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mber One Star Instructor Master Baek RAW novel - Chapter 37
36화. 알다마다위 노인이 손을 뻗는 순간, 나는 탁자를 발로 걷어차며 몸을 뒤로 밀었다.
콰지직!
탁자가 두 조각으로 부서지고, 그 사이로 위 노인이 성난 곰 같은 기세로 내게 달려들었다.
‘예상했던 반응이지만…… 더 격하군.’
나는 뒤로 물러나며 말했다.
“싸우기 전에 대화를 나눠 볼 생각은 없습니까?”
대답 대신 바위 같은 주먹이 날아왔다.
그대로 당할 수는 없기에, 나도 마주 손을 뻗었다.
파바바박!
우리는 순식간에 십여 합을 교환했다.
주먹과 손바닥이, 손바닥과 손가락이 부딪치며 우리는 서로의 무공을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었다.
위 노인의 눈이 점점 경악으로 부릅떠졌다.
“이 무공은 설마……!”
“많이 익숙하죠?”
위 노인의 표정이 기묘하게 일그러지는 순간, 천막 바깥에서 복만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공자님!”
“들어오지 마세요!”
나는 고함을 지름과 동시에 위 노인에게 눈치를 주었다.
위 노인은 잠시 고민하다 떨떠름한 표정으로 잠시 공격을 멈췄다. 그러나 언제든지 다시 출수할 수 있도록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천막 바로 앞에서 복만춘이 머뭇거리는 기척이 느껴졌다. 나는 그를 향해 말했다.
“아무 일도 아닙니다. 왜 사람 부끄럽게 과보호를 하고 그래요?”
“……방금 그 안에서 심상치 않은 소리가 들렸습니다만.”
“사소한 오해가 있었어요. 낭인 시장에 가서 기다리세요. 출출하실 텐데 뭐라도 좀 사 드시고.”
“……언제 모시러 오면 되겠습니까?”
자신이 올 시간을 정해 달라는 말에, 나는 위 노인의 사나운 눈빛을 마주하며 말했다.
“오지 마세요. 만약 제가 아침까지 안 돌아가면, 먼저 남창으로 돌아가서 기다리세요.”
“……그 많은 재산은 어쩌고요?”
만약 내가 죽으면 어떻게 하냐는 농담 섞인 진담이었다.
나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꿀꺽할 생각은 꿈도 꾸지 마세요. 아무리 늦어도 며칠 안 걸리니까. 그러다 손모가지 잘립니다.”
아무리 늦어도 실기시험 전까지는 돌아갈 생각이었다.
복만춘은 민망한 듯 천막 밖에서 헛기침을 했다.
“흠흠. 그냥 해 본 말입니다. 아무튼 알겠습니다. 혹시라도 무슨 일이 있으면…….”
“안 갑니까?”
“갑니다. 간다고요.”
투덜거린 복만춘의 기척이 점점 멀어졌다.
완전히 그 기척이 사라진 후에야, 위 노인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
“넌 누구냐?”
위 노인이 본격적으로 기세를 끌어올리자, 가공할 살기가 천막 안을 가득 채웠다.
‘역시 위지가의 가주였군.’
위지가(家).
혈교를 지탱하던 팔대 가문 중 하나로, 무공보다는 야금술과 폭약 제조로 유명한 가문이었다.
특히 가주는 대대로 혈교 최고의 야장으로, 혈교의 신물이었던 혈마검도 위지 가에서 만든 작품이었다.
“저는…….”
나는 입 밖으로 내뱉을 단어를 최대한 신중하게 선택하며 말했다.
“당신과 비슷한 처지의 사람입니다.”
“……살아남은 자란 말이냐?”
위 노인이 갈라진 목소리로 물었다.
약 오십여 년 전.
‘알 수 없는 이유’로 사분오열돼 있던 혈교는 무림맹의 공격을 받아 완전히 사멸했다.
위 노인이 말하는 ‘살아남은 자’는 그 당시 무림맹의 공격에서 살아남아 도망친 자를 말하는 것이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혈교의 생존자들은 지금까지도 모두 무림 공적으로 등록돼 있었다.
“그 후손쯤 되겠지요.”
“……고작 교의 하급 무사들이 배우는 권법 하나 익힌 것으로 그 말을 믿으라고?”
위 노인은 여전히 나를 경계했다.
혈교의 잔당을 소탕하기 위해, 무림맹이 지난 수십 년 동안 온갖 방법을 사용해 그들을 끌어내려는 유인책을 사용했기 때문이었다.
‘나를 믿게 하려면…… 이쪽에서 먼저 드러내야겠군.’
결정을 내린 나는 인피면구를 조심스럽게 피부에서 떼어냈다.
찌이이익.
“이게 제 진짜 얼굴입니다. 복 총관도 모르는 얼굴이지요.”
“…….”
“여전히 못 믿으시겠다면 하나 더 보여 드릴까요?”
나는 위 노인이 경계하지 않도록 천천히 월영을 뽑아 기수식을 취했다.
“만약 이걸 못 알아본다면, 이번엔 제가 당신을 의심할 겁니다.”
“…….”
나는 위 노인이 알아볼 수 있도록 천천히 검법을 펼쳤다.
천천히 움직이던 검이 서서히 빨라지기 시작하더니, 어느새 천막 안을 사납게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거칠고 끈질기다.
집요하고 악랄하다.
상처를 두려워하지 않고, 어떻게든 상대의 목을 물어뜯으려 한다.
‘역시 살기가 너무 짙어.’
검법을 펼친 것만으로도 천막 안에 피 냄새가 흥건한 듯한 착각에 빠진다.
한 차례 검법 시연을 끝낸 후, 나는 월영을 검집에 집어넣었다.
동시에 위 노인의 입에서 탄식이 터져 나왔다.
“혈랑검법……. 수십 년 만에 보는군.”
혈랑검법은 혈교의 대표적인 무력 단체인 혈랑대의 검법으로, 전 사초식과 후 사초식으로 나뉘어 있었다.
후 사초식은 조장급 이상만이 익힐 수 있는데, 방금 나는 후반 사초 중 이초까지 펼쳐 보였다.
“이제 믿으시겠습니까?”
“……혈랑대와 무슨 관계인가?”
“돌아가신 부친께서 혈랑대 십삼조 부조장으로 계셨다고 들었습니다.”
혈랑대가 정예 무력 단체이긴 해도, 위지가의 가주쯤 되는 사람이 혈랑대 십삼조 부조장 따위를 알고 있을 확률은 없었다.
아니나 다를까.
위 노인은 내가 말한 사람이 누군지 전혀 모르는 눈치였다.
“자네의 부친이 누군지는 모르나…… 아들을 잘 키웠군. 내 이름은 위지열이네.”
목소리가 부드러워지고, 기세도 한결 누그러졌다.
하지만 의심이 완전히 가신 것은 아니었다.
위지열이 눈을 예리하게 빛내며 말했다.
“그런데 내가 위지가의 가주인 것을 어떻게 알아보았나?”
나는 내가 아는 혈교의 정보를 토대로, 그럴듯한 이야기를 만들어 냈다.
일단 아버지에게 심심한 사과의 말씀을 먼저 올리고,
“……돌아가신 부친께서 위지가의 가주님이야말로 천하제일의 야장이란 말을 자주 하셨습니다. 그분께서 직접 만든 검은 전장에서 부러진 적이 없고, 그분께서 만드신 검이 강호에 흘러 들어가면 서로 차지하기 위해 피바람이 불 정도였다면…….”
“크흠. 부친께서 내 얼굴에 금칠을 하셨군. 그 정도는 아니네.”
말로는 아니라고 하지만, 위지열의 입꼬리는 이미 흐뭇하게 올라가 있었다.
“한번은 멀리서 어르신을 뵌 적이 있는데, 그때의 강렬한 인상을 평생 잊을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특히 온몸에 새겨 넣으신 문신들 말입니다.”
“문신?”
나는 위지열의 우람한 몸에 새겨진 온갖 문신을 바라봤다.
무림맹의 추적을 피하기 위해 용이나 호랑이 등으로 덧씌워져 있지만, 사실 저것은 전부 검, 도, 창 등의 병기였다.
그리고 저 문신에는 모두 사연이 있었다.
“평생 만드신 무기 중 보물이라 불릴 수 있는 것들만을 몸에 새기신다고 들었습니다. 하지만 그중에 왼쪽 어깨에서 팔로 내려오는 그 용은…….”
위지열의 왼쪽 어깨에는 붉은 용이 선명하게 새겨져 있었다.
저것은 용이 아니라 검이다.
그리고 저 검만은 위지열이 만든 것이 아니었다.
“혈교의 신물인 혈마검이 아닙니까? 언젠가 그보다 나은 검을 만들겠다는 다짐을 하시며 새겨 넣으셨다고 들었습니다.”
“…….”
잠시 자신의 왼쪽 어깨를 내려 보던 위지열이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봤다.
“참으로 총명한 아이구나. 이 용 문신에서 혈마검의 흔적을 찾다니.”
“사연을 알고 있으면 누구나 가능한 추리입니다.”
“누구나 그랬다면 나는 진작 무림맹에 잡혀 추살되었겠지.”
위지열은 나를 향한 모든 의심을 거두었다.
그가 씁쓸하게 웃으며 말했다.
“잠시 이야기를 나누겠느냐?”
우리는 한동안 오십 년 전에 망해 버린 혈교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와 사부들이 죽고 얼마 지나지 않아 무림맹의 공격을 받아 사라진 혈교.
위지열은 그 모습을 기억하는 노인 중 하나였고, 나 또한 그 시절을 기억하기에 이야기는 잘 통했다.
‘위지열. 많이 늙었군.’
이야기를 나누며 나는 젊었던 시절의 위지열의 얼굴을 떠올렸다.
그땐 꽤나 밝고 쾌활한 성격이었던 것 같은데, 고생을 많이 한 탓인지 성격도 진중해지고 얼굴도 많이 변했다.
‘가주치고 드물게 괜찮은 사내였는데.’
함부로 사람도 죽이지 않고, 야장 일 외에는 크게 관심도 없어 지저분한 교내 정치에도 끼지 않았던 인물.
……어떻게 지금까지 살아남은 모양이다.
과거에 알던 인물을 만나보니 조금 묘한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과거는 과거일 뿐, 크게 동정심이 생기거나 하지는 않았다.
대화로 분위기가 충분히 무르익었다 싶을 때쯤, 나는 본론을 꺼냈다.
“혹시 어르신의 의뢰라는 것도, 혈교와 관련된 겁니까?”
잠시 고민하던 위지열은 한숨을 길게 내쉬며 고개를 숙였다.
“상관이 없다고…… 말할 수는 없겠군.”
그리고 잠시 후, 고개를 든 그가 비장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물었다.
“부탁이네. 내 손자를 죽여 주시게.”
* * *
며칠 후.
나는 위지열을 따라 이름 모를 산속을 헤매고 있었다.
“곧 도착하네.”
“죄송하지만 같은 말을 열 번은 들은 것 같은데요.”
“쯧. 젊은 친구가 이리 인내심이 없어서 되겠나.”
“몇 번 말씀드린 것 같은데, 중요한 시험이 며칠 안 남았습니다.”
“이제 정말로 거의 다 왔네. 진법을 해제하면서 가느라 오래 걸릴 뿐이야.”
의뢰 대상의 거처는 산속 깊은 곳 진법으로 둘러싸인 곳에 갇혀 있었고, 우리는 그것을 하나하나 해제하고 다시 원상태로 돌리며 가느라 속도가 느렸다.
나는 실기시험까지 남은 시간을 가늠해 보았다.
‘실기시험이 시작되기 전에 돌아가려면 꽤 빠듯하겠군.’
늦어도 오늘 안에는 의뢰를 마치고 돌아가야 시험에 늦지 않는다는 계산이 나왔다.
한 시진 가량 숲속을 더 헤맨 후, 위지열의 걸음이 우뚝 멈춰 섰다.
“……다 왔네.”
우리가 멈춰선 곳은 언덕이었다.
그 아래로 작은 초옥(草屋)이 보였고, 초옥 옆에는 두 개의 봉분이 솟아 있었다.
“내 아들과 며느리의 무덤이네.”
위지열의 아들과 며느리는 무림맹의 공격에서 탈출할 때 무공을 잃었고, 그 후 오랫동안 병을 앓다가 죽었다고 했다.
“미련하게도 가주인 나를 보호하려다 단전을 잃었다네.”
옆에 서서 본 위지열의 옆얼굴은 무척이나 슬퍼 보였다.
두 개의 봉분 옆에는 의뢰대상이 앉아 있었다.
적으면 열셋, 많아봤자 열다섯이 넘을 것 같지 않은 소년이었다.
“그리고 저 아이가 내 손자라네. 부모 얼굴도 제대로 못 보고 자란 것을, 내가 젖동냥을 해가면서 키웠지…….”
소년은 두 개의 봉분 사이에 앉아 있었다.
산새 한 마리가 소년의 손등 위에 올라와 지저귀고 있었는데, 소년은 마치 산새가 친구라도 되는 것처럼 방긋방긋 웃으며 무언가 이야기를 나눴다.
“이름은 위지천이라 하네. 단언컨대, 우리 가문 역사상 가장 뛰어난 무재를 타고났지.”
위지열의 표정이 점차 고통스럽게 일그러졌다.
“그래서였어. 아들과 며느리를 잃은 상실감에, 나는 저 아이를 지나치게 가혹하게 가르쳤네. 그땐 헛된 복수심에 눈이 멀어 있었지…….”
산새와 정답게 이야기를 나누던 소년은 산새를 쓰다듬더니 부드럽게 산새를 움켜쥐었다.
산새는 여전히 발랄하게 지저귀고 있었다.
“그래서 몰랐어. 저 아이가 심마에 빠져들고 있다는 것을…….”
“심마요?”
산새의 노랫소리가 고통스러운 울음으로 변했다. 작은 몸을 필사적으로 움직이며 놓아 달라고 소리치는 듯했다.
그 순간, 소년은 빙긋 웃더니 산새를 놓아주었다.
산새가 소년의 손바닥에서 날아올라 도망치려 했다.
소년의 손이 아주 부드러운 호를 그렸고,
푸화아악!
허공에서 터져 버린 난 산새의 사체가 바닥에 떨어졌다.
얼굴에 피를 잔뜩 뒤집어쓴 소년은, 히죽 웃고는 새로운 산새를 유혹하기 위한 노래를 불렀다.
나는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그 모습을 바라봤다.
“그 사실을 알게 된 후에도 차마 내 손으로 죽일 수는 없었다네. 그리고 지금은…… 내 능력으로 죽일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네.”
“……방금 펼친 무공, 누구한테 배운 겁니까.”
내 목소리가 심상치 않게 들렸는지, 위지열이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무공은 왜……. 혹시 아는 무공인가?”
알다마다.
저건 내가 만든 무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