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mber One Star Instructor Master Baek RAW novel - Chapter 328
327화. 헌원세가의 망나니는 (1)
산서성(山西省) 정양현(定襄?).
이곳에는 과거 하북팽가와 함께 천하제일도문의 자리를 두고 다투던 헌원세가가 위치하고 있다.
“후욱……. 후욱…….”
아직 동이 다 트지도 않은 새벽.
헌원강은 땀을 뻘뻘 흘리며 새벽 훈련을 이어 가고 있었다.
전신의 탄탄한 근육에서 새하얀 김이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땀에 흠뻑 젖은 상의는 벗어 던진 지 오래였다. 흑도가 허공을 가를 때마다 매서운 소리가 났다.
‘앞으로 백 번 더.’
헌원강은 이를 악물며 속으로 숫자를 셌다.
가문으로 돌아온 후에도, 단 한 번도 빼먹지 않은 새벽 훈련.
그 강도는 백룡장에 있을 때보다 오히려 높았다. 헌원강은 방학이라고 해이해지지 않기 위해 스스로를 채찍질했다.
처음에는 ‘며칠이나 가겠어?’라고 수군대며 지켜보던 세가의 가솔들도, 열흘이 넘어간 이후로는 헌원강이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 돌아왔다는 사실을 믿을 수밖에 없었다.
파천도(破天刀) 헌원강.
한때 헌원세가의 망나니라 불리며 가문의 망신거리였던 소가주는, 청룡학관에서 가장 뛰어난 후기지수 중 한 명이자 청룡신협의 제자가 되어 돌아왔다.
쿵!
헌원강이 보법을 밟으면 바닥에 선명한 족적이 남았고, 흑도를 휘두르면 검은 궤적이 새벽 여명을 베었다. 헌원강은 무아지경에 빠져 도를 휘둘렀다.
이제 이 시간에는 아무도 헌원강의 수련을 방해하지 않았다.
단 한 명을 제외하면 말이다.
휘익!
헌원강은 고개를 젖혀 옆에서 날아온 목도를 피했다. 불시의 기습이었으나 익숙한 듯, 표정에는 변화가 없었다.
오히려 입가에 작은 미소가 피어났다. 이것 또한 수련의 일종이었으니까.
“쳇!”
아쉬운 듯 혀를 차는 소리와 함께 두 번째 공격이 날아왔다. 아래에서 올려 차는 발차기. 헌원강은 무릎을 뻗어 상대의 발등을 막고, 왼손을 휘둘러 목도의 옆면을 때렸다.
“아앗!”
목도를 놓친 상대는 뒤로 공중제비를 돌며 물러났다. 그 와중에 반격을 염려한 것인지 발로 흙을 차올려 상대의 시야를 가렸다.
하지만 헌원강은 더 이상 공격하지 않았다. 빼앗은 목도를 이리저리 돌려볼 뿐이었다. 헌원강이 사용하는 것보다 훨씬 작고 가벼웠다.
“기습에 대처하는 것도 청룡신협한테 배웠어?”
단발머리의 소녀였다. 헌원강의 가슴께에도 못 미치는 작은 소녀가 놀란 고양이처럼 눈을 치켜뜨고 물었다.
헌원강이 코웃음을 치며 대답했다.
“이 정도는 예전에도 피했거든?”
“전에는 세 번에 한 번은 성공했는데 이젠 한 번도 안 통하잖아!”
이 맹랑한 소녀는 헌원강의 동생이었다.
헌원란. 올해 열두 살이 된 말괄량이가 씩씩거리며 말했다.
“두고 봐. 나도 열다섯이 되면 청룡학관에 입관해서 오빠보다 강해질 거니까.”
“그때 난 스무 살인데? 네가 나한테 되겠냐?”
“다섯 살이나 어린 동생한테 이기니까 좋냐!”
헌원란이 달려와 오빠의 정강이를 힘껏 걷어찼다. 하지만 발을 붙잡고 낑낑거린 것은 헌원란이었다. 몇 달 만에 집으로 돌아온 오라버니의 몸은 쇳덩이라도 된 듯 단단했다.
“눈 감고 있을 테니까 다시 덤벼 볼래? 스치기라도 하면 당과 사 줄게.”
헌원란이 눈을 흘겼다. 당과라니. 열두 살이나 됐는데 아직도 애 취급을 당해서 기분이 불쾌했다.
“재미없어서 그만할래. 그리고 오빠한테 서찰 왔어. 여기.”
헌원강은 동생이 내민 서찰을 보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나한테? 누가?”
“몰라. 안 열어 봤으니까. 혹시 여자 아니야?”
헌원란이 눈을 초롱초롱하게 빛내며 물었다.
헌원강은 어이가 없어서 어린 동생의 머리를 쥐어박았다. 이 녀석은 학관 생활에 이상한 낭만을 가지고 있었다.
“쬐그만 게 뭘 안다고. 여자일 리가 없잖아.”
잠시 새하얀 머리카락이 머릿속에 어른거렸으나, 헌원강은 고개를 휙휙 저었다.
하지만 일말의 기대는 버리지 못하고 조심스럽게 서찰의 봉인을 뜯었다.
「원강아. 잘 지내냐?
방학이라고 수련을 빼먹고 있진 있겠지? 네가 내 손에 뒈지고 싶지 않으면 그러지는 않으리라 믿는다.」
앞에 몇 문장을 읽은 순간, 헌원강은 서찰을 보낸 사람이 누가 보냈는지 깨달았다.
“이게 안부야, 협박이야?”
이런 서찰을 보낼 인간이 세상에 백수룡 말고 더 있겠는가.
서찰의 주된 내용은 방학이라고 게으름을 피웠다간 개학 후에 크게 후회할 것이며, 개학 후 성장해 있을 제자의 모습을 기대한다는 것이었다.
‘열심히 훈련하길 잘했다…….’
뿐만 아니라 무공 수련에 대한 이런저런 조언도 적혀 있었다. 헌원강은 그 부분은 몇 번이고 다시 읽으며 마음에 새겼다.
마지막으로, 백수룡이 최근에 어떤 일을 겪었는지도 간략하게 언급돼 있었다.
“무림맹? 개방? 혈교?”
헌원강은 입을 떡 벌린 채 백수룡이 보낸 서찰을 바라봤다.
“아니, 이 인간은 방학한 지 얼마나 됐다고…… 또 뭔 짓을 하고 다니는 거야?”
“누군데 그래? 나도 보여 줘!”
헌원란이 옆에 와서 서찰을 훔쳐보려고 기웃거렸다.
헌원강은 동생이 서찰을 보지 못하도록 높이 들어 올렸다.
“있어. 언젠가 꼭 패 주고 싶은 인간.”
“패 주고 싶은 인간?”
어째 시간이 갈수록 목표가 멀어져만 가는 것 같지만……. 헌원강은 여전히 포기할 생각이 없었다.
* * *
가족이 한자리에 모인 아침 식사 시간.
상석에 앉은 헌원가주는 아침부터 싱글벙글이었다.
“초대하지 않은 가문이며 문파들까지, 다들 연회에 참석하겠다고 난리더구나.”
오늘 저녁, 헌원세가는 몇 년 만에 큰 연회를 열어 손님을 초대할 예정이었다.
지금까지는 연회에 드는 비용 때문에 꿈도 꾸지 못했던 일.
하지만 이제는 사정이 달랐다.
“얼마 전 금룡상단과 계약을 맺은 이후로 사업장도 점점 늘어나고, 그간 격조했던 문파나 가문에서 연락도 오더구나.”
수십 년 전, 광마혈사로 전멸에 가까운 피해를 입은 헌원세가.
이후 가세가 크게 기울며, 한때 하북팽가와 함께 천하제일도문을 두고 다투던 가문은 지역의 작은 무가로 몰락했다.
하지만 최근 소실되었던 진천도를 복원하고, 천하십대상단 중 하나인 금룡상단과 계약까지 맺으며 재정적으로 큰 여유가 생겼다.
헌원가주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연회를 열고 손님들을 초대해, 헌원세가의 부활을 본격적으로 알릴 생각이었다.
“요즘은 먹지 않아도 배가 부르구나.”
헌원가주는 맞은편에 앉은 장남을 바라보며 흐뭇하게 웃었다.
파천도라는 별호를 얻으며 강호에 명성을 날리기 시작한 아들.
헌원세가가 다시 날개를 달고 비상할 날이 머지않았다는 평가를 듣는 이유였다.
“배부른 것치곤 많이 드시던데요.”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아들의 얼굴도 귀엽게만 보였다.
무공에 대한 자질이 부족한 자신과 달리, 헌원강은 자질이 무척 뛰어났다.
‘너를 제대로 지원해 주지 못해 항상 미안했거늘…….’
청룡학관에서 훌륭한 스승을 만나 그 재능이 눈부시게 개화한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주책맞게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당신 또 울어요?”
“아버지…….”
헌원가주는 부인이 건넨 손수건으로 눈물을 찍었다. 갱년기인가. 요즘 부쩍 눈물이 많아졌다.
“눈에 먼지가 들어간 모양이오.”
은퇴하기 전까지 가문의 규모를 최대한 키워 놓을 것이다.
아들의 대에서는 다시금 천하제일도문을 놓고 하북팽가와 경쟁할 수 있도록.
헌원가주는 속으로 각오를 다지며, 그윽한 눈빛으로 헌원강을 바라봤다.
“원강아.”
“콜록! 콜록!”
헌원강이 먹고 있던 음식을 뿜으며 기침을 했다. 그러곤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아버지를 바라봤다.
“아, 원강이라고 부르지 말라니까요! 내가 집에서까지 그렇게 불려야 돼?”
“따지고 보면 백수룡 선생님이 널 원강이라고 부른 이후부터 일이 잘 풀린 것이 아니냐. 내게는 그것이 행운을 가져다주는 별명처럼 느껴지는구나.”
“무슨 말도 안 되는…….”
백수룡이 장난삼아 부르기 시작한 것이, 이제는 진짜 이름보다 많이 불리고 있었다.
헌원가주가 장난스럽게 웃으며 말했다.
“내 가솔들에게도 말해 두마. 앞으로는 원강 도련님이라고 부르라고.”
“당신이 그러고도 헌원세가의 가주야?!”
“원강 오빠?”
“너까지 그럴래!”
가족들에게 항의하던 헌원강도 결국 픽 웃어 버렸다. 장난이란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설마 정말로 그러진 않겠지.’
……사실 이제는 누가 강이라고 부르면 어색하게 느껴질 때가 있긴 했다.
* * *
해가 지기 전, 손님들이 하나둘 헌원세가에 도착했다.
“헌원가주. 요즘 좋은 소식이 많더니 신수가 아주 훤하십니다그려.”
“허허허! 무월 가주! 오랜만이오!”
“아드님이 파천도라는 별호를 이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참으로 축하드립니다.”
“현정 문주께서도 오셨구려. 아들 녀석이 별호를 감당하기엔 아직 많이 모자랍니다.”
“청룡신협에게 직접 무공을 배웠다면서요? 허면 훗날 천하제일도객이 되는 것 아닙니까?”
“하하하하!”
아들 칭찬에 헌원가주의 얼굴에 웃음꽃이 피었다.
“여러분께서 이토록 제 얼굴에 금칠을 하시니 안 되겠군요. 술을 더 꺼내야겠습니다. 하하하하!”
산서를 대표하는 문파, 가문에서 온 손님이 속속들이 헌원세가를 찾아왔다.
헌원가주는 직접 나가서 손님을 한 명 한 명 맞이했다. 생각 이상으로 문전성시를 이루어 정신이 없을 지경이었다.
“끄응…….”
헌원강도 아버지 옆에서 불편한 무복을 입고 어색하게 웃으며 손님들을 맞이했다.
짧은 머리에 기름을 발라 반듯하게 빗어넘기고, 어울리지 않는 공손한 언행을 유지하느라 죽을 맛이었다.
‘귀찮지만 맞춰 드려야지.’
아버지의 얼굴이 이토록 활짝 펴진 것을 본 게 언제였던가.
오늘만큼은 저녁 수련을 빼먹을 수밖에 없었다.
대신 내일 두 배로 해야겠지만.
“공사다망하신 무림의 동도 여러분! 본가의 초대에 흔쾌히 응해 주어 감사드리오! 오늘 연회가 좋은 인연을 맺는 교류의 장이 되었으면 합니다.”
연회장의 중심에서 헌원가주가 술잔을 들었다.
손님들이 그에 호응하며 먹고, 마시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연회의 주인공은 누가 뭐라 해도 헌원세가, 그리고 헌원강이었다.
“악인곡에서 있었던 이야기 좀 해 주게.”
“우리 애가 내년에 열다섯인데. 청룡학관에 대해서 궁금한 것이 많아서 말인데…….”
“청룡신협은 어떤 분인가요?”
“혹시 마음에 둔 혼처는 있으신가?”
쏟아지는 관심과 질문에 헌원강은 혼이 쏙 빠질 지경이었다. 이토록 많은 사람들이 헌원세가를 찾아온 것은 처음이었다.
그때였다.
뒤늦게 도착한 불청객으로 인해 연회장의 분위기가 술렁였다.
“저희가 좀 늦은 모양입니다!”
내공이 담긴 쩌렁쩌렁한 목소리에, 손님들의 고개가 정문으로 향했다.
덩치가 곰처럼 큰 사내 하나가 성큼성큼 연회장 안으로 들어왔다. 등에 커다란 도를 사선으로 비껴메고 있었고, 감색 무복의 왼쪽 가슴에 팽(彭) 자가 선명하게 새겨져 있었다.
“하북팽가…….”
“팽가가 왜 이곳에?”
다들 하북팽가의 등장에 당황했지만, 헌원가주만은 손님을 맞이하기 위해 황급히 앞으로 나섰다.
“오랜만입니다. 가주.”
하북팽가의 손님들 중 선두에 선 중년의 사내가 포권을 취했다. 그를 알아본 헌원가주도 당황함을 감추며 포권을 취했다.
“팽사군 대협이 아니십니까? 이곳엔 어찌…….”
“제가 못 올 곳이라도 왔습니까?”
팽사군은 오히려 섭섭하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저희가 남도 아니지 않습니까. 그간 오간 쌀이며 돈이 얼마인데. 응당 축하하러 와야지요. 설마…… 저희가 불청객인 겁니까?”
말에 뼈가 있었다.
헌원세가가 몰락의 길을 걸을 때, 가장 먼저 도움의 손길을 뻗은 곳이 하북팽가였다.
도의 명문으로 최고의 자리를 다투던 두 가문은 예전부터 왕래가 잦았다.
하북팽가가 헌원세가에 막대한 경제적 지원과 유실된 무공의 복원을 돕겠다고 했을 때, 모든 정파무림이 하북팽가에 박수를 보냈다.
하지만 그로부터 수십 년이 지난 지금, 헌원세가는 하북팽가의 속가나 다름없을 정도로 종속돼 있었다.
‘이제 겨우 저들의 그늘에서 벗어나려 하고 있거늘…….’
헌원가주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상대는 하북팽가의 가주나 장로도 아닌, 일개 당주에 불과했다.
그럼에도 그는 불청객에게 축객령을 내릴 수 없었다.
“……불청객이라니요. 허허.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이쪽으로 오십시오.”
한순간에 연회의 주인공 바뀐 듯한 분위기.
다소 불편한 분위기 속에서 잠시 중단되었던 연회가 계속되었다.
“환영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다들 들어오시게!”
껄껄 웃은 팽사군이 뒤편에 대고 소리치자, 스무 명이 넘는 팽가의 무인들이 안으로 들어왔다. 숫제 무력시위였다.
‘이 자식들이…….’
헌원강은 못마땅한 눈으로 팽가의 무인들을 노려보다가, 가장 마지막에 들어오는 사내를 보고 눈을 부릅떴다.
“팽사혁?”
팽사혁이 천무학관으로 떠난 후, 몇 달 만의 재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