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mber One Star Instructor Master Baek RAW novel - Chapter 326
325화. 전언(傳言)
이른 새벽, 무림맹 대연무장.
““하아아압!””
우렁찬 기합과 함께 백 명이 동시에 주먹을 내질렀다. 힘 있게 내지른 주먹에 새벽 공기가 밀려났다.
물 흐르듯 곧바로 이어지는 연계 동작. 몸을 팽이처럼 회전시키며 발을 머리보다 높게 차올렸다.
후우욱!
일순간 무림맹 대연무장에 돌개바람이 몰아쳤다.
무림맹에 입맹한 무인들이라면 누구나 익히는 기초외공 수련.
그러나 기초라곤 해도 백 명의 무인이 동시에 움직이는 모습은 일대 장관이었다. 내공을 사용하지 않은 순수한 외공 수련이었음에도 굉장한 기백이 느껴졌다.
“한 동작 한 동작 전력을 다하도록! 기초라고 대충 펼치는 놈은 본 사범을 무시하는 것으로 간주하겠다!”
백수룡은 기초외공을 펼치는 무인들 사이를 걸어 다니며 목청을 높였다. 훈련을 살피는 그의 눈이 예리하게 빛났다. 오른손에 든 흑룡편이 쉬지 않고 움직였다.
따악!
“진각을 밟을 때 반보 정도 더 전진하도록.”
“예!”
따악!
“중심을 더 낮추고 주먹에 힘을 빼라.”
“알겠습니다!”
따악!
“누가 은근슬쩍 내공을 쓰라고 했지?”
“죄송합니다!”
청룡학관 학생들의 몸 위에 떨어지던 흑룡편이 무림맹원들의 몸 위에도 공평하게 떨어졌다. 따다닥 소리가 그야말로 쉴 새 없이 울려 퍼졌다.
백수룡의 반대편에서는 남궁수가 금안을 번뜩이며 무인들의 자세를 봐주고 있었다.
“훈련에 불만 있는 분은 얼마든지 훈련에서 열외해도 좋습니다. 열외 희망자 있습니까?”
““없습니다!””
명문인 남궁세가 출신답게 말투는 정중하고 예의가 있었지만, 오히려 뇌룡신검을 더 무서워하는 무인들도 많았다.
“정말 없습니까? 알겠습니다. 그럼 모두가 동의한 것으로 알고 훈련 강도를 높이도록 하겠습니다.”
““그런……!!””
두 사람은 고작 며칠 만에 무림맹 오단의 무인들을 휘어잡았다.
그 누구도 훈련 중에 이의를 제기하거나 반발하지 않았다.
‘그럴 수밖에.’
청룡신협과 뇌룡신검은 무림맹의 은인이었다.
특히 청룡신협은 오단의 단주가 보은을 약속했고, 개방의 방주가 그를 명예 방도로 선언했다.
벌써부터 무림맹의 차기 맹주는 청룡신협이 유력하다며 줄을 대려는 자들도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었다.
하루에 반 시진, 선착순 백 명.
이 짧은 새벽 훈련에 참여하기 위해, 무인들이 번호표까지 뽑고 기다리는 진짜 이유는 하나였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지. 이만 해산하도록.”
““수고하셨습니다!””
두 강사에게 지도를 받은 무인들의 자세가 며칠 만에 눈에 보일 정도로 좋아졌기 때문이었다.
무인들 스스로가 가장 잘 느꼈다.
학관에서 어린애들이나 가르치는 강사라며 속으로 무시하던 자존심 강한 무인들도, 청룡신협과 뇌룡신검에게 개인지도를 받고 난 이후에는 생각이 바뀌었다.
“확실히 학생들보단 맹의 무인들이 이해도가 높군.”
“버릇 고치는 건 오히려 이쪽이 어렵지만.”
“오래된 버릇을 고치느니, 차라리 장점을 극대화하는 편이 낫지 않나.”
“그게 현실적이긴 한데…….”
짧은 새벽 수련이 끝나면, 백수룡과 남궁수는 오늘 있었던 훈련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며 아침을 먹으러 갔다.
평소 같았으면 오늘도 무림맹 식당으로 가서 밥을 먹었을 테지만, 오늘은 무림맹 밖에서 식사 약속이 있었다.
“오라버니!”
“오라버니!”
바로 제갈소영과 남궁미였다. 나들이 차림으로 곱게 차려입은 두 사람이 무림맹 정문 앞에서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제갈소영이 백수룡의 안색을 살피며 물었다.
“내상이 심하다고 들었는데. 몸은 좀 괜찮은 거예요?”
백수룡이 씩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거의 다 나았어.”
“이거 저희 아버지가 챙겨 주신 보약이에요.”
“뭘 이런 걸 다.”
백수룡은 제갈소영이 내민 보약 꾸러미를 받아 들었다. 냄새만 맡아도 최상급 약재를 썼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제갈가주님께 꼭 감사하다고 전해 드려.”
“오라버니 혹시, 아버지가 제갈세가에도 한번 방문해 주실 수 있냐고 물어보라고 하셨는데…….”
제갈소영의 조심스러운 제안에, 백수룡이 고개를 저었다.
“미안한데 그건 좀 어려울 것 같다.”
“아, 신경 쓰지 마세요. 저도 아버지가 하도 재촉해서 한번 해 본 말이었으니까요.”
제갈소영은 해맑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백수룡의 얼굴을 보고 의문이 들었다.
‘오라버니 표정이 안 좋은데?’
늘 자신만만하고, 여유로워 보이는 백수룡이 아니었다.
지금도 웃고 있기는 하지만, 어딘가 생각이 많아 보인다고 해야 하나?
제갈소영은 힐긋 남궁수를 바라봤다. 그녀가 눈치챌 정도라면, 남궁수가 모를 리 없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남궁수도 별다른 기색은 없었다.
“배고프군. 아침 식사를 하러 가지.”
“저도 배고파요!”
남궁미가 오라버니의 팔짱을 끼며 대답했다. 천진난만한 소녀는 며칠 만에 오라버니를 만나서 기분이 한껏 좋아 보였다.
소란을 예상한 백수룡과 남궁수는 인피면구를 착용했다. 그 덕분에 거리에서 네 사람을 알아보는 사람은 없었다.
그 대신, 어딜 가나 청룡신협과 뇌룡신검에 대한 소문을 직접 들을 수 있었다.
웅성웅성.
“청룡신협이 혈교의 장로를 때려잡았다면서? 벌써 두 번째가 아닌가.”
“나도 들었네. 이번에는 뇌룡신검과 함께 싸웠다고 하더군.”
“허어. 그토록 고강한 무공에 잘생긴 얼굴까지. 하늘이 원망스럽구만…….”
“청룡신협이 명예 개방도가 되었다는 소식도 들었나? 개방의 거지들이 은인에게 밥그릇을 양보할 거라고 하던데…….”
“그건 별로 부럽지 않군. 청룡신협이 거지도 아니고…….”
“……거지들의 형제면 거지 아닌가?”
“그, 그런가?”
무한에서 유명한 요리점에 도착한 일행은 사방에서 들려오는 자신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이른 아침임에도 자리가 대부분 차 있었다.
“삼 층으로 올라가요. 제갈세가 이름으로 통째로 빌려놨어요.”
제갈소영이 여러 차례 와 본 듯 자연스럽게 앞장서며 말했다.
일행은 식사를 기다리며 밀린 이야기를 나눴다.
백수룡이 혈교 장로와 싸운 이야기를 해 주자, 남궁미가 작은 주먹을 꽉 쥐고 눈을 초롱초롱하게 빛냈다.
“오라버니들은 무림맹을 구한 영웅이에요!”
남궁수가 미간을 찌푸리며 동생의 입가에 묻은 음식을 닦아 주었다.
“미야. 식사 자리에서 큰 소리를 내지 말라고 가문에서 배우지 않았느냐?”
“하, 하지만…….”
남궁미가 오라버니에게 예절 교육을 받는 동안, 제갈소영이 백수룡에게 물었다.
“그럼 계속 무림맹에 계실 거예요?”
백수룡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 무림맹에 너무 오래 있었어. 몸도 회복했으니 슬슬 떠나야지.”
“언제요?”
백수룡은 이미 결정을 내린 듯, 망설이지 않고 대답했다.
“내일 떠나려고.”
“내일이요?”
“그렇게 빨리요?”
제갈소영과 남궁미가 눈을 휘둥그레 떴다.
남궁수도 처음 듣는 얘기인지 고개를 돌려 백수룡을 노려봤다.
쏟아지는 시선에 백수룡은 어깨를 으쓱했다.
“방학이 끝날 때까지 여기에 있을 수는 없잖아. 원래 볼일이 있는 곳이 여기도 아니었고, 좀 서둘러야 할 것 같아서.”
백수룡의 원래 목적지는 섬서, 그리고 북해빙궁이었다.
두 곳을 다녀오는 것만 해도 남아 있는 방학이 촉박했다. 경공을 꽤 오래 펼쳐야 할 터였다.
잠시 침묵하던 남궁수가 물었다.
“혼자 갈 생각인가?”
“어. 이번에는 혼자 조용히 다녀오려고.”
“퍽이나…….”
남궁수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어딜 가나 사건·사고를 몰고 다니는 백수룡의 조용히 다녀오겠다는 말을 믿을 수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저렇게 단호한 표정으로 혼자 가겠다는데, 따라가겠다고 할 수도 없었다.
“늦지 말고 돌아오도록.”
“……말이라고.”
백수룡은 피식 웃었다. 평소와 다름없는 자신만만한 웃음이었으나, 어딘가 조금 힘이 없어 보였다.
* * *
무림맹을 떠나기 전에, 백수룡에겐 개인적으로 마무리해야 할 일이 있었다.
똑똑-
“들어와.”
문을 열고 들어서자, 맹주실에서 업무를 보고 있던 류설이 들고 있던 서류를 대충 내려놓더니 눈을 동그랗게 떴다.
“수룡 동생?”
그 옆에는 모용준이 손에 수갑을 찬 모습으로 앉아 있었다.
모용준은 서류를 내팽개친 류설을 바라보며 한숨을 쉬었다.
“야. 보던 서류는 마무리하고 내려놔야지. 아무렇게나 두면 나중에 어떻게 찾으려고 그래?”
그러자 류설이 갑자기 정색을 했다.
“배신자 주제에 감히 맹주 대리의 서류 업무를 훔쳐봐?”
“갑자기 뭔 소리야? 방금 전까지 나한테 이것저것 물어봤…….”
퍼억!
복부를 얻어맞은 모용준의 상체가 앞으로 꺾였다. 숨이 막히는지 꺽꺽거리며 고통스러워했다.
“이게 뒈질라고. 어디서 날조를 해?”
태연하게 자리에서 일어난 류설은 백수룡에게 다가가며 환하게 웃었다.
“앉아. 차라도 줄까?”
백수룡이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모용준이 여기 있다는 말은 들었는데……. 지금 뭐 하는 거야?”
류설이 민망한지 헛기침을 했다.
“흠흠. 보다시피 내가 이 자식 신원보증인이거든. 대역죄인인데, 도망치거나 자결하는 걸 못하게 막으려면 바로 옆에서 감시하는 게 제일 낫잖아? 그래서 맹주 영감이 오기 전까지는 내가 직접 감시하기로 했어.”
“다른 단주들이 그걸 용납했다고?”
류설은 코웃음을 쳤다.
“내가 맹주 대리인데 어떤 새끼가 뭐라고 할 거야? 맹주 영감이 올 때까진 내가 무림맹 최고 권력자라고.”
“차라리 감옥에 가둬라…….”
뒤에서 들려오는 모용준의 말을 가볍게 무시한 류설은 자리에 앉으며 말했다.
“그래서 무슨 볼일이야? 며칠 동안 얼굴 한 번 안 비치더니.”
“모용준한테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서.”
“……내가 자리를 비켜 줘야 하나?”
류설의 말에, 백수룡은 고개를 저었다.
“옆에 있어도 상관없어. 어차피 알려질 일이기도 하고.”
잠시 후, 모용준은 긴장한 표정으로 백수룡과 마주 앉았다.
그들은 서로에게 궁금한 것이 있었다.
먼저 입을 연 것은 백수룡이었다.
“혹시 모용단이라는 이름을 들어 봤나?”
검존의 아들.
백수룡은 혹시나 그가 살아 있을지도 모른다는 일말의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질문했다.
“모용단…….”
모용준은 잠시 생각해 보더니 고개를 저었다.
“처음 듣는 이름입니다. 하지만 먼 방계라면 제가 모를 가능성도 있습니다. 한번 알아봐 드릴까요?”
“아니, 모르면 됐어.”
어느 정도는 예상했던 대답이기에 백수룡은 크게 실망하지 않았다.
‘정말 죽었나 보군.’
검존의 아들은 방계가 아니다. 모용준이 모른다면 존재하지 않는다는 이야기였다.
검존의 아들은 혈교에 의해 죽었다. 그 사실을 한 번 더 확인한 백수룡은 씁쓸한 표정으로 모용준에게 물었다.
“몸 상태는 어때?”
“놀라울 정도로 편합니다. 기혈이 제자리를 찾았고, 주화입마도 사라졌습니다. 그런데…….”
모용준은 백수룡에게 무언가를 묻고 싶은 눈치였다.
백수룡은 그 질문이 무엇인지 짐작하고 있었다.
“내가 어떻게 무극검의 운기 경로를 알고 있는지 궁금하지?”
“……예.”
모용준을 살리기로 결심했던 순간부터 각오했던 질문.
백수룡은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을 하기 위해 이곳에 왔다.
“네가 익힌 무극검, 누구의 무공인 줄 알아?”
“……모용세가의 선조 중 한 분이 창안한 무공이라고 들었습니다. 사실인지는 확인할 수 없지만…….”
“무극검은 검존의 무공이다.”
“검존?”
고개를 갸웃거리던 모용준이 “아!” 감탄사를 터트렸다.
“수십 년 전, 본가에 천하삼대검수로 불렸던 고강한 검객의 별호가 검존이었다고 들었습니다. 혹시 그분입니까?”
“천하삼대검수?”
백수룡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틀렸다. 검존은 당시 명실상부한 천하제일검이었다.
그 사실은 천하삼대검수라 불리던 다른 검객들이 모두가 인정한 사실이었다.
다른 두 명의 검이 모두 검존에게 꺾였으니까.
승자인 검존이 원하지 않았기에 그 사실이 알려지지 않았을 뿐.
“검존은 그 시대의 명백한 천하제일검이었다. 아니, 어쩌면 천하제일인이었을지도 모르지.”
“천하제일인이라니…….”
가문의 선조가 천하제일인이었을지도 모른다는 말에, 모용준의 표정이 멍해졌다.
그럴수록 궁금증은 더 커졌다. 모용준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질문했다.
“……총사범께선 그걸 어떻게 아십니까?”
세간에는 청룡신협 백수룡에 대한 많은 의문이 남아 있었다.
그는 과연 어떤 무공을 익혔나?
대체 어떤 신공을 익혔기에 이렇게 빠르게 강해질 수 있었는지, 그 무공의 정체를 궁금해하는 자들이 많았다.
하지만 온갖 추측만 난무할 뿐, 본인의 입으로 말한 적이 없었기에 의문은 점점 커져 가는 중이었다.
‘언젠가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었어.’
여러 가지 고민과 계산 끝에, 백수룡은 진실의 한 조각을 오늘 공개하기로 결심했다.
“나는 검존의 제자다.”
모용준이 놀라서 눈을 부릅떴다. 조용히 듣고 있던 류설도 마찬가지였다.
‘내게 진짜 무극검이 있다.’
동시에 이것은 자신의 옛 제자, 일사도에게 보내는 전언(傳言)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