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mber One Star Instructor Master Baek RAW novel - Chapter 374
373화. 조장들 (1)
청룡학관 맞은편.
학생들에게 싸고 양 많은 가성비 맛집으로 유명한 백룡객잔.
저녁 시간이면 항상 북적이는 이곳에, 오늘은 함께 조별 수업을 듣는 학생들이 모였다.
“지나간 패배는 빨리 털어 버리자! 다음부터 다 이겨 버리면 되니까!”
자리에서 일어난 헌원강은 잔을 높이 들었다. 그리고 본인 기준에서는 상냥한 미소로 조원들을 죽 둘러봤다.
결코 누굴 해치려거나 협박하려는 의도는 없었지만, 마주 보는 입장에서는 흠칫할 수밖에 없는 그런 미소였다.
“다들 잔 들어! 같은 조가 된 기념으로 찐하게 건배 한번 하자고!”
““거, 건배…….””
조원들과 힘차게 잔을 부딪친 헌원강은 단숨에 꿀꺽꿀꺽 잔을 비운 후 탁자에 쾅! 소리나게 내려놓았다.
“크으-!”
상당한 오해의 여지가 있는 장면이었지만, 잔에 들어 있는 것은 술이 아니라 학생들에게 인기가 많은 과실음료였다.
“오늘은 내가 살 테니까 마음껏 시켜! 오늘 아주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나누면서 찐하게 친목을 도모해 보자고.”
“잘 먹을게…….”
“가, 감사합니다. 선배님.”
헌원강은 조별 과제를 위해 무려 백룡객잔의 이 층을 통째로 빌렸다. 헌원세가에서 두둑하게 받아 온 용돈의 상당 부분을 기꺼이 지출한 것이다.
‘팽사혁 그 새끼가 객잔 통째로 빌려서 다닐 때마다 은근히 부러웠는데.’
물론 팽사혁이 다니던 객잔에 비하면 한참 작은 곳이었지만, 헌원강에겐 이것도 상당한 무리였다. 자신도 모르게 차림표에 적힌 가격을 힐긋거렸다.
“눈치 보지 말고 다 시키라니까? ……오향장육도 시키게? 아니, 시키지 말라는 게 아니라 남을까 봐 그러지. 하하하! 하나라도 남기면 너네 다 뒈질……. 농담인 거 알지? 하하하하!”
헌원강은 어색한 분위기를 풀 겸 농담을 건넸지만, 농담이 잘 안 통했는지 결국 소면과 만두로 모두 통일했다.
“쩝…….”
헌원강은 자신의 조에 유독 소심한 녀석들이 많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럴수록 조장인 자신이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우리 과제 말인데.”
“코, 콜록!”
조원 중 한 명이 소면을 먹다가 사레가 들렸는지 콜록거렸다.
“……괜찮냐?”
헌원강은 나름 걱정이 되어 바라보았는데, 기침을 하던 일 학년은 오히려 사색이 되었다. 일 학년이 견디기엔 너무 무서운 눈빛이었다.
“죄, 죄송합니다!”
“……어. 앞으로 조심해.”
헌원강은 사레들리지 않게 조심하라는 의미로 한 말이었지만, 모종의 경고로 알아들은 일 학년의 안색은 더욱 창백해졌다.
“다들 선생님이 내준 과제 기억하지?”
헌원강의 말에 조원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 수업까지 다른 조들의 장단점을 분석하고, 모의전에서 만났을 때의 대응 전략을 적어서 제출하도록.
백수룡은 첫 수업부터 시간을 꽉꽉 채운 것도 모자라서 과제까지 내주었다.
그야말로 악마가 따로 없었지만, 감히 청룡신협에게 불만을 토로할 수 있는 학생은 없었다.
그 제자가 눈을 사납게 치켜뜨며 자신들을 노려보고 있는 동안에는 더더욱.
“까짓거 여기서 과제도 다 해치워 버리자고. 일조부터 얘기해 볼까? 아, 글씨 잘 쓰는 사람 있냐?”
“…….”
조원들은 서로 눈치만 볼 뿐 아무도 손을 들지 않았다.
“아무도 없어?”
헌원강의 눈썹이 꿈틀대자, 그제야 아까 사레가 들렸던 일 학년이 소심하게 손을 들었다.
“제, 제가 적을게요.”
“이름이 영소춘이었지?”
“……영호식인데요.”
일 학년 영호식이 서기를 맡기로 하고, 본격적으로 회의를 시작했다.
“독고준이 있는 일조는 균형이 잘 잡혀 있더라. 독고준을 중심으로 진형이 단단하고 손발도 잘 맞아. 굳이 약점을 찾자면…….”
헌원강은 적극적으로 의견을 제시하며 회의를 주도했다.
문제는 헌원강 외의 조원들이 거의 의견을 내지 않는다는 데 있었다.
“이조를 상대할 때는 발이 빠른 사람이 야수혁을 견제하자. 그 자식 단순해서 도발에 잘 걸리거든. 그리고 쌍둥이는…….”
“좋은데요!”
“삼조는 전체적으로 몸이 날렵하고 빠르더라. 하지만 특출난 고수는 없어. 군소진인가 걔는 제법이긴 한데…….”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오조는……. 당소소 넌 다음에 만나면 뒈졌다. 하여튼 걔들이랑 싸울 땐 일단 독이랑 암기에 대비하자고. 앞에 몇 명은 방패라도 들든가, 아니면…….”
“찬성입니다!”
“육조? 거긴 진짜 별것 없더라. 조장인 목형우인가 하는 선배도 평범하고, 나머지도 그냥 그래. 솔직히 싸우면 우리가 그냥 이기는데, 뭐라도 적긴 해야겠지. 의견 있는 사람?”
“없습니다!”
“……?”
대부분 헌원강이 혼자 말하고, 조원들이 맞장구를 치며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이 반복되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헌원강도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깨닫곤 눈살을 찌푸렸다.
“아까부터 나 혼자 말하는 것 같다?”
그러자 다른 조원들이 급히 변명을 하기 시작했다.
“아니, 네 말이 다 맞으니까 할 말이 없어서…….”
“저희가 하고 싶었던 말을 선배님이 먼저 다 하셔서…….”
“헌원강 네가 잘하니까 그렇지.”
“선배님이 정해 주시면 저희는 그대로 따라갈게요.”
그것도 틀린 말은 아니어서, 헌원강은 입맛을 다셨다.
‘솔직히 나 혼자서 하는 게 낫긴 해.’
무공, 실전 경험 등 그 어떤 거로 따져 봐도, 헌원강은 사조에서 압도적으로 뛰어났다.
조에 다른 삼사 학년들도 있긴 했지만, 솔직히 헌원강의 눈에 차는 수준은 아니었다.
“흠흠. 그래도 가끔 의견 정도는 내라고.”
헛기침을 한 헌원강은 옆에 있던 과실음료를 벌컥벌컥 들이켰다. 혼자 말을 많이 해서 목이 말랐다.
“마지막으로 십조. 솔직히 위지천만 잡으면 거긴 끝나. 나머진 완전 오합지졸이더라. 어휴. 도움은커녕 조장 발목이나 잡는…….”
그 순간, 그렇지 않아도 조용하던 식탁 위의 분위기가 급격히 싸늘해졌다.
“어? 아니, 그게 아니라…….”
헌원강은 뒤늦게 자신의 말실수를 깨닫고 아차 싶었다.
‘조장에게 도움은커녕 발목이나 잡는 오합지졸.’
그가 속한 사조에도 어느 정도 해당되는 말이었기 때문이었다.
스윽.
어색한 분위기 속에서 조원 한 명이 일어났다. 그는 헌원강과 같은 삼 학년이었다.
“미안한데 먼저 가 봐도 될까?”
“벌써 간다고? 왜?”
“내일 아침 일찍 실습 수업이 있어서 준비할 게 있거든.”
“……알았어. 가 봐.”
그러나 한 명이 일어나자, 기다렸다는 듯 다른 조원들도 자리에서 일어나기 시작했다.
“저도 다른 수업이 있어서요.”
“집에 제사가 있어서 일찍 가 봐야 할 것 같아요.”
“회의 다 끝난 거죠?”
하나둘 일어나더니, 어느새 식탁이 휑해졌다. 말리고 할 시간도 없었다. 헌원강이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아니, 갑자기 이렇게 다 간다고?”
“선배님. 여기요.”
마지막까지 남아 회의 내용을 정리한 영호식이 헌원강에게 정리한 서류를 건네주었다.
“수고하셨습니다.”
“야. 잠깐만. 뭐 하나만 묻자.”
“네?”
헌원강은 겁먹은 듯 어깨를 움츠리는 후배에게,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내가 뭐 실수라도 했냐? 다들 왜 이렇게 비협조적이야?”
“……저도 잘 모르겠어요. 그럼 다음 수업 때 뵙겠습니다.”
“그래. 소춘아. 조심히 가라.”
“영호식…… 아니, 아닙니다.”
고개를 꾸벅 숙인 영호식이 계단을 내려갔다.
헌원강은 뒤통수를 벅벅 긁으며 그 모습을 지켜보다가, 이내 작게 투덜거렸다.
“젠장. 이게 아닌데.”
헌원강은 삼 학년이지만 조별 과제에 제대로 참여해 본 게 이번이 처음이었다.
과거와 달라진 모습을 보여 주고자 조장까지 맡아서 의욕적으로 나섰는데, 시작부터 뭔가 어긋난 느낌이 들었다.
“잔뜩 시켜 놓고 많이도 남겼네.”
헌원강은 점소이에게 남은 음식을 싸 달라고 부탁한 후 일 층으로 내려왔다.
그런데 객잔 한쪽에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천이잖아?’
위지천도 조원들과 모여서 과제 중인 듯했다.
그런데 저쪽은 돌아가는 분위기가 사조보다 더 개판이었다.
“의, 의견들 없으세요?”
검을 들지 않은 위지천은 작고 소심한 일 학년이자 조장이었다.
그리고 십조의 학생들은 그 사실을 어떻게 이용할지 방법을 찾은 것 같았다.
“그냥 네가 다 하면 안 돼?”
“……예?”
“어차피 우리 중에 네가 제일 세잖아. 그리고 백수룡 선생님 수제자인데, 솔직히 성적이 뭐가 걱정이야?”
“하지만 이건 조별 과제인데…….”
“우리 조의 전략? 내가 말해 주지. 위지천이 나가서 전부 때려눕힌다!”
누군가의 말에 다른 조원들이 피식피식거리며 웃었다.
웃지 않는 학생들도 있었지만, 그들도 위지천에게 호의적이지는 않았다.
“네 입으로 그랬잖아. 우리가 거치적거린다며?”
“예? 그, 그게 아니라…….”
그들은 위지천이 모의전 중에 했던 말을 기억하고 있었다. 가장 마지막까지 위지천과 함께 싸웠던 선배가 씁쓸한 표정으로 말했다.
“솔직히 사실이라서 화도 안 나더라. 그러니까 알아서 결정하란 거야. 어차피 우린 조연이니까, 주연이 시키는 대로 해야지.”
“…….”
위지천이 뭐라고 대답하지 못하고 곤란한 표정만 지을 때였다.
“어이.”
콰앙!
탁자를 내려치는 큼직한 손바닥.
흠칫 놀란 학생들이 돌아보자, 어느새 옆에 온 헌원강이 맹수 같은 눈으로 그들을 노려보고 있었다.
“듣자듣자 하니까 이 새끼들이 미쳤나. 니들 우리 지천이가 만만하냐? 단체로 숨지고 싶어?”
“워, 원강 선배! 참으세요! 뭐 해요! 빨리 도망가요!”
소매를 걷어붙이는 헌원강의 허리에 위지천이 매달렸다.
내버려 두면 정말로 몇 명은 작살을 낼 눈빛이었기 때문이었다.
“놔! 이거 안 놔?!”
“미, 미친놈인가…….”
“상대하지 말고 얼른 가자.”
헌원강은 허겁지겁 도망치는 학생들의 뒷모습을 노려보며 허공에 주먹을 휘둘렀다.
“부끄러운 줄도 모르는 새끼들!”
“선배는 왜 그렇게 화가 나셨어요?”
잠시 그 이유를 생각해 본 헌원강은 곧 그 이유를 깨닫곤 멍하니 중얼거렸다.
“조별 과제가 날 다시 망나니로 만들고 있어…….”
“…….”
“너는?”
“……수강 철회할까 생각 중이에요.”
헌원강은 시무룩해 있는 위지천의 머리를 헝클어뜨렸다. 그 마음 누구보다 충분히 이해하고 있었다.
“일단 집에 가자.”
백룡객잔을 나선 그들은 백룡장으로 향했다.
“하아…….”
“하아…….”
나란히 걷던 두 소년이 멈춰 서더니 동시에 한숨을 쉬었다.
“조별 과제 진짜 싫다.”
“저두요…….”
“이대로 돌아가면 분명 엄청 놀림당하겠지?”
“문 열고 들어간 순간부터 잘 때까지 놀릴 게 뻔해요.”
저 멀리 백룡장의 모습이 보였다. 벌써부터 담장 안에서 하하호호 웃는 소리가 환청처럼 들리는 듯했다.
-이게 누구야? 청룡오망 중에 유이하게 패배한 두 사람 아니야?
-풋. 잘난 척은 제일 많이 하더니…….
-이겨 버려서 어쩌지? 이것 참, 미안하네.
거상웅, 야수혁, 여민.
그 셋이 헌원강과 위지천을 놀려먹을 기회를 놓칠 리 없었다.
상상만 해도 열 받는지 헌원강이 몸을 부르르 떨었다.
“당장 오늘만 문제가 아니야. 조별 수업 분위기가 계속 이렇게 개판이면, 다음에도 또 질 게 뻔해.”
“……진짜 어떡하죠?”
헌원강과 위지천.
둘 다 천부적인 재능을 타고났기에, 무공을 배우면서 좌절했던 경험은 거의 없었다.
그래서 더, 또래들에게 당한 패배는 낯설고 당황스러운 경험이었다. 비록 그것이 여럿이 함께 싸우는 조별 모의전이었다고 해도 말이다.
자신들과 전혀 다른 수준의 무인들과 어떻게 소통해야 할지, 어떻게 함께 싸워야 할지. 그들은 좀처럼 감을 잡지 못했다.
“선생님한테 상담을 부탁드려 볼까요?”
“……그래. 차라리 그게 낫겠다.”
목마른 사람이 우물을 찾는 법.
둘은 발걸음을 돌려 청룡학관으로 향했다.
강사들도 대부분 퇴근했을 늦은 시간이었지만, 백수룡은 그보다 한참 늦게 야근까지 하고 올 것이 뻔했기 때문이었다.
“어? 선생님이다.”
백수룡의 사무실까지 갈 필요가 없었다. 연무장 한편에서 백수룡을 발견한 것이다.
“누가 같이 있는데요?”
두 사람보다 먼저 온 선객이 있었다.
뒷모습이라서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선객은 백수룡과 마주 보고 대화를 나누고 있었는데, 거리가 제법 멀어서 내용은 들리지 않았다.
그런데 그때, 선객이 느닷없이 백수룡을 기습하는 것이 아닌가?
““선생님!””
깜짝 놀란 헌원강과 위지천이 동시에 달려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