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mber One Star Instructor Master Baek RAW novel - Chapter 360
359화. 적어도 나는
콰아아앙!
폭음과 함께 설가의 정문이 박살 났다.
북해빙궁 안에 자신들의 성을 지어 놓은 오만함.
그 상징이나 다름없는 정문이 산산조각이 나고, 부서진 잔해 너머에서 한송백과 그를 따르는 무인들이 들이닥쳤다.
“무, 무슨 일인가!”
“적습? 대체 누가…….”
“태상궁주님께 어서 알려라!”
하필이면 가문의 원로들이 대부분 대회의에 참석하느라 자리를 비운 상황.
우왕좌왕하던 설가의 무인들은 침입자들의 정체를 깨닫고 몸이 굳어 버렸다.
대회의장에 있어야 할 여러 가문의 원로들, 북해의 이름난 고수들이 왜 이곳에 있단 말인가?
“모두 무기를 버리고 무릎을 꿇어라!”
대장로 한송백의 내공이 실린 음성이 쩌렁쩌렁하게 울려 퍼졌다. 피에 물든 그의 수염이 부르르 떨렸다.
“대장로! 감히 이러고도 무사할 성싶은가!”
설가에 남아 있던 무인들 중 연배가 높아 보이는 중년의 사내가 앞으로 나섰다. 그가 매서운 눈으로 대장로와 그 뒤편의 무인들을 노려봤다.
“이것은 반역이다! 태상궁주께서 돌아오시면 너희들을 모조리 도륙할…….”
퍼어엉!
일장을 맞고 날아간 사내는 건물 벽을 부수고 들어갔다. 그리고 다시는 몸을 일으키지 못했다.
한송백은 살기충천한 눈으로 설가의 무인들을 노려봤다.
“반역이라 했느냐? 진짜 반역도들이 이곳에 있거늘!”
비로소 설가 무인들의 눈에 두려움이 떠올랐다.
한송백은 반대편에 대치한 설가의 무인들에게 마지막 기회를 주었다.
“설가 내에 혈교의 마공을 익힌 자들이 있다. 궁주께서 북해의 율법에 따라 그들을 잡아 벌하겠다 명하셨으니, 설씨 성을 쓰는 자들은 무릎을 꿇고 궁주령을 받들라!”
“무, 무슨…….”
“마공이라니요! 본가가 아무리 교와 친밀한 관계라곤 해도…….”
“말도 안 되는 음해요!”
마공이라는 말에 대부분은 크게 반발했지만, 그중 일부 무인들은 눈빛이 크게 흔들렸다.
한송백이 엄중한 표정으로 그들에게 경고했다.
“양자택일하라. 순순히 조사를 받지 않는 자들은, 이 자리에서 즉결처분할 것이다.”
“……!”
수십 년 동안 무소불위의 권세를 누려 온 설씨 가문.
그러나 가문의 수뇌부가 대부분 자리를 비운 상황에서, 대장로를 위시한 북해빙궁의 정예가 쳐들어왔다.
남아 있는 자들이 할 수 있는 선택은 많지 않았다.
털썩. 털썩.
무기를 버리고 순순히 무릎을 꿇든가. 아니면…….
“죽여라!”
눈빛을 주고받은 자들이 일제히 대장로에게 덤벼들었다. 그들의 몸에서 시커먼 마기가 넘실댔다.
그러나 궁주전에서 싸웠던 자들에 비하면 설가에 남은 자들은 그리 강하지 않았다.
대장로와 그를 따르는 고수들은 어렵지 않게 마공을 익힌 자들을 쓰러뜨렸다.
적도들을 모두 제압한 한송백이 다시 외쳤다.
“마지막으로 말한다! 무릎을 꿇어라! 명을 거부하는 자는 모두 참할 것이다!”
털썩. 털썩. 털썩.
전의를 상실한 설가의 무인들은 전원 무릎을 꿇었다.
한송백이 무인들을 이끌고 설가를 제압하는 데 걸린 시간은 채 반 시진도 되지 않았다.
그러나 설가의 무인들은 여전히 현실을 인정하지 않았다.
‘잠시뿐이다. 주제도 모르는 놈들. 감히 여기가 어디라고……!’
‘본가가 왜 이런 꼴을 당해야 하지?’
‘태상궁주께서 돌아오시면 너희 모두 죽은 목숨이야!’
모두가 설수련이 자신들을 구하러 올 거라고 믿었다.
설씨 성을 쓰는 자들의 머릿속에서, 빙백무후의 패배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으니까.
그러나 멀지 않은 곳에서, 그들이 상상할 수 없는 일이 실제로 벌어지고 있었다.
쿠르르르릉……!
묵직하게 대지를 울리는 진동이었다. 거대한 기의 충격파가 바람을 타고 전해졌다. 모두의 고개가 같은 방향으로 돌아갔다.
잠시 후, 누군가가 넋이 나간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궁주전이…… 무너진다.”
수백 년간 자리를 지켜 온 북해빙궁의 궁주전이 무너질 듯 흔들리고 있었다.
쩌저저저저적…….
외벽에 거미줄 같은 금이 사방으로 뻗어 나가더니, 이내 순식간에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북해의 삭풍을 견뎌 온 두꺼운 벽도 두 절세고수의 충돌은 견뎌 내지 못한 것이다.
결국.
콰콰콰콰콰콰쾅!
북해빙궁의 역사와 함께 한 건물이 굉음을 일으키며 무너져 내렸다.
모두가 허망한 얼굴로 그 모습을 지켜볼 때였다.
“저기 누가 있다!”
안개처럼 피어오른 분진 속에서, 누군가의 신형이 하늘로 솟구쳤다.
내공으로 안력을 돋운 고수들은 흐릿하게나마 그 형체를 분간할 수 있었다.
바람에 휘날리는 붉은 궁장.
북해에서 저러한 옷차림을 할 수 있는 사람은 단 한 명이었다.
“태상궁주께서 나오셨다!”
“……설수련이라고?”
설가와 설가가 아닌 자들의 반응이 판이하게 갈렸다.
설가의 무인들은 반항적인 눈으로 자신들을 포박한 자들을 노려보는 한편, 한송백을 비롯한 무인들은 두려움을 감추지 못했다.
그 순간, 또 다른 신형이 폐허 위로 솟구쳤다.
“저건 누구지?”
“두 명이오! 한 사람이 다른 한 명을 안고 있는 듯한데…….”
“설마?”
두 사람을 알아본 것은 한송백을 포함해 극히 소수였다. 한송백의 표정이 일순간 어두워졌다.
‘궁주께서…… 패하셨구나.’
백수룡이 은휘령을 안고 있었다. 그는 바닥에 은휘령을 내려놓더니, 곧바로 설수련을 쫓았다.
휘이이익!
두 사람의 신형이 순식간에 시야에서 멀어졌다. 흐릿한 잔상만 보일 정도로 빠른 속도였다.
그들의 모습은 순식간에 북해빙궁의 영역 바깥, 눈보라가 몰아치는 대지로 사라졌다.
“반드시, 반드시 잡아야 하네.”
한송백은 두 사람이 사라진 방향을 바라보며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 * *
콰콰콰콰콰콰!
눈보라가 사납게 몰아친다.
빙백신공으로 만들어 낸 광경이 아닌, 자연에서 불어닥치는 거센 눈보라였다.
“허억……. 허억…….”
얼마나 도망쳤을까.
설수련은 방향을 완전히 잃었다.
평소 같았으면 아무렇지도 않을 혹한의 추위에 몸이 움츠러들고, 거센 바람에 몸이 휘청이기도 했다.
“끄윽…….”
시야도 명확하지 않았다. 은휘령에게 오른쪽 눈을 잃었고, 백수룡에게 두 팔을 모두 잃었다. 하나 남은 왼눈도 성에가 낀 듯 뿌옇게 보였다.
두 다리는 몸에 붙어만 있을 뿐, 감각이 거의 없었다. 한쪽은 발목 아래가 없었다. 지혈을 했음에도 상처에서 피가 뚝뚝 흘러내렸다.
등 뒤로 하얀 눈 위에 핏자국이 길게 남았으나, 신경 쓸 여력조차 없었다. 이미 온몸이 피투성이였다.
털썩.
결국 무릎을 꿇었다. 허벅지 아래로 감각이 느껴지지 않았다. 설수련은 혀를 깨물어 핏물을 삼켰다.
“내가 이렇게 죽을 것 같으냐…….”
지금 설수련의 머릿속에는 살아남아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설령 혈가의 핏줄이 모두 죽어도 상관없다.
새로운 가문을 만들면 그만이니까.
하지만 ‘나’는 죽어서는 안 된다.
“……내가 북해의 하늘이자, 북해빙궁의 진정한 주인이다…….”
혈교를 찾아가 복수를 부탁할 것이다.
오늘 본 것을 그들에게 알리고, 북해빙궁의 약점도 전부 알릴 것이다.
거래에 필요하다면, 그들이 그토록 요구했던 완전한 빙백신공의 구결도 넘겨줄 작정이었다.
“백수룡, 백수룡이라고 했지. 백수룡…….”
설수련은 원수의 이름을 잊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중얼거렸다.
가증스러운 은예린의 제자.
훗날 돌아와 오늘 당한 수모를 수십, 수백 배로 갚아 줄 것이다.
은휘령 그 계집도 불에 태워 죽일 것이다.
“크흐흐…….”
달콤한 복수를 상상하며 고통을 이겨냈다. 다시 몸을 일으켰다. 발목이 잘린 다리를 질질 끌며 계속 움직였다.
그때였다.
위이이잉!
귓가에 벌새가 날아다니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빙백환이 날아오는 소리다.
수백 년 동안 북해를 지켜온 신물이 이제는 괴물처럼 느껴졌다. 한쪽 발목을 자른 것도 저것이었다.
“저리, 저리 가라!”
설수련은 겁먹은 짐승처럼 뛰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 몸으로 제대로 뛸 수 있을 리 만무했다.
털썩.
바닥을 구른 설수련은 고개를 홱 돌렸다. 눈보라를 뚫고 빙백환 두 개가 자신을 추격해 오는 것이 보였다.
“저리 가! 저리 가란 말이다!”
빙백환.
한때는 너무나 갖고 싶었던 물건이었다.
은예린이 소궁주가 되었을 때, 전대 궁주에게 빙백환을 받는 것을 보고 어찌나 부러웠는지 모른다. 죽여서 빼앗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날아오는 두 개의 빙백환이 은예린의 치켜뜬 눈처럼 보였다. 설수련의 망상이었다.
“이 망령아! 쫓아오지 마라! 죽고 나서도 왜 나를 괴롭히느냐!”
설수련은 멀쩡한 발로 눈을 차 빙백환에게 뿌렸다. 그리고 돌아서서 마구 달렸다. 달리다 넘어지면 기고, 경사가 높은 곳에서는 아예 몸을 굴렸다.
어느새 빙백환의 소리가 사라졌다.
겨우 따돌린 것인가.
설수련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조금만, 조금만 더 가면…….”
몸이 점점 따뜻해지고 있었다. 남쪽으로 제대로 가고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설수련의 눈에 조금씩 희망이 비칠 때였다.
“정말로 도망칠 수 있을 줄 알았나?”
불과 몇십 걸음 앞에, 적발과 백발이 기묘하게 어우러진 사내가 그림처럼 서 있었다.
마치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그를 본 설수련이 멍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네가 어떻게 여기…….”
백수룡은 설수련이 도망치는 몇 시진 동안 품어왔던 희망을 단숨에 산산조각냈다.
“미안한데, 일부러 놔준 거야.”
“아아아아악! 죽여 버리겠다!”
설수련이 발작적으로 소리치며 백수룡에게 덤벼들었다.
그러나 두 팔을 잃은 그녀의 공격은 아무런 위협도 되지 못했다.
짜악!
따귀 한 방에 설수련의 몸이 날아갔다. 백수룡은 바닥에 누운 설수련을 향해 걸어갔다.
“고작 내게 며칠 속은 게 억울한가? 은사부는 너에게 속아 십 년이 넘도록 고통받았다. 좁은 뇌옥에서, 헤어진 정인을 죽을 때까지 그리워하면서.”
“대체 이제 와서! 이제 와서 나보고 어쩌라는 것이냐!”
설수련은 바락바락 소리를 질렀다.
백수룡은 무심한 눈으로 그 모습을 내려봤다. 그는 큰 기대를 하지 않고 말했다.
“은사부에게 진심으로 사죄해라. 그럼 예정보다 빨리 죽여 주마.”
“사죄……?”
황망한 표정을 짓던 설수련이 광소를 터트렸다.
“하하하하하!”
어디에 그런 힘이 남았는지, 그 목소리에 주변의 눈송이가 일제히 떠오를 정도였다.
“그래. 내가 은예린을 함정으로 유인해 혈교에 팔아넘겼다. 그게 뭐 어쨌다는 것이냐?”
설수련의 두 눈에 광기가 가득했다.
유일하게 멀쩡한 혀에서 저주의 말이 흘러나왔다. 생에 미련을 완전히 버린 후였다.
“인간은 누구나 죄를 저지르면서 산다. 무인은 더욱 그렇지. 애초에 타인을 해치고, 망가뜨리고, 죽이는 법을 갈고닦는 자들이 무인 아닌가? 그게 무인의 숙명이거늘, 이제 와서 후회라도 하란 것이냐?”
말도 안 되는 궤변.
그러나 백수룡은 가만히 그 말을 들어주었다.
“무인의 숙명이라고?”
“너는 나와 다를 것 같으냐? 네게도 언젠가, 과거에 저지른 죄의 업보가 찾아올 것이다.”
우우우웅!
빙백환이 맹렬히 진동했다. 주인을 대신해 분노하는 듯했다.
하지만 정작 백수룡의 표정에는 변화가 없었다.
오히려 그는 순순히 인정했다.
“……그렇겠지. 내게도 너 못지않은 큰 죄가 있으니.”
백수룡은 죽어가는 설수련을 보며 한 사람을 떠올렸다.
‘이호.’
빙백신공을 가르친 옛 제자의 얼굴이 떠올랐다.
아니, 사실은 북해빙궁에 온 이후로 계속 그 녀석을 떠올렸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 죄가 언젠가 나를 죽이려고 할 수도 있겠지.”
“그 모습을 직접 보지 못해 안타깝구나…….”
푸욱!
빙백신검이 설수련의 단전을 꿰뚫고, 얼음에 깊이 박혔다.
단전이 깨진 고통에 설수련의 얼굴이 참혹하게 일그러졌다.
“……지옥, 에서 두고 보마. 과연 네가 그때도, 잘난 척을 할 수 있을지…….”
백수룡은 천천히 죽어가는 설수련을 무심하게 내려봤다.
“적어도, 나는 너처럼 도망가진 않을 거다.”
휘이이잉-
몹시 차갑고도 쓸쓸한 바람이 그의 곁을 스쳐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