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mber One Star Instructor Master Baek RAW novel - Chapter 38
37화. 스승이 필요한 이유나는 방금 위지천이 펼친 무공을 한눈에 알아보았다.
모를 수가 없었다.
네 사부의 무공 중, 가장 오랜 시간 공을 들여 정립한 무공이니까.
‘분명 무극검(無極劍)이었다.’
처음에는 검존 사부의 독문 무공이었으나, 점점 나와 다른 사부들의 해석이 더해져 나중에는 누구의 것이라고 말할 수 없게 된 무공.
때문에 가장 어렵고 난해한 무공.
검존 사부조차 끝내 완벽하게 체득했다고 자신하지 못한 무공이었다.
내가 운철로 검을 만들려는 이유이기도 했다.
‘무극검은 혼자 익히는 것이 거의 불가능한 무공이다. 아니, 스승이 있다고 해도…….’
무조건 주화입마에 걸릴 수밖에 없는 무공이다.
왜냐면, 내가 그렇게 만들었으니까.
“왜 말이 없나? 자네. 저 무공에 대해 아는 것이 있나?”
위지열이 굳은 표정으로 나를 추궁했다.
잠시 생각을 정리한 나는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모르는 무공입니다만…… 조금 전의 한 수가 굉장해서 여쭤본 겁니다.”
내 대답에 위지열이 다소 실망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가……. 사실 나도 모르는 무공이네.”
“예?”
“몇 년 전, 이곳에 손자를 두고 몇 달 동안 자리를 비운 적이 있었네. 그때 어떤 자가 이곳을 찾아왔었네.”
“여길 어떻게 알고요?”
“본교의 진법에 능통한 자였네. 이 산에서 그 흔적을 느끼고 찾아온 거였지. 하지만 하필 내가 없고, 저 아이만 있는 상황이었던 게야.”
위지천을 찾아온 것은 흑립을 쓴 사내였다고 했다.
-혈교의 후손이냐?
사내는 위지천에게 그렇게 물었지만, 위지천은 행여 할아버지에게 해가 될까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 위지천의 모습을 한동안 살펴보던 사내는, 소년에게 아무것도 적히지 않은 한 권의 책자를 주며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세상에 복수하고 싶으냐? 그렇다면 이 무공을 익혀라. 십 년을 익힐 수 있다면 천하제일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흑립인은 그 말을 남긴 후 떠났고, 위지열이 돌아왔을 땐 호기심을 이기지 못한 손자가 그 책자를 몇 번이나 읽은 다음이었다고 한다.
“……그자의 행적을 찾으려 했으나 도저히 찾을 수 없었네. 다시 찾아오지도 않았지.”
“손자분은 혼자서 그 책자에 적힌 무공을 익힌 겁니까?”
“처음에는 걱정했네. 행여나 몸을 망가뜨리는 마공일지도 모르니. 하지만 아무리 살펴봐도 그런 부분은 없었네. 오히려 나로서는 이해하기조차 벅찬, 대단한 신공이었지.”
위지열은 붉게 충혈된 눈으로 손자를 바라봤다.
마침 산토끼 한 마리가 소년의 곁에 다가와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었다.
“무공에 관해서는 나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천재라네. 그래서 비급뿐인 신공도 익힐 수 있다고 믿었네. 천하제일인이 되어서…… 죽은 아비와 어미의 복수를 하길 바라는 마음도 있었지. 다 부질없는 것을…….”
기어이 노인의 눈에서 눈물이 뚝뚝 흘러내렸다.
“나중에야 심마에 빠진 것을 알고 말리려 했으나, 방법이 없었네. 처음에는 차마 내 손으로 하나뿐인 혈육을 죽일 수 없었고, 지금은 내 능력이 닿지 않네.”
“…….”
“부탁하네. 저 아이를 죽여서 평안을 찾아주게. 그렇게만 해 준다면…… 내 무엇이든 만들어 주겠네.”
푸화아악!
알아볼 수 없게 난자된 토끼의 육편이 두 개의 봉분에 뿌려졌다.
소년은 활짝 웃었고, 손가락에 묻은 살점을 음미하듯 조금씩 떼어 먹었다.
“그 무공을 익힌 지 몇 년이나 되었습니까?”
“……삼 년쯤 되었네.”
나는 위지천이 무극검을 얼마나 익혔을지 그 성취를 가늠해 보았다.
‘삼 년이면…… 이미 늦었을 수도 있겠군.’
혈교의 십대 가문이라고 해도, 위지가는 무공보다 야금술과 폭약 제조 기술로 그 위치를 차지한 가문이었다.
무공은 상대적으로 빈약했다.
‘다른 가문이었다면 아무리 신공이라도 낯선 무공을 함부로 익히거나 하지는 않았을 텐데.’
가진 재능을 만족시켜 줄 만한 무공을 배우지 못했던 소년은, 무극검의 비급을 처음 읽자마자 빨려 들어갈 것처럼 몰입했을 것이다.
“알겠습니다. 의뢰를 받아들이죠.”
나는 언덕 아래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위지열이 급히 내 뒤를 따라오며 말했다.
“조심하게. 예전에 왔던 낭인 중에는 절정고수도 있었어.”
“몇 합이나 싸우고 죽었습니까?”
“……내 기억엔 오십 합을 넘기지 못했네.”
실전에서 오십 합이면 그야말로 눈 깜빡할 사이다.
그런데 절정고수를 오십 합이 되기 전에 죽였다라…….
‘괴물이란 소리군.’
초옥과 점점 가까워지자, 위지천이 우리의 기척을 느끼고 이쪽을 돌아봤다.
“헤헤.”
나와 눈이 마주친 소년이 천진난만하게 웃더니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할아버지!”
“……천아.”
위지열은 이를 악물며 손자를 바라봤다. 위지천이 손가락으로 날 가리키며 말했다.
“손님이에요? 나랑 놀아주러 왔구나!”
“……그래. 오랜만이지?”
“응! 한동안 아무도 안 와서 심심했어!”
위지천은 봉분 사이에 꽂혀 있던 검을 뽑았다.
그리고 해맑게 웃는 얼굴로 검을 들어 나를 겨눴다.
“형은 빨리 안 죽었으면 좋겠다!”
“…….”
나는 위지천의 자세를 살피면서 천천히 월영을 뽑아들었다.
동시에 저 소년에게 무극검의 비급을 건네주었다는 자가 누굴까 생각했다.
‘흑립인이라고 했지.’
공교롭게도, 얼마 전에 청천에게도 비슷한 이야기를 들었던 기억이 있다.
-……흑립을 쓴 어떤 사내가 책자를 하나 던져 주더이다. 익히면 힘을 갖게 될 거라면서…….
그때 청천이 받은 비급은 혈우마공이었고, 이번에는 무극검이다.
두 무공의 수준에는 하늘과 땅만큼의 차이가 있지만 그래도 공통점이 하나 있었다.
바로 사라진 혈교에서 흘러나온 무공이라는 것.
‘두 흑립인이 같은 녀석일까?’
지금 가진 정보만으로는 그것까진 알 수 없다.
무림에 흑립을 쓰고 다니는 놈이 한둘도 아니고, 당장 나만 해도 낭인 시장에 갈 때 흑립을 쓰고 갔으니까.
확실한 건, 혈교의 무공을 무림에 퍼트리고 있는 자가 있다는 것.
‘어쩌면 여러 명일 수도 있고, 조직화된 단체일 수도 있지.’
그 목적은 아직 모르겠지만, 어쩌면…….
“할아버지! 이제 죽여도 돼요?”
새 장난감을 가지고 놀 생각에 흥분한 소년의 목소리가 나를 현실로 데려왔다.
‘일단 이 녀석부터 해결해야겠군.’
나는 고개를 돌려 위지열을 바라봤다.
“한 가지 부탁이 있습니다. 일이 끝날 때까지 저희가 안 보이는 곳까지 물러나 계십시오.”
“어째서……?”
“손자를 죽이는 모습을 보여 드리고 싶지 않으니까요. 그리고 막상 그 순간이 되면, 마음이 약해져서 절 말릴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는 않을…….”
“어르신.”
“……알겠네.”
스스로도 확신이 없는지, 위지열은 고개를 끄덕인 후 뒤로 물러났다.
“천아야. 할아버지가 보이지 않게 되면 그때부터 이 형과 놀거라. 알겠느냐?”
“숨바꼭질이구나! 응!”
위지열은 씁쓸한 표정으로 물러났다.
그의 모습이 언덕 너머로 완전히 사라지자, 위지천이 히죽 웃으며 내공을 끌어올렸다.
콰콰콰콰콰!
위지천이 서 있는 주변의 풀들이 바닥으로 눕고, 산발인 머리카락이 강풍에 휘날리듯 하늘로 뻗쳤다.
두 눈의 흰자위가 붉게 물든 소년이 하얀 이를 드러냈다.
녀석의 검에 잿빛 검기가 맺혔다.
“형. 나랑 놀 준비 됐어?”
“그래.”
열대여섯의 소년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가공할 기도.
상대는 얼마 전의 나였다면 결코 상대하지 못했을 고수였다.
‘칠지구엽초를 복용하고 오길 잘했군.’
이곳에 오기 전에, 나는 낭인 시장에서 산 칠지구엽초를 복용했다.
그 덕분에 내 역천신공의 성취는 2성을 넘어 거의 3성에 도달해 있었다.
“한 뿌리만 더 먹었으면 되는데…… 일단은 아쉬운 대로 써먹어야겠지.”
나는 내공을 끌어올려 월영에 주입했다.
검날이 우웅- 하고 진동하며 기분 좋은 소리를 냈다.
동시에, 내 검에도 희미하지만 붉은 검기가 맺혔다.
나는 검을 들어 위지천의 미간을 겨눴다.
“혼자 아등바등 익힌 검, 어디 한번 펼쳐 봐라.”
“아하하하! 빨리 죽지나 마!”
쾌활한 웃음을 터트린 소년이 나를 죽이기 위해 달려들었다.
* * *
서걱.
머리카락 몇 가닥이 잘려나갔다.
완벽히 피했다고 생각했는데, 마지막 순간 녀석의 검 끝이 흔들리며 궤도를 바꿨다.
이마에 희미한 혈선이 생기고 핏방울이 살짝 맺혔다.
“아하하하! 재밌어!”
위지천은 새 장난감을 선물 받은 아이처럼 기뻐보였다.
녀석이 눈을 빛내며 재차 검을 휘둘러 왔다.
“죽지 마! 죽으면 재미없으니까!”
“…….”
위치천의 검에 맺힌 잿빛 검기가 거칠게 소용돌이쳤다.
바닥을 박찬 위지천이 빛살 같은 속도로 검을 찔렀다.
‘무극일섬(無極一).’
무극검의 초식 중 가장 빠른 초식.
곧바로 몸을 틀었지만 완벽하게 피해내지는 못했다.
찌이익.
허리 부분의 옷이 찢어지고, 길게 남은 상처에 핏물이 뚝뚝 떨어졌다.
위지천은 깜짝 놀란 듯 제자리에서 폴짝 뛰었다.
“피했어? 대단해!”
“……제대로 얕보는군.”
“이거, 이것도 피해 봐!”
위지천은 무극검의 초식들을 마치 자랑하듯 연달아 쏟아냈다.
나는 발바닥으로 바닥을 밀 듯이 뒤로 물러나며 피할 수 있는 것은 피하고, 막을 수 있는 것은 막았다.
까가가가강!
검과 검이 부딪치며 불꽃이 튀었다.
순식간에 수십 합의 공방을 교환하는 동안 몸에 상처가 늘어나는 쪽은 전부 나였다.
나는 미간을 찌푸리며 내 검을 바라보았다.
‘아직은 이 정도가 한계인가.’
희미하게 맺힌 붉은 검기가 조금씩 옅어지고 있었다.
아직 역천신공의 성취가 낮아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적어도 3성에 도달해야 제대로 된 검기를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무리하면 방법이 없는 것도 아니지만…….
“일단은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때워야지.”
다행스럽게도 내 잇몸은 아주 튼튼했다.
까아앙!
검을 강하고 짧게 쳐 내자, 반탄력에 밀린 위지천이 주춤주춤 뒤로 물러났다.
“어어?”
갑자기 내가 공세로 전환하자 녀석이 당황한 소리를 냈다.
“꼬맹이. 놀아주는 건 여기까지다.”
나는 보법을 바꾸며 성큼 전진했다. 내 보법을 본 위지천이 당황해서 소리쳤다.
“그거 내 보법인데!”
“원래 내 거다.”
무극검은 단순히 검법만을 다루는 무공이 아니다.
검을 다루기 위해 필요한 발의 움직임, 몸의 움직임, 마음의 수련법까지.
검으로 천하제일을 논하던 일대종사의 모든 가르침이 담긴 무학이었다.
따악!
나는 검면을 회초리처럼 휘둘러 위지천의 허벅지를 때렸다.
“아얏!”
“자세가 틀렸다. 몸의 중심은 더 낮게, 허리는 똑바로 세워라. 검 끝은 누가 그리 방정맞게 흔들라고 가르쳤느냐?”
위지천의 눈빛이 당황으로 흔들렸다. 그러더니 이내 기합을 넣으며 검을 찔렀다.
“죽엇!”
하지만 눈에 익을 대로 익은 초식은 더 이상 내 옷깃도 스치지 못했다.
나는 내 옆을 허무하게 스쳐지나가는 위지천의 팔을 회초리로 때렸다.
따악!
“팔꿈치는 안으로 넣어라. 어깨에 힘을 빼고 손목을 더 이용해라. 무극검은 부드러움의 무공이다.”
“아파아아!!”
몸을 홱 돌린 위지천의 눈가에 혈기가 넘칠 듯이 일렁였다.
화르르륵!
녀석의 검에 잿빛 검기가 불꽃처럼 타올랐다.
그러나 검기가 아니라 검강이라도, 맞지 않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따악!
“흥분을 가라앉혀라. 이딴 공격으로 새나 토끼는 잡을 수 있어도, 사람한테 통할 것 같으냐? 이 검법을 창안한 사람을 모욕하지 마라.”
“으아아아아!”
뇌옥을 탈출하던 날, 나는 네 사부의 무공을 정리해 비급으로 만들어 마뇌에게 넘겨주었다.
하지만 그 비급들의 결정적인 부분은 모두 조금씩 빠트리거나 바꾸어 놓았다.
처음에는 알 수 없지만, 익히다 보면 주화입마에 걸리도록.
‘혈교에 엿을 먹이려고 한 건데…… 돌고 돌아 이 녀석이 그걸 익혔군.’
때문에, 나는 위지천에게 약간의 책임감을 느꼈다.
“형 재미없어! 미워! 싫어! 죽어 버려어어!”
완전히 이성을 잃은 위지천이 남은 내공을 모두 끌어올려 검에 주입했다.
화르르르륵!
잿빛 불길에 휩싸인 검은 더 이상 그 형태도 보이지 않을 지경이었다.
“쯧…….”
매우 위협적으로 보이지만 내게는 그 허점이 더욱 크게 보였다.
보법은 엉망이고, 초식의 형이 다 무너져 있었다.
고수는 결코 저런 공격에 당하지 않는다.
“저거, 제대로 가르치려면 한참 걸리겠군.”
혀를 찬 나는 얼마 남지 않은 내공을 월영에 모두 주입했다.
검이 부르르 떨며 희미한 검기가 조금 진해졌다.
“이야아아아아!”
괴성을 지르며 광인처럼 달려드는 위지천을 향해, 나는 조용히 검을 들어올렸다.
그리고 뇌옥을 탈출하던 날 검존 사부가 보여 주었던 검을 떠올리며, 신중하게 검을 찔러 넣었다.
무극검(無極劍) 오의(奧義)
진(眞) 무극일섬(無極一)
찰나의 순간 우리의 신형이 교차했다.
나는 월영을 검집에 집어넣으며 천천히 뒤돌아섰다.
“이래서 훌륭한 스승이 중요한 거다.”
털썩.
위지천이 피를 뿜으며 바닥에 쓰러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