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mber One Star Instructor Master Baek RAW novel - Chapter 32
31화. 여깁니다!
“음주 단속이라고?”
팽사혁은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청천을 바라봤다.
마치 재미없는 농담이라도 들었다는 것처럼.
하지만 청천은 세상 진지한 얼굴로 엉망진창이 된 객잔 안을 둘러볼 뿐이었다.
눈살을 찌푸린 청천이 학생들을 향해 말했다.
“확실히 음주의 흔적이 있군요. 다들 호패를 제출해 주시기 바랍니다.”
열여덟 이하의 청소년은 보호자가 동석했을 때를 제외하고는 법으로 음주가 금지되어 있었다.
하지만.
“지금 장난하는 것도 아니고…….”
여기 있는 청룡학관 학생들은 일반인이 아니라 무림인이었다.
걸음마를 떼는 순간 칼을 쥐는 법부터 배우는 아이들.
일반적인 법은 무림인에게 통용되지 않는 것이 ‘암묵적인 관례’였다.
소위 말하는 관무불가침이란 것이다.
“포두님. 이건 무림의 일입니다. 관아에서 참견할 일이 아닙니다.”
팽사혁이 앞으로 나서며 그 부분을 짚고 넘어갔다.
녀석은 청천을 기세로 압박하려는 듯 은근슬쩍 내공까지 끌어올렸지만, 청천의 표정에는 미동조차 없었다.
‘팽가 애송아. 그 녀석이 무려 마공을 익힌 포두다.’
웬만한 포두라면 팽사혁 정도 되는 덩치의 칼 찬 무림인이 다가오면 겁을 먹겠지만, 청천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이야기였다.
오히려 청천은 코웃음을 쳤다.
“무림의 일이라……. 이곳에 마공을 익힌 무림 공적이라도 나타났습니까?”
“예?”
멍청하게 되묻는 팽사혁에게, 청천이 싸늘하게 되물었다.
“제 눈에는 부서진 탁자와 의자, 술에 취하고 폭행의 흔적이 있는 청소년들, 그리고 이유는 모르겠지만 겁에 질려 있는 어른들만 보입니다. 이중 수배된 범죄자는 보이지 않는데, 여러분은 무림의 일로 이곳에서 무엇을 하고 계셨는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그게 아니라…….”
“아니면, 설마 ‘무림’이라는 말만 붙이면 당신들이 무슨 행동을 해도 용납이 되는 겁니까?”
“…….”
관무불가침을 들먹이며 상황을 무마하려던 팽사혁의 말문이 턱 하고 막혔다.
정파를 표방하는 오대세가의 후계자로서, 어린놈들이 술 처먹고 놀고 있는 것을 ‘무림의 일’이라고 말할 수는 없을 테니까.
청천이 무표정한 얼굴로 부서진 의자의 잔해를 들어 올리며 말했다.
“이곳은 손님을 상대로 장사를 하는 객잔입니다. 미성년자 음주 단속 신고를 받아 왔습니다만…… 업무방해, 재물손괴 혐의가 추가될 것 같군요. 게다가 폭행의 흔적들도 보이고. 조사할 것이 많아 보이는데.”
뿌득.
팽사혁이 이를 갈며 물었다.
“누가 신고를 했습니까?”
“그건 알려 드릴 수…….”
“전데요.”
내가 번쩍 손을 들고 말하자, 팽사혁이 고개를 홱 돌려 나를 죽일 듯이 노려봤다.
[관을 끌어들여? 무림인이라는 자가 자존심도 없나?]귓가를 파고드는 사나운 전음.
나는 피식 웃으며 어깨를 으쓱였다.
그리고 입 모양만으로 팽사혁에게 말했다.
‘어쩌라고?’
“!!”
충분히 알아들었는지, 팽사혁이 성난 멧돼지처럼 어깨를 들썩였다.
하지만 더 이상 함부로 날뛰지는 못했다.
지금은 당장 나보다, 무림인 음주 단속이라는 초유의 상황에 입장이 퍽 곤란해질 참이었으니까.
“함께 관아에 가서 조사에 응해 주시겠습니까?”
“……흥에 취해 작은 사고가 있었습니다만 별일 아닙니다. 기물에 대한 배상이라면 모두 두 배로 내겠습니다. 또한…….”
팽사혁은 이 상황을 수습하고자 청천에게 변명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녀석은 예비 신입 강사들의 약점을 잡아 훗날 자신의 수족처럼 부리려고 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우리끼리 있을 때의 이야기.
‘관아에서 조사라도 받았다가 오늘 일이 알려지면…… 망신 정도로는 안 끝나겠지.’
명예와 체면.
정파에서는 때때로 그것이 전부일 때가 있었다.
특히 명문일수록 그런 경향이 컸다.
관아에 끌려가서 문제아로 낙인이라도 찍혔다간, 가문의 어른들에게 혼나는 것 정도로는 끝나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까 팽사혁은 절대로 관아에 가지 않으려고 할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포두님께서 오늘 일을 배려해 주시면, 훗날 성심성의껏 보은하겠습니다.”
정중하게 포권을 취하며 은근히 뇌물을 찔러 주겠다는 말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우리 청천이 어떤 포두인가.
마공을 익혀 아비를 죽인 냉혹하고 무자비한 인간이자, 돈에는 관심 없는 청렴결백한 공무원이었다.
어째 앞뒤가 안 맞는 설명인 것 같긴 하지만 아무튼.
“뭐라?”
청천의 눈썹이 크게 꿈틀거렸다. 그리고 한층 싸늘해진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뇌물 증여, 공무 방해 혐의를 추가해야 할 것 같군.”
“끙…….”
그 단호한 태도에, 팽사혁의 얼굴이 내게 따귀를 맞았을 때보다 더 붉게 달아올랐다.
살면서도 어디서도 이런 취급을 받아 보지 못했을 테니까.
결국 팽사혁은 구차함의 끝을 보여 주었다.
“……포두님. 저, 하북팽가의 팽사혁입니다.”
“그러십니까. 신원은 호패를 통해 확인해 볼 테니 서둘러 제출해 주십시오.”
“풉…….”
나는 터져 나오려는 웃음을 꾹 참으며 청천을 바라봤다.
우리의 눈이 마주쳤지만, 청천도 나도 당연히 서로 아는 척은 하지 않았다.
‘연기가 더 늘었는데?’
과거의 청천이 억지로 무표정을 연기했다면, 지금의 청천은 바늘로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올 것 같은 자연스러운 모습이었다.
게다가 기도도 훨씬 안정돼 있었다.
‘알려 준 방법으로 운공을 했나 보군.’
내가 알려 준 제대로 된 혈우마공의 구결로 부작용이 완화된 덕분일 것이다.
청천은 팽사혁과 그 뒤에서 팽사혁의 눈치를 보며 어정쩡하게 서 있는 학생들을 눈으로 죽 둘러보며 말했다.
“아직 호패를 제출하는 분이 없군요. 이건 관에 대한 도전으로 봐도 되겠습니까?”
“포두님. 끝까지 이러실 겁니까?”
“아직 아무것도 시작하지 않았습니다만.”
“…….”
절대로 물러날 생각이 없는 청천과 절대로 관아에 갈 생각이 없는 팽사혁.
결국 먼저 태세를 전환한 것은 팽사혁이었다.
“모두가 관아에 갈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문제를 일으킨 사람만 데려가면 되지요. 저희 중에 마공을 익힌 마두는 없습니다만…….”
녀석이 그러면서 손가락으로 나를 가리키며 말했다.
“저자가 술에 취해 학관의 여학생에게 파렴치한 짓을 했습니다. 그걸 말리던 다른 학생들까지 폭행했습니다. 싸움을 말리면서 탁자가 부서지고 이 난리가 난 겁니다.”
팽사혁은 고개를 돌려서 학생들, 그리고 예비 강사들에게 무언의 압박을 주며 말했다.
“여러분 모두가 보셨을 겁니다. 안 그렇습니까?”
“마, 맞습니다.”
“소가주님 말 그대로입니다.”
학생들과 일부 예비 강사들이 팽사혁의 말에 동조하고 나섰고, 나머지도 고개를 끄덕이거나 시선을 푹 숙여 암묵적으로 동의했다.
‘쯧쯧.’
나는 그 꼴을 가만히 지켜보다가 청천을 바라봤다.
당연히 청천이 그 말을 믿을 리 없었다.
설령 내가 진짜 그랬다고 해도 청천은 내 편을 들 것이다.
‘멍청한 놈. 스스로 일을 키우는군.’
나는 혀를 차며 팽사혁을 바라봤다.
잘못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사과한다면 적당히 넘어갈 생각도 있었다.
하지만 끝까지 이렇게 나온다면, 나도 참을 생각이 없었다.
‘내게 모든 죄를 뒤집어씌우고 빠져나갈 생각인 모양인데…… 하나하나 조목조목 반박해 주지.’
빠르게 생각을 정리한 내가 입을 열려고 할 때였다.
“이건 말도 안 되는 누명입니다.”
가만히 듣고만 있던 악연호가 앞으로 성큼 나섰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비장한 얼굴이었다.
“여학생들의 치마를 찢고 남학생들을 때린 것은 수룡 형님이 아니라 저기 있는 팽사혁입니다! 저 녀석이 함정을 파고 우리를 여기로 끌어들였습니다!”
“하. 어이가 없군. 내가 왜 그런 짓을 한단 말이오?”
“신입 강사들을 네 꼭두각시로 만들어 조종하려는 거겠지!”
“내가 왜? 하북팽가의 소가주인 내가 졸업 이후의 진로가 걱정돼서?”
“그, 그건……!”
순간 말문이 막힌 악연호.
보기보다 순진한 녀석이라, 팽사혁이 단순히 재미로 저런 짓을 할 거라는 생각은 못 하는 모양이었다.
‘애초에 저렇게 대응하면 안 되지.’
악연호처럼 감정적으로 상대에게 대응하면, 제삼자가 보기에는 억지를 쓰는 것처럼 보일 수밖에 없었다.
내가 악연호의 어깨를 잡아 뒤로 당기며 말했다.
“고맙지만 됐다. 내가 해결할 테니까 넌 가만히…….”
“아니요. 매번 형님한테만 맡길 순 없죠. 이 문제는 제가 해결할게요.”
“네 무공이 센 건 알지만, 이건 무력으로 해결될 게 아니야.”
“저도 알아요.”
자신만만하게 말한 악연호가 고개를 돌려 모두를 둘러봤다.
‘뭘 하려는 거지?’
흐읍- 숨을 들이쉰 악연호가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 입에서 나온 것은 나도 예상치 못한 비장의 무기였다.
“지금 제 말이 모두 진실임을, 산동악가의 이름을 걸고 맹세하겠습니다.”
“!!”
산동악가.
비록 전통과 역사 속에서 오대세가로 불려온 가문은 아니지만, 현재 산동악가의 이름은 하북팽가에게 절대 밀리지 않는다.
바로 십대고수 중 한 명인 창왕 악비가 가주이기 때문.
현재 산동악가의 세력과 영향력은 오대세가에 필적한다고 알려져 있었다.
악연호가 가문의 이름을 걸자, 팽사혁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미쳤군. 겨우 이딴 일에 가문의 이름을 건다고? 당신, 그게 무슨 의미인지는 알고 있나?”
“가문이 쌓아 온 명예와 역사를 모두 건다는 말이지.”
“그걸 알면서……!”
명예와 역사.
즉 이름을 건다는 것은, 그 발언을 한 사람이 누구냐에 따라 가문 전체가 전쟁에 나설 수도 있는 발언이었다.
“왜? 팽사혁, 너는 네 말에 책임질 자신이 없나?”
“……당신과 내 말은 무게가 달라.”
“겁먹었네. 그러니까 함부로 주둥이를 놀리지 말았어야지.”
“가문의 징계가 두렵지도 않나? 과거 헌원세가가 어떤 꼴을 당했는지 설마 모르진 않을 텐데.”
“여기선 내 목숨 하나면 어떻게든 될 것 같은데.”
“답이 없는 꼴통이었군.”
“어린 새끼가 왜 계속 반말이야? 존댓말 써, 이 새끼야.”
서로 무기만 뽑지 않았을 뿐, 팽사혁과 악연호는 서로를 죽일 듯이 노려보며 기 싸움을 벌였다.
“하여튼 무림인들이란…….”
그 모습을 지켜보던 청천이 긴 한숨을 쉬었다.
청천이 나를 힐끗 보더니 전음을 보냈다.
[어떻게 하는 게 좋겠나? 관아로 연행해? 아니면 이쯤에서 수습하고 돌아가?]청천이 못 이긴 척 물러나겠다고 하면, 팽사혁도 예비 강사 길들이기를 그만두고 물러날 것이다.
하지만 나는 팽사혁을 얌전히 보내 줄 마음이 없었다.
오늘 제대로 기를 죽여 놓지 않으면 계속 저럴 놈이다.
나는 입 모양만으로 청천에게 말했다.
‘기다려 봐.’
[언제까지?]빨리 역천신공을 3성까지 끌어올리든가 해야지, 전음 하나 못 쓰니 답답해 죽겠다.
모두의 시선이 팽사혁과 악연호에게 쏠린 틈에, 나는 작게 중얼거렸다.
“우리 할아버지가 올 때까지만.”
[할아버지?]아까 점소이를 보낼 때, 나는 청천에게만 소식을 전한 것이 아니었다.
휘이이이이잉~
어디선가 북풍한설과 같은 냉기가 불어오기 시작했다.
언제라도 출수할 듯 기세를 끌어올리던 악연호와 팽사혁이 움찔 몸을 떨었다.
둘의 고개가 같은 방향으로 돌아갔다.
“무슨…….”
“설마…….”
곧 기감에 예민한 다른 강사들과 학생들도 두 사람과 같은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저벅. 저벅.
폭풍우가 몰아쳐도 똑같을 것 같은 규칙적인 발걸음.
눈처럼 하얗게 센 머리카락과 그와 어울리는 짙은 옥색 도포.
문 너머에 멈춰선 노인이 자신의 앞을 가로막는 포졸에게 말했다.
“초대를 받아 왔소만……. 안에 무슨 일이라도 생겼소?”
포졸의 어깨너머로 보이는 얼굴.
그 얼굴을 본 학생 하나가 공포에 질려 중얼거렸다.
“하, 학주 떴다…….”
그 한마디에 뜨겁게 달아올랐던 객잔 안이 순식간에 차갑게 얼어붙었다.
동시에 나는 손을 번쩍 들고 외쳤다.
“할아버님! 여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