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mber One Star Instructor Master Baek RAW novel - Chapter 355
354화. 기대되는구나
“내게, 조카가 있다고……?”
은휘령은 얼이 빠진 얼굴로 백수룡을 바라봤다.
평소 얼음장 같기로 유명한 그녀의 얼굴에, 오늘만큼 많은 감정을 드러낸 것은 궁주가 된 이후로 처음이었다.
백수룡이 고개를 끄덕였다.
“청룡학관 이 학년, 이름은 여민이오. 처음 봤을 때부터 닮았다고 생각했는데…….”
백수룡은 악인곡에서 구음마녀를 만났던 일을 이야기했다.
혈교의 실험체였다가 겨우 탈출한 구음마녀가 어떤 일을 겪었는지, 어린아이들을 납치한 혈교가 무슨 짓을 했는지, 구음마녀에게 들은 그대로 가감 없이 전했다.
“천인공노할 짓을……!”
“이런 찢어 죽일 놈들!”
이야기가 계속될수록 은휘령과 한송백의 표정이 분노로 일그러졌다. 백수룡은 덤덤히 이야기를 계속했다.
“혈교는 북해의 어린아이들을 납치해 실험체로 쓴 거요. 내 생각엔 그곳에 궁주의 동생…… 이름이?”
“……은하연.”
“은하연도 있었을 거요. 구음마녀와 함께 혈교를 탈출했고, 헤어진 후에 딸을 낳은 거겠지.”
생각해 보니, 그 당시 아이들의 탈출을 도운 자가 있다고 벽안귀에게 들었던 기억이 났다.
-입가에 지렁이 같은 흉터가 있는 소년이었다. 혈교를 굉장히 증오하던……. 나는 혹시 네가 아닐까 생각했다.
-난 아니야. 누군지 나도 궁금하군.
악인곡을 떠나기 전, 벽안귀와 단둘이 잠시 나눴던 대화.
한동안 잊고 지내다 문득 그 소년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언젠가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르지. 살아 있다면.’
백수룡은 그 소년에 대한 생각을 길게 이어 가지 않았다. 지금은 그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으니까.
은휘령이 복잡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 아이가 정말 내 조카라고 확신할 수 있느냐?”
“우연히 닮은 것일 수도 있겠지. 하지만 맞을 거요. 당신 조카가 아니라고 해도, 북해의 핏줄인 것만큼은 확신할 수 있소.”
“그, 그럼 하연이는 지금 딸과 함께 살고 있는 것이냐?”
“……안타깝지만 여민은 어머니가 십 년도 전에 죽었다고 했소.”
입술을 꽉 깨문 은휘령이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살아서 도망쳤다면 고향으로 돌아왔어야지, 어째서 객지에서 딸을 낳아 기르다 죽었단 말인가.”
“……그런 자세한 사정까진 모르겠군. 나중에 조카를 만나면 직접 물어보시오.”
백수룡은 작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는 제자들에게 굳이 과거사를 먼저 묻지 않는 성격이었다.
스스로가 말할 수 없는 사연을 품고 있기에, 다른 사람에게 과거를 묻는 것 역시 조심스러웠다.
하지만 이럴 줄 알았으면 조금 더 물어볼걸, 하고 작은 후회가 되었다.
‘더 빨리 알았다면, 여민을 이곳에 데려올 수 있었을 텐데.’
“여민, 여민이라…….”
은휘령은 그 이름을 몇 번이고 되뇌었다.
어린 나이에 납치돼 죽은 줄로만 알았던 어린 동생이, 세상에 혈육을 남기고 떠났다니.
믿기 힘든 이야기였다.
하지만 이 기적 같은 이야기를 한번 믿어 보고 싶은 것이 은휘령의 솔직한 심정이었다.
“청룡학관의 학생이라고 했느냐?”
“이번 일이 잘 마무리되면, 겨울방학 때 제자를 데려오겠소.”
“……그 전에 내가 그 아이를 보러 갈 수도 있다.”
“그것도 좋지. 이제 우리가 지금 해야 할 일에 집중합시다.”
은휘령은 고개를 끄덕였다.
배신자 설수련을 처단하고 북해빙궁을 원래 모습으로 돌려놓는 것.
그것이 선행되어야만, 당당하게 조카의 얼굴을 마주할 수 있을 것이다.
백수룡, 은휘령, 한송백은 머리를 맞대고 설수련을 처단할 방법을 강구했다.
“혈교의 사절은 정확히 언제 도착하오?”
“닷새 후에 도착할 것이라는 연통이 왔다.”
“……우리에게 시간이 많지 않다는 뜻이군.”
백수룡의 미간이 가늘게 좁혀졌다.
혈교의 사절이 도착하면, 주도권은 완전히 설가에게로 넘어갈 것이다.
그 전에 설수련을 죽이고, 혼란에 빠진 북해빙궁을 수습해 혈교의 사절을 맞이해야 한다.
당연히 쉬운 일일 리 없었다.
“전면전으로 가면 필패입니다.”
한송백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설가의 영역은 북해빙궁 안에 있는 또 다른 성이나 다름이 없었다.
이쪽에서 먼저 쳐들어간다는 것은 어불성설.
특히 설수련의 주변에는 항상 수십 명의 무인이 호위하고 있고, 방 안에도 그림자 속에 호위가 몸을 숨기고 있었다.
또한 설수련도 북해에서 첫손에 꼽을 만큼의 초고수였기에, 양측이 정면으로 충돌하면 얼마나 많은 피가 흐를지 짐작조차 되지 않았다.
“설수련을 설가 밖으로 끌어낼 수만 있어도 방법이 생길 텐데…….”
백수룡이 턱을 만지며 중얼거릴 때였다.
“단 한 번, 설수련을 밖으로 끌어낼 기회가 있다.”
은휘령이었다.
그녀가 궁주전 안을 둘러보며 말을 이었다.
“사흘 후 이곳에서 대회의가 열릴 것이다. 북해를 대표하는 가문의 원로들, 고수들이 모두 모여서 중원 침공을 결정하는 마지막 자리가 되겠지.”
며칠 전 설룡휘가 나타나면서 흐지부지되었던 회의.
그 후로도 설수련은 계속해서 은휘령을 압박했지만, 은휘령은 끝까지 버티면서 결정을 미뤄 왔다.
그것이 마지막 기회로 돌아온 것이다.
백수룡이 눈을 빛내며 말했다.
“그날이 설수련을 칠 절호의 기회겠군.”
“또한 유일한 기회겠지.”
눈이 마주친 두 사람이 고개를 끄덕였다.
설수련과 설가의 원로들을 궁주전 안에 가둔다.
밖에서 문을 걸어 잠그면, 이 안에서 설수련과 그녀를 따르는 고수들만 상대하면 된다.
백수룡이 궁주전의 정문을 돌아보며 말했다.
“저 문, 얼마나 버틸 수 있소?”
“적어도 일 각의 시간은 벌 수 있을 것이다.”
“그 안에 끝장을 봐야겠군.”
설수련과 설가의 원로들을 쳐낸다면, 설가의 거대한 세력도 결국 오합지졸로 전락할 것이다.
하지만 모든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었다.
“문제는 설가를 따르는 가문들입니다.”
한송백이 침중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본궁에 설가를 따르는 가문이 칠 할에 가깝습니다. 대회의날 이 안에 그들도 있을 텐데, 그들이 설가 편을 들면 저희가 크게 불리해집니다.”
“설수련이 지금까지 한 짓을 알리고 협조를 구한다면?”
백수룡의 말에, 한송백은 어두운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어려울 걸세. 명백한 증거가 없지 않나. 게다가 저들 중에는 길게는 수십 년 가까이 설가에 충성한 가문들도 있으니.”
“음…….”
잠시 생각하던 백수룡이 물었다.
“대장로. 한 가지만 묻겠소. 설수련에게 충성하는 가문들. 그들 대부분이 진심으로 충성하는 거요?”
한송백은 결코 아니라며 고개를 저었다.
“그럴 리가 있겠나. 그들 중 절반은 회유와 협박에 강요된 충성일세. 하지만 그들의 마음을 돌리기란 거의 불가능할 게야…….”
노인의 얼굴에 짙은 그늘이 졌다.
“설수련은 돈으로 다른 가문을 회유하고, 그걸로 안 되면 독을 써서 가문의 후계자들을 중독시켰네. 그리고 좋은 약이 있다며 해약으로 충성을 요구하지. ……내 손자에게 한 것처럼 말이야. 이 역시 다들 알고 있지만 증거를 잡지 못해 쉬쉬하고 있을 뿐일세.”
“독……?”
독이라는 말을 듣는 순간, 백수룡의 눈에 이채가 스쳤다.
하지만 한송백은 그 모습을 미처 보지 못했다.
어린 나이에 독에 중독돼 침상에 누워 있는 손자의 얼굴이 어른거려서였다.
‘미안하구나. 이 매정한 할애비를 원망하거라.’
가문의 원망을 받아도 할 수 없었다.
한송백은 도저히, 북해빙궁을 혈교에 팔아넘기는 짓은 할 수 없었다.
하지만 다른 가문들은 대부분 후계자를 지키는 쪽을 선택했다.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자식이 볼모로 잡힌 가문들은 대회의에서 설가의 편을 들 수밖에 없으리라.
그런데.
“독이 문제라면 내가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소.”
“뭐라?”
백수룡의 입가에 자신만만한 미소가 맺혀 있는 것이 아닌가.
“독, 주화입마, 망나니 갱생 치료. 그게 내 전문이거든.”
“무슨 소리를…….”
“독에 중독된 아이들. 내가 전부 해독해 주겠다고 전하시오. 물론 우리 쪽에 붙는다는 조건하에.”
“……!!”
한송백이 눈을 부릅떴다. 얼마나 당황했는지 말을 더듬었다.
“저, 정녕 그게 가능하단 말인가?”
“이미 설수련은 나를 중독시키려고 했소. 하지만 실패했지. 내겐 혈교의 독이 안 통하거든.”
뿐만 아니라 남의 몸에 있는 독기를 뽑아내는 것도 가능했다.
이미 개방 방주를 치료한 전적이 있지 않던가.
덕분에 거지들의 형제 소리도 듣게 되었다.
‘설마 여기서도 비슷한 일이 있진 않겠지?’
그때 한송백이 덥석 백수룡의 손을 붙잡았다. 노인의 눈이 붉게 충혈됐다.
“그게 정말인가? 정말이라면 내 이 은혜는 반드시……!”
“됐으니 넣어 두시오. 아직 못 받은 은혜도 여기저기 많이 밀려 있거든. 노인네들한테까지 형제 소리 듣고 싶지도 않고.”
도통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지만, 한송백은 무작정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네! 내 그리하지!”
“그 문제만 해결되면, 설가 외의 가문은 신경 쓸 필요 없는 거요?”
백수룡이 은휘령을 돌아보며 묻자,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몇몇 가문은 여전히 설가에 충성하겠지만, 문제가 될 정도는 아닐 것이다.”
희박했던 승산이 크게 올라간 느낌이었다.
은휘령과 한송백의 두 뺨에 홍조가 피어났다.
하지만 백수룡은 그들에게 경계심을 늦추지 말라고 경고했다.
“설가를 상대하는 것만으로도 쉽지 않을 거요. 마공을 익힌 놈들도 적지 않으니까.”
“마공이라니?”
“몰랐소? 원로들 중 태반이 마공을 익혔더군. 궁지에 몰리면 분명 마공을 사용할 거요.”
은휘령의 눈에 스산한 살기가 감돌았다.
“북해의 자존심마저 모두 갖다 버렸구나. 결코 용서해선 안 될 자들이다.”
우우우웅!
주인의 격렬한 분노에, 은휘령의 허리춤에 매달린 빙백신검이 부르르 떨었다.
빙백환과 함께 북해빙궁에 내려오는 양대 신물.
은휘령은 검파에 손을 올리며 선조들에게 맹세하듯 말했다.
“반역자 설수련은 본 궁주가 직접 처단할 것이다.”
그녀의 전신에서 서릿발 같은 위엄이 뿜어졌다.
“그럼 나는 설무걸과 마공을 익힌 놈들부터 처리하지.”
빙백신검의 기운에 반응하듯, 백수룡의 손목에서 빙백환이 하얀빛을 뿜어냈다.
“저는 은밀히 다른 가문의 원로들과 접촉해 보겠습니다.”
한송백은 감격에 겨운 표정으로 두 사람을 번갈아 바라봤다.
계획의 큰 틀은 세워졌다.
나머지는 세부적인 조율뿐이었다.
세 사람은 밤이 깊어지도록 대화를 나누며 계획을 검토했다.
북해빙궁의 운명을 뒤바꿀 계획을.
* * *
설수련의 방.
밤늦은 시각까지 기다린 그녀는 설룡휘가 돌아왔다는 말을 듣자마자 불러들였다.
“늦었구나. 궁주와 이야기는 잘 되었느냐?”
“예.”
설룡휘는 냉막한 인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여전히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는 얼굴.
설수련은 흥미롭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궁주를 만나자마자 호위를 모두 쫓아냈다고 들었다. 거기서 내 흉이라도 본 게냐?”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설룡휘의 입가에 가느다란 미소가 맺혔다.
한 번도 본 적 없던 종손의 미소에, 설수련의 표정도 묘하게 변했다.
“네 표정을 보아하니 결과가 좋았나 보구나. 그만 애닳게 하고 말해 보거라. 무슨 이야기를 했더냐?”
설룡휘는 느릿하게 입을 열었다.
“사흘 후 대회의에, 저도 참석하기로 하였습니다.”
“그 자리에 너를? 어째서?”
설수련은 의아한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물론 사흘 후 대회의는 아주 중요한 자리다.
하지만 설룡휘는 그 자리에 참석할 이유가 없었다.
가문의 원로도 아니고, 의견을 낼 만한 위치도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어진 설룡휘의 말에, 설수련은 잠이 확 달아나는 것을 느꼈다.
“그 자리에서, 궁주께서 소궁주에 대한 자격시험을 다시 하겠다고 선언하실 겁니다.”
“……방금 뭐라 했느냐?”
설룡휘는 같은 말을 또박또박 한 번 더 말했고, 잠시 침묵하던 설수련은 벌떡 일어나며 종손에게 다가왔다.
“아하하하! 네가 정말 걸물이긴 한 모양이구나! 그 은휘령을 설득해 내다니! 설마 거짓은 아닐 테지?”
설룡휘는 대답 대신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설수련은 감탄을 금치 못하며 종손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손가락이 설룡휘의 뺨을 천천히 쓸어내렸다.
“참으로 대단하다. 정말 대단해. 우리 가문의 보배가 왜 이제야 나타났을까…….”
그녀의 상상 속에서, 설가는 이미 북해의 영원한 왕족으로 군림하고 있었다.
자신의 대에서 북해는 온전히 설가의 것이 될 것이다.
그리고 혈교와 함께 중원을 침략해, 저 비옥한 땅과 재물을 가지게 될 것이다.
“후후후. 사흘 후가 무척이나 기대되는구나.”
“저도 그렇습니다. 고모할머님.”
마주 보는 두 사람의 입가에 닮은 미소가 맺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