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mber One Star Instructor Master Baek RAW novel - Chapter 388
387화. 아까 뭐라고 했더라
점심시간이 끝나는 것과 동시에 평화도 끝났다.
각자의 진영으로 돌아간 청군과 백군은 언제 사이좋게 밥을 나누어 먹었냐는 듯, 다시 운동회가 시작되자 호승심을 불태우며 격렬하게 부딪쳤다.
“인정사정 봐주지 마!”
“지금부터는 다시 적이다!”
그 과정에서 명장면이 여럿 연출되었다.
축국(蹴鞠) 대결에서 공을 발에서 떨어뜨리지 않으며 혼자 다섯 명을 돌파한 후, 청군의 그물에 공을 넣어 버린 남궁수.
내공을 쓰지 않는 벽호공(壁虎功) 대결에서, 단숨에 벽을 타고 올라가 상대편 깃발을 뽑아 버린 백수룡.
각저(角?, 씨름) 대결에서 각각 청군을 열 명씩 쓰러뜨리고 포효하는 거상웅과 야수혁.
암기 던지기 대결에서 백수룡의 머리 위에 있는 당과를 눈감고 맞춰 만점을 받은 당소소.
한 명이 문제를 몸으로 설명하고 한 명이 정답을 맞히는 종목에서, 부부와도 같은 합으로 압도적인 기록을 세운 악연호와 명일오.
규칙을 잘못 이해해 청군 쪽으로 공을 굴리다가, 여민에게 등짝을 얻어맞은 헌원강.
얼굴에 밀가루를 뒤집어쓰고도 해맑게 웃는 위지천 등.
청룡학관의 화공 동아리가 훗날 이 모습들을 하나의 화첩에 모아 판매하게 되는데, 나중에는 물건이 없어서 못 구할 정도였다.
어느덧 청백 대항전의 마지막 경기마저 모두 끝나고, 승자 발표만이 남게 되었다.
“……고생해서 준비한 보람이 있어.”
독고준은 갈라진 목소리로 중얼거리며, 감회 어린 표정으로 대연무장을 가득 메운 학생들과 관중들을 둘러봤다.
문득 작년 청백 대항전이 떠올랐다.
참석률도 저조하고, 그나마 참여한 학생들의 표정에서도 즐거움을 찾기 힘들었던 운동회.
당시 학생회장이었던 방백현이 목청이 터져라 양측의 사기를 북돋웠지만, 학생들의 반응은 대체로 시큰둥했었다.
그런데 올해는 열기가 너무 뜨거워서, 어느 순간부터 학생회가 학생들에게 자제해 줄 것을 부탁해야 할 정도였다.
‘일 년 만에 이렇게까지 달라지다니. 졸업한 선배들한테 말하면 아무도 믿지 않을 거야.’
독고준은 오늘로 자신의 학생회장 임기가 끝나도 여한이 없을 것 같았다.
아니, 한 가지만 더.
독고준은 학생회 간부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이 기세를 천무제까지 이어 나가자. 무림의 모두가 보는 앞에서 청룡이 비상하는 모습을 보여 주는 거다!”
““네!””
학생회 간부들이 모두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하나같이 자부심과 사명감이 가득한 눈빛이었다.
그때, 간부 중 한 명이 심각한 표정으로 독고준에게 다가와 말했다.
“회장. 큰일 났습니다.”
“……백수룡 선생님과 남궁수 선생님이 또 뭔가를 부쉈나?”
청백 대항전 중에 두 사람이 부숴 먹은 물건이 한둘이 아니었다. 그래서 가장 먼저 물어본 것이었다.
하지만 간부는 그보다 더 심각한 일이라며 고개를 저었다.
“그게 아니라……. 점수 기록지가 사라졌습니다.”
“뭐?!”
독고준의 낯빛이 창백해졌다.
청군과 백군의 점수를 적어 둔 기록지가 감쪽같이 사라졌다니.
“죄송합니다. 분명 문진으로 잘 눌러 놨는데…….”
“난감하군…….”
곧 청백 대항전 최종 결과를 발표해야 하는데, 난감하기 이를 데 없는 상황이었다.
학생회는 청백 대항전의 각 대결 종목마다 점수를 조금씩 다르게 매겼다.
또한 종목마다 최우수 선수를 선정했는데, 대결 종목이 열 개가 훌쩍 넘어가다 보니 일일이 다 기억할 수 없어서 기록지에 기록해 두었다.
그 기록지를 담당한 간부가 낭패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잠깐 뒷간에 다녀온 사이 감쪽같이……. 죄송합니다.”
“괜찮아. 그보다 점수를 다 기억하고 있는 사람 없나?”
독고준의 말에, 간부들은 모두 자신 없는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정확히는 모르겠습니다.”
“당소소 선배였으면 기억할 텐데…….”
“거의 비슷한 점수이긴 했습니다.”
청군이 한 종목에서 이기면 그다음엔 백군이 이기고, 그다음에는 다시 청군이 이기는 식이었다.
모든 승부가 박빙이었기에, 그만큼 점수도 거의 비슷했다.
“하필이면 지금…….”
두 선생님들의 성격상, 제대로 된 기록을 보여 주지 않는다면 진 쪽은 절대 패배를 인정하지 않으려고 할 텐데.
“허허. 곤란한 상황인가 보군.”
갑자기 뒤에서 들려온 익숙한 목소리에, 학생들의 고개가 일제히 돌아갔다.
“관주님?”
그는 매극렴과 교대하고 내려온 노군상이었다.
노군상은 뒷짐을 진 채 운영위원회 천막으로 들어왔다.
“지나가던 길에 우연히 들었네. 점수 기록지를 잃어버렸다고?”
“금방 찾겠습니다. 학생들에겐 조금 더 기다려 달라고 안내하면…….”
노군상은 푸근하게 웃으며 독고준의 말을 끊었다.
“그럴 것 없네. 결과는 내가 발표하지.”
“예?”
독고준이 말릴 새도 없이, 돌아선 노군상은 독고준을 대신해 단상 위로 올라갔다.
갑자기 관주가 올라오자, 경기를 끝내고 잠시 쉬고 있던 학생들과 강사들의 시선이 일제히 그에게 향했다.
“모두 하루 종일 뛰어다니느라 모두 고생이 많았소. 청백 대항전의 최종 승자를 발표할 테니, 청군과 백군의 대장은 이 위로 올라오시오.”
낮지만 웅혼한 내공이 담긴 목소리가 소음을 일시에 잠재웠다.
잠시 후, 백수룡과 남궁수가 각각 양쪽 단상 위로 올라갔다. 서로를 바라보는 눈빛이 여전히 살벌했다.
“남궁수. 망신 당할 준비는 하고 올라왔냐?”
“백수룡. 그렇게 패배하고도 아직 겸손을 배우지 못했나.”
모든 대결이 끝났는데도 여전히 승부욕을 불태우는 두 사람의 모습에, 노군상이 껄껄 웃었다.
“승부를 내지 못해 아쉽겠군. 올해 청백 대항전은 청군과 백군의 공동 우승이니 말일세.”
“……예?”
“공동이라니요?”
당황한 것은 백수룡과 남궁수뿐만이 아니었다.
듣고 있던 청백군의 학생들, 강사들, 그리고 많은 관중들이 다들 당황스러운 표정이 되었다.
“공동 우승이라니? 무승부란 말이야?”
“비슷하게 이기고 지긴 했는데…….”
“그래도 청군이 더 많이 이기지 않았나?”
“무슨 소리야? 백군이 더 많이 이겼지.”
관중들도 의견이 분분한 가운데, 노군상은 다시 한번 내공을 담아 모두에게 말했다.
“총 스무 개의 대결 종목 중 청군과 백군이 각각 열 번씩 이겼소이다. 세세한 점수에서 승패가 갈릴 줄 알았으나, 공교롭게도 똑같은 점수가 나왔지 뭐요.”
노군상은 태연하게 거짓말을 했다.
만약 독고준이 같은 말을 했다면 정확한 기록을 보여 달라고 했을 테지만, 청룡학관주이자 무림의 대선배에게 그런 요구를 하는 사람은 없었다.
“무승부라니…….”
“결과가 좀 아쉽군.”
무승부에 아쉬워하는 관중들에게, 노군상은 껄껄 웃으며 슬쩍 미끼를 던졌다.
“청백 대항전은 내년에도 열리니, 두 강사가 결판내는 모습을 내년에 또 보러 오면 되지 않겠소?”
“……!!”
이토록 광기로 가득한 운동회가 내년에 또 열린다고?
처음부터 몰랐으면 모를까, 한번 맛을 본 이상 내년 청백 대항전도 보러 오지 않을 수 없었다.
관중들의 실망감이 순식간에 기대감으로 바뀌었다. 사실 결과는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청백 대항전을 지켜볼 수 있었던 것만으로도 그들은 엄청난 행운아였다.
“물론! 내년에도 꼭 오겠소이다!”
“다음엔 꼭 결판을 내주세요!”
“아예 입장권을 팔면 안 됩니까? 여러 장 구매할 의사가 있는데…….”
노군상은 그런 관중들을 보며 부드럽게 웃었다.
평소에는 사람 좋게 웃기만 할 뿐인 노인처럼 보여도, 그는 중요한 순간마다 청룡학관주로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허허. 다들 고맙소이다. 대단한 실력과 열정을 보여 준 우리 청룡학관 학생들과 강사들에게도 박수 부탁드리겠소.”
더 이상 둘로 나뉘지 않은, 하나가 된 박수와 환호가 청백 대항전에 참가한 이들에게 쏟아졌다.
“하여튼 관주님도 능구렁이라니까…….”
“……승부는 내년으로 미루지.”
가장 크게 반발하리라 생각했던 두 강사도 의외로 순순히 무승부를 받아들였다. 서로를 향해 한 번 피식 웃고는 단상에서 내려갔다.
“이제 영웅건을 벗어 던지고, 하나가 되어 남은 축제를 즐기시기 바라겠소이다.”
노군상의 폐회 선언과 함께, 청백 대항전이 종료되었다.
“설마…….”
독고준은 단상에서 내려가는 노군상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기록지를 훔쳐 간 사람이 관주님이 아니었을까 하는 의심을 했다.
하지만 굳이 확인해 보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독고준은 방금 전까지 청군과 백군이었던 학생들이 친근하게 어깨동무를 하는 모습을 보며 피식 웃었다.
“무승부도 나쁘진 않은 것 같군.”
그렇게, 청룡제의 첫날 일정이 모두 마무리되었다.
* * *
청백 대항전이 끝났지만, 본격적인 축제는 이제부터라고 할 수 있었다.
대연무장에 있던 기관장치들이 모조리 치워지고, 그 자리에 공연을 위한 무대와 천막, 노점이 세워졌다.
“공연 보러 오세요! 술시 초에 무용 동아리 문답무용의 공연이 있습니다!”
“그림 동아리 파파락지(波波樂志)에서 초상화를 그려 드립니다! 의뢰도 받아요!”
“내일 등불 축제에 띄울 풍등 팝니다! 지금 사시면 반값이에요!”
“점 봐 드립니다! 정인하고 같이 오셔서 점 보고 가세요~!”
청백 대항전으로 청룡학관에 유입된 관중들은 그대로 축제의 관람객이 되었다.
시선을 잡아끄는 공연, 학생들이 만든 음식, 독특한 물건 등을 구경하다 보면 시간이 금세 흘러갔다.
청룡제 이틀 동안에 한해서, 청룡학관 내부에서 주점도 운영할 수 있었다.
물론 판매할 수 있는 사람은 성인으로 엄격히 정해져 있었는데, 청룡학관의 나이 많은 고학년들과 만학도들이 가장 짭짤한 수익을 올리는 날이기도 했다.
“와하하하! 마시자고!”
청룡학관 신입 강사 동기들도 야외 주점에 한자리를 차지했다.
아무래도 청백 대항전에서 학생들은 학생들끼리, 강사들은 강사들끼리 부딪치는 경우가 많았는데, 그러다 보니 어느 때보다 자주 충돌한 그들이었다.
“크으! 진짜 아쉬웠다니까! 백수룡이 말을 몰고 나한테 달려오는데, 진짜 한 끗 차이였단 말이지. 내가 조금만 말을 왼쪽으로 틀었어도, 바닥에 쓰러진 건 내가 아니라 백수룡이었을걸?”
곽두용의 허세에, 악연호가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취기가 조금 오른 듯 얼굴이 다소 붉어진 모습이었다.
“하! 일 합에 나가떨어지는 거 내가 직접 봤는데 뭔 헛소리야?”
“아이고. 우리 악연호 선생. 머리는 괜찮으신가?”
“누구보고 대머리래!”
“연호야. 아무도 너한테 대머리라고 안 했다…….”
취기가 오른 악연호와 곽두용이 서로의 머리채를 붙잡고, 명일오가 그런 둘을 말리고, 제갈소영은 혼자서 무슨 생각을 하는지 피식피식 웃기만 했다.
그런데, 여기에 평소 보이지 않던 새로운 얼굴이 한 명 더 있었다.
“하하. 네 분은 정말 유쾌하군요.”
진의협.
청백 대항전에서 백군 소속이었던 강사로, 처음 임시 강사로 합격했을 때 삼석이라는 뛰어난 성적으로 합격했지만, 백수룡과 그 동기들이 두각을 드러내면서 존재감이 흐려진 신입 강사였다.
서글서글한 눈매에 부드러운 인상인 진의협은 존재감이 크지는 않아도, 학관 내에서 그를 싫어하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하하하! 그렇지? 이 녀석들하고 같이 마시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니까. 같이 남궁세가에 갔을 때도…….”
“또 또 허풍 떨려고.”
술자리에 진의협을 데려온 것은 곽두용이었다.
함께 백군에서 싸우면서 진의협과 친해졌고, 이참에 동기들끼리 함께 마시자는 제안에 진의협도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아쉽게도 진의협이 가장 대화를 나누고 싶었던 사람은 이 자리에 없었다.
“백수룡 선생님은 많이 바쁘신 모양입니다?”
자연스러운 질문이었다.
그러나 그 순간, 악연호와 명일오, 혼자만의 생각에 빠져 있는 듯했던 제갈소영의 눈빛이 아주 조금 변했다.
“형님이요? 아까 뭐라고 했더라…….”
악연호는 백수룡이 했던 말을 떠올리며 말했다. 그 시선은 아닌 척하면서 진의협의 표정을 면밀히 살폈다.
“집에 쥐가 몇 마리가 들어와서, 잠깐 잡고 오겠다고 하던데요?”
“저런, 쥐가요?”
진의협은 안 됐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그렇다면 빨리 잡아야겠군요. 내버려 두면 집이 오물로 더러워질 테니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