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mber One Star Instructor Master Baek RAW novel - Chapter 323
322화. 이번에는 꽤 많이
“……용두방주님. 말씀 중에 죄송합니다만.”
겨우 정신을 차린 의천단주가 방주의 앞을 가로막으며 딱딱한 미소를 지었다.
“이 자리는 무림맹 총사범의 죄를 묻기 위해 마련된 자리입니다. 징벌위원회가 끝날 때까지 잠시 기다려 주십시오.”
“무어라?”
상대는 구파일방 중 한 곳의 수장이었지만, 의천단주는 단호한 말투로 선을 그었다.
‘청룡신협이 개방의 은인이라고?’
그게 뭐 어쨌다는 말인가.
이곳은 무림맹이고, 청룡신협은 본인이 저지른 죄의 대가를 치르기 위해 이곳에 자리한 상황이었다.
의천단주의 시선이 힐끗 백수룡을 향했다.
‘용두방주를 믿고 그리 태연했던 모양인데. 내가 어영부영 징벌위원회가 취소되도록 둘 것 같나?’
명분은 이쪽이 가지고 있었다.
의천단주는 설령 용두방주에게 미움을 받는 일이 생기더라도, 징벌위원회를 강행하기로 마음먹었다.
방주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징벌위원회라니? 설마 이 자리가, 청룡신협을 핍박하기 위해 모인 자리라는 말인가?”
“……청룡신협이 개방의 은인이기에 직접 찾아오신 마음은 이해합니다. 허나, 그는 지금 총사범의 자격으로 이 자리에 있습니다. 이는 무림맹 내부의 일입니다.”
의천단주의 목소리에 점점 힘이 실렸다.
그는 이 자리에서 반드시 백수룡을 총사범 지위에서 해임시키고 말겠다는 생각을 굳혔다.
위기감 때문이었다.
‘놈의 명성이 더 커지면, 정말로 차기 맹주 자리를 위협할지도 모른다. 여기서 싹을 잘라야 해.’
개방에서 청룡신협에게 보은을 하든 말든, 백수룡이 해임된 이후라면 아무런 상관도 없었다.
웅성웅성.
“의천단주의 말씀이 옳습니다.”
“개방과 무림맹의 일은 별개이지요!”
“저, 방금 방주께서 혈교라고 하지 않았나? 한번 들어 보고 싶은데…….”
“그래도 징벌위원회가 우선입니다!”
여론도 의천단주의 편이었다. 곳곳에 심어 둔 바람잡이들이 제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재판의 결과는 이미 결정돼 있었다.
“징벌위원회를 재개하겠소! 총사범 백수룡은 무림맹의 정문을 파괴해 맹의 위신을 떨어뜨린 죄로 이곳에 섰소. 또한, 자숙 기간에 무림맹을 무단으로 이탈하였으며…….”
의천단주가 내공을 담아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백수룡의 잘못을 하나씩 열거했다.
개방의 등장으로 잠시 어수선해졌던 분위기가 금방 수습되는 듯했다.
그러나.
“허어. 무림맹이 이렇게까지 아무것도 모르고 있을 줄은 몰랐군.”
방주가 길게 한숨을 쉬었다. 그 옆의 후개도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심지어 개방의 장로들, 풍운육개는 의천단주를 한심하다는 듯 바라보며 혀를 찼다.
이쯤 되자 의천단주도 노골적으로 불쾌감을 드러냈다.
“외인은 발언을 자중해 주십시오!”
상대가 개방의 방주이고 무림의 선배이기에 양보하는 것이지, 의천단주도 무림에서 손에 꼽을 만큼 높은 배분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방주는 코웃음을 쳤다.
“의천단주는 청룡신협이 무림맹 정문을 부순 이유를 알고 있나?”
“맹의 무사들의 훈련 상태를 점검하기 위해서라고, 본인에게서 직접 들었습니다. 허나 제가 보기엔 얼토당토 않은 소리로…….”
“아닐세.”
방주가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의천단주의 말을 끊고 주위를 둘러봤다.
비록 독의 후유증으로 얼굴은 수척했지만, 천하에서 가장 큰 무림 조직을 이끄는 수장답게, 단숨에 좌중의 시선을 휘어잡았다.
“청룡신협이 그런 행동을 한 것은, 무림맹 내부에 있는 배신자를 찾기 위함이었네.”
“……뭐라 하셨습니까?”
“배신자라니요?”
“지금 무슨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징벌위원회를 위해 자리에 모인 무림맹의 간부들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들 중 고수 아닌 자가 없었다. 방주를 노려보는 눈빛이 하나같이 형형했다.
그러나 방주는 태연히 말을 이었다.
“무림맹 수뇌부 중에 혈교와 붙어먹은 배신자가 있었네. 나는 은밀히 그자를 추적하다가 습격을 받아 독에 중독되었고, 불과 몇 시진 전까지는 사경을 헤매고 있었지.”
“……!!”
무림맹 한복판에 벽력탄이 터진 듯한 거대한 충격이 퍼져 나갔다.
“용두방주!”
오단의 단주들 중 배분이 가장 높은 신검단주가 노한 목소리로 외쳤다. 그의 몸에서는 칼날 같은 기세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지금 본인이 한 말에 책임을 질 수 있으시오?”
“이 몸이 늙긴 했으나, 아직 노망이 들지는 않았네.”
“증거가 있냐는 말이오!”
더 이상 징벌위원회에 대해서 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이, 이게 무슨…….”
의천단주는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돌아가는 상황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신검단주가 서슬 퍼런 눈빛으로 방주를 노려보았다.
“이것은 명예의 문제요. 만약 증거도 없이 무림맹의 간부를 배신자로 몬 것이라면…….”
“개방과 싸움이라도 하겠다는 말인가?”
“못 할 것도 없지.”
자칫 무림맹과 개방 간의 무력 충돌로까지 번질 수 있는 상황.
양측 무인들이 몸을 긴장시키며 공력을 끌어올릴 때였다.
류설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입을 열었다.
“……지난 밤에 있었던 일은 제가 모두 설명하도록 하겠습니다.”
“멸사단주?”
“맹주 대리! 이게 대체 어떻게 돌아가는 겁니까!”
“맹주께서 아시면 발작을 일으키고도 남으실 텐데…….”
류설은 모용준의 배신, 그리고 지난 밤에 있었던 독마와의 싸움에 대해서 덤덤한 어조로 이야기했다.
그 이야기에 오단의 단주들을 비롯해, 무림맹의 모든 간부들은 경악을 감추지 못했다.
“어찌 이런 일이…….”
“사, 사실이란 말입니까?”
“믿을 수 없습니다. 우리 부단주가 왜 배신을 합니까!”
여전히 믿지 못하는 자들이 많았다. 특히 멸사단 무인들의 반발이 엄청났다.
그러나 잠시 후, 포승줄에 두 팔이 묶인 모용준이 고개를 숙이고 걸어 나오자 모두가 일순간 할 말을 잃었다.
몇 시진 동안 마음고생을 심하게 한 듯, 모용준의 얼굴은 초췌하기 그지없었다.
“전부 자백하겠습니다. 저는 혈교와 내통했습니다. 그 죄를 달게 받겠습니다.”
“……!!”
“……!!”
모용준은 고개를 숙인 채, 무림맹을 배신했었다는 사실을 가감없이 말했다. 하지만 주화입마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다. 변명을 덧붙이는 것처럼 느껴져서였다.
“이 더러운 배신자!”
멸사단원들 중 일부는 배신자에게 욕을 퍼붓고, 돌을 던지고, 눈물을 흘렸다. 믿었던 사이였기에 배신감은 더욱 컸다. 모용준의 머리에서 피가 줄줄 흘러내렸다.
겨우 상황이 수습된 것은 그로부터 반 시진 가까이 지나서였다.
모용준은 일단 뇌옥에 가두었고, 징벌위원회는 자연스럽게 취소되었다.
“이쯤해서 정리하도록 하지. 다들 돌아가서 소속 무인들을 잘 다독이고…….”
신검단주가 착잡한 얼굴로 다른 단주들을 돌아보며 말할 때였다.
“다들 경황 중이라 잊고 있는 것 같으니 한마디 하겠소.”
충격으로 넋이 반쯤 나가 있는 있는 무림맹의 무인들에게, 용두방주가 입을 열었다.
“감사 인사를 전해야 할 사람이 한 명 있지 않소?”
모두의 시선이 방주를 따라 움직였다. 그 끝에는 의아한 표정의 백수룡이 있었다.
“청룡신협은 개방의 은인일 뿐만 아니라 무림맹의 은인이오. 그가 배신자를 찾지 못했다면 어찌 됐을지 한번 생각해 보시오.”
“…….”
조직 내부의 적은 외부의 적보다 몇 배는 무서운 법이었다.
만약 혈교와 무림맹이 전쟁 중이었다면, 병력의 규모와 구성, 이동 경로까지 모두 혈교에 알려졌을 터.
……상상만 해도 끔찍한 일이었다.
백수룡은 훗날 무림맹이 흘릴 뻔한 수많은 피를 줄여 준 것과 다름이 없었다.
“몰랐다고는 해도, 여러분은 방금 전까지 은인을 핍박하려 했소. 응당 사과와 마땅한 보상이 있어야 할 것이오. 그렇지 않으면 수많은 강호의 동도들이 무림맹을 비웃을 터!”
개방 방주는 은원이 확실한 사람이었다.
이 자리에 온 것 역시, 청룡신협에게 감사 인사를 전하고, 확실하게 보은하기 위해서였다.
오단의 단주들 중, 신검단주가 가장 먼저 부끄러움에 얼굴을 붉히며 포권을 취했다.
“……방주님의 말씀이 옳습니다. 총사범. 신검단을 대표해 감사 인사를 전하겠네. 신검단은 이 은혜를 결코 잊지 않겠네.”
정의단주도 마찬가지였다.
“정의단도 같은 마음입니다. 총사범에게 큰 은혜를 입었습니다. 정의단은 오늘 일을 기억할 것입니다.”
부단주의 배신으로 어느 정도는 책임을 피할 수 없게 된 류설도 희미하게 미소지으며 말했다.
“멸사단은 총사범이 원할 때 언제든 나설 거야. 필요하면 언제든지 부르기만 해.”
마지막으로, 의천단주도 울며 겨자 먹기로 포권을 취했다. 이런 상황에 혼자만 빠지면 속이 좁다는 말밖에 듣지 못할 테니까.
“……의천단을 대표해 감사드리오. 이 은혜……. 잊지 않겠소.”
사실상의 항복 선언이기도 했다.
먼 곳에 임무를 나가있어 참여하지 못한 철혈단주를 제외한 모든 단주가 청룡신협에게 보은을 약속했다. 그 의미는 결코 가볍지 않았다.
“저는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이쯤되자 오히려 백수룡이 부담스러웠다.
그는 자신에게 쏠리는 수많은 무인들의 시선이 꽤나 당황스러웠다.
‘이렇게까지 바란 적은 없는데?’
그는 남궁수를 통해 후개에게 연락해, 징벌위원회에 와서 상황을 수습해 달라고 전했다.
그런데 설마, 후개가 아니라 방주가 직접 올 줄은 몰랐다.
게다가 이렇게까지 얼굴에 금칠을 해 주길 원하지도 않았다. 얼굴이 다 화끈거릴 지경이었다.
그러나 진짜 금칠은 이제 시작이었다.
개방 방주는 무림 최대 정보조직의 수장답게, 소문을 퍼트리고 만드는 것에도 아주 능했다.
방주가 무림맹의 무인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다들 청룡신협의 창백한 얼굴을 보시오. 심각한 내상을 입었음에도 지금까지 티 한 번 내지 않고 참았던 거요.”
“그건…….”
내상을 입긴 했지만, 한숨 자고 나니 좀 괜찮아졌다. 얼굴은 원래 하얀 편이고.
“또한 끝까지 자신이 무슨 일을 했는지 말하지 않았지. 이 얼마나 진중한 성격이란 말인가?”
“크흠…….”
개방에서 안 왔으면 직접 말할 생각이었다.
누명을 뒤집어쓰는 취미는 없으니까.
“뿐만 아니라, 스스로 산공독을 삼키고 수갑을 찼지. 배신자를 색출하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걸었다는 것인데, 이 중에 똑같이 할 수 있는 무인이 있다면 손을 들어 보시오.”
“흠흠…….”
고마운 말이긴 한데, 산공독은 처음부터 통하지 않았고, 수갑도 언제든지 풀 수 있었다.
애초에 백수룡은 위험했던 적이 한 번도 없었다.
하지만 여기 있는 무인들 중 누구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과연…….”
“그야말로 정파인의 모범이 아닌가?”
“청룡신협께 무공을 배울 수 있어 영광입니다!”
방주의 선동에 넘어간 무림맹의 무인들이 감격한 표정으로 백수룡을 바라봤다.
나라라도 잃은 표정을 하고 있는 의천단주만 빼고.
방주는 여기에 쐐기를 박았다.
“개방은 청룡신협 백수룡을 개방의 명예 방도로 임명하겠소! 천하에 흩어져 있는 개방의 거지들이 그와 밥을 나눌 것이며, 덮고 있던 거적을 기꺼이 양보할 것이오. 오늘부터 청룡신협은 거지들의 형제요!”
““청룡신협은 거지들의 형제요!””
“……!!”
그것은 개방의 무인이 다른 무인에게 할 수 있는 최고의 찬사였다.
백수룡은 이제 어딜 가든 개방의 정보를 공짜로 이용할 수 있었고, 원한다면 정말 개방에서 밥을 얻어먹을 수도 있었다.
‘……그냥 굶고 말지.’
백수룡은 거지들과 형제가 되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밥을 얻어먹고 싶은 생각은 더더욱 없었다.
물론 겉으로는 눈을 크게 뜨고 감격한 티를 팍팍 냈지만, 속으로는 필사적으로 거절할 말을 떠올렸다.
“……명예 개방도라니. 후배는 방주님의 과분한 호의를 감당하기 어렵습니다. 부디 거두어 주시면…….”
“괜찮으니 사양치 마시게. 이토록 겸손하기까지 하다니. 젊은 나이에 십존에 올랐다는 것도 믿어지지 않았건만…….”
“그게 아니라…….”
거지 취급받는 게 싫다니까!
마음 같아서는 그렇게 외치고 싶었지만, 도저히 그럴 분위기가 아니었다.
결국, 백수룡은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개방의 명예 방도가 되었다.
“하, 하하……. 가, 감사합니다…….”
포권을 취하며 고개를 숙이는 백수룡의 시야에, 뒤편에서 흡족한 미소를 짓고 있는 남궁수의 모습이 보였다.
남들이 보기엔 무표정과 별 차이가 없지만, 관찰력이 좋은 백수룡은 확실히 알아볼 수 있었다.
‘혹시 저 자식이 방주한테 뭐라고 한 거 아니야?’
확신에 가까운 직감이었다.
그 순간, 백수룡의 귓가에 남궁수의 전음이 들려왔다.
[오는 길에, 방주님께 네가 주는 건 절대 마다하지 않는 성격이라고 말씀드렸다.] [뭔 개짓거리야?] [이번에는 꽤 많이 갚은 것 같군.] [미친놈인가…….]그렇게, 청룡신협의 명성은 또 한 번 무림에 크게 울려 퍼지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