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mber One Star Instructor Master Baek RAW novel - Chapter 349
348화. 북해빙궁 (2)
설무걸은 자신을 추종하는 패거리들과 함께 음주가무를 즐기고 있었다.
“하하하! 오늘도 코가 삐뚤어질 때까지 마셔 보자고!”
한동안 근신하라는 설수련의 엄명이 있었지만, 설가의 적통이자 북해빙궁의 소궁주에겐 고모할머님의 귀찮은 잔소리에 불과했다.
올해 스물다섯.
발군의 재능으로 일찌감치 소궁주 자리를 확정한 설무걸은, 또래에서는 당해낼 자가 없는 고수였다.
“본 공자에게는 이 북해가 너무 좁아. 언젠가는 중원에 가서 위명을 떨쳐야겠어.”
설무걸은 북해의 차가운 달을 바라보며 탄식했다. 그를 중심으로 정자에 둘러앉은 남녀가 술잔을 비우고 있었다.
설무걸은 어려서부터 오만방자했다. 툭하면 싸움을 벌이고, 자신보다 약한 무인을 얕잡아 보았으며, 술과 여자를 탐했다.
나이가 들면 좀 나아지겠거니 하는 가문 어른들의 기대와 달리, 설가의 위세를 등에 업고 부리는 패악질이 날로 심해져 원성이 높아지고 있었다.
보통은 빙백신공의 경지가 오를수록 냉철해져야 마땅하건만, 수백 년에 걸쳐 이어진 빙궁의 무공조차 그 성정을 바꾸지 못하니, 그 또한 기이한 일이었다.
“형님이라면 반드시 중원에서도 이름을 떨치실 겁니다.”
“가실 때 저희도 데려가 주실 거죠?”
소궁주 곁에 있으면 뭐라도 떨어질까 따라다니는 사내들과 여인들이 열심히 비위를 맞췄다. 설무걸은 그들의 속셈을 뻔히 알면서도 함께 어울렸다.
“비실비실한 중원 놈들이 내 일장이나 견딜 수 있겠어?”
피식 웃은 설무걸이 가볍게 오른손을 뻗자, 구석에서 떨떠름한 표정을 짓고 있던 청년이 날아가 연못에 빠졌다. 마지못해 술자리에 끌려 나온 무인이었다.
“콜록! 콜록!”
북해의 추위는 빙궁의 무인들에게도 가혹하다. 연못에서 겨우 빠져나온 무인의 입술이 하얗게 질렸다.
설무걸이 그에게 술을 따라주며 웃었다.
“표정이 왜 그래? 술맛이 별로야?”
“아, 아닙니다…….”
히죽 웃은 설무걸이 주변을 둘러보자, 겁먹은 얼굴들이 시선을 피하는 게 보였다. 하나같이 한심한 녀석들이었다.
“하암. 따분하군.”
하품을 하는 설무걸의 눈에, 빙궁의 성문을 지켜야 할 위사가 바쁘게 뛰어가는 모습이 들어왔다.
설무걸은 그를 향해 냅다 소리쳤다.
“어이! 어디 가는 중이야? 밖에 무슨 일이라도 났어?”
설무걸의 목소리를 들은 위사가 멈춰 섰다.
그의 표정에 ‘잘못 걸렸다.’라는 낭패의 기색이 완연했다.
“소, 소궁주님…….”
“귓구멍이 막혔나? 빨리 대답 안 해?”
설무걸이 미간을 사납게 찌푸리자, 위사가 급히 예를 취했다.
저 망종에게 잘못 걸리면 며칠은 정양해야 할 정도로 얻어맞는 게 예사였으므로.
“성벽 밖에 설가의 핏줄이라고 주장하는 사내가 나타났습니다.”
“뭐라고?”
위사는 설룡휘라는 자에게 들은 이야기를 그대로 전했다.
“그러니까, 수십 년 전에 도망친 겁쟁이의 자식이 찾아왔다?”
설무걸의 입매가 비틀리며 호선을 그렸다.
그 눈은 새로운 장난감을 발견한 악동의 눈이었다.
“이거 재미있겠는데?”
자리에서 일어난 설무걸은 경공을 펼쳤다.
휘이익!
순식간에 성을 가로질러 위로 성벽을 오르자, 소궁주를 발견한 위사조장이 급히 예를 취하며 허리를 굽혔다.
“소궁주님!”
“본가의 핏줄이라는 자가 나타났다며? 어디 보자……. 호오.”
설무걸의 눈이 크게 뜨였다.
과연 한눈에 보아도 북해의 핏줄임을 알 수 있는 외모였다.
서늘한 인상과 일자로 꾹 다문 입매.
저 백발은 북해빙궁에서도 귀족이라 불리는 세 가문에서나 볼 수 있는 특징이었다.
“새끼. 재수 없게 생겼네.”
자신을 올려보는 눈빛이 건방진 것이 제법 신선했다. 또래에게선 한 번도 느껴 본 적 없는 시선이었다.
“어이. 너 이름이 뭐라고?”
“설룡휘라 말했을 텐데. 그대는 누구지?”
“그대?”
킥킥 웃은 설무걸은 누가 말리기도 전에 성벽 아래로 뛰어내렸다.
콰아앙!
포탄이라도 떨어진 듯 설무걸이 뛰어내린 자리에 큰 소음이 일었고, 눈발이 사방으로 휘날렸다.
일부러 천근추의 수법을 사용해 눈발을 거세게 일으켰다.
이 시건방진 녀석에게 눈보라를 뒤집어씌워 망신을 줄 의도였다.
그런데…….
“피했어?”
마치 눈보라가 스스로 설룡휘를 피해 가는 것처럼 보였다. 보법의 수준이 상당하지 않고서야 불가능한 기예였다.
설무걸의 입매가 더욱 비틀렸다.
“과연. 본 공자 앞에서 싸가지가 없게 굴 만해.”
“귀하의 이름은?”
“설무걸. 북해빙궁의 소궁주다.”
깜짝 놀라리라 예상했는데, 설룡휘는 무덤덤한 표정으로 다시 물었다.
“아버님의 함자는?”
“신 자, 철 자를 쓰신다만 그건 왜 묻지?”
설신철이라……. 숙부님의 아들이었군. 그렇게 중얼거린 설룡휘가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물었다.
“올해 나이가 어떻게 되지?”
“스물다섯인데 왜?”
“난 스물여덟이다.”
“어쩌라고? 그리고 이 새끼가 왜 갑자기 반말이야?”
황당해하는 설무걸에게, 설룡휘는 당연하지 않냐는 눈빛으로 말했다.
“내가 너의 사촌 형이기 때문이지. 내 아버님의 함자는 설 신 자, 우 자를 쓰신다. 네게는 백부님이 되신다.”
“뭣……. 푸하하하!”
설무걸은 갑자기 나타나 사촌 형임을 자처하는 상대를 보며 폭소를 터트렸다.
그러다 돌연 정색하며 말했다.
“살다 보니 별 희한한 개소리를 다 듣는군.”
외모나 분위기, 느껴지는 무공의 성질로 보아, 설룡휘라는 자는 북해빙궁의 핏줄이 거의 확실했다.
하지만 그래서 어쩌라는 것인가?
“네가 내 사촌 형이라고? 설령 맞다고 해도, 그게 뭐 어쨌다는 거지?”
설무걸의 두 눈에 살기가 맺혔다.
“건방도 정도껏 떨어야지. 그래 봤자 도망자의 자식인 주제에.”
휘이이이잉-!
설무걸을 중심으로 북풍한설이 매섭게 몰아치고, 두 손에는 새하얀 기류가 뒤덮였다.
빙백신공의 경지가 상당한 수준에 이르렀음을 보여 주는 방증.
그러나 정면에서 그 기세를 받아 내는 설룡휘의 표정은 여전히 무심했다. 붓으로 그린 듯한 눈썹만 한번 꿈틀거릴 뿐이었다.
“방금 내 아버지를 모욕했나?”
“그렇다면 어쩔래, 이 새끼야.”
“……사과하도록.”
설무걸에게 설룡휘는 새로운 장난감 그 이상은 아니었다. 그가 킥킥 웃으며 말했다.
“사과? 받고 싶으면 나한테 이겨 봐. 그럼 얼마든지 사과하지. 깍듯하게 형님이라고도 불러줄게. 응?”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설무걸은 북해빙궁의 소궁주였다.
즉, 또래에서 무공이 가장 강하다는 의미였다.
게다가 소궁주가 된 이후로는 완전한 빙백신공을 전수받기 시작해, 그의 무공은 이제 또래를 넘어 빙궁의 원로들과 비교해야 할 수준이었다.
“하필이면 소궁주한테 걸리다니…….”
“이러다 큰일을 치르게 생겼군.”
“서둘러 태상궁주님께 알려라! 소궁주님을 막을 수 있는 건 그분뿐이야!”
성벽 위에서 지켜보고 있던 위사들, 모여들기 시작한 무인들이 안타까운 시선으로 설룡휘를 바라봤다.
“보이나?”
설무걸은 많은 사람의 시선을 받는 것을 즐겼다.
모두가 보는 자리에서, 설가의 새 식구를 길들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설룡휘는 무덤덤한 표정으로 공력을 끌어올릴 뿐이었다.
“시작해도 되겠나?”
“하하하! 물론이지! 선수를 양보해 줄 테니 언제든지 네가 하고 싶을 때……!”
퍼억!
설무걸의 얼굴이 옆으로 돌아갔다. 놀란 그의 눈동자가 번쩍 뜨였다.
‘언제?’
뭉친 눈덩이가 설무걸의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설룡휘가 발밑의 눈을 차서 얼굴에 맞춘 것이다.
만약 날아온 것이 눈덩이가 아니라 암기였다면…….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모골이 송연해졌다.
“이……. 비겁한 새끼가…….”
설무걸은 뺨에 묻은 눈을 손으로 털어내고 설룡휘를 노려봤다.
잠시 방심했을 뿐이다. 설마 발로 눈을 차서 날릴 줄은 예상치 못했다.
“감히 내가 말하고 있는데 기습을 해!”
설룡휘는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부들거리는 설무걸을 바라봤다.
“상대의 수준도 파악할 줄 모르는 너 같은 애송이가.”
설룡휘의 일자로 굳은 입꼬리가 아주 미세하게 올라갔다. 북해의 얼음보다 차가운 조소였다.
“정말 북해빙궁의 소궁주인가?”
“이 새끼가…….”
설무걸의 얼굴이 분노로 악귀처럼 일그러졌다. 그가 살기를 피워올리며 설룡휘에게 쇄도했다.
“뒤지려고!”
쩌저적-!
주변의 공기가 얼어붙었다. 눈 위를 미끄러지듯 쇄도한 설무걸의 일장이 설룡휘의 심장을 노렸다. 명백한 살초였다.
퍼어엉!
그러나 설무걸의 공격은 간단히 빗나갔다. 마치 스스로 허공을 때린 것 같았다. 설룡휘의 모습은 흔적조차 없었다.
“뭐야? 어디로 갔어!”
두리번거리는 설무걸의 등 뒤에서, 설룡휘의 서늘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손윗사람으로서 너에게 가르침을 내리마.”
“닥치지 못……!”
빠악!
검집째로 휘두른 창룡신검이 설무걸의 옆구리를 때렸다. 끔찍한 통증에, 설무걸의 눈이 튀어나올 듯 커졌다. 뼈에 금이 간 듯했다.
“끄아악!”
분노에 눈이 먼 설무걸은 고통을 무시하며 몸을 비틀었다. 쌍장에 휘감긴 빙백신공의 새하얀 기류가 사방에서 폭발했다.
퍼버버벙!
그러나 그중 설룡휘에게 닿는 것은 하나도 없었다. 전부 귀신같은 몸놀림으로 피해내는데, 성벽 위의 구경꾼들에게서 감탄사가 연이어 터져 나왔다.
“북해에서 이런 말이 어울릴지 모르겠지만…….”
“죽여 버린다!”
“온실 속에서 자란 애송이로군.”
무심한 표정으로 읊조린 설룡휘는 검을 휘둘렀다.
그의 검에 새겨진 한빙기는 설무걸보다 옅었지만, 훨씬 더 예리했다. 검봉이 설무걸의 어설픈 방어를 뚫고 명치를 찔렀다.
“커헉!”
허리를 꺾는 설무걸의 얼굴 앞으로 무릎이 솟구쳤다.
빠악!
코피를 줄줄 흘리며 주춤주춤 물러나는 얼굴에 처음으로 공포가 어렸다.
“이, 이 새끼가……!”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군.”
무심한 목소리가 설무걸에게는 사신의 음성처럼 들렸다.
이어진 것은 비무가 아니라 일방적이고 압도적인 구타였다.
설무걸의 전신에 멍이 들고, 얼굴은 퉁퉁 부었다. 뼈에도 몇 군데나 금이 갔다.
“그, 그, 그만…….”
결국 고통이 자존심을 눌렀다. 설무걸의 입에서 항복 선언이 흘러나왔다. 개미만 한 목소리였다.
“사과. 그리고 호칭.”
잠시 검을 멈춘 설룡휘가 그를 똑바로 바라보며 나직이 말했다. 완전히 하수를 바라보는 눈빛이었다.
“크으윽. 이 개새끼가 진짜……!”
설무걸의 표정이 굴욕으로 일그러졌다. 눈이 반쯤 뒤집혔다. 그의 몸에서 그 전과는 차원이 다른 살기가 폭발하려는 순간이었다.
“이게 무슨 짓이냐!”
쩌렁쩌렁한 일갈이 설무걸의 살기를 지우고, 두 사람 사이에 붉은 궁장의 여인이 내려섰다.
휘리릭!
거대한 존재감이 일대의 공기를 짓누르는 듯했다.
설룡휘, 아니 그를 연기 중인 백수룡의 시선이 설수련을 응시했다.
‘이제야 왔군.’
백수룡은 그녀가 자신을 지켜보고 있었다는 걸 알고 있었다.
자신의 종손(從孫)이 구타를 당하는데도 나서지 않은 이유도 짐작이 됐다.
‘나를 충분히 살펴보고 싶었던 거겠지. 진짜 설가의 핏줄인지 아닌지. 이제야 대충 판단이 된 건가?’
속내는 복잡했지만, 겉으로 드러난 설룡휘의 표정은 여전히 무심했다.
설수련은 눈을 무시무시하게 치켜뜨고 설룡휘를 노려봤다.
“본궁의 소궁주를 이리 만들다니. 이러고도 네가 살기를 바라느냐?”
“손윗사람으로서 버릇을 가르쳤을 뿐입니다.”
“……손윗사람이라니?”
처음 듣는 이야기라는 듯 의아한 표정을 짓는 설수련.
역시나 뱃속에 능구렁이가 든 노괴다웠다.
검을 거둔 설룡휘는 그녀에게 포권을 취했다.
“고모할머님께 인사드립니다. 설신우의 아들, 설룡휘입니다.”
“네가…… 신우의 아들이라고?”
“예.”
놀란 표정으로 백수룡의 얼굴과 머리색을 꼼꼼히 살핀다. 뿐만 아니라 노골적인 공력의 기파가 전신을 훑어내린다.
[걱정 마라. 술법을 알아보진 못할 테니.]‘걱정 안 해.’
설수련은 강했다. 피부를 건드리는 기파만으로도 느낄 수 있었다. 중원 무림에서도 보기 드문 초고수였다.
하지만 백수룡은 그녀를 속일 자신이 있었다. 충분한 정보와 창룡신검의 도움, 스스로의 능력을 믿었다.
설수련이 의심을 거두지 않은 표정으로 물었다.
“어떻게 내가 누구인지 바로 알아보았느냐?”
“……아버님에게 많은 말씀을 들었습니다. 또한, 이만큼 강대한 기파를 가진 여인이 북해에 또 누가 있겠습니까.”
정중하면서도 상대를 치켜세우는 언변.
그 대답에 설수련의 입꼬리가 희미하게나마 올라갔다.
‘북해의 사내답지 않게 말을 잘하는 것이, 신우 그 아이와 닮았군.’
아직 확실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외모도, 기질도, 귀한 가문에서 태어나 물려받은 태생적인 품격까지.
설가의 핏줄은 결코 아무나 흉내 낼 수 없는 것이었다.
‘빙백신공을 익혔어. 경지는 그리 높지 않아. 고작해야 중반부까지밖에 익히지 않은 것 같은데……. 무걸이를 압도했다 이거지?’
심지어 천재적인 무재를 타고났다는 말이 아닌가.
보고도 믿기지 않았다.
다른 가문의 아이라고 해도 탐이 날 인재였다.
이 아이가 정말로 설가의 핏줄이라면?
의심을 완전히 지운 것은 아니지만, 설수련의 마음이 설룡휘라는 인물에게 호의적으로 기울었다.
“신우 그 아이가…… 내 얘기를 자주 했단 말이냐?”
“가문을 등진 것을 돌아가실 때까지 후회하셨습니다.”
“죽었다는 말이구나…….”
설수련의 표정에 만감이 교차하는 듯했다. 성벽 위에 몰려든 구경꾼들을 바라본 그녀가 말했다.
“일단 함께 가문으로 가자꾸나. 보는 눈이 많다.”
그녀는 고개를 돌려 차가운 눈으로 설무걸을 쏘아봤다.
“너도 따라오너라.”
“예…….”
고개를 푹 숙인 설무걸이 이를 악물며 대답했다.
설수련이 두 사람과 함께 가문으로 돌아가려고 할 때였다.
“본궁에서 도망친 죄인의 자식이 돌아왔다고 하던데. 마땅히 집법전으로 먼저 가야 하는 것이 아닙니까?”
닫혀 있던 성문이 활짝 열리고, 은휘령이 한송백과 함께 모습을 드러냈다.
그 순간, 백수룡과 은휘령의 눈이 마주쳤다.
극히 짧은 순간이었지만, 백수룡은 묘한 기시감이 들었다.
‘뭐지?’
그러나 생각을 길게 이어 나가지는 못했다. 설수련이 그의 앞을 막아서며 무시무시한 기세를 뿜어낸 것이다.
“죄인이라니! 감히 누가 설가의 핏줄을 함부로 핍박한단 말인가!”
설수련의 전신에서 광폭한 기파가 번져 나갔다. 바닥에 쌓인 눈이 허공으로 치솟아 눈보라를 만들고, 주변의 온도가 급격히 내려갔다.
“……!!”
“……!!”
그녀의 무력시위에 성벽 위의 무인들이 모두 경악했다. 표정이 변하지 않은 자는 은휘령과 한송백 정도였다.
은휘령이 싸늘한 어조로 말했다.
“전 궁주께선 본궁의 절차를 무시하시겠다는 겁니까?”
“본궁이 연좌제를 적용하지 않거늘, 어찌 집법전으로 데려간단 말이오?”
“그자가 정말 북해의 핏줄인지 확인하는 것이 우선입니다. 본궁의 집법전이 해야 할 일입니다.”
은휘령이 정론을 내세웠으나, 설수련이 코웃음을 쳤다.
“그 점은 본가에서 먼저 사정을 파악한 후에 집법전으로 보낼 것이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되오. 더 이상 양보할 수 없으니 그리 아시오. 가자.”
“이보시오!”
대장로 한송백이 소리쳐 불렀으나, 설수련은 그 말을 무시한 채 두 사람을 데리고 성안으로 들어갔다.
설가의 위세가 얼마나 높은지 보여 주는 광경이었으나, 다들 그러려니 여길 뿐이었다.
“설룡휘라…….”
“엄청난 걸 봐 버렸군.”
“본궁이 어찌 되려고…….”
다만 모두의 눈과 머리에, 설룡휘라는 이름이 확실히 각인된 것만은 분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