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mber One Star Instructor Master Baek RAW novel - Chapter 390
389화. 사라졌습니다
한량처럼 느긋한 걸음으로 걸어오는 흑립인을 본 순간, 매극렴의 미간이 좁혀졌다.
걸음걸이를 보자마자 흑립인이 누군지 알아볼 수 있었다. 학생주임 경력에서 가장 많이 잡으러 다녔던 망나니를, 흑립 좀 쓴다고 못 알아볼 리가 없었다.
“지원군이…… 개잡놈?”
“장인어른. 보자마자 개잡놈이 뭡니까. 다른 사람들도 있는데.”
백무흔이 흑립을 벗으며 투덜거리자, 매극렴도 뒤늦게 실수를 깨닫고 헛기침을 했다.
“흠흠. 습관을 고치기가 쉽지 않구나.”
“평소에도 얼마나 개잡놈이라고 부르고 다녔으면…….”
두 사람의 대화를 흥미롭게 듣고 있던 노군상이 매극렴에게 물었다.
“얼굴만 봐도 누구인지 알겠네만, 우리에게도 정식으로 소개해 주시구려.”
“제……. 사위입니다.”
매극렴은 다른 사람들 앞에서 백무흔을 사위라고 소개하는 것이 아직은 어색한 듯했다.
백무흔이 노군상과 남궁수에게 포권을 취하며 말했다.
“백무흔입니다. 수룡이의 아비입니다.”
“노군상이오. 청룡학관의 관주를 맡고 있다오.”
“관주님. 저도 청룡학관 졸업생입니다. 말씀 편하게 하십시오.”
“허허. 알겠네. 전 관주님이 계실 때 졸업생인가?”
“예. 맞습니다.”
남궁수도 정중하게 백무흔에게 포권을 취했다.
“남궁수입니다. 백수룡 선생의 직장 선배입니다.”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저희 수룡이가 신세를 많이 지고 있지요?”
“……아닙니다. 그리고 말씀 편하게 하십시오.”
초면인 세 사람이 인사를 나누고 있을 때, 잠시 자리를 비웠던 백수룡도 도착했다.
“다 모이셨네요.”
백수룡은 자리에 모인 사람들의 면면을 둘러봤다.
매극렴. 남궁수. 노군상.
청룡학관에서 가장 믿을 수 있는 사람들이자, 혼자서 살막의 살수를 처리할 수 있는 고수들이었다.
백수룡의 시선은 오랜만에 만난 아버지에게 잠시 더 머물렀다. 그의 눈에 작은 감탄이 어렸다.
‘다시 볼 때마다 놀라게 하네.’
무림맹주가 자신을 다시 만날 때마다 놀라는 감정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백무흔의 기도는 지난번과는 또 달라져 있었다. 가족에 대한 죄책감으로 마음 고생한 세월을 한 번에 보상받기라도 하듯, 그는 뒤늦게 무인으로서 만개하고 있었다.
아들의 눈에서 놀란 감정을 읽은 백무흔이 피식 웃었다.
“뭘 그리 빤히 보고 그러냐?”
“……다친 곳은 없어요?”
백무흔은 어깨를 으쓱였다.
“보다시피. 웬만해선 살려서 데려오려고 했는데, 패색이 짙어지자 즉시 독단을 삼키더구나.”
구살은 백무흔과 일검을 교환한 순간, 패배를 직감하고 독단을 삼켰다. 그를 죽인 것은 가슴의 검상이 아니라 독이었다.
“옷을 뒤져 봤지만 별다른 것은 없었다. 암기 몇 개랑 독뿐이었지.”
백무흔은 챙겨온 구살의 소지품을 아들에게 건넸다. 잠시 그것들을 살펴본 백수룡은 고개를 끄덕였다.
“백 선생. 살수들이 침입한 것을 아는 사람은 여기 있는 넷뿐인가?”
노군상의 질문에, 백수룡은 고개를 저었다.
“제 제자들, 그리고 동기들 몇 명에겐 일러두었습니다. 저와의 친분 때문에 살생부에 올랐을 가능성이 있으니까요.”
“놈들 정체가 뭐지? 어설픈 살수는 아니던데.”
이번에는 남궁수의 질문이었다. 백수룡은 고개를 끄덕이며 짧게 대답했다.
“살막(殺膜).”
세 사람의 표정이 동시에 굳었다.
중원 최고의 살수 집단인 살막에 대해서는 다들 들어 보았으니까.
“살막이라니……. 설마 혈교가 살막에 의뢰라도 했단 말이냐?”
“제 생각엔 살막 자체가 혈교의 내부 조직으로 짐작됩니다.”
확실한 정보였지만, 그 출처를 밝힐 수 없었기에 백수룡은 자신의 추측인 것처럼 말했다.
“그리고 살수를 심문해 알아낸 정보에 의하면, 살수들 중에는 천살도 포함되어 있다고 합니다.”
“천살이라니…….”
노군상이 낮은 목소리로 침음했다. 백수룡이 그에게 물었다.
“관주님. 천살에 대해 따로 아시는 것이 있습니까?
“……절세고수를 죽이기 위해 살막이 키워 낸 괴물이라고 알려져 있네. 활발하게 활동하던 고수들이 갑자기 실종되거나 잠적하면, 살막이 가장 먼저 의심받는 이유가 바로 천살 때문이지. 실제로 그중 절반 가까이가 천살의 짓으로 밝혀지기도 했고.”
살막의 살수들은 개개인의 수준도 뛰어나지만, 그들이 천하제일살문으로 명성을 떨치게 된 것은 천살 때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잠깐만요. 천살의 짓인 게 ‘밝혀졌다.’라는 말씀은, 놈이 자기가 죽였다는 걸 일부러 알린다는 겁니까?”
백수룡의 예리한 질문에, 노군상이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그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이야기는 무림에서도 상층부만 아는 비사(? 事)였다.
“놈은 살행 대상의 몸 어딘가에 ‘天殺’이라는 글자를 새겨 넣는다네. 화공이 자신의 작품에 호를 남기듯 말이야.”
“미친놈이군요.”
정작 백수룡은 덤덤했지만, 그런 끔찍한 살수가 백수룡을 노린다는 말에 매극렴과 백무흔의 표정이 굳었다.
“감히 살수 나부랭이 따위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위험한 상황이었군.”
매극렴은 노기 어린 표정으로 검파를 꽉 쥐었고, 백무흔은 착 가라앉은 시선으로 아들을 바라봤다.
“이런 상황에서 청룡제는 괜찮은 거냐? 살수 놈들이 도시에서 무차별 살행이라도 벌이면……. ”
“개방과 하오문, 관까지 협력해서 천라지망을 펼쳐 놨습니다. 살수들이 움직이면 곧바로 대처할 수 있을 거예요.”
노군상도 그 부분은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을 거라고 말했다.
“천살은 살행을 깔끔하게 처리하기로 알려져 있네. 피가 많이 튀는 지저분한 방식은 선호하지 않아.”
살막의 특징이기도 했다.
과거 공손수를 노렸던 칠살만 생각해 보아도 알 수 있었다.
당시 흑림과 혈방은 혼란을 일으키기 위해 죄 없는 관중들을 무차별적으로 공격하는 짓을 서슴지 않았지만, 칠살은 끝까지 인내하다가 마지막에서야 모습을 드러냈다.
“확실한 것은 아니니, 밖에 있는 친구들에게도 경계를 더 강화하라고 일러두겠습니다.”
백수룡의 말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살수는 그 존재를 모르고 있을 때는 지극히 위험하지만, 알고 있다면 이쪽에서도 충분히 대비할 수 있었다.
‘나랑 술래잡기를 하자는 것 같은데.’
백수룡은 자신 있었다.
청룡제가 시작되기 전부터, 만반의 준비를 해 놓았으니까.
“일단 네 분은 각자 구역을 맡아 감시해 주세요. 그리고 부탁드릴 것이 있는데…….”
백수룡은 술래를 도와줄 아군들에게 규칙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 * *
“다섯이 전부 죽었다라……. 재미있군요.”
미리 걸어 둔 술법을 통해, 천살은 청룡학관에 잠입시킨 살수 다섯의 숨이 모두 끊어졌다는 것을 알았다.
“적어도 한 명 정도는 살아서 나갈 줄 알았는데……. 생각 이상으로 방비를 단단히 해 둔 모양이네요.”
그는 난감한 표정으로 뺨을 긁적였다. 그러나 입꼬리는 기분 좋게 올라가 있었다.
[어찌할까요.]어둠 속에서 전음이 들려 왔다.
천살은 하늘을 올려보았다. 적당히 취기가 오른 탓인지, 새카만 밤하늘에 가득한 별들이 그의 감수성을 자극했다.
“아……. 저들의 기감이 상상 이상인 것 같지만, 이쪽도 소모품을 꽤 많이 가져왔으니까요. 두 번째 계획을 실행하세요.”
[알겠습니다.]대놓고 다른 살수들을 소모품이라고 취급하고 있었지만, 어둠 속의 살수는 고저가 없는 목소리로 대답하곤 이내 사라졌다.
“재미없긴.”
피식 웃은 천살은 비척비척 걸어서 술자리로 돌아갔다.
“뒷간에 다녀온다더니 왜 이렇게 오래 걸려? 변소에 빠져 버린 줄 알았네.”
그는 반겨 주는 동료 강사들에게 멋쩍게 웃어 주곤 자리에 앉았다.
“하하, 술 좀 깰 겸 해서 좀 걷다 왔지.”
“늦게 왔으니까 벌주로 석 잔 마시라고!”
“하하하! 얼마든지 마셔 주지!”
천살은 이 자리가 즐거웠다.
일을 할 때면, 그는 자신이 맡은 역할에 완전히 몰입하는 편이었다.
청룡학관 강사는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재미있는 일이었다.
오늘 모두와 함께한 청백 대항전도 유쾌하고 즐거웠다. 살면서 경험한 가장 재미있는 일 중 하나로 기억할 만했다.
“이 친구 오늘 엄청 달리는데?”
“괜찮아? 힘들면 적당히 마시고 쉬라고.”
“무슨 소리야? 내일이 없을지도 모르는 게 인생인데, 오늘 실컷 마셔야지. 하하하!”
그렇게 새벽이 되도록, 천살은 흥에 취해 먹고 마시며 축제를 즐겼다.
간혹 미심쩍게 바라보는 시선이 느껴질 때도 있었지만, 그는 조금도 개의치 않았다.
* * *
새벽이 밝아 올 때까지, 백수룡은 청룡학관 주변에 숨어 있는 살수 다섯을 더 찾아내 격살했다.
“뭔가 이상해.”
다섯 번째 살수의 목을 베어 버린 후, 백수룡은 그 시체를 내려보며 중얼거렸다.
[뭐가 이상하단 말이냐?]창룡신검이 검신을 부르르 떨며 물었다. 백수룡은 검신에 묻은 피를 바닥에 털어 내며 대답했다.
“살수들 말이야. 왜 밤새 아무것도 하지 않고 숨어만 있는 거지?”
[뭘 하기도 전에 네가 찾아내서 죽인 게 아니고?]“나도 그런 줄 알았는데…….”
살막의 살수들은 다들 뛰어났지만, 백수룡의 목숨을 위협하기엔 부족했다. 그리고 그의 이목을 피할 만큼 은신술이 뛰어나지도 않았다.
“뭔가 다른 의도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단 말이지.”
백수룡은 자신의 위치를 숨기지 않았다. 오히려 대놓고 드러내며 살수들을 찾아다녔다.
그동안 매극렴, 남궁수, 노군상, 백무흔은 멀리서 살수들의 움직임을 살폈다.
백수룡의 움직임에 따라 살수들이 어떻게 행동하는지, 만약 이동하거나 도망친다면 그 움직임을 역추적해 천살을 찾아낸다는 계획이었다.
하지만 성과는 없었다. 살수들은 도망가지 않았고, 백수룡과 조우하면 발악하듯 덤벼들다가 죽었다.
그럴수록 찜찜한 기분은 커졌다.
“……일단 학관으로 돌아가야겠어.”
백수룡이 청룡학관으로 돌아오자마자, 익숙한 기척 하나가 접근하는 것이 느껴졌다.
“형님.”
악연호였다. 술 냄새를 풀풀 풍기며 다가오고 있었는데, 그의 눈빛만은 어느 때보다 또렷했다.
지난밤, 악연호와 동기들은 청룡학관 안에서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남아 있었다.
취한 척하면서 계속 주점에 죽치고 있었지만, 실제로는 취기를 모두 내공으로 날려 버리면서 학관을 감시한 것이다.
악연호가 목소리를 낮추며 말했다.
“강사들 중에 살수로 의심되는 녀석이 하나 있어요. 자연스럽게 형님에 대해서 이것저것 묻더라고요.”
“……누군데?”
“진의협 선생이요.”
진의협.
이번 청백 대항전 때 종종 부딪치긴 했지만, 그전에는 백수룡과 친분이 거의 없던 사이였다.
‘진의협이 살수라고? 수상한 기미는 없었는데…….’
상대가 만약 천살이라면 자신의 기감을 속였을 가능성도 있었다. 애초에 그렇게 눈여겨본 것도 아니었으니까.
“지금 어디 있어?”
그 질문에 악연호가 씩 웃었다.
“주점에 있어요. 저희가 술을 왕창 먹여 놨거든요. 지금은 완전히 곯아떨어졌죠.”
“……살수가 술에 취해서 곯아떨어졌다고?”
“흐흐. 우리가 의심하는 걸 알았는지, 거절 못하더라고요. 그래서 둘러싸고 왕창 먹였죠.”
“괜히 죄 없는 사람 괴롭힌 건 아니지?”
어쨌든 동기들이 수상해서 잡아 두었다니, 직접 확인해 볼 가치는 있었다.
백수룡은 악연호와 함께 진의협이 있다는 주점으로 향했다.
주점 안은 난장판이었다.
밤부터 새벽까지 부어라 마셔라 먹어 댄 흔적들. 싸구려 탁주를 담았던 주전자와 잔이 나뒹굴었고, 먹다 남은 안주 따위가 잔뜩 어질러져 있었다.
탁자에는 강사들, 그리고 나이 많은 학생들이 탁자에 엎어져 자고 있었다.
백수룡은 약간의 분노가 차오르는 것을 느꼈다.
“누군 한숨도 못 자고 돌아다녔는데, 이것들은 팔자도 좋네.”
그 말을 들었는지, 한쪽 탁자에서 곽두용이 괴상한 신음 소리를 내며 고개를 들었다. 머리가 아픈지 잔뜩 찌푸려진 표정이었다.
“백수룡……? 어디 갔다가 이제야 왔어? 온 김에 같이 해장이라도 할까?”
백수룡은 그 말을 무시하며 진의협을 찾았다.
“진의협은?”
“저쪽에 일오 형님이랑 같이…….”
“수룡 형님!”
명일오가 급하게 달려왔다. 무척 당황한 표정이었다.
“진의협 선생이 사라졌습니다!”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