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mber One Star Instructor Master Baek RAW novel - Chapter 321
320화. 마지막까지 숨긴 것
“……그만 때리면 안 되냐? 슬슬 죽을 것 같은데.”
모용준이 퉁퉁 부은 얼굴로 말했다.
힘없이 주저앉은 그의 등 뒤로, 산산조각이 난 바위 파편들이 흩어져 있었다.
“정신 차렸으니까 이제 그만…….”
퍼억!
류설은 기어이 한 대를 더 때린 후에야 주먹질을 멈췄다. 그녀가 가쁜 숨을 몰아쉬며 물었다.
“후우. 이제야 제정신으로 돌아왔냐?”
“……빌어먹을. 어떻게 끝까지 한 번을 못 이기네.”
모용준이 툴툴대며 한숨을 쉬었다.
광기에 물들었던 눈빛이 침착하게 가라앉은 모습을 확인한 후, 류설은 비로소 완전히 주먹을 거뒀다.
하지만 모용준을 사납게 노려보는 눈빛은 여전했다.
“아오, 이 개새끼를 그냥!”
“……그냥 죽이지. 왜 쓸데없는 짓을 하고 그래?”
모용준은 안색이 파리한 류설을 바라보며 낮은 한숨을 쉬었다.
무리하게 공력을 끌어쓰고 마안(魔眼)까지 사용한 여파였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모용준은 피투성이가 된 자신의 몸이 묘하게 가뿐한 이유를 알고 있었다.
“추궁과혈을 이렇게 과격하게 하는 자식은 너밖에 없을 거다.”
“뭐래. 병신이. 열 받아서 화가 풀릴 때까지 팬 거거든?”
분에 넘치는 무공을 펼친 대가로, 모용준의 육체는 완전히 망가졌다. 기혈이 뒤틀리고 오장육부가 상했다.
‘지금 내 수준으로 무극광풍(無極狂風)을 펼치다니. 죽으려고 환장했던 거지.’
방금 전까지, 모용준은 정신은 주화입마에 완전히 잠식돼 있었다.
자신의 의지로 검을 휘두른 게 아니라, 검에게 휘둘렸다. 검에 영혼을 빼앗긴 광인이나 다름이 없었다.
모용준이 허탈하게 웃으며 류설을 올려봤다.
“고맙다. 미친놈으로 죽지 않게 해 줘서.”
“지랄…….”
류설이 구타를 가장한 추궁과혈로 전신의 기혈을 조금이나마 풀어주지 않았다면, 모용준은 이미 시체가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도 약간의 시간을 벌어주는 것이 한계였다.
류설이 퉁명스럽게 물었다.
“얼마나 버틸 수 있겠냐?”
“글쎄. 이 각쯤?”
모용준은 자신에게 남은 시간이 많지 않음을 알고 있었다. 그에게 직접 추궁과혈을 해 준 류설도 모를 리 없었다.
모용준은 곧 죽는다. 무리해서 익힌 신공의 기운이 멋대로 날뛰며 몸을 파괴하고 있었다. 피할 수 없는 운명이었다.
“…….”
“…….”
짧은 침묵이 흐른 후, 류설은 모용준 앞에 털썩 퍼져 앉으며 한숨을 쉬었다.
“나한테 뭐 할 말 없냐?”
“그 눈은 뭐야?”
“환영마안(幻影魔眼). 너 때문에 지금 대가리가 쪼개지는 기분이거든.”
류설은 머리가 지끈거리는지 왼쪽 관자놀이를 꾹꾹 눌렀다.
모용준은 그녀의 보석 같은 눈동자를 홀린 듯 바라봤다.
이런 얼굴이었구나. 안대를 푼 류설은.
“뭘 봐? 눈 안 깔아?”
“혹시 부끄럽냐?”
“이십 년 동안 한 번도 벗은 적 없는 속옷을 벗어재꼈다고 생각해 봐. 어떨 것 같냐?”
“냄새나겠지…….”
따악!
괜히 헛소리를 했다가 두들겨 맞은 모용준이 정수리를 감싸 쥐었다.
“뒈질 때가 되니까 무서운 게 없지?”
“끄응……. 맹주님은 네 눈에 대해서 알고?”
“어. 그 영감이 무조건 숨기라고 했어. 보다시피 그냥 마공도 아니고, 사술이 섞여 있거든.”
보랏빛으로 물든 류설의 눈동자는 보는 것만으로도 사람을 홀리게 만드는 기운을 내뿜고 있었다.
정파에서 이런 요사스러운 마안을 용납할 리 없었다.
“적어도 십존 정도는 되어야 당당하게 눈깔을 뜨고 다닐 수 있을 거라고 하더라.”
“……별로 안 멀지 않냐? 너라면…….”
모용준은 류설이 십존의 자리를 위협할 수 있는 고수라고 생각했다.
아니, 안대를 푼 류설이라면 지금도 충분히…….
그의 생각을 읽었는지 류설이 코웃음을 쳤다.
“등신아. 십존이 만만해 보여? 맹주는 그중에서도 괴물이야. 내가 지금까지 개겼다가 대가리 깨진 게 몇 번인데.”
“……전부터 궁금했는데, 너랑 청룡신협이 싸우면 누가 이길까?”
“다 죽어가는 새끼가 별게 다 궁금하네. 그거야 붙어 봐야 알지.”
두 사람은 시답잖은 이야기를 나누며, 모용준에게 남은 시간의 절반을 보냈다.
평소와 다를 바 없이 평범하게.
멸사단이 전장에서 동료를 보내 주는 방식이었다.
하지만.
“이제 말해.”
류설은 무림맹주 대리이자 멸사단주로서, 부단주의 배신을 이대로 덮을 수 없었다.
“왜 그랬어?”
“아까 다 말했잖아. 너한테 이기고 싶어서…….”
“내 눈 똑바로 봐.”
류설이 모용준의 멱살을 잡아 휙 끌어당겼다.
숨결이 닿을 듯 가까운 거리에서, 보랏빛 마안이 불타올랐다.
“사실대로 말해. 왜 맹을 배신했는지, 같이 온 놈 말고 혈교 잔당이 더 있는지, 나 모르게 무슨 짓을 했는지, 전부 다 말하라고.”
“…….”
모용준은 생각을 정리하는 듯 입술을 몇 번 달싹였다.
이윽고, 그가 입을 열었다.
“이 년 전 어느 날, 내 방에 서찰 하나가 놓여 있었어.”
서찰에는 아주 짧은 내용이 적혀 있었다.
「모용준. 너는 네가 가진 검의 재능을 썩히고 있다.」
처음에는 멸사단원 중 누군가의 장난이라고 생각하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런데 다음 날, 같은 필적의 서찰이 또 놓여 있었다.
「천하에서 가장 뛰어난 검법을 익힐 기회를 주마.」
비로소 뭔가 수상하다고 느낀 모용준은 서찰을 두고 간 자가 누군지 은밀히 조사했다.
류설에게는 굳이 알리지 않았다. 여전히 누군가의 장난일 가능성도 있었으니까.
조사에 별다른 성과는 없었다. 그리고 세 번째 서찰이 미완성된 비급과 함께 도착했다.
「이것은 너의 선조가 만든 천하제일의 검법이다.」
‘무극검(無極劍)’이라 적힌 비급.
앞장을 가볍게 몇 장 넘긴 후, 모용준은 깨달았다.
이건 자신을 위해 만들어진 무공이라는 걸.
정신없이 비급을 탐독하고 나니, 어느새 마지막 장을 읽고 있었다.
「다음 장을 읽고 싶다면 내일 아침, 창문을 열어 두도록.」
다음 날 아침, 모용준은 창문을 열어 둔 채 무림맹으로 출근했다.
그렇게 조금씩, 조금씩.
짐승에게 먹이를 주어 길들이듯, 혈교는 모용준에게 무극검의 구결을 조금씩 알려 주며 길들였다.
“엄청난 기연이라고 생각했어. 무림의 어느 고인이 내 뛰어난 자질을 보고 제자로 삼고 싶었을 수도 있잖아?”
“너 그렇게 순진한 놈 아니잖아.”
“그냥 그렇게 믿고 싶었던 거지.”
모용준의 표정이 점점 어두워졌다.
“……그자들이 혈교라는 걸 알았을 땐,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었어. 무극검 외엔 아무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거든.”
“넌 진짜 병신이야.”
“그래. 할 말 없다.”
모용준은 씁쓸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무인으로서 류설에게 열등감을 느낀 것은 사실이었다.
더 강해지고 싶었고, 뛰어넘고 싶었고, 인정받고 싶었다.
무극검을 익히면서 그런 감정들이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주화입마의 징조.
그 사실을 알면서도 모용준은 멈출 수 없었다.
“내가 아는 내통자는 독마와 그 제자들뿐이야. 놈들을 처리하면, 더 솎아낼 자들은 없을 거야.”
“…….”
“무림맹의 기밀 정보를 혈교에 넘겼어. 특히 최근에는 꽤 많이 넘겼지. 그리고…….”
다 말해 주고 싶었지만 시간이 부족했다.
모용준은 류설이 간신히 진정시켜 놓았던 기혈이 다시 뒤틀리는 것을 느꼈다.
“크윽…….”
내장이 꼬이는 듯한 고통에, 모용준의 얼굴이 일그러지고 핏줄이 툭툭 불거졌다. 그가 힘겹게 말을 이었다.
“……내 집 마당에 있는 계수나무. 예전에 그 밑에 술 묻었던 거 기억나냐?”
“무슨 술?”
“넌 뭐 하나 제대로 기억하는 게 없냐.”
모용준이 허탈하게 웃었다. 이제는 편하게 호흡하는 것조차 힘들어 보였다.
“나중에 우리 둘 중 누구라도 혼인하게 되면, 그때 꺼내서 축하주로 마시기로 했잖아.”
“아…….”
류설도 기억을 떠올렸다.
십수 년 전, 술에 취해서 반쯤은 장난으로 했던 행동.
-류설! 남의 집 마당에서 이게 뭐 하는 짓이야!
-흐히히히! 이 술은 우리 둘 중에 운 좋게 먼저 혼인하는 놈이 있으면, 그때 꺼내서 마시는 거다. 알아써어~?
-하아. 그래. 마음대로 해라.
-그런데 둘 다 혼인 못 하면 어쩌지? 술만 아까운데…….
-……그럼 우리 둘이 하면 어때? 너 같은 망아지를 데리고 살 놈도 없을 것 같고……. 한 마흔쯤까지 혼인 못 하면, 까짓거 내가 데리고 살아 줄 수도 있는데…….
-뭐래 이 병신이?
-노, 농담도 못 하냐?
그 시절을 떠올린 모용준은 어깨를 들썩이며 웃었다. 고통이 조금은 가시는 기분이었다.
“돌아가면 거길 파 봐. 술 옆에 일지를 묻어 놨으니까, 읽어 두면 상황을 수습하는 데 도움이 될 거다.”
모용준은 손등으로 눈을 비볐다. 시야가 점점 흐려지고 있었다. 류설의 얼굴이 잘 안 보였다.
“……이제 와서 하는 말인데, 차라리 이렇게 네 손에 죽게 되는 걸 원했는지도 몰라. 나 스스로는 멈출 수가 없었거든.”
“끝까지 병신같은 소리만 하고 앉았네.”
이를 악문 류설은 평생의 친구였던 녀석을 똑바로 바라봤다.
눈물은 흘리지 않았다. 두 눈 똑바로 뜨고 끝까지 가는 길을 지켜볼 생각이었다.
“류설.”
“왜.”
“그냥 한번 불러봤다.”
“병신.”
“잘 있어라.”
“……그래.”
모용준은 편안한 표정으로 눈을 감았다.
잘못된 선택의 대가를 치르는 순간이 오자 오히려 마음이 차분해졌다.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맺혔다.
‘연모하는 여인이 지켜봐 주는 죽음이라니. 이만하면 나쁘지 않지.’
그가 마지막까지 숨긴 것은 무공이 아니라 마음이었다.
모용준은 덤덤히 죽음을 받아들였다. 깊은 잠에 빠지듯 의식이 꺼졌다.
“누구 마음대로 죽어?”
백수룡이 나타난 것은 그때였다.
류설은 황급히 마안을 가리며 돌아섰다. 백수룡이 그들을 향해 성큼성큼 걸어오고 있었다.
“이미 봤으니까 유난 떨지 마. 별것도 아닌 거로.”
“너……!”
류설은 백수룡의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다.
얼마나 지독한 싸움을 했는지 옷은 넝마나 다름이 없었고, 얼굴은 시체보다 더 창백했다. 한눈에 봐도 내상이 심각해 보였다.
그러나 다른 무엇보다, 한 번도 본 적 없었던 백수룡의 심각한 표정에 류설은 쉽게 입을 열지 못했다.
“…….”
주변에 남은 싸움의 흔적을 살피는 백수룡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무극광풍(無極狂風)을 사용했어.’
무극검의 초식 중에서도 사납기로는 손에 꼽는 초식.
웬만한 공력과 무공에 대한 이해로는 흉내조차 낼 수 없는 기술이었다.
‘달라. 검에 담긴 진짜 오의는 사라지고, 오로지 파괴력만 높이도록 변형됐어.’
백수룡은 모용준에게 다가와 상세를 살폈다.
옆에서 류설이 우울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이미 늦었어. 어떻게 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야.”
“그건 내가 여기 오지 않았을 때 이야기고.”
살릴 것이다.
백수룡은 당장이라도 호흡이 끊길 듯 희미한 모용준에게서, 옛 제자의 얼굴이 겹쳐 보였다.
-교관님!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눈망울이 선한 녀석이었다. 지금의 위지천만큼이나 찬란한 재능으로 빛나던 아이.
하지만 백수룡은 그 아이의 감정을 말살하고, 마뇌의 지시대로 살인병기로 만들었다.
그 선한 눈망울에서 점점 감정이 사라지고, 검에만 몰두하도록 만들었다.
-……교관님. 저희가 포기하면 어떻게 되나요?
-너희 말고도 교에 대체할 인력은 넘친다. 폐기한 후에 버려지겠지.
-…….
마치 그것이 너의 존재 이유라는 듯이.
-나를 이렇게 만든 건 당신이야.
모용준이 주변에 남긴 검흔은, 묘하게 그 녀석의 검을 닮아 있었다.
‘후회는 안 해.’
만약 네 사부의 무공을 온전하게 혈교에 남겼다면, 혈교는 진작 전쟁을 일으켜 무림을 피로 물들였을 것이다.
‘하지만.’
일말의 책임감은 느꼈다.
자신으로 인해 시작된 불완전한 무극검.
그걸 익힌 사람이 죽어가는 모습을 보고도 아무렇지 않을 리 없었다.
특히 그게 검존 사부와 같은 모용세가의 핏줄이라면 더더욱.
“죽지 마라. 너한테 듣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니까.”
백수룡은 모용준의 단전에 손을 올리고, 기를 불어넣었다.
무극검의 구결을 알고, 내공이 흐르는 길을 완벽하게 알기에 가능한 일.
아무리 변형을 주었다 한들, 완전한 무극검을 알고 있는 백수룡에겐 틀린 답이 모두 보였다.
콰콰콰콰……!
뒤틀린 기혈을 바로 잡고, 고여 있던 탁기를 빼낸다.
애초에 잘못 전해진 무극검의 운기 경로 때문에 생긴 주화입마.
잘못 닦인 길을 바로잡자, 몸 안에서 멋대로 날뛰던 무극검의 기운이 얌전해지기 시작했다.
그러자 죽어가던 모용준의 육체가 조금씩 생기를 되찾았다.
“……!!”
류설은 눈을 부릅뜨고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그녀는 이것을 기적이라고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
잠시 후, 모용준이 천천히 눈을 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