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mber One Star Instructor Master Baek RAW novel - Chapter 361
360화. 북해빙궁의 결정
“후우우…….”
백수룡은 호흡을 깊게 들이마셨다 내뱉기를 반복했다. 가부좌를 틀고 앉은 그의 주변으로 새하얀 서리가 맺혔다. 방 안이 온통 새하얗게 물들었다.
쩌저적…….
운기조식을 하는 동안 몸 위로 신령스러운 흰빛이 끊임없이 흘렀다. 손목에 찬 빙백환이 은은하게 빛났는데, 신물답게 주인의 몸 안에 도는 기의 순환을 돕고 있었다.
잠시 후, 운기조식을 마친 백수룡이 눈을 떴다.
그의 두 눈에서 백색 안광이 번뜩였다가 서서히 가라앉았다.
[날뛰던 기운이 이제야 진정된 것 같구나.]무릎 위에 올려 둔 창룡신검이 부르르 떨었다.
염려가 한가득 느껴지는 청아한 목소리에, 백수룡은 다소 창백한 얼굴로 웃으며 검신을 툭툭 쳤다.
“얼마나 걸렸어?”
[꼬박 두 시진을 넘겼다.]설수련과의 싸움에서 입은 내상이 적지 않았다.
무리해서 역천신공을 끌어다 썼고, 설수련이 내뿜는 냉기에 견디기 위해 빙백신공도 함께 운용했다.
당연히 반동이 찾아왔다. 첫날에는 거의 앓아누웠을 정도였으니까.
사흘째인 지금에야 어느 정도 추스를 수 있었다.
[몸 상태는 어떻느냐?]“거의 괜찮아졌어.”
백수룡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고개를 돌려 바라본 동경 속에는 여전히 설룡휘가 있었다.
날카로운 눈매와 딱딱한 인상.
더 이상 설룡휘의 얼굴로 있을 이유는 없었지만, 백수룡의 모습이 더 큰 혼란을 야기할 것 같아 그냥 두었다.
‘보다 보니 전생의 나랑 좀 닮은 것 같기도 하고.’
[양심이 없도다. 내 너의 전생을 보았다만, 그 얼굴은 결코 지금처럼 잘생겼다고는 할 수 없었거늘.]“……인상이 닮았다고, 인상이. 그리고 누가 멋대로 생각 읽으래?”
백수룡은 중지를 엄지에 걸어 창룡신검의 검신을 딱! 하고 때렸다. 물론 그런다고 검이 아파할 리 없었다.
오히려 창룡신검은 진지하게 경고했다.
[이번에는 몸이 버텼지만, 다음에도 버틸 수 있다곤 장담할 수 없다.]“잔소리는 됐어. 내 몸은 내가 가장 잘 알아.”
[잘 아는 만큼 아슬아슬한 지경까지 무리하는 것 같아서 하는 말이다.]틀린 말도 아니었기에 백수룡은 어깨만 으쓱였다.
그가 침상 맡에 벗어놓은 장포를 걸치자, 창룡신검이 의아한 목소리로 물었다.
[어딜 가려는 것이냐?]“내상도 나았으니 슬슬 돌아가야지. 그 전에 궁주부터 좀 만나고.”
[며칠 더 쉬어도 될 것을…….]벌써 설수련이 죽은 날로부터 사흘이 지났다.
북해빙궁은 여전히 혼란에 빠져 있었다.
수십 년 동안 권세를 누려왔던 설가가 하루아침에 무너지고, 태상궁주로 군림하던 설수련이 죽었다.
그로 인해 발생한 혼란과 공백은 며칠 만에 수습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소궁주님을 뵙습니다!”
“소, 소궁주님을 뵙습니다!”
“소궁주님!”
백수룡이 밖으로 나오자, 그와 마주친 무인들이 하나같이 극상의 예를 취했다.
하지만 인사를 받는 백수룡의 미간은 영 못마땅하다는 듯 찌푸려졌다.
사람들이 자신을 부르는 호칭 때문이었다.
백수룡이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저 소궁주 아니니까 그렇게 부르지 말라니까요.”
“죄, 죄송합니다 소궁주님!”
……이런 식이었다.
도망치는 설수련을 쫓아가던 모습을 여러 사람에게 보인 것이 문제였다.
나중에 돌아와서 은휘령이 거의 다 죽여 놓은 설수련을 쫓아가 죽이기만 한 것이라고 해명해 보았지만,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빙월신녀의 제자이자 빙백환의 주인.
그 사실까지 밝혀지면서, 설룡휘의 지위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소궁주로 굳어졌다.
“내가 왜 소궁주야?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혼자 열심히 부정해 보았지만, 은휘령을 만나러 가는 길에 만난 대부분의 사람이 백수룡을 소궁주라고 불렀다.
한 명 한 명 붙잡아서 아니라고 설명하는 것도 우스운 일이라, 나중에는 한숨만 푹푹 쉬었다.
[전부 자업자득이니라.]은근히 약 올리는 듯한 말투에, 백수룡은 중지 탄지공으로 창룡신검을 쥐어박았다.
[몇 번이나 말했지만, 너는 나를 더 존중할 필요가 있다……!]티격태격하다 보니 어느새 목적지에 도착했다.
얼마 전까지 설수련의 방이었던 곳.
무너진 궁주전을 대신해, 이곳이 은휘령의 임시 거처로 쓰이고 있었다.
“소궁주님께서 오셨습니다!”
“아니라니까…….”
백수룡이 한숨을 내쉬며 안으로 들어서자, 다른 사람들이 눈치껏 자리를 비켜 주었다.
궁주와 소궁주 둘이서 편하게 이야기하라는 배려였다.
“왜 다들 나를 소궁주라고 못 불러서 안달인 거요?”
백수룡이 한숨을 내쉬며 오면서 겪은 일을 설명하자, 은휘령이 초췌해진 얼굴로 웃었다.
“그야 네가 충분한 자격을 갖췄기 때문이지.”
사흘 동안 내상을 치료하기 위해 거의 두문불출한 백수룡이었다.
북해빙궁 내에서 도는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모를 법도 했다.
“아무리 그래도 이건 좀 심하지 않소?”
“마땅히 부를 호칭이 없는 것도 사실이다. 설가가 망한 마당에, 너를 설가의 후계자로 취급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러면서 은휘령은 은근히 물었다.
“소궁주 자리가 부담스럽다면, 장로나 호법은 어떤가?”
“그것도 썩…….”
백수룡은 처음에는 그것도 거절하려고 했지만, 생각해 보니 적당한 감투 정도는 있어서 나쁠 것이 없었다.
“혹시 책임질 일은 없고 명예와 권력만 누릴 수 있는 꽤 높은 지위는 없소?”
그 뻔뻔함에 창룡신검이 깊게 탄식했다.
[너는 언젠가 천벌을 받을 것이다…….]‘어차피 역천의 운명이거든.’
창룡신검을 꿀 먹은 벙어리로 만든 백수룡은 당당히 요구하는 눈빛으로 은휘령을 바라봤다.
잠시 당황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던 은휘령이 고개를 끄덕였다.
“……태상호법 자리가 있다. 평소에는 할 일이 없는 명예직이니, 너에게 부담이 갈 일은 없을 것이다.”
보통은 자리에서 물러난 전대 궁주가 태상호법이 되는 것이 관례라고 했다.
권력을 내려놓겠다는 상징적인 의미인데, 설수련이 그것을 거부하며 스스로를 태상궁주라 칭한 탓에 태상호법도 오랫동안 공석이었다.
“궁주를 제외하면 누구에게도 하대할 수 있는 위치다. 뭐, 지금도 네 언행이 그리 다르진 않다만…….”
“좋소. 그걸로 합시다.”
그렇게, 백수룡은 북해빙궁의 소궁주 대신 태상호법이 되었다.
연배를 생각하면 지나치게 파격적인 인사였으나, 지금 북해빙궁에는 은휘령의 결정을 반대할 사람이 존재하지 않았다.
따로 거창한 임명식은 하지 않고, 다음날 조용히 공표하기로 했다.
“헌데 뭘 그렇게 보고 계셨소?”
백수룡은 은휘령이 살피고 있던 서류를 슥 둘러보며 물었다.
곳곳에 혈교라는 단어가 보이는 게, 한눈에 봐도 평범한 서류는 아니었다.
“……지난 수십 년 동안, 설수련이 혈교와 주고받은 서신들이다. 이 방과 연결된 비밀 통로에서 찾아냈지.”
설수련이 혈교와 손을 잡아 빙월신녀를 함정에 빠뜨리고, 자신의 권력을 위해 북해빙궁을 피로 물들였던 수십 년 전의 사건들.
처음에는 믿지 않으려 했던 설가의 무인들도, 실제 증거가 속속들이 드러나자 죄인처럼 고개를 숙였다.
은휘령은 그중 하나의 서류를 손으로 짚었다.
“삼십오 년 전, 혈교가 본궁에서 납치한 아이들 명단에 하연이가 있었다.”
은하연.
은휘령의 동생이자 여민의 친모.
그 이름이 적혀 있다는 것은, 백수룡의 추측이었던 것이 전부 사실로 밝혀진 셈이었다.
“……동생 일은 정말 유감이오.”
“차라리 이렇게라도 알게 되었으니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은휘령은 손가락으로 동생의 이름을 조심스럽게 쓰다듬었다.
“그래도 그 아이가 어른이 될 때까지는 살아 있었으며, 딸을 낳았다는 것도 알게 되었으니까.”
“…….”
동생은 죽었지만, 동생이 남긴 혈육은 세상에 남았다.
바로 청룡학관에.
은휘령은 서류에서 고개를 들어 백수룡을 바라봤다.
“잠깐 나가서 걷겠느냐?”
“그럽시다.”
두 사람은 밖으로 나와서 북해빙궁의 높은 성벽 위로 올라갔다.
휘이이이잉-
북해의 매서운 바람에 머리카락이 마구 흩날렸다.
두 사람은 성벽 위에 나란히 서서, 잠시 동안 말없이 북해의 새하얀 풍경을 눈에 담았다.
‘내상이 나 못지않게 심할 텐데.’
백수룡은 은휘령의 옆모습을 힐긋 바라봤다.
그토록 큰일을 겪었음에도, 그녀는 바위처럼 단단해 보였다.
잠시 고민하던 백수룡은 지나가듯 물었다.
“궁주. 내 제안은 생각해 보셨소?”
“……무림맹과의 동맹 말인가?”
“압박하는 것은 아니오. 북해빙궁은 이번 일로 큰 피해를 입었으니, 내부를 수습할 시간이 필요하겠지.”
당장 해결해야 할 일들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은휘령은 머릿속이 터질 만큼 복잡할 것이다.
하지만 그것 때문에 머지않은 미래에 닥쳐올 위협에 대비하지 않을 수는 없았다.
“혈교의 위협은 계속될 거요. 이제 북해빙궁과 혈교는 원수나 다름없게 되었으니 더욱 그럴 테지. 그러니 무림맹과 공식적으로 동맹을 맺는다면, 서로를 지켜 주는 든든한 방패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오.”
“…….”
잠시 침묵하던 은휘령은, 대답 대신 백수룡에게 질문을 던졌다.
“설수련의 마지막 모습은 어땠느냐?”
“비참하고 쓸쓸했소.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고통스럽게 죽어 갔지. 저 표정을 보면 알겠지만.”
백수룡은 설수련의 수급을 베어 북해빙궁으로 가져왔다.
그 머리는 설가의 정문에 효시되어 있었다.
북해빙궁을 배신한 자의 말로.
그 이름은 앞으로도 영원히 변절자로 기억될 터였다.
“……날짜가 되었지만 혈교의 사절은 오지 않았다. 대신, 성벽에 이것이 붙어 있더군.”
은휘령이 품에서 무언가를 꺼내 백수룡에게 건넸다.
사람의 피로 쓴 서한이었다.
이번에는 그냥 돌아가지. 다음에 올 땐 칼을 챙겨서 올 것이다.
혈교가 남긴 것이었다. 백수룡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놈들이 이곳에서 있었던 일을 알아챈 거요?”
“혼란을 틈타 몇 명이 도주했다. 아마 혈교의 사절과 만났을 테지.”
설수련이 죽었다.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명백하니, 혈교의 사절에겐 더 이상 북해빙궁을 방문할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
은휘령은 백수룡에게 돌려받은 혈교의 서한을 노려봤다. 그 눈빛이 무척이나 스산했다.
“지난 수십 년 동안 혈교 때문에 그토록 많은 피를 흘렸는데도, 놈들은 여전히 우리의 피를 원하는구나.”
쩌저저적-!
손에 쥐고 있던 서한이 순식간에 얼어붙더니 결국 산산조각났다.
은휘령은 그것을 바람에 날려 보냈다.
그리고 엄중한 목소리로 말했다.
“북해빙궁은 오랜 봉문을 풀고, 혈교에 그간 빚진 핏값을 모두 받아 낼 것이다. 북해의 자식들이여!”
점점 커지기 시작한 목소리는, 나중에는 내공을 담은 외침이 되어 북해빙궁 전체에 울려 퍼졌다.
은휘령은 한 번 더 외쳤다.
“북해의 자식들이여!”
깜짝 놀란 빙궁의 무인들이 일제히 성벽 위를 올려보았다.
그들의 눈에 전신에 눈보라를 휘감은 궁주의 모습이 보였다.
“나는 우리의 부모, 아들딸, 형제자매를 납치해 간 자들에게서 핏값을 받아 내고자 한다. 너희는 나를 따르겠는가?”
“……!!”
“……!!”
설수련과 혈교가 저지른 모든 짓이 밝혀진 지금, 모두의 가슴에는 커다란 분노가 쌓여 있었다.
북해빙궁의 무인들은 감정 표현이 적은 것이 특징이다.
그렇다고 그들에게 감정이 없는 것은 아니다.
평소 차가운 이성으로 절제하고 억눌러 온 감정일수록, 폭발하는 순간 그 무엇보다 뜨겁게 타오른다.
“따르겠습니다!”
“혈교에 죽음을!
“북해빙궁에 영광을!”
무인들의 함성이 북해의 하늘을 떨어 울렸다.
몇 번이고, 몇 번이고.
은휘령은 백수룡을 돌아봤다. 그 눈은 다가올 전쟁을 각오하고 있었다.
“네 제안을 받아들이마. 무림맹에 동맹을 제안하는 서한을 보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