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mber One Star Instructor Master Baek RAW novel - Chapter 354
353화. 아무래도
“방금 뭐라고…….”
“……설수련을 죽인다?”
은휘령과 한송백은 부릅뜬 눈으로 설룡휘를 바라봤다.
북해에서 태어난, 그것도 설가의 핏줄이라면 감히 설수련에게 그토록 불경한 말을 내뱉을 수 없었다.
만약 누가 듣기라도 했다면?
‘호위들을 물리자마자 기막을 펼쳤기에 망정이지…….’
속으로야 얼마든지 설수련을 욕할 수 있겠지만, 다른 사람 앞에서 죽이겠다고 말하는 것은 차원이 다른 문제였다.
아무리 은휘령과 설수련의 사이가 나쁘다고 해도 절대 해서는 안 될 말인 것이다.
“너는…… 북해의 사람이 아니구나.”
은휘령은 직감적으로 눈앞의 사내가 북해의 핏줄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순간 백수룡의 입매가 호선을 그렸다. 궁주를 대하는 그의 말투가 자연스럽게 변해 있었다.
“맞소. 나는 북해의 핏줄도 아니고, 설가 출신은 더더욱 아니오. 하지만 빙백신공을 익혔고, 빙궁의 신물인 빙백환을 가지고 왔지. 당신과 독대할 자격은 충분하다고 생각하는데.”
“이놈! 무슨 꿍꿍이로 본궁에 잠입했느냐!”
노성을 터트린 대장로 한송백이 경공을 펼쳐 백수룡의 뒤쪽으로 돌아갔다.
섣불리 출수하는 대신, 도망치지 못하도록 우선 퇴로를 가로막은 것이다.
북해빙궁의 신물인 빙백환을 본 것도 엄청난 충격이었지만, 당장은 신물을 들고 나타난 인물의 정체가 더욱 수상쩍었다.
“네 정체를 밝히거라.”
은휘령의 몸에서도 그전과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막강한 기파가 뿜어졌다.
콰콰콰콰콰!
궁주전 안에 눈보라가 세차게 몰아쳤다.
앞에는 북해빙궁의 궁주. 뒤에는 대장로가 형형한 눈으로 노려보고 있었다.
북해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드는 강자들에게 앞뒤로 포위된 상황.
그러나 백수룡은 북풍한설의 한가운데서도 꼿꼿이 서 있었다.
“육십여 년 전, 설수련은 내 스승이신 빙월신녀 은예린을 속여 혈교가 판 함정으로 유인했소.”
“……!!”
“……!!”
그렇게 시작된 이야기.
백수룡은 차분한 목소리로 빙월신녀가 혈교에 잡힌 이후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설명했다.
‘은사부. 약간의 거짓말은 이해해 주시오. 내 전생의 일까지 말했다간 아무래도 믿지 않을 테니.’
빙월신녀에게서 무공을 배운 부분은 그럴듯하게 꾸며 낼 수밖에 없었다.
간신히 혈교를 탈출한 빙월신녀는 복수를 꿈꿨으나 모든 무공을 잃었고, 삶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깨닫고 자신의 무공을 정리해 비급을 만들었다. 그리고 언젠가 은신처를 찾아올 후인에게 복수와 유언을 맡겼다는 이야기.
“……나는 우연히 스승께서 남기신 비급과 일기를 발견했고, 그분이 남기신 유언과 복수를 이행하기로 다짐했소. 이곳에 오기 전에 스승의 옛 정인을 먼저 찾았는데…….”
백수룡은 섬서에서 문율을 만난 이야기, 그리고 현무학관에서 설신우를 만나게 된 과정도 설명했다.
“……그렇게 나는 설가가 혈교와 손을 잡았음을 알게 되었고, 설룡휘라는 인물로 변장해 이곳을 찾아오게 되었소.”
백수룡의 긴 이야기가 끝났다.
무겁게 침묵하던 은휘령은 천천히 기세를 거둬들였다.
그러나 의혹의 시선을 완전히 거두지는 않았다.
“……네 말을 온전히 믿기는 어렵다.”
“빙백환을 보여 준 것으로는 부족하다는 거요?”
“더 보여 줄 것이 있느냐?”
고개를 끄덕인 백수룡은 빙백신공을 끌어올렸다.
지금껏 남들 앞에서 적당히 드러내던 수준이 아닌, 검노로부터 은사부의 제자로 인정받게 해 준 빙월신녀의 신공이었다.
콰콰콰콰콰-!
눈보라가 백수룡을 중심으로 휘몰아쳤다.
대대로 북해빙궁의 후계자에게 전해지는 완전한 빙백신공.
그 이상의 무언가가 느껴지는 무공에, 은휘령의 눈이 더할 수 없이 커졌다.
“그 신공은……!”
“비슷하지만 조금 다르오. 빙월신녀만의 빙백신공이니까.”
기운을 가라앉힌 백수룡은 말문을 잃은 은휘령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미리 못 박아 두는데, 나는 북해빙궁의 권력에는 관심 없소. 내가 원하는 것은 스승의 명예를 회복하고, 그 원수를 갚는 것뿐이오.”
“…….”
침묵하는 은휘령의 눈에는 혼란이 가득했다.
갑자기 나타나 스스로를 수십 년 전 실종된 빙월신녀의 제자라고 주장하는 청년.
‘덥석 믿는 것이 더 이상한 일이지.’
아무리 백수룡이 빙백환을 가지고 있고, 빙백신공을 익혔다고 해도 믿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빙월신녀가 혈교가 판 함정에 빠졌다면, 함께 사라졌던 빙백환 또한 혈교가 보관하고 있었을 거라는 추론이 충분히 가능할 테니까.
‘실제로 빙백환 하나는 음양마존이 보관하고 있었지.’
때문에 백수룡은 자신의 말을 믿어 달라고 재촉하지 않았다. 혼자서 생각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할 테니 말이다.
“한 가지만 더 말하지. 내가 설수련이나 혈교에서 보낸 자라면, 번거롭게 왜 이런 짓을 하겠소? 가만히 있으면 두 가문은 알아서 무너질 거고, 북해는 곧 설가 천하가 될 텐데.”
그 말에 은휘령의 눈이 사납게 치켜뜨였다.
“혀를 함부로 놀리고도 이곳에서 무사히 나갈 수 있을 성싶더냐?”
“걱정 마시오. 어떤 상황에서도 내 한 몸 내뺄 자신은 있으니.”
백수룡은 피식 웃었다.
은휘령이 매서운 눈으로 백수룡을 노려볼 때였다.
“아마도……. 저 사내의 말은 전부 사실일 겁니다.”
한송백의 탄식이었다.
백발백염의 노인은 회한이 깃든 얼굴로 한숨을 쉬며 천장을 바라보았다.
“문율이라는 이름. 오래전에 들어 본 기억이 있습니다.”
한송백은 은예린, 설수련과 동시대에 태어난 무인이었다.
“저희 셋은…… 한때 친우였습니다.”
뛰어난 무재를 가지고 태어났지만, 압도적인 한 명 때문에 일찌감치 소궁주 경쟁을 단념해야 했던 두 사람.
당시 한송백은 소궁주 자리를 빠르게 단념했다. 하지만 경쟁심이 강한 설수련은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은예린과 경쟁했다.
결국 은예린이 소궁주로 확정되었을 때, 설수련은 분함에 눈물을 흘리면서도 은예린을 축하해 주었다.
이후에도 세 사람은 종종 어울리거나 서신을 주고받았고, 문율이란 사내에 대해서도 그때 알았다.
아마 설수련 역시 문율이란 사내에 대해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럼 설수련이 그 정보를 이용해 은예린을 함정에 빠뜨린 것이 아귀가 들어맞는다.
“그때 단념한 줄 알았건만……. 뒤에서 그런 흉계를 꾸몄을 줄이야.”
명백한 증거는 없다.
하지만 한송백은 오래전부터, 은예린의 실종이 설수련과 관련돼 있지 않을까 의심해 왔다.
그리고 이번에 백수룡의 말을 들으면서 확신하게 되었다.
한송백은 단호한 표정으로 은휘령을 바라봤다.
“궁주. 설수련은 그러고도 남을 인물입니다. 이미 수십 년간 겪어 오지 않았습니까.”
“정녕 그자가……!”
은휘령의 두 눈에서 새하얀 불꽃이 치솟는 듯했다.
한송백과 마찬가지로 은휘령도 오랜 의혹을 품고 있었다.
빙월신녀가 실종된 후, 이득을 본 사람은 설수련과 설가뿐이었으니까.
백수룡의 증언은 두 사람의 의심을 확신으로 만들었을 뿐이다.
‘다행이군.’
백수룡 입장에서는 생각보다 일이 쉽게 풀린 셈이었다.
은휘령이 끝까지 믿지 않았다면, 설득이 쉽지 않았을 테니 말이다.
“그렇다면, 네가 내 고모님의 제자라는 것이구나.”
은휘령은 경계심이 다소 누그러든 눈빛으로 백수룡을 바라봤다. 백수룡은 흠칫 놀라 뒤로 한 걸음 물러났다.
“다시 말하지만, 나는 소궁주 자리에 관심 없소. 지금 쓴 감투도 너무 많거든. 그러니 딴 사람 알아보시오.”
“……누가 시켜 준다더냐?”
“아니면 됐고.”
은휘령은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백수룡을 바라봤다.
이후의 이야기는 빠르게 진행되었다.
은휘령은 설수련을 처단하고, 설가의 썩은 부분을 도려내는 것에 동의했다.
“외세를 끌어들여 권력을 차지한 배신자, 아니 반역자다. 결코 용납할 수 없다.”
문제는 방식이었다.
설수련은 북해빙궁에서 가장 큰 가문의 수장이었다.
뿐만 아니라 북해에는 설가를 추종하는 가문이 수두룩했다.
전체로 따지면, 설가를 따르는 세력이 전체의 칠 할이 넘었다.
“정면승부는 무리다. 승산을 논하려면 기습을…… 왜 그리 내 얼굴을 보는 것이지?”
은휘령은 아까부터 자신을 빤히 바라보는 백수룡의 시선에 불쾌감을 드러냈다.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백수룡은 그녀의 얼굴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역시 닮았어.”
“닮다니?”
처음 은휘령을 보았을 때 느꼈던 기시감.
백수룡은 이 기회에 그것을 확인해 보고 싶었다.
“사실 아까 하지 않은 말이 있소. 이곳에 오기 전에 마중천을 죽여서 알아낸 정보인데.”
“……죽였다고? 혈교의 인물을 말이냐?”
“중요한 건 그게 아니고.”
대수롭지 않게 어깨를 으쓱인 백수룡이 말을 이었다.
“삼십오 년 전, 중원 무인들이 북해빙궁에 숨어들어 혈사를 일으켰다고 들었소.”
그 말에 은휘령의 눈에 은은한 살기가 돌았다. 그녀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날, 북해의 많은 이들이 가족과 친우를 잃었다. 나 역시 어린 동생을 잃었지.”
은하연.
당시 은휘령의 막냇동생은 고작 열 살에 불과했다.
시체라도 찾을 수 있을까 싶어 눈밭을 파헤쳤지만, 끝내 흔적도 찾지 못했다.
은휘령이 아픈 과거를 떠올리는데, 백수룡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건 중원 무림인들의 짓이 아니오. 혈교의 짓이었지.”
“……뭐라?”
“그리고 그걸 사주한 건 설수련이었소.”
백수룡은 마중천에게 들은 이야기를 은휘령에게 그대로 전했다. 그녀의 얼굴이 점점 악귀처럼 일그러졌다.
“죽여 버리겠다……!”
전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농도 짙은 살기가 흘러나왔다.
당장 설수련을 죽이러 가겠다는 은휘령을 한송백이 간신히 뜯어말렸다.
“궁주! 진정하시오! 지금 설가로 쳐들어가면 그대로 내전이오!”
“끄으윽……!”
이를 악물고 분노를 삼키는 은휘령의 두 눈에 핏발이 섰다. 손톱이 파고든 손바닥에서 핏물이 뚝뚝 떨어졌다.
그런데 그 모습을 지켜보는 백수룡의 반응이 묘했다.
“역시…….”
“역시라니? 뭐가 더 있는 게냐?”
한송백의 질문에, 백수룡은 허탈하다는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인연이 이렇게 이어지기도 하는군.”
백수룡은 악인곡에서 구음마녀에게 들었던 이야기를 떠올렸다.
-……혈교의 시설에서 강제로 무공을 배워야 했어. 내 또래의 아이들, 여민의 엄마도 그곳에서 만났지.
어릴 적 엄마를 잃고 고아가 된 여민의 이야기.
-돌아가신 엄마가 그랬어요. 빙공을 익히면 자신처럼 단명할 거라고.
마중천에게 들은 혈교의 용서할 수 없는 짓거리.
-마침 본교에도 실험체가 필요하던 시기였습니다. 북해의 어린 것들은 빙백신공을 익히기 좋은 체질이니, 서로 상부상조하는 거래였지요.
머릿속에서 세 사람의 이야기가 조합되어, 한 가지 결론에 이르렀다.
“궁주. 아무래도 내 제자 중 한 명이 당신 조카인 것 같소.”
“뭐, 라고……?”
더 이상 어떤 일에도 놀라지 않으리라 생각했던 은휘령의 표정이 한순간에 무너지고 말았다.
* * *
쩌저쩍! 퍼어엉!
잘게 부서진 얼음알갱이가 사방으로 흩날렸다.
스스로 만들어 낸 옅은 눈보라 속에서 유영하는 긴 팔다리는 무희를 떠올리게 했다. 위지열이 만들어 준 부채를 휘두를 때마다 냉기가 사방에 뿌려졌다.
이제는 완전히 새하얗게 물든 머리카락에 햇빛이 올올이 반짝였다.
“……그만.”
주인이 자리를 비운 백룡장.
서리애는 백수룡의 부탁으로 여민에게 빙공을 가르치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이 아이를 어떻게 가르쳐야 할지 도통 감을 잡지 못하고 있었다.
“정말로 빙공을 배운 게 반년도 안 됐다고?”
“네. 몇 달 안 됐는데요?”
“말이 안 되는데…….”
오다가다 보았을 때는 그리 큰 관심이 가지 않던 아이였다.
헌원강, 위지천에 비하면 여민의 존재감은 미약했으니까.
하지만 여민이 본격적으로 빙공을 익힌 지 넉 달도 되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된 순간, 서리애는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이 애는 천재야.’
서리애는 현 북해빙궁주의 이름을 떠올렸다.
은휘령.
소궁주 경쟁을 벌였던 시절, 압도적인 재능과 기량으로 다른 후보들을 절망에 빠트렸던 은씨 가문의 천재.
지금 여민의 모습은 은휘령을 떠올리게 하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닮았다.
“선생님? 아까부터 왜 말이 없으세요?”
“잠깐 이리 와 보렴.”
서리애는 여민에게 다가가 손을 뻗어 머리카락을 만졌다. 여민은 잠시 움찔했다가, 그냥 내버려 두었다.
북해의 사람들만이 구별할 수 있는 특유의 백발.
처음에는 오랜만이라 긴가민가했지만, 이제는 확신할 수 있었다.
“혹시 너희 부모님 중에 은씨가 계시니?”
“네?”
여민은 놀라서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녀는 쉽게 자기 이야기를 꺼내는 성격이 아니고, 백수룡도 타인의 과거를 캐묻는 성격이 아니었다.
그래서 엄마의 이름은 백수룡에게도 말한 적이 없었는데.
“선생님이 그걸 어떻게 아세요?”
청룡학관 이 학년 여민.
그녀는 자신이 북해의 가장 고귀한 혈통임을 알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