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mber One Star Instructor Master Baek RAW novel - Chapter 319
318화. 당신이 아니면 누가
‘계산 착오다. 그것도 치명적인.’
독마는 이를 악물며 경공을 펼쳤다. 귓가에 바람 찢어지는 소리가 스치고, 땅을 박찰 때마다 주변 배경이 휙휙 바뀌었다.
“청룡신협……!”
독마는 분노를 짓씹으며 원수의 별호를 한 자 한 자 내뱉었다.
놈에게 당한 상처가 화끈거렸다.
쓸모없는 제자를 방패 삼아 막긴 했지만, 예리한 검날이 시체를 꿰뚫고 독마의 가슴에 반 치가량 들어왔다.
……검이 조금만 더 깊었어도 심장을 파고들었을 터.
독마는 분노와 동시에 등골이 오싹한 두려움을 느꼈다.
‘대체 어떻게?’
혈교의 육장로인 자신이 제자들과 함께 만독진을 펼쳤다.
아무리 청룡신협의 두 팔이 자유롭고 내공의 금제가 없었다곤 해도, 결코 져서는 안 되는 싸움이었다.
하지만 결과는 정반대였다.
‘놈은 만독진을 알고 있었다. 단순히 아는 정도가 아니라, 직접 펼치라고 해도 할 수 있을 정도로 이해도가 높았어.’
청룡신협은 진법의 약한 부분을 알고 있었다. 최소의 힘으로 맞물린 톱니바퀴를 하나씩 제거했다.
독마가 미처 대응하기 전에 진법을 와르르 무너뜨렸다.
‘진법만 파훼당한 것이 아니다.’
청룡신협과 일대일로 맞붙었을 때 느낀 것이 있었다.
사실 이게 더 큰 문제일 수도 있었다.
독마가 이마에서 식은땀을 흘리며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내 초식을 미리 읽고 대응했지. 마치 예전에 상대해 본 것처럼…….”
제자들이 보태 준 공력으로도 청룡신협을 압도하지 못한 이유.
독이 거의 안 통하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청룡신협이 초식을 대부분 미리 읽고 대응했기 때문이었다.
뇌룡신검의 방해로 제자들이 몰살당한 순간, 독마는 미련 없이 도주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거기서 더 싸웠다간 일각도 못 버티고 목이 날아갔을 것이다.
터엉-!
독마는 발바닥의 용천혈에서 내공을 폭발시키며 땅을 박찼다. 전속력으로 경공을 펼쳤다.
‘반드시 알려야 한다!’
모든 것이 의문투성이지만, 한 가지는 확신할 수 있었다.
놈은, 청룡신협 백수룡은 독마가 아는 어떤 독보다 위험하다.
‘알려진 것보다 훨씬 더 위험한 인물이다. 본교가 대계를 이루는 데 가장 큰 방해물이 될 것이 틀림없을 터.’
독마는 싸우다 죽는 것은 두렵지 않았다.
하지만, 아무것도 이루지 못하고 개죽음을 당하는 것은 두려웠다.
이런 곳에서 허무하게 죽는다면, 혈교의 영광을 위해 수십 년을 인내해 온 자신의 인생에는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아직 쫓아오는 기척은 없다.’
독마는 뒤쫓는 기척이 없다는 사실에 조금 안도했다.
뇌룡신검 때문일 것이다.
생사독에도 끄떡없는 청룡신협과 달리, 뇌룡신검은 확실히 중독 증상을 보였으니까.
둘의 관계가 밀접해 보였으니, 해독을 우선시할 터.
‘얼마나 시간을 벌어 줄지는 모르지만…….’
서둘러 무한을 벗어나야 한다.
무림맹에서의 계획을 모두 폐기하더라도 교로 돌아갈 생각이었다.
가서 청룡신협의 위험성에 대해 경고하고, 무림맹주보다 더 높은 일 순위 척살 대상으로 지정해 죽여야 한다.
어느새 도심에서 멀리 벗어났다. 야산에 들어선 독마가 안도의 한숨을 내쉴 때였다.
“주변이 한적하니, 이쯤에서 멈추면 될 것 같은데.”
“……!!”
뒤에서 목소리가 들려온 순간, 독마는 몸을 홱 돌리며 독장을 넓게 뿌렸다. 암녹색의 기류가 허공을 물들였다.
퍼버버벙!
독장이 넓은 범위로 폭발하며 사방으로 맹독이 튀었다.
상대를 죽이기보다는 시간을 벌기 위한 수법.
하지만 백수룡은 독장을 맨몸으로 뚫고 나왔다. 무식하지만 확실한 방법이었다.
“독이 안 통한다는 건 이미 알고 있을 텐데?”
독장을 뚫고 나온 백수룡을 본 순간, 독마는 도망치는 것도 잊고 제자리에 멈춰 섰다. 그의 눈이 경악으로 부릅떠졌다.
“헉……!”
“다른 놈은 더 없나 보네. 혹시 함정인가 싶어서 주변을 살피면서 왔는데.”
피를 뒤집어쓴 것처럼 새빨간 눈동자와 선연한 적발.
저토록 패도적인 기운을 뿜어내는 무공은 천하에 오직 하나뿐이었다.
독마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부르짖었다.
“역천신공!”
저토록 완성도가 높은 역천신공이라니!
독마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의미의 두려움으로 몸이 떨려오는 것을 주체할 수 없었다.
백수룡은 그 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만나는 놈마다 똑같은 반응이군. 이번에도 한번 속여 볼까?’
남궁세가에서 백수룡에게 죽은 혈령자는 백수룡을 혈마라고 오해했고.
백수룡은 그 오해를 이용해 혈령자에게 여러 가지 정보를 캐낸 적이 있었다.
그 당시를 떠올린 백수룡은 또 한 번 연기를 하기로 마음먹었다.
푸화아악!
적발이 하늘로 솟구치며 무시무시한 기세가 사방으로 뻗쳐 나갔다. 혈마안은 지옥의 업화를 담아낸 것처럼 타올랐다.
쿵!
백수룡이 강하게 발을 구르며 위엄을 드러내자, 독마가 반사적으로 무릎을 반쯤 꿇었다.
“건방지구나. 본좌 앞에서 언제까지 무릎을 펴고 있을 셈이냐?”
“……당신께서, 교주님이란, 말입니까?”
“허면, 본좌가 아닌 다른 자가 역천신공을 익히기라도 한단 말이냐?”
그 순간, 독마가 갑자기 실성한 것처럼 웃음을 흘렸다.
“크흐흐, 크흐흐흐…….”
“뭐가 웃기지?”
콰직! 독마는 혀를 깨물고 핏물을 삼키며 역천신공의 기운에 저항했다.
본능적으로 굽혀진 무릎을 억지로 펴고, 청룡신협을 똑바로 노려보며 일어났다.
그의 눈에 스산한 살기가 맴돌았다.
“놀랍군. 본교 출신이 아닌 자가 역천신공을 익혔을 줄이야.”
“……들켰네.”
중간에 뭔가 말실수가 있었던 모양인지, 독마는 백수룡이 혈마가 아니라는 사실을 눈치챘다.
그러나 백수룡은 오히려 눈을 빛냈다.
“눈치를 보니, 너는 혈령자보다 아는 게 많은 모양인데.”
“장로라는 허울만 가진 놈과 나를 비교하다니. 불쾌하구나.”
그러다 불현듯, 무언가를 떠올린 독마가 입을 열었다.
“……그렇군. 오장로의 말이 사실이었어.”
“오장로?”
“남궁세가에서 만나 보지 않았나. 흑야마제 말이다.”
“…….”
백수룡은 미간을 찌푸렸다.
그는 창천검왕의 배에 검을 쑤셔 넣던 흑야마제의 광기 어린 얼굴을 떠올렸다.
-……이건 말이 안 돼. 이럴 수가 없는데……. 내가 모르는 후보가 있다고?
지금까지 그가 직접 만나 본 고수 중에서도 가장 끔찍했던 존재.
두 번 다시 만나고 싶지 않은 종류의 인간이었다.
‘그래. 놈이 있었지.’
혈교 본단으로 돌아간 흑야마제가 자신에 대해서 알린 모양이었다.
“……흑야마제가 그러더군. 자신을 방해한 복면인이 역천신공을 익히고 있었다고, 그때는 자신의 책임을 면피하기 위해 한 헛소리인 줄 알았거늘……. 설마 그게 청룡신협이었을 줄이야.”
“처음부터 그럴 생각이었지만, 넌 살려 보내면 안 되겠다.”
“피차 당연한 이야기를.”
괴소를 흘린 독마가 수십 년간 몸 안에 쌓아 둔 생사독을 마지막 한 방울까지 끌어냈다.
그것도 부족해 생명력의 근원인 진원진기까지 불태웠다.
콰콰콰콰콰콰!
독마의 몸에서 암녹색을 넘어, 찐득하고 시커먼 독이 흘러나와 기파에 뒤섞였다.
‘목숨을 걸었군.’
역천신공에 대항하기 위해서는 다른 방도가 없었을 것이다.
모든 혈교 무공의 정점이 바로 역천신공이니까.
독마의 각오를 확인한 백수룡도 방심하지 않았다. 그 역시 전력을 끌어올렸다.
콰콰콰콰콰콰!
커다란 소용돌이가 백수룡과 독마를 둘러쌌다.
폭풍과 폭풍이 부딪쳤다. 짙은 암녹색의 기류와, 피처럼 붉은 기류가 만나 용오름이 되어 하늘로 치솟았다.
콰아아아아-!
맹렬한 바람에 일대의 흙이며 돌, 잎사귀와 나뭇가지들이 모두 휩쓸려 사방으로 솟구쳤다. 바위가 흔들리고, 수백 년 묵은 고목마저 위태롭게 휘청였다.
쩌어어어엉! 쩌어엉!
용오름의 안에서 연신 천둥이 울렸다. 검강과 독강이 맹렬하게 부딪쳤다. 충격의 여파가 대기를 찢어발기고, 땅에 끔찍한 흉터를 남겼다.
치이이익…….
일대의 풀이 모조리 썩어 문드러졌다. 지독한 독기에 벌레 한 마리도 살아남지 못했다. 푸르렀던 땅은 순식간에 그 어떤 것도 자랄 수 없는 불모지로 변했다.
두 사람이 펼쳐 낸 공격이 수십, 수백 줄기로 얽혔다. 찰나에 수십 가지의 초식을 교환하는 수준이었다.
그렇게 양쪽 다 전력을 다한 만큼, 승패를 가리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콰콰콰콰……!
용권풍이 서서히 가라앉더니, 두 사람의 모습이 드러났다.
그 일대는 벽력탄이라도 맞은 듯 초토화되어 있었다.
“……놀랍군.”
털썩.
배에 주먹만 한 구멍이 뚫린 독마가 무릎을 꿇었다.
그는 힘겹게 고개를 들어 백수룡을 올려다봤다.
“……이 정도로 완성된 역천신공이라니. 내 많은 후보들을 봤지만, 본 적이 없는 경지야.”
백수룡의 적발적안이 서서히 원래대로 돌아왔다.
스스슷…….
그는 이젠 거의 넝마나 다름없는 무복에 묻은 독기를 털어 내고, 입가의 피를 손등으로 대충 슥슥 닦아 냈다.
백수룡이 굳은 표정으로 물었다.
“전에도 후보라는 말을 들어 본 적이 있다. 너희들 설마, 여러 교주 후보들에게 역천신공을 익히게 하고 경쟁시키는 중인가?”
독마는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백수룡을 살피는 그의 표정에 경탄이 어렸다.
“짐작하는 바가 맞소. 하지만 그중에 누구도 당신 같은 수준에는 이르지 못했지요. 대부분은 신공을 감당하지 못하고 죽어 버렸습니다.”
독마의 눈에서 생기가 빠르게 옅어지고 있었다.
그런데 그의 표정과 말투가 묘했다.
백수룡은 그게 죽음을 앞둔 탓이라고 여겼다.
“청룡신협. 혈마가 되어 주십시오.”
“……무슨 개소리지?”
“자격은 충분합니다.”
독마는, 죽기 전에 평생을 혈교도로 살아온 자신의 인생에 의미를 부여하고 싶었다.
‘개죽음이 아니다. 이것은 순교(殉敎)다. 이 목숨 하나로 혈마지존께 간언할 수 있다면…….’
다 죽어가는 독마의 눈에 광기가 차올랐다.
회광반조 현상이었다. 그의 목소리에 힘이 실렸다.
“당신이 아니라면 누가 혈마의 자격이 있단 말입니까? 그 강함, 적을 농락하는 두뇌, 간사한 혀, 단호함까지. 내가 본 후보들 중에 가장 혈마에 어울리는 인물이 당신입니다.”
백수룡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미쳤군. 내 손에 죽은 장로만 너까지 둘이야.”
“어째서 본교를 적대하는지는 모르겠으나, 사도들도 당신을 보면 생각이 바뀔 것입니다. 이토록 뛰어난 자질을 지닌 후보라니! 그대라면 본교의 숙원을…….”
퍼억!
백수룡은 독마의 가슴을 걷어찼다. 독마가 피를 뿜으며 뒤로 쓰러졌다.
“닥치고 혈교 본단의 위치나 말해. 어디에 있는지 알지?”
“……알려 드릴 수 없습니다. 당신의 마음엔 아직 본교에 대한 증오가 가득하니……. 대신 이것을 드리지요.”
독마는 몸 안에 남아 있는 독과 진원진기를 모조리 끌어올렸다.
가장 마지막까지 남아 있었던 만큼, 가장 순수한 기운이었다. 그것을 뭉쳐 내단으로 빚었다.
파아앗-!
잠시 후, 독마의 손바닥 위에 손가락 한 마디만 한 크기의 구슬이 생겨났다.
“……사용하기에 따라 만 명을 죽일 독이 될 수도 있고, 독공을 익히는 자에게는 절세의 영약이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뭐 하자는 건데?”
“운명이 당신을 찾아올 것입니다.”
독마의 입가에 흐릿한 미소가 맺혔다.
“……혈마지존이여. 저를 기억해 주십시오.”
그의 눈에는 백수룡이 무림을 정복한 혈마의 모습으로 보였다. 그의 옆이 자신의 자리였다.
‘되었다. 이것으로 되었어…….’
독마가 눈을 감자, 그의 몸이 스스로 녹아내려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제대로 된 광신도였군.”
백수룡은 독마가 남긴 독정을 주워들었다.
완벽하게 정제된 것인지, 들고 있어도 독기를 내뿜거나 하지는 않았다. 어떻게 사용할지는 아직 생각하지 않았다. 일단 품속에 넣었다.
“후우…….”
백수룡은 길게 한숨을 쉬었다.
진원진기까지 끌어올린 혈교의 장로와 사투를 벌였다.
그 역시 멀쩡할 리가 없었다. 온몸이 삐걱거렸다. 내상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쉬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류설은 저쪽인가.”
백수룡은 거센 기파가 충돌하는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이곳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