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mber One Star Instructor Master Baek RAW novel - Chapter 367
366화. 평화로운 일상에 찾아온
전체 회의가 끝난 후.
백수룡은 곧바로 남궁수의 사무실을 찾아갔다.
지난 몇 년간 천무제 진행위원장이었던 남궁수에게 인수인계 자료를 건네받기 위해서였다.
“……최근 삼 년간 천무제의 모든 대회 기록을 정리한 자료다. 청룡학관 외에도, 대회에 참가했던 오대학관 학생들의 명단, 그들의 특이 사항과 대회 기록을 적어 두었다.”
쿵!
서류 더미가 든 목함을 꺼낸 남궁수가 그것을 책상 위에 올렸다. 청룡학관 제일의 일 중독자답게 남궁수가 모아 둔 자료의 양은 어마어마했다.
백수룡은 조금 질린 표정으로 그 서류 더미를 살펴보았다.
“이 정도면 삼 년이 아니라 삼십 년 치 자료라고 해도 믿겠는데?”
“그런 비효율적인 정리는 하지 않았다. 현재 오대학관 사 학년들이 일 학년이던 시기부터 지금까지, 실질적인 경쟁자들에 대한 정보만 취합했다.”
“너도 진짜…….”
고개를 절레절레 저은 백수룡은 손을 뻗어 서류 더미를 들춰 보았다.
가장 긴 것도 삼 년밖에 안 된 자료인데 종이가 전부 너덜너덜했다. 반면에 쌓인 먼지는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최근까지 남궁수가 이 서류를 종이가 닳도록 자주 들춰 보았다는 뜻이었다.
그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는 백수룡은 고개를 들어 남궁수를 바라봤다.
“열심히 준비한 것 같은데, 진짜 내가 진행위원장을 맡아도 상관없겠어?”
“이제 와서 안 된다고 하면 물러날 건가?”
“그건 아니고.”
씨익 웃은 백수룡은 서류가 든 목함을 통째로 자신 쪽으로 당겼다.
일 욕심이라면 백수룡도 절대 지지 않는 사람이었다. 남궁수가 만들어 둔 자료는 아주 귀하게 쓰일 계획이었다.
“양보해 줘서 고맙다는 말이지.”
“고마워할 것 없다. 어차피 너에겐 개인적으로 갚아야 할 것도 있으니.”
“뭘 또 갚아?”
순간 흠칫한 백수룡이 미간을 좁히며 남궁수를 바라봤다.
뭘 자꾸 갚는다는데, 백수룡은 그게 원수인지 은혜인지 도통 헷갈렸다. 물어보면 남궁수는 항상 의뭉스럽게 말끝을 흐리기만 했다.
“이번 기회에 확실하게 짚고 가자. 자꾸 갚는다는 게…….”
“하지만 그것 때문만은 아니다.”
백수룡의 말을 끊은 남궁수는 조금은 쓸쓸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나는 지난 몇 년간 청룡학관을 바꾸지 못했다.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지만 천무제에서의 성적도, 청룡학관이 가진 뿌리 깊은 패배의식도 여전히 그대로였다.”
“치사한 놈…….”
그런 말을 하면 물어볼 수가 없지 않나.
백수룡이 작게 한숨을 쉬는데, 남궁수는 물끄러미 서류 더미를 바라봤다.
“청룡학관 유일의 일타강사라는 말이 조롱처럼 들릴 때도 있었다. 나 혼자 노력해 봤자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으니까. ……이직에 대한 고민도 했었지.”
덤덤하게 말하고 있었지만, 그것은 남궁수가 처음으로 타인에게 드러낸 속내였다.
“하지만 너는 달랐다.”
서류 더미에서 고개를 든 남궁수가 샛노란 금안으로 백수룡을 응시했다.
“짧은 시간에 많은 것을 바꾸었지. 천무제에 진행위원장 자리를 양보한 것은 그래서다. 네가 나보다 더 적합하니까.”
“음. 알다시피 내가 좀 대단하긴 하지.”
이제는 제법 익숙해진 백수룡의 뻔뻔한 대답에, 남궁수는 피식 웃었다.
“천무학관을 제외한 다른 오대학관과 청룡학관 학생들의 실력의 차이는 생각만큼 크지 않다. 문제는 천무제에만 참석하면 위축되는 분위기였지. 대진 운도 나빴다. 초반부터 천무학관과 유독 자주 부딪쳤으니.”
“초반부터? 자세히 좀 얘기해 봐.”
백수룡은 스윽 의자를 가져와 남궁수의 맞은편에 앉았다.
갑자기 두 사람만의 회의가 시작되었지만, 둘 다 아무렇지 않다는 듯 자연스러웠다. 그들은 마주 앉아 함께 서류를 살피면서 업무를 시작했다.
“진행위원회를 제대로 구성하는 것이 최우선이다.”
“그건 생각해 둔 명단이 있어. 일단 부위원장에 남궁수, 그 밑에 풍진호, 그리고 내 동기들 중에서 몇 명…….”
“시작부터 뻔뻔하기 짝이 없군. 나보고 네 밑에서 일하라는 건가.”
“어차피 도와줄 생각이었잖아?”
“……고문(顧問) 위원 정도로 하지.”
방학 동안에도 두 사람은 일과 관련된 이야기를 자주 나눴었다. 덕분에 이제는 일 이야기를 하는 것도 굉장히 자연스러웠다.
“천무제 출전 명단을 제출하는 것은 기말고사 이후다.”
“급하게 뽑을 이유가 없다 이거군. 그럼 후보군을 선별하고 경쟁시키는 쪽으로 가는 게 낫겠는데?”
“그쪽이 좋을 것 같군. 작년이라면 참여율 자체가 저조할 테지만, 올해는 다를 테니…….”
두 강사는 천무제뿐만 아니라 서로의 수업 내용에 대한 부분도 공유했다. 천무제 선발 명단을 꾸리는 것과 결코 무관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남궁수는 이 학기에도 많은 수업을 맡아 청룡학관 학생들의 전체적인 능력을 향상시키는 데 초점을 맞추기로 했다.
반면, 백수룡은 이 학기에도 단 하나의 수업만 맡아 집중할 생각이었다. 두 사람의 성향이 갈리는 부분이었다.
백수룡의 강의계획서를 읽어 본 남궁수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수업명은 정말 이대로 쓸 건가?”
“왜? 무슨 문제라도 있어?”
“……무림맹에서 좋아할 것 같긴 하군.”
두 사람이 자리에서 일어난 것은 한 시진이 훌쩍 지나서였다.
물론 그것도 할 이야기가 끝나서가 아니라, 이후에 있는 남궁수의 수업 때문이었다.
“난 이제 수업에 들어가야 한다. 계속 여기 있을 건가?”
“아니. 같이 나가자고.”
두 사람은 함께 남궁수의 사무실을 나섰다.
“그런데…….”
백수룡은 옆에서 나란히 걷고 있는 남궁수에게서 위압적인 기운을 느꼈다.
아까 전체 회의에서 대부분의 강사들은 남궁수와 눈도 제대로 마주치지 못했는데, 단순히 그의 금안 때문만은 아니었다.
공간 전체를 짓누르는, 스스로를 세상의 중심이자 제왕(帝王)이라고 주장하는 듯한 오만한 기세.
남궁수는 나름대로 갈무리를 하려고 한 모양이지만, 미처 숨기지 못한 기운이 은연중에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 시선을 느낀 남궁수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더 할 말이라도 있나?”
백수룡은 굳이 빙빙 돌려서 묻지 않았다.
“새로운 무공을 익힌 것 같은데?”
남궁수도 그 사실을 부정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본가에 잠시 들렀을 때, 가주께서 무공을 전수해 주셨다.”
남궁세가주가 직접 전수한 무공.
그 말을 들으니 곧바로 어떤 무공일지 짐작 가는 것이 하나 있었다.
‘제왕검형(帝王劍形)이라……. 천뢰검법과 어우러지면 가공할 위력이 나오겠군.’
제왕의 기운이 공간을 장악하고, 하늘의 벼락이 검에서 뿜어진다면, 천하에 그걸 피할 수 있는 무인이 몇이나 될까.
피식.
백수룡의 입가에 미소가 맺혔다.
“도무지 방심을 못 하겠네.”
청룡학관의 원조 일타강사는 무섭게 강해지고 있었다.
마치 백수룡에게 쉽게 자리를 내어줄 수는 없다는 듯.
혹은 방심하면 언제든 다시 빼앗겠다는 듯이 말이다.
그리고 남궁수의 그런 모습은 백수룡의 승부욕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두 사내의 눈빛이 허공에서 잠시 부딪쳤다.
“내일 또 보자고.”
“그러지.”
갈림길에서 멈춰선 두 사람은 짧게 인사를 나누고 반대 방향으로 발길을 돌렸다.
남궁수는 강의실을 향해 빠르게 발걸음을 옮겼고, 백수룡은 생활지도부로 향했다. 가서 남궁수에게 받아 온 서류를 좀 더 살펴볼 생각이었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저 오늘 선생님 수업 수강 신청했어요!”
“나중에 저희 밥 사 주세요!”
대연무장을 가로지르는 백수룡에게 많은 학생들이 다가와 밝게 인사했다.
개학 첫날.
학생들의 표정은 대체로 들떠 보였다.
청룡학관의 위상이 전과 달라진 것을 가장 크게 체감한 것이 학생들이었다. 그들은 방학 동안 집에 다녀오면서 주변 사람들로부터 수많은 질문과 부러움의 시선을 받았다.
이러한 변화가 누구 때문인지는 모두가 알고 있었다.
“어어, 그래. 오랜만이다. 잘들 지냈냐?”
백수룡은 씩 웃으며 학생들의 인사를 받아 주었다.
그중에는 자주 본 얼굴들도 있었고, 용기를 내서 쭈뼛쭈뼛 말을 걸어 오는 아이들도 있었다.
청룡학관의 평화로운 일상이자 풍경이었다.
그런데 그때, 백수룡은 자신을 은밀히 뒤따라 오는 기척을 느꼈다.
‘살수?’
그러나 곧 백수룡은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살수라기에는 느껴지는 시선에 담긴 감정이 살기와는 거리가 멀었다.
그보다는 더 섬뜩하고 끈적끈적한…….
이내 그 정체를 깨달은 백수룡이 제자리에서 멈춰서서 한숨을 쉬었다.
“당소소. 이리 나와라.”
“……후후.”
스르륵.
기둥 뒤편의 그림자에서 당소소가 음산한 미소를 지으며 나타났다. 방학 동안 은신술만 갈고닦은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조용한 움직임이었다.
백수룡이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왜 몰래 쫓아온 거야?”
당소소가 배시시 웃으며 말했다.
“다른 학생들과는 다르게 인사드리고 싶었거든요. 무공이 얼마나 발전했는지도 같이 보여 드리고 싶었고요.”
확실히 조금 전 은신술만 봐도 움직임이 상당히 좋아졌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처음에는 살수인 줄 알았을 정도였으니까.
백수룡이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열심히 수련했구나. 조금만 더 하면 살수 해도 되겠다.”
“암기술이랑 독공도 보여 드릴까요?”
눈을 초롱초롱하게 빛내는 당소소에게, 백수룡은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개학 첫날부터 청룡학관 한복판에서 독연이 터지고 암기가 날아다니게 했다간, 아무리 백수룡이라도 시말서를 피할 수 없었다.
“이따가 수업 시간에 보자. 내 수업 수강 신청했지?”
“물론이죠!”
오늘 오후에 백수룡의 수업이 있었다.
당소소뿐만 아니라 오랜만에 보는 학생들이 얼마나 발전했을지, 그때 확실하게 알 수 있을 터였다.
“알겠어요. 그럼 이따 수업 시간에 뵐게요.”
돌아서려던 당소소가 뭔가 생각났다며 말했다.
“맞다. 정문 쪽에 선생님을 찾는 사람이 있던데요?”
“나를?”
당소소와 헤어진 백수룡은 빠르게 정문으로 걸음을 옮겼다.
곧 정문에서 험악한 인상의 사내가 정문을 지키는 위사들과 실랑이를 벌이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청룡신협하고 아는 사이라니까!”
“그래도 함부로 들어가면 안 된다고 하지 않았소!”
“급한 거라니까 그러네! 당신들 신입이지? 나 몇 달 전에도 여기 자주 왔었어!”
“일단 지금 확인 중이니…….”
짧은 머리에 사나운 외모. 무복으로도 전신의 흉터를 다 가리지 못한 작은 키의 사내.
주변의 학생들이 슬금슬금 피하는 것이 보였다.
아무리 좋게 봐줘도 수금하러 온 사파의 마두로밖에 보이지 않는 인상.
하지만 백수룡은 한눈에 그를 알아보았다.
“철두?”
그는 갱생문의 문주인 철두였다.
백수룡의 부름에 철두가 이쪽을 돌아봤다. 그리고 위사들을 향해 버럭 소리쳤다.
“보쇼! 잘 아는 사이라니까!”
“흠흠…….”
과거 남창의 뒷골목 왈패 무리에 불과했던 갱생문은 이제는 어엿한 문파로 자리를 잡아 가고 있었다.
백룡상단의 자금과 청천의 조력, 하오문의 지원이 더해진 결과였다.
그럼에도 갱생문의 문주인 철두는 외모 때문에 여전히 자주 오해받곤 했다.
철두가 백수룡에게 불만을 토해냈다.
“젠장. 몇 달 전만 해도 잘 들여보내 주더니 갑자기 왜 이러는 거요?”
“개학에 맞춰서 위사들을 새로 뽑았거든. 혈교 때문에 수상해 보이는 인물은 들여보내지 말라는 공문도 있었고.”
철두에게는 미안하지만, 위사들 입장에서는 그를 그냥 들여보내 주는 것이 업무 태만이나 다름없었다.
백수룡이 철두를 보더니 피식 웃었다.
“제법 강해졌는데?”
“흐. 제법이라고 할 정도는 되나 보군.”
놀라울 정도로 탄탄해진 몸만 보아도 알 수 있었다. 그동안 얼마나 뼈를 깎는 노력을 해 왔을지 말이다.
“그래서, 무슨 일이야?”
“좀 조용한 곳으로 갑시다.”
인적이 드문 건물 뒤편에 와서야 철두는 품에서 조심스럽게 서찰을 꺼내 내밀었다.
“이거, 국숫집 할멈이 전해 주라고 하더군. 중요한 것이니 꼭 나더러 직접 갖다 주라고 했소.”
“국숫집 노파가?”
국숫집 노파는 남창의 하오문 지부장을 말하는 것이었다.
서찰을 받아든 백수룡의 표정도 조금 진지해졌다. 봉인된 봉투의 겉면에 지급(至急)이라는 글자가 적혀 있었다.
“전달했으니 나는 이만 가 보겠소. 나중에 한번 들러서 애들 무공 좀 봐주시오.”
“그래. 고맙다.”
철두가 돌아간 후, 백수룡은 서찰의 봉인을 뜯고 내용물을 확인했다.
잠시 후 그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어르신.”
서찰의 발신인은 혈교에 잠입한 위지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