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mber One Star Instructor Master Baek RAW novel - Chapter 34
33화. 낭인 시장“나 며칠 동안 어디 좀 다녀오려고.”
“네?”
“……실기시험이 당장 열흘 뒤입니다만?”
함께 아침을 먹던 악연호와 명일오가 내 말에 놀라서 나를 바라봤다.
악연호가 입안에 있던 밥알을 맹렬하게 튀기며 말했다.
“형님! 청룡학관에서 면접에 합격한 예비 강사들한테 실기시험 전까지 근신하라고 보낸 경고장 못 받았어요? 얌전히 있어도 모자랄 판에…….”
이 자식은 갑자기 왜 이렇게 잔소리야.
나는 암기처럼 날아오는 밥알을 젓가락으로 모조리 튕겨 낸 후 식탁에 탁 내려놓으며 말했다.
“며칠 안 걸릴 거야. 나한테는 실기시험 준비와 관련된 일이기도 하고.”
나는 복만춘과 함께 낭인 시장에 가기로 했다.
복만춘이 찾았다는 영약을 직접 확인하고, 실력 있고 입이 무거운 야장도 만나 보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낭인 시장이 있는 장소까지는 말을 타고 달려도 꼬박 하루는 걸리는 거리라서, 왔다 갔다만 해도 사흘은 걸릴 일정이었다.
당연히 두 사람에게는 자세한 사정을 말할 수 없어 대충 둘러댈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언제 가는데요?”
“밥 다 먹었으니까 차 한 잔 마시고?”
“그걸 지금 말해요?”
“급하게 결정됐어.”
나는 조금 섭섭해하는 악연호의 찻잔에 차를 따라주며 씩 웃었다.
“무슨 일 생기면 말해라.”
“알겠어요. 혼자서 예쁜 처자들 많이 만나고 와요.”
악연호는 한숨을 푹 내쉬더니 내가 따라 준 차를 벌컥벌컥 마셨다.
……저거 꽤 뜨거울 텐데.
“아, 앗, 뜨, 뜨거어어!”
“쯧쯧. 나이가 몇인데 칠칠찮기는.”
“무, 물! 찬 무우울!”
“자 여기 있다.”
“고맙…… 끄으억! 이거 뜨거운 물이잖아아아아!”
그렇게 평소와 다를 바 없는 아침 식사를 마친 후, 나는 간단히 짐을 챙겨 떠날 준비를 마쳤다.
“백 형. 가시기 전에 잠시만.”
아침 식사시간 내내 조용히 생각에 잠겨 있던 명일오가 내게 작은 서책 하나를 건넸다.
“이게 뭡니까?”
“현재 기숙사에 있는 학생들 중에, 외공 수업을 듣는 학생들 명단을 추린 겁니다.”
“……이걸 왜?”
서책은 작지만 꽤 두꺼웠다.
얼마 전에야 완성한 듯, 먹물 냄새가 아직 남아 있었다.
“각 학생의 무공의 특징이나 성격을 정리해서 적어 두었습니다. 일종의 족보라고 할까요. 시범 강의를 하실 때 도움이 될 겁니다.”
“명 형. 나한테 이렇게까지 해 줘도 되는 겁니까?”
나는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마냥 사람 좋은 듯 보여도, 나는 명일오가 굉장히 실리적인 성격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처음 나와 악연호에게 접근한 것도 악연호가 산동악가 출신이기 때문이었을 테니까.
‘내 외조부가 학생주임이라서…… 앞으로 잘 봐달라는 건가.’
내 시선의 의미를 파악했는지, 명일오가 씨익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그날 본 매극렴 선배님이라면, 자기 손자라고 무조건 실기시험에 붙여 줄 것 같지는 않던데요.”
“……그렇긴 하죠. 그럼 저한테 이걸 왜 주는 겁니까?”
명일오는 잠시 할 말을 찾는 것 같더니 말했다.
“그냥…… 저는 백 형이 꼭 시험에 붙었으면 좋겠습니다.”
“왜요?”
“그날 백 형이 객잔에 모여 있던 예비 강사들한테 그러셨죠. 쪽팔린 줄 알라고. 그러고도 누굴 가르칠 자격이 있냐고.”
기억이 났다. 바로 며칠 전 이야기니까.
가르치는 학생에게 쩔쩔매던 강사란 녀석들이 너무 한심해 보여 한마디 하고 나왔던 날.
“그건 명 형을 두고 한 말은 아니었는데…….”
명일오는 부드럽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압니다. 그래도 저는 부끄러웠습니다. 저는 학생의 따귀를 때릴 용기도 없고, 점소이를 시켜 포두를 부르거나 학생주임을 부를 용기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백 형은 그렇게 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그야 학생주임이 외조부니까.”
“학생주임이 외조부가 아니었더라도…… 제가 본 백 형은 분명 뭔가를 했을 사람입니다.”
“이거 사람을 너무 좋게 보는 것 같아서 부담스러운데.”
나는 가볍게 어깨를 으쓱했다.
명일오는 진지한 눈빛으로 내게 말했다.
“어제와 같은 상황이 다시 와도, 저는 용기를 낼 자신이 없습니다. 하지만 백 형은 또 뭔가를 해 줄 것 같습니다. 그러니 시험에 붙어 주십시오. 또 그런 일이 일어났을 때…….”
나는 어이가 없어서 웃었다.
“나 보고 앞장서서 불의에 맞서 싸워라?”
“옆에서 몰래 도와드릴 수는 있을 것 같습니다.”
명일오는 자신의 짧은 머리를 긁적이며 멋쩍게 웃었다.
처음으로 이 녀석이 진심으로 웃는 것을 본 기분이었다.
나는 명일오가 건네준 서책을 품에 넣었다.
덕분에 낭인 시장에 다녀오는 길이 심심하지는 않을 것 같았다.
“사람을 너무 좋게만 보네. 나중에 실망이나 하지 말고. 아무튼 이건 잘 쓰겠습니다.”
“앞으로 말씀 편하게 하십시오. 제가 한 살 어립니다.”
“그래. 알겠다, 일오야.”
나는 두 동생의 배웅을 받으며 객잔을 나섰다.
“그럼 둘 다 며칠 후에 보자.”
“다녀오세요.”
“다녀오십시오.”
객잔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는데, 뒤에서 두 사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런데 명 형. 저는요? 제 책자는 없어요?”
“예? 악 형은 저랑 전공이 같아서 조금…….”
“뭐야. 지금 치사하게 나만 안 주겠단 거예요? 그리고 왜 나한테는 말 높이는데? 내가 한 살 어리니까 말 놔요!”
“그, 그래도 되나……. 그래도 산동악가 사람인데…….”
“안 될 게 뭐가 있어. 자, 앞으로 말 편하게 놓으시고 족보도 하나 줘 봐요.”
“…….”
두 사람의 목소리를 뒤로하고, 나는 가벼운 걸음으로 복만춘을 만나러 갔다.
* * *
이틀 후.
“이곳입니다.”
흑립으로 얼굴을 반쯤 가린 나와 복만춘은 낭인 시장으로 들어섰다.
초기의 낭인 시장은 낭인들의 무력을 사고파는 곳이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돈이 되는 것은 뭐든지 사고파는 암시장으로 변했다.
돈만 주면 무엇이든 구할 수 있는 곳.
불법적인 거래도 많기에, 관아의 눈이 닿지 않는 곳에서 비정기적으로 장이 열렸다.
‘운이 좋았어.’
낭인으로 오래 굴러먹은 복만춘의 인맥이 아니었다면, 낭인 시장에 접촉하는 데 꽤나 애를 먹었을 것이다.
“공자님. 이쪽입니다.”
나는 복만춘을 따라 낭인 시장이 열린 야산의 중턱으로 들어섰다.
곳곳에 희미한 횃불이 켜져 있었고, 천막이 쳐지거나 좌판을 늘어놓은 곳도 있었다.
낭인 시장에선 온갖 물건을 팔았다.
“정말 좋은데 설명할 방법이 없네! 사내한테 이보다 좋은 물건이 없어! 강직(剛直)환 팝니다!”
“한 방울이면 호랑이로 쓰러뜨리는 독이 단돈…….”
“딴 놈이랑 배 맞아 도망친 마누라, 서방 잡아다 드립니다. 한번 상담부터 받아 보십쇼!”
시장 곳곳에서 흥정이 벌어지고, 얼굴과 몸에 흉터가 많은 거친 사내들이 낭인 시장 안을 어슬렁거렸다.
툭.
“뭐야? 눈깔 똑바로 안 뜨고 다녀?”
“지금 나한테 한 말이냐?”
종종 낭인들이 부딪치며 주먹다짐이 벌어지는 광경도 보였다.
싸움이 벌어지면 곧바로 공터가 만들어지고, 그 주변을 다른 낭인들이 둘러싸고 휘파람을 불어 댔다.
누가 이길지를 두고 내기 판이 벌어지는 건 기본이었다.
“하하. 거친 놈들이 많다 보니 분위기가 좀 이렇습니다. 그래도 어지간하면 칼부림은 안 일어나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랬다간 여기 있는 모두를 적으로 돌리거든요.”
복만춘은 멋쩍은 듯 뒤통수를 긁어대면서도 주위를 계속 경계했다.
복만춘도 어디 가서 꿇리지 않는 인상파인지라, 웬만한 낭인은 우리 주위에 얼씬도 하지 않았다.
“흐흐. 공자님. 무서워하실 것 하나 없습니다.”
‘네가 제일 무섭게 생겼거든.’
복만춘의 과보호에 가까운 호위에 나는 피식 웃음이 나왔다.
낭인들의 몸에 배어 있는 땀 냄새와 오래된 피 냄새.
오히려 고향에 온 것처럼 편안한 기분이었다.
게다가 낭인들 중에는 외공을 단련한 자들이 많아, 며칠 후 외공 강의를 해야 하는 입장에서 그들의 몸을 구경하는 재미도 있었다.
“쯧. 저 녀석은 오래 못 살겠군. 약물로 몸을 키웠어.”
“……공자님. 관상도 보실 줄 아십니까?”
“대충은요.”
우리는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며 낭인 시장을 가로질렀다.
이곳에서 사야 할 물건이 하나.
만나야 할 사람이 한 명.
목적지가 분명해서 중간에 걸음을 멈출 일은 없었다.
“이곳입니다.”
우리는 낡은 천막 앞에 멈춰 섰다.
복만춘이 천막을 걷고 먼저 안으로 들어갔다.
천막 안에는 사십 대쯤으로 보이는 외팔이 장한이 술을 마시고 있었는데, 복만춘을 보자마자 벌떡 일어났다.
“아니, 이게 누구야! 복 형!”
“하하하! 장 형! 오랜만이오!”
두 사내는 수십 년 만에 만난 형제처럼 덥석 끌어안았다.
“남창에 정착했단 얘기는 들었지. 이것 봐. 여우 같은 마누라랑 토끼 같은 자식이랑 사니까 신수가 아주 훤해졌구먼!”
“말도 마. 마누라 바가지에, 자식새끼는 키우는 데 돈이 뭐 그렇게 많이 드는지. 요즘 아주 죽겠다니까.”
“하하, 이 양반 엄살은. 그런데 뒤에 계신 분은……?”
“아, 내가 새로 모시게 된 분이오. 공자님. 제가 예전에 알고 잘 알고 지내던 친구입니다.”
“허천이라고 하오.”
나는 그제야 외팔이와 인사를 나눌 수 있었다.
외팔이는 하나뿐인 손으로 천막 안에 물건 중 나무 궤짝 하나를 가져와 내게 보여 주었다.
“헤헤. 사실 산다는 사람이 많았는데, 이 친구가 꼭 자기가 사겠다고 예약을 해서 물건을 빼놓고 기다렸습니다.”
뻔한 거짓말을 한 귀로 흘리며, 나는 나무 궤짝에 손을 올렸다.
“열어 봐도 되겠소?”
“이게 취급을 조심해야 하는지라……. 제가 열어 드리겠습니다.”
외팔이가 천천히 궤짝을 열자, 잠시 후 그윽한 향이 천막 안에 퍼져 나갔다.
구불구불한 자색의 뿌리가 풍성하게 뒤엉켜 있고, 가지가 일곱으로 자라 있었다. 그리고 각각의 가지마다 일곱 장의 잎이 달려 있었다.
칠지구엽초(七枝九葉草)라고 불리는, 양기가 매우 풍부한 영초였다.
‘진품이군. 그것도 꽤 상등품이야.’
나는 한눈에 칠지구엽초를 알아보았다.
구엽초 자체는 구하기가 힘든 물건이 아니지만, 상등품의 칠지구엽초 정도면 운이 닿아야 구할 수 있는 물건이었다.
“직접 구하신 거요?”
“헤헤. 제가 구한 물건은 아니고, 대신 팔아 주고 수수료를 떼먹는 겁니다. 팔 잘라 먹으면서 만든 인맥이 이럴 때 유용하더라고요.”
귀한 만큼, 당연히 가격도 상당했다.
“가격은 얼마나?”
“음. 그래도 복 형이 모시는 분이니까 제가 많이 깎아서…… 대충 이 정도만 주시면…….”
외팔이가 탁자에 올려놓은 주판을 한 손으로 열심히 굴리더니 내밀었다.
그러나 그 액수를 본 복만춘의 안색이 대번에 변했다.
“어허! 장 형. 우리 사이에 진짜 이럴 거야?”
“에이. 이것도 복 형 얼굴 봐서 최대한 싸게 드린 거요. 남는 것도 별로 없어.”
“누굴 호구 새끼로 알아? 허 참! 내가 이 바닥 뜬 지 좀 됐다고 시세를 이렇게 후려치면 섭섭해.”
“이보게 복 형. 흥분하지 말고, 내 말을 좀 들어 보고…….”
두 사람이 가격을 흥정하기 위해 벌이는 실랑이를 지켜보며, 나는 속으로 조용히 감탄했다.
‘웬만한 논검도 저만큼 치열하진 않겠다.’
나도 어디 가서 쉽게 사기당할 위인은 아니었지만, 닳고 닳은 두 중년 장사꾼이 주고받는 말에는 당해 낼 재간이 없었다.
잠시 후.
결국 외팔이 사내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한숨을 쉬었다.
“젠장. 복 형한테 걸리니 남겨 먹을 게 없군. 이 정도면 되겠소?”
우리는 외팔이가 처음 말했던 가격에서 반 가까이 깎은 가격으로 칠지구엽초를 건네받았다.
복만춘이 사람 좋게 웃으며 외팔이의 어깨를 툭툭 쳤다.
“엄살은. 다음에 또 좋은 영약이 나오면 연락해 주시오.”
“……다음엔 생각 좀 해 봐야겠소.”
“에이, 그러지 말고. 다음에 술 한 잔 거하게 살 테니까. 응?”
“젠장. 징그러우니 빨리 가쇼!”
외팔이에게 찡긋하고 눈을 깜빡인 복만춘이 어깨에 궤짝을 짊어졌다.
그런데 천막 밖으로 나오자마자 복만춘의 표정이 싹 굳었다.
그가 내게만 들리도록 속삭였다.
“예전에 일하면서 몇 번 만났던 놈입니다. 아주 독사 같은 새끼죠.”
당신이 더 독사 같은데…….
나는 복만춘의 태세 전환에 감탄하며 말했다.
“어쩐지 인정사정 안 봐주고 깎더라니.”
“마음 같아서는 더 깎고 싶었는데, 그래도 이쪽에 인맥이 많은 놈이라 봐준 겁니다. 그래야 공자님께서 다음에 또 영약을 구하실 때 올 거 아닙니까?”
“제가 오늘 복 호위, 아니 복 총관님께 오늘 많이 배웁니다.”
“헤헤. 앞으로도 어떤 일이든 믿고 맡겨 주십시오.”
‘총관’이라는 말에 복만춘의 입이 귀까지 찢어졌다.
그가 자신의 가슴을 탕탕 치며 말했다.
“자, 그럼 이제 야장을 만나러 가시죠.”
나는 어깨가 한껏 치켜 올라간 복만춘을 따라 야장을 만나러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