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mber One Star Instructor Master Baek RAW novel - Chapter 357
356화. 상성의 우위
은휘령의 급습을 막아 내는 와중에도, 설수련은 설무걸의 움직임을 의식하고 있었다.
“무걸! 돌아오거라!”
어려서부터 안하무인인 성정에, 무공의 재능도 썩 눈에 차지 않는 아이였다. 그래도 가문의 적통이자 혈육이었다. 그 외엔 마땅한 대체재도 없었다.
설무걸에게 마공을 익히게 한 이유도 그래서였다. 완벽한 승계를 위해. 다른 가문에서 소궁주가 나오는 일은 더 이상 없어야 했기에.
‘멍청한 녀석!’
필요에 의해 익히되 깊게 빠지지는 말라고 그토록 경고했건만, 설무걸은 결국 그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마공을 탐닉했다.
그 결과가 저것이었다.
푸화아악!
설무걸의 목이 베이는 순간, 설수련은 손해를 감수하고 고개를 돌렸다. 이성보다 본능에 이끌린 행동이었다.
“…….”
공교롭게도 설무걸과 눈이 마주쳤다. 목이 잘린 종손의 마지막 표정은 마치 그녀를 원망하는 듯했다.
툭.
잘린 머리가 바닥을 구르고, 생기를 잃은 육신이 힘없이 무너져 내린다.
설수련에게는 그 모든 것이 비현실적으로 느리게 보였다. 그 너머에서 설룡휘가 싸늘한 조소를 보내고 있었다.
‘어째서? 네가 왜?’
그 순간, 목덜미까지 다가온 칼날이 그녀를 현실로 끌어냈다. 정신과 별개로 본능에 따라 손을 움직였다.
쩌어엉!
빙백신검을 쳐 낸 손바닥이 찢어질 듯 얼얼했다. 은휘령이 냉엄한 얼굴로 칼날을 겨누고 있었다.
“반역자여. 억울해하는 얼굴이 우습구나. 응당 받아야 했을 천벌을 오늘에서야 받았을 뿐인데.”
“……누가 감히 날 벌한단 말이냐.”
설수련의 얼굴 위로 살얼음이 낀 듯 싸늘했다.
한계를 넘어선 분노는 뜨겁게 타오르는 대신 차갑게 얼어붙었다.
동시에 그녀의 붉은 궁장이 터질 듯이 부풀어 올랐다.
콰콰콰콰콰콰!
휘몰아치는 공력의 파동이 작은 태풍을 만들어 냈다. 설수련의 두 눈에서 백색 안광이 폭발했다.
“내가 바로 북해의 하늘이거늘!”
빙백무후 설수련.
전대 북해빙궁의 주인이 북해의 한파를 전신에 둘렀다.
스스로를 북해의 하늘이라고 칭하는 말이 오만으로 여겨지지 않았다. 그 기세가 실로 파괴적이었다.
우우우우웅!
그에 맞서는 은휘령의 몸에서도 못지않은 기세가 피어났다. 빙백신검과 빙백환이 그녀의 빙백신공에 공명해 힘을 보탰다.
새하얀 호신강기를 갑옷처럼 두른 은휘령이 크게 위엄을 떨쳤다.
“북해의 율법에 따라 너의 목을 치고, 흐트러진 본궁의 기강을 바로 세울 것이다.”
“참으로 하찮구나. 그 어렸던 계집아이가 머리가 좀 컸다고 내 앞에서 율법을 운운하다니.”
설수련의 입가에 비웃음이 맺혔다. 그녀의 두 손에 얼음으로 벼린 듯한 강기가 맺혔다.
“네가 누구에게 빙백신공을 배웠는지 잊었더냐?”
콰앙!
바닥을 박찬 설수련이 곧바로 은휘령에게 쇄도했다. 은휘령도 물러서지 않고 빙백신검을 휘둘렀다.
쩌저저저정!
궁주전을 뒤흔드는 폭음에 천장이 무너질 듯 흔들렸다. 그들이 충돌할 때마다 막대한 충격파가 파도처럼 번져 나갔다.
수세에 몰린 은휘령의 미간에 깊은 주름이 파였다. 설수련의 공격에서 상상 이상의 힘이 느껴진 탓이었다. 일단 방어에 전념했다.
‘반 수 차이라고 생각했거늘…….’
실제로 붙어 보니 그 이상의 격차였다. 빙백신검과 빙백환의 도움이 없었다면, 승부가 금세 기울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설수련의 눈에도 이채가 스쳤다.
“빙백환을 찾았구나. 네 조잡한 빙백신공에도 어설프게 변화가 있는 듯하고. 고작 그걸 믿고 날 제거할 계획을 세운 것이냐?”
“…….”
비록 백수룡에게 뒤통수를 맞긴 했지만, 설수련은 모략과 권모술수, 그리고 본신의 실력으로 지금의 자리에 오른 여인이었다.
독사 같은 눈으로 주변을 힐긋거리며 자신이 처한 상황을 파악했다. 그녀의 시선이 설룡휘에게 멈췄다.
“……설룡휘. 아니, 이제는 그 이름이 맞는지조차 모르겠구나.”
설무걸을 일검에 베어 낸 후, 설룡휘는 조용히 전황을 살피고 있었다. 그 표정은 여전히 읽기 힘들었다.
‘내가 저 녀석을 너무 쉽게 믿었던가?’
그렇지 않다.
처음 만난 날, 독을 먹여서 목줄을 채웠다.
그것으로는 부족해 감시의 눈을 붙였고, 수시로 불러 시험했다.
하지만 설룡휘는 단 한 번도 허점을 드러내지 않았다.
야망 가득한 설가의 적통.
북해에 자신의 왕국을 세우는 데 반석으로 쓰리라 여겼는데.
“……곱게 죽이지 않을 것이다.”
그를 노려보는 설수련의 표정이 차분하게 가라앉았지만, 그 눈에는 광기가 넘실댔다. 비릿하게 올라간 입꼬리가 고혹적이기까지 했다.
은휘령이 막아서지 않았다면, 당장 설룡휘에게 달려들어 사지를 찢었을 것이다.
“반역자여. 어딜 보는가. 네 목을 벨 사람은 여기에 있다.”
빙백신검이 빛살처럼 공간을 갈랐다. 검신을 뒤덮은 검강이 허공에 하얀 꼬리를 남겼다.
설수련도 그 공격을 경시하지 못하고 공력을 더욱 끌어올렸다. 그녀의 손에 맺힌 수강이 더욱 부풀었다.
콰콰콰콰쾅!
충돌의 여파로 뒤로 물러난 두 여인의 시선이 허공에서 사납게 얽혔다.
설수련이 손톱을 매의 발톱처럼 모으며 음산하게 웃었다.
“은가의 여식들은 하나같이 눈빛이 사납지. 오래전부터 그 눈알을 파내 버리고 싶었단다.”
“처음으로 서로에 대한 의견이 일치하는군.”
피차 더 이상의 탐색전은 불필요했다. 서로의 역량을 충분히 가늠했고, 남은 것은 전력을 다해 서로의 목숨을 취하는 것뿐이었다.
“오너라. 이 자리에서 북해의 하늘을 가리자꾸나!”
두 여인은 동시에 전력으로 공력을 끌어올렸다.
콰콰콰콰콰콰!
콰콰콰콰콰콰!
반경 십여 장 안에 무시무시한 눈보라가 몰아쳤다.
극성에 이른 빙백신공은 자연재해를 일으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작은 얼음알갱이부터 주먹만 한 크기의 우박이 곳곳에서 충돌하며 부서졌다.
북해에서 가장 강한 두 무인이 만들어 낸 극한(極寒)의 영역에, 북해빙궁의 고수들도 감히 가까이 접근하지 못했다. 근처에 있던 무인 하나가 순식간에 동상처럼 얼어붙었다.
“십 장 밖으로 물러나라!”
“휘말리지 마라!”
대장로 한송백과 설가의 원로원주가 동시에 소리쳤다.
두 노인을 중심으로 양측의 고수들이 맞붙었다.
하나같이 북해의 무공을 익힌 무인들.
서로의 무공에 대해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그 때문에 처음 기습을 제외하곤, 쉽게 승부가 나지 않은 채 곳곳에서 치열한 접전이 벌어지고 있었다.
“반역도들은 무릎을 꿇어라!”
“한가의 늙은이가 노망이 났구나! 빙궁의 진정한 주인도 알아보지 못하고!”
한송백과 설가의 원로원주가 쌍장을 휘두르며 맹렬하게 부딪쳤다. 한송백이 조금씩 이득을 취하곤 있었지만, 쉽게 승기를 가져오지는 못했다.
다른 곳도 상황은 비슷했다. 숫자는 현 궁주 측이 조금 더 많았지만, 설가의 무인들은 둥글게 진형을 짜고 공세를 잘 견뎌 냈다.
[나서지 않을 셈이냐?]‘일단은.’
백수룡은 몰아치는 눈보라를 노려봤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수준이었지만, 그는 미약하게 혈마안을 사용해 그 안을 꿰뚫어 보았다.
‘설수련의 무공…….’
설수련이 빙백신공을 펼치는 모습을 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런데, 보자마자 무언가 이상하다고 느꼈다.
익숙하고도 불길한 기분이 드는 것은 왜일까?
“설마…….”
어떤 가정을 떠올린 백수룡의 눈이 크게 뜨였을 때였다.
몰아치는 눈보라를 뚫고, 설수련의 목소리가 쩌렁쩌렁하게 울려 퍼졌다.
“본가의 무인들은 들어라! 지금부터 진신절기의 금제를 푸는 것을 허락하겠다!”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설가 무인들의 몸에서 마기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크르르르…….”
“크히히히…….”
설가는 수십 년 전부터 혈교에서 지원해 준 영약을 먹고, 무공을 교류했다.
그중에는 혈교에서 보내 준 마공들도 있었다.
처음에는 마공이기에 꺼렸지만, 강해지고자 하는 무인의 욕심은 결국 하나둘 마공에 손을 대도록 만들었다.
“뭐, 뭐냐?”
“이놈들! 사술을…….”
“조심하십시오!”
설가 무인들의 눈이 붉게 충혈되고, 핏줄이 도드라졌다. 전신이 시커멓게 변하거나 근육이 비대해지는 경우도 있었다.
까앙!
칼날이 들어가지 않을 만큼 피부가 단단해지고, 내력이 폭증했다. 마인으로 변한 자들은 더 이상 어떤 고통도 느끼지 못했다.
단숨에 전황을 바꿔 놓기에 충분한 변화.
상황이 급변하기 시작했다.
“크하하하! 전부 죽여라!”
마공을 사용한 설가의 원로원주가 한송백을 압도했다.
다섯 합 만에 승기를 빼앗고, 열 합 만에 한송백의 가슴에 일장을 적중시켰다. 조금 전까지 밀리고 있던 양상과는 천지 차이였다.
“커헉!”
피를 뿜으며 날아간 한송백이 겨우 중심을 잡고 멈춰 섰다. 그러나 창백해진 안색은 내상이 적지 않음을 증명했다. 그가 노한 얼굴로 외쳤다.
“이놈! 더러운 마공을 익히다니!”
“크히히. 멍청한 늙은이야. 무공에 더럽고 깨끗하고가 어디 있단 말이냐?”
원로원주가 히죽 웃으며 쇄도했다. 어느새 길게 자라난 손톱이 검게 물들었다. 그 위로 빙백신공의 냉기와 마공의 마기가 뒤섞여 만들어진 회색빛 기운이 사납게 일렁였다.
한송백은 자신의 죽음을 직감했다. 몇 번은 막아 낼 수 있겠지만, 얼마 버티지 못할 것이다.
‘현아.’
주마등처럼 손자의 얼굴이 어른거렸다. 이제 겨우 독을 몰아냈는데, 건강해지는 모습을 보지 못하게 되었구나.
“……네놈의 팔 하나는 가져가야겠다.”
한송백은 이를 악물고 상대를 노려봤다. 마인이 된 원로원주가 폭소하며 손톱을 휘둘렀다.
“어림도 없는 소리! 널 죽이고 네놈의 손자까지…….”
그 순간, 원로원주의 손톱이 손가락과 함께 싹둑 잘려나갔다.
“끄아아아악!”
비명을 지르며 괴로워하는 원로원주.
그 앞에 나타난 백수룡은 무심한 얼굴로 상대를 바라봤다.
“혈교 새끼들. 아주 작정하고 빙궁을 마굴로 만들 생각이었군.”
“끄아아악! 죽여 버리겠……!”
원로원주가 이를 갈며 백수룡을 노려봤다.
그 순간, 그는 백수룡의 시뻘건 눈동자와 정면으로 눈이 마주쳤다.
혈마안.
모든 마공 위에 군림하는 역천신공의 기운을 눈에 집중시키자, 원로원주의 눈에 극심한 공포가 깃들었다.
“으, 으, 으어어…….”
원로원주의 몸이 사시나무 떨듯 덜덜 떨렸다. 자신의 의지가 아니었다. 마공을 익힌 자의 숙명이었다.
피식.
백수룡의 입가에 가느다란 미소가 맺혔다.
“내 앞에서 마공을 사용해?”
백수룡은 적발적안으로 변하지 않고도 역천신공을 펼칠 수 있었다.
지금까지 그러지 않은 이유는, 적발적안을 보여 주는 것이 상대에게 더 압도적인 위압감을 줄수 있기 때문이었다.
‘이 정도 상대한테는 혈마안으로 충분하지.’
완벽한 상성의 우위.
오히려 적들이 마공을 쓰는 것이 백수룡에게는 더 유리했다.
어지간한 마공으로는, 역천신공의 경지가 팔성에 이른 백수룡을 똑바로 바라보기도 힘든 탓이었다.
스걱!
설가의 원로원주는 백수룡이 평범하게 휘두른 일검을 막지 못했다.
북해의 무공으로 싸웠다면 적어도 십여 합은 싸울 수 있었겠지만, 지금은 천적을 앞에 둔 짐승처럼 아무것도 못 하고 목이 잘렸다.
“대장로. 부상자들을 수습하시오.”
“……어? 아, 알겠네.”
앞으로 나선 백수룡은 마인이 된 설가의 무인들을 베어 넘기기 시작했다.
촤악! 서걱! 푸욱!
눈이 마주친 마인들이 모두 그 자리에서 몸이 굳어 버렸다.
찰나의 빈틈이면 충분했다. 백수룡은 적들을 추수하듯 베어 넘겼다.
가볍게 휘두른 검에 목이 떨어지고, 팔다리가 분리되었다. 심지어 스스로 무릎을 꿇는 자도 있었다.
보고 있어도 믿기 힘든 광경이었다.
“무슨 이런 일이…….”
한송백과 북해빙궁의 무인들은 넋이 나간 얼굴로, 마인들을 손쉽게 베어 넘기는 백수룡의 모습을 바라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