 빠르긴 했지만, 우르르 몰려오는 모습이 좋지만은 않았습니다. 그곳에 독이라도 살포했다면, 그대로 수십 명은 중독됐을걸요.”
백수룡은 일부러 ‘독’이라는 말을 사용했다.
그러나 그가 기대했던 반응은 돌아오지 않았다.
오히려 류설은 고개를 주억거리며 생각에 잠겼다.
“독이라……. 하긴, 그럴 수도 있었겠네.”
“뿐만 아니라, 의천단과 멸사단이 완전히 따로 놀았습니다.”
“그야 우린 공동훈련을 안 하니까.”
“총사범이 해야 할 일이 많겠군요.”
백수룡의 낮은 한숨에, 류설이 킥킥 웃었다.
“어쨌든 의도는 좋았다고 해도, 네 행동은 분명한 잘못이야. 미안하지만 이대로 그냥 넘어갈 수는 없어. 그러니까……. 얘 어떻게 해야 돼?”
류설이 돌아보며 묻자, 모용준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일단 좀 알아보긴 했는데…….”
모용준은 백수룡의 눈치를 봤다.
류설의 비밀을 들킨 이상, 대하기가 전보다 더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언제까지 말하지 않을 수는 없었다.
“……단주급 이상의 지위를 가진 자가 문제를 일으킨 경우, 정식으로 징벌위원회를 소집해 그 처벌을 결정합니다.”
“그렇다는데?”
징벌위원회가 열리면 출석이 가능한 무림맹 간부들이 모두 소집되는데, 적어도 사나흘은 소요된다.
“사나흘? 그 전까지는 어쩌고?”
“원칙적으로는 숙소에 억류해 못 나오게 해야 하는데…….”
과연 가능할까?
모용준은 회의적인 입장이었고, 류설도 거기에 동의했다.
그런데 그때, 백수룡이 기다렸다는 듯 말했다.
“신원보증인이 있으면, 신체 일부를 구속한다는 조건 하에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다는 조항이 있습니다.”
“……신원보증인? 그런 건 또 어떻게 알아?”
어떻게 알긴.
무림맹 정문을 부수기 전부터 미리 다 알아봤으니까 알지.
백수룡은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오기 전에 공부 좀 했습니다.”
“신원보증인이라……. 동생한테 신원을 보증해 줄 사람이 있을까?”
웬만한 신분으로는 안 된다.
청룡신협이 도망갔을 때 책임질 수 있는 사람이어야, 지금쯤 자기 집무실에서 이를 갈고 있을 의천단주도 납득할 것이다.
류설의 머릿속에는 마땅히 떠오르는 사람이 없었다.
‘내가 해 줄 수도 없는 노릇이고…….’
류설은 굳이 이런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백수룡에겐 이미 점찍어 둔 사람이 있었으니까.
“남궁세가의 직계 정도면 어떻습니까?”
“……남궁세가?”
“뇌룡신검이라고. 가주의 셋째 아들이고, 최근 명성이 치솟고 있는 녀석인데. 마침 가까운 곳에 있거든요.”
백수룡이 무림맹 정문을 부수고 들어온 두 번째 이유.
바로 유능한 조수를 무림맹으로 불러들이기 위해서였다.
그 시각, 남궁수는 알 수 없는 오한에 몸을 떨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