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mber One Star Instructor Master Baek RAW novel - Chapter 365
364화. 당연한 걸 가지고
“왜, 왜…….”
그는 울컥 피를 토하며 자신의 가슴에 칼을 꽂은 상대를 바라봤다.
살아날 가망이 없다는 것은 스스로가 가장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 이유라도 알고 싶었다.
자신이 왜 공격당한 것인지, 왜 이런 뒷골목에서 비참하게 죽어 가야 하는지…….
“억울해 마라.”
다정한 목소리였다. 이어 섬세한 손길이 죽어 가는 자의 얼굴을 조심스레 쓸어내렸다. 피부결을 느끼듯 천천히 쓸어내리던 그가 다시 입을 열었다.
“너의 희생으로 본교는 한 발 더 영광에 가까워질 테니.”
“혀, 혈교……!”
억울한 얼굴로 피거품을 내뱉던 이의 숨은 금방 끊어졌다.
살수는 죽은 자의 품을 뒤졌다. 신분을 증명하는 호패, 은전 조금, 다시는 쓸 일이 없을 금창약 따위가 나왔다.
“여기 있군.”
청룡패.
청룡학관에 입관한 학생들과 강사들에게 주어지는 일종의 증명서.
그 뒷면에 적힌 이름을 확인한 살수, 천살은 뒤에 시립해 있는 부하에게 말했다.
“교에 알려라. 목표에 접근하겠다고.”
“예.”
부하가 떠난 후에도 천살은 바로 떠나지 않고 시신을 살폈다. 직접 근육과 뼈마디를 만져보고, 손바닥을 유심히 살폈다.
대상을 정하고 꽤 오랫동안 지켜보았으나, 이렇게 직접 손으로 만져 보는 것은 달랐다.
집요하다 싶을 정도로 오랫동안 관찰한 후에야 천살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 아아- 오랜만입니다. 잘 지내셨나요?”
연습하듯 벽에 대고 인사를 건네는 그는, 자신이 죽인 자의 얼굴을 한 채 조금 전과 다른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 * *
요즘 청룡학관 인근에 사는 주민들은 곧 이 학기가 시작될 거라 느끼고 있었다.
각자의 문파나 가문에서 방학을 보낸 학생들이 하나둘 돌아오고, 식자재를 비롯한 여러 물자가 청룡학관으로 들어가는 모습이 자주 보였다.
뿐만 아니라 무림맹의 무인들, 이름난 문파와 가문, 눈치 빠른 상인들이 청룡학관의 문턱이 닳도록 드나들었다. 덕분에 도시 전체에도 활기가 돌았다.
반년도 남지 않은 천무제에 대한 기대감도 크게 올라갔다. 객잔이며 요리점, 사람이 모이는 곳이면 올해 청룡학관은 다를 거라는 이야기를 떠들어 댔다. 천무제에 대한 언급 자체가 금기시되던 전과는 사뭇 달라진 풍경이었다.
무엇보다 새벽마다 백룡장에서 다시 울려 퍼지기 시작한 비명 소리를 듣고 있노라면, 청룡학관에 새로운 사건이 벌어지리란 강한 예감이 드는 것이었다.
“꾸에엑!”
괴상한 비명을 지르며 날아간 헌원강이 연무장 한복판에 대자로 철푸덕- 뻗었다. 그리고 한동안 움직이지 않았다.
문밖으로 고개만 내민 제자들이 졸린 눈으로 헌원강을 바라봤다. 다들 자다가 깨서 그런지 눈을 반만 뜨고 있었다.
“……죽은 거 아니지?”
“저 정도로 죽기엔 원강 선배가 지금까지 맞아 온 역사가 너무 아깝죠.”
“방금 머리부터 떨어지지 않았수?”
“저기서 더 바보가 되면 큰일인데…….”
그때 멍하니 하늘을 올려다보던 헌원강이 허리를 튕기며 벌떡 일어났다.
한쪽 코에 흐르는 코피를 소매로 슥 닦아 낸 헌원강은 진심으로 분하다는 듯 강하게 발을 굴렀다.
“아오! 이번엔 진짜 한 방 먹일 수 있었는데!”
“흐아암-”
맞은편에서 백수룡이 하품을 하며 걸어 나왔다. 헐렁한 침의를 갈아입지도 않은 모습. 한 손에는 흑룡편이 들려 있었다.
“자식. 새벽부터 기운도 좋네.”
먼저 천무제 대비 특훈을 시켜 달라고 한 사람은 헌원강이었다.
그래서 다른 제자들보다 반 시진 먼저 일어나라고 했다. 맞춤형 개인 대련을 해 주기로 한 것이다.
‘팽사혁하고 싸우고 나서 많이 분했던 모양인데.’
처음에는 분이 풀릴 때까지만 잠깐 상대해 줄 생각이었다.
지금 짜여진 수련 일정을 소화하는 것만으로도 한계에 가깝게 몰아붙이는 수준이니까.
몇 번 무리하다가 스스로 못 버티고 나가떨어질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헌원강의 두 눈에서 투지가 사라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이번에는 진짜 한 방 먹인다!”
바닥을 박찬 헌원강이 백수룡에게 달려들었다.
벌써 몇 번이나 나가떨어졌는데도 처음과 다름없는 제자의 눈빛을 보며, 백수룡은 흑룡편을 까닥였다.
포기하지 않는 모습에 대견해 할 만도 하건만, 그의 눈빛은 오히려 다소 차가웠다.
“아까부터 계속 똑같은 방식으로 덤비는데. 그게 무슨 의미가 있냐?”
헌원강은 대답 대신 전력을 다해 도를 휘둘렀다.
흑도가 새벽공기를 찢어발기며 검은 벼락처럼 떨어졌다. 그 끝에 지루한 듯 하품을 하는 백수룡의 얼굴이 있었다.
흑도가 백수룡의 얼굴에 거의 닿을 때쯤, 아래로 늘어져 있던 흑룡편이 솟구쳤다.
까가가각!
칼날이 흑룡편을 긁으며 불티가 튀었다. 헌원강의 공격을 옆으로 흘려낸 백수룡이 무심하게 말했다.
“다 했냐? 이젠 내 차례다.”
“……!”
그 순간 백수룡의 몸에서 맹수와 같은 기세가 피어올랐다. 헌원강은 저도 모르게 뒤로 물러났다.
흑룡편이 수십 줄기의 궤적을 그리며 헌원강의 전신을 노렸다. 무기는 흑룡편이지만 펼치는 무공은 무겁고 사나운 도법이었다.
까가가강-!
백수룡은 일부러 하북팽가의 도법과 비슷한 느낌을 흉내 내며 헌원강을 몰아붙였다.
“크윽……!”
헌원강은 이를 악물고 쉴새 없이 도를 휘둘렀다. 사방에서 몰아치는 공격에는 빈틈이 없었다. 정말로 도법의 고수와 싸우는 기분이었다.
“고작 이런 실력으로 팽사혁을 이기겠다고?”
“젠자앙!”
손발이 어지러워진 헌원강의 몸에 빈틈이 크게 생겼다. 백수룡은 그 빈틈을 놓치지 않고 안으로 파고들었다. 흑룡편의 길이가 흑도보다 짧아 간격을 좁히는 것이 유리했다.
“별것도 아닌 도발에 흥분하기는. 일단 머리 좀 식혀라.”
백수룡은 이 일격으로 새벽 특훈을 끝낼 생각이었다.
그러나 아래에서 위로 치솟은 흑룡편이 헌원강의 턱을 아슬아슬하게 스쳤다.
“피해?”
백수룡이 조금 놀란 표정으로 헌원강을 바라봤다.
당연히, 방금 공격이 전력은 아니었다. 적당한 힘과 속도를 실어서 헌원강을 뻗게 만들 생각이었지, 제자를 죽일 작정은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헌원강은 이 순간만을 노리고 있었다.
“흐흐.”
단순히 피한 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백수룡이 안으로 파고드는 순간, 헌원강이 씩 웃으며 날카롭게 눈을 빛냈다.
그 눈을 본 순간 백수룡은 깨달았다.
‘나를 가까이 끌어들이려고 일부러 빈틈을 보였구나.’
거리가 좁혀진 순간, 헌원강은 미련 없이 손에서 도를 놓으며 주먹을 말아쥐었다.
힘은 거상웅이나 야수혁에 미치지 못하지만, 몸의 탄력과 반응 속도, 동물적인 감각은 단연코 헌원강이 제자들 중에서 가장 뛰어났다.
여기에 체격 조건도 백수룡보다 좋으니, 근접박투로 끌고 가면 승산이 있다고 계산한 것이다. 정면승부로는 답이 없다고 판단되자 임기응변으로 떠올린 노림수였다.
“……제법인데? 이제 속임수도 쓸 줄 알고.”
평소 같았으면 으스대며 되받아쳤을 헌원강은 호흡조차 아끼며 일권을 뻗었다. 주먹에 담긴 힘이 바위도 깨부술 기세였다.
상당한 위력이었지만, 백수룡은 당황하지 않고 두 손으로 부드럽게 원을 그리며 헌원강의 주먹을 옆으로 흘려보냈다.
“아직은 어림없다.”
그런데 헐렁하고 얇은 침의를 입은 탓에, 소맷자락 일부가 헌원강의 공격에 휘말렸다.
찌이익-
한 방 먹이는 데는 실패했지만, 소매가 제법 많이 찢어졌다.
눈앞에서 그 모습을 본 헌원강의 눈이 믿을 수 없다는 듯 부릅떠졌다.
“……!!”
지켜보고 있던 다른 제자들도 마찬가지였다. 모두의 입이 떡 벌어졌다. 졸린 눈이 저절로 부릅떠지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백수룡도 조금 당혹스러운 표정이 되었다.
선생님의 옷이 찢어졌다!
“봤어? 봤지! 내가 한 방 먹일 거라고 말했잖아!”
헌원강이 잔뜩 흥분한 얼굴로 선·후배들을 돌아보며 소리쳤다.
그러나 헌원강의 흥분은 오래가지 못했다.
“어딜 보냐. 특훈 아직 안 끝났다.”
혀를 찬 백수룡은 헌원강의 팔을 잡아 끌어당겼다. 그는 “어어어.” 하고 멍청한 소리를 내며 딸려오는 헌원강의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
“끝까지 집중해라. 그럼 진짜 한 방 먹였을지도 모르잖아?”
“자, 잠깐만……!”
빠악!
헌원강의 관자놀이에 백수룡의 팔꿈치가 꽂혔다. 헌원강은 그대로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
특훈을 끝낸 백수룡은 손을 탈탈 털었다.
그는 자신의 찢어진 소매를 바라보며 피식 웃었다.
그러곤 몸을 돌려 다른 제자들을 바라봤다.
“너희도 준비됐냐?”
어느새 몸을 풀어 둔 제자들은 눈을 반짝반짝 빛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다들 방금 헌원강이 한 것을 보고 호승심이 자극된 것이다. 제자들이 동시에 방에서 뛰쳐나오며 백수룡에게 덤벼들었다.
““한 수 부탁드립니다!””
마당에 먼지가 크게 피어오르고, 기합 소리가 백룡장 바깥까지 울려 퍼졌다.
재능도 있고 열정도 넘치는 아이들.
백수룡은 그런 제자들에게 아낌없이 가르침을 베풀었다.
“으아아!”
어느새 다시 정신을 차린 헌원강이 벌떡 일어나더니, 진형에 자연스럽게 합류하며 외쳤다.
“백수룡 조지기 백팔십팔십팔 번으로 간다!”
잠시 공격을 멈춘 백수룡이 의심스럽다는 듯 미간을 찌푸렸다.
“방금 십팔이 두 번 반복된 것 같은데?”
“문답무용! 죽여!”
“……이 새끼가?”
그러나 동시에 사방에서 몰아치는 매서운 공격을 보며, 백수룡은 이내 피식 웃었다.
“그래. 얼마든지 덤벼 봐라.”
언젠가 이 녀석들의 합공이 버거워지는 날이 오길, 백수룡은 진심으로 기대하고 있었다.
* * *
백룡장에 한바탕 폭풍이 몰아친 후, 백수룡은 안으로 들어가 몸을 씻었다.
씻고 나오자 바닥에 널브러져 있던 제자들이 어느새 아침을 차려 놓고 있었다. 죽을 만큼 힘들어도 백수룡에게는 절대 조리 도구를 맡기지 않는 것이 백룡장의 암묵적인 규칙이었다.
빠르게 식사를 마친 백수룡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 먼저 출근한다.”
“이렇게 일찍이요?”
평소에도 일찍 나가긴 했지만, 오늘은 그보다 반 시진은 이르게 출근한다는 말에 제자들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백수룡은 흑룡편과 창룡신검, 그리고 품 안에 강의계획서를 챙기며 말했다.
“오늘 전체 회의가 있거든.”
이 학기 개학 첫날.
강사들은 학생들보다 한 시진 먼저 청룡학관에 출근해, 회의를 통해 이런저런 사항을 최종적으로 결정할 예정이었다.
“이따 봬요!”
백룡장을 나선 백수룡은 익숙해진 길을 걸었다.
처음 청룡학관에 입사했을 때만 해도, 그는 대부분의 강사들은 물론 학생들에게도 눈총을 받는 임시 강사에 불과했다.
하지만 지금 백수룡의 위치는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형님!”
익숙한 목소리에 고개를 돌리자, 반가운 얼굴들이 이쪽으로 빠르게 걸어오고 있었다.
“잘 지내셨어요?”
“형님 소문이 가실 날이 없어서 그런지, 어제 본 것 같군요.”
씩 웃으며 다가오는 두 사람은 악연호와 명일오였다.
자연스럽게 그들의 기도를 살핀 백수룡의 눈에 이채가 발했다. 둘 다 전과 비교하면 훨씬 날카롭게 벼려진 느낌이었다.
“악가에서 한 수련이 힘들긴 했나 보다?”
“말도 마십시오. 창왕께서 어찌나 엄격하시던지…….”
명일오는 다시 생각해도 무섭다는 듯 몸을 부르르 떨었다. 악연호도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백수룡은 그런 둘을 보며 피식 웃었다.
“너희는 방학 내내 붙어 있었냐?”
“거의 그렇다고 봐야죠. 며칠 각자 집에서 쉬었을 때를 빼면요.”
“이제는 서로 눈빛만 봐도 무슨 말을 할지 알 지경이라니까요.”
“……그건 좀 오래된 부부 같아서 징그러운데?”
두런두런 대화를 나누며 함께 걷자, 금세 청룡학관 정문에 도착했다.
그곳에는 익숙한 뒷모습이 대자보를 올려보고 있었다. 학생처럼 보이는 앳된 외모였지만, 그녀 또한 한층 성숙해진 기운을 풍겼다.
“어? 오라버니들!”
세 사람의 기척을 느낀 제갈소영이 뒤를 돌아보곤 활짝 웃었다.
그런데 그녀의 표정이 무척이나 밝아 보였다.
“뭘 보고 있었길래 그렇게 싱글벙글이야?”
“직접 보세요.”
제갈소영이 웃으며 옆으로 비켜서자, 그녀가 가리고 있던 대자보의 내용이 눈에 들어왔다.
곧 세 남자의 눈이 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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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한 학기 동안 놀라운 성과를 보여 준 신입 강사 전원이 정규직으로 전환되었음을 알리며, 업무 평가를 통한 성적을 발표한다.
수석(首席) 백수룡
차석(次席) 제갈소영
삼석(三席) 악연호
……중략……
오석(五席) 진의협
육석(六席) 명일오
……중략……
십석(十席) 곽두용
이하 열 명의 신입 강사 전원을 정식 강사로 임명한다.
-청룡학관주 노군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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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식 강사……!”
“발표가 오늘이었군!”
악연호, 제갈소영, 명일오.
백수룡뿐만 아니라 입사한 동기들 전원이 청룡학관의 정식 강사가 되었다.
그동안 그들이 보여 준 성과를 생각하면 놀랄 만한 일은 아니었지만, 기쁘고 뿌듯한 것은 사실이었다.
“형님! 형님이 수석이에요!”
“축하드립니다!”
“축하드려요!”
동기들은 백수룡보다 더 기뻐하고 축하해 주었다.
처음 입사했을 때, 백수룡은 열 명의 신입 강사들 중 열 번째였다.
하지만 지금, 그의 이름은 당당히 맨 위에 있었다.
백수룡은 피식 웃었다.
“뭐, 당연한 걸 가지고.”
하지만 기분이 좋은 것은 사실인지, 기쁨을 감추지 못한 입꼬리가 꿈틀거렸다.
실제로 백수룡은 무림십존보다, 무림맹 총사범이나 북해빙궁의 태상호법보다, 강사로 인정받는 것이 훨씬 만족감이 높았다.
‘아직 멀었지만.’
천무제까지 이제 반년도 남지 않았다.
그 안에 청룡학관의 전력을 천무제에 우승할 수 있을 정도로 끌어올리고, 혈교와의 전쟁도 준비해야 한다. 그야말로 할 일이 산더미처럼 많았다.
“자, 들어가자.”
백수룡은 동기들과 함께 보무도 당당히 청룡학관으로 들어섰다.
이 학기의 첫 출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