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mber One Star Instructor Master Baek RAW novel - Chapter 399
398화. 그런 사람입니다
예약이 힘들기로 유명한 적화루.
특히 도시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최상층은, 돈이 있어도 웬만한 인맥과 권력이 없이는 예약 자체가 불가능한 장소였다.
그러나 비싼 만큼 도시의 전경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누각(樓閣)에서 진의협, 아니 천살은 난간에 기대어 선 모습으로 옥으로 된 술잔을 입가에 기울이고 있었다.
“……아름답군요. 그렇지 않습니까?”
천살은 감상에 젖은 표정으로 도시의 밤하늘을 물들이고 있는 불빛들을 바라봤다.
은은한 불빛을 띤 풍등들이 바람에 이리저리 흔들리며 날아다니고 있었다. 그중 일부는 그가 있는 곳으로 다가오기도 했다.
삐뚤빼뚤한 글씨로 적은 어린아이들의 소원부터, 재물과 건강을 소망하는 어른들의 소원까지.
휘이잉-
바람에 휘말린 풍등 몇 개가 누각 안으로 들어오려 했는데, 천살이 부드럽게 손을 휘젓자 다시 바깥으로 날아갔다.
“도시에 이토록 많은 풍등이 날아오른 건 지난 십 년 동안 처음이라고 합니다. 오늘 밤은 분명, 많은 사람들에게 잊지 못할 추억이 되겠지요.”
들려오는 대답은 없었다.
하지만 천살은 개의치 않았다.
혼잣말은 그에게 무척 익숙한 것이었으므로.
“살아서 마지막으로 본 것이 이런 풍경이라니……. 어쩌면 당신은 꽤나 운이 좋은 편이 아니었을까요?”
몸을 돌린 천살의 시선이 머문 곳.
본래 이곳을 예약한 이름 모를 부호(富豪)가 눈을 부릅뜬 채 죽어 있었다.
그의 몸 어디에도 혈흔이나 공격당한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다만 경악한 표정은 죽기 전에 겪은 공포를 고스란히 보여 주고 있었다.
“이런 날에 음악이 빠질 수 없지요.”
천살은 난간 한쪽에 놓인 비파를 들더니 연주했다.
맑고 아름다운 음률이 밤공기를 타고 퍼져 나갔다. 난간 위에 올려놓은 술잔에 든 술이 가볍게 일렁였다.
밤이 깊어 가면서 도시의 불빛들이 하나둘 꺼지고, 도시에 흩어진 살수들의 생명 또한 하나씩 스러지고 있었다.
천살은 눈을 감고도 그 모든 것을 느꼈다. 그가 살수들에게 직접 새겨넣은 술법이 발동하고 있었으니까.
“……결국, 아무도 천라지망을 빠져나가지 못했군요.”
아쉽지는 않았다. 오히려 살수들의 필사적인 발버둥과 그 끝에 스러지는 생명을 느끼며 작은 희열을 느꼈다.
조금이라도 더 삶을 붙잡기 위해 발버둥 치는 인간.
그보다 아름다운 것을 찾지 못했기에, 천살은 살수가 되었다.
스르륵.
어둠 속에서 그림자 하나가 솟아오를 때까지, 천살은 눈을 감고 비파 연주에 집중했다.
“일살이 당했습니다.”
훈련으로 감정이 제거된 목소리.
그러나 천살의 예민한 감각은, 자신을 찾아온 전령의 감정이 요동치고 있음을 눈치챘다.
천살은 비파를 내려놓고 눈을 떴다.
“일살까지 죽다니……. 놀랍군요.”
온갖 귀찮은 일을 대신 처리해 주는, 제법 쓸모가 많은 자였는데.
혈교의 장로이기도 해서 일살에게는 술법을 걸어 놓지 않았기에, 천살은 그 소식을 지금에서야 알 수 있었다.
“백수룡 선생님이 죽였습니까?”
“……아닙니다. 검치 매극렴, 옥면공자 백무흔의 합공에 당한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살수는 자신의 기척이 발각될까 염려되어, 가까이서 싸움을 지켜보지는 못했다고 했다.
“저들에게 저희의 기척을 간파하는 수단이 있는 듯합니다. 그게 아니라면, 살막의 살수들이…….”
“목표물을 하나도 제거하지 못하고 죽어 나갔을 리 없다?”
천살은 살수가 차마 하지 못했던 말을 대신 했다. 심지어 입가에 웃음을 지으면서.
“천하에서 가장 뛰어나다는 살막의 살수들이?”
“……예.”
오늘밤은 살막 역사상 최대의 실패이자 최악의 굴욕으로 남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세간의 평가 따위 천살은 아무 관심도 없었다.
지금 그가 관심을 가지고 있는 대상은 오직 단 한 명의 인간.
“백수룡 선생님. 정말 대단하군요. 이토록 치명적인 덫을 놓았을 줄이야…….”
“…….”
“그의 집착이 느껴지지 않습니까? 자신에게 소중한 것들을 반드시 지켜 내고야 말겠다는, 단 하나도 잃지 않겠다는 오만하고 이기적인 집착이 말입니다.”
미치광이.
지금 천살의 눈을 보면서 떠올릴 수 있는 말은 그것뿐이리라.
그의 앞에 무릎을 꿇은 살수는 치미는 공포를 들키지 않기 위해, 고개를 숙이고 말했다.
“……천살께서 기다리시는 동안, 임무에 나선 살수들 대부분이 죽었습니다.”
“알고 있습니다. 어느 정도는 이렇게 되는 걸 의도하기도 했고요.”
“…….”
“제 예상보다도 많이 죽긴 했지만, 계획에는 문제가 없습니다. 오히려 잘됐는지도 몰라요.”
“…….”
“그런데 원래 그렇게 말이 없습니까? 뭐, 상관없긴 합니다. 살수들이 대체로 그렇긴 하죠.”
천살은 자신의 앞에 무릎 꿇은 살수를 바라보았다.
번호가 몇 번이었더라?
십육? 십칠?
잠시 생각해 보다가, 곧 죽게 될 인간의 번호를 떠올리는 것도 번거롭다는 생각이 들어 관두었다.
그리고 혼잣말을 하듯 그냥 떠들었다.
“들어 보세요. 백수룡 선생님은 정말 대단한 사람입니다. 이 학기가 시작되고 꾸준히 지켜봤거든요. 항상 바빠 보이셔서 말을 걸어 볼 기회가 없었는데, 청백 대항전 때는 그나마 좀 이야기를 나눠 봤습니다.”
천살은 아직도 자신이 진의협인 것처럼, 즐거운 얼굴로 떠들어 댔다.
“기마전에서 말입니다. 악연호 선생이 제 앞에서 땅을 박차고 날아오르는데 얼마나 당황스럽던지……. 음?”
한창 떠들어 대던 천살의 표정이 돌연 굳더니,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이런. 꼬리가 붙었군요.”
천살의 시선이 문을 향하자, 무릎을 꿇고 있던 살수가 당황한 표정으로 몸을 일으켰다.
“그럴 리가…….”
문밖에서 무인들이 기척을 죽이고 다가오는 것이 느껴졌다.
저들 나름대로 숨긴다고 숨긴 모양이지만, 천살의 감각을 속이는 것은 불가능했다.
“저들에게 살수들의 기척을 간파하는 뭔가가 있다는 말이 맞는 것 같군요. 무공? 술법? 약물? 셋 중 하나일 텐데…….”
고개를 갸웃거리던 천살은 이내 피식 웃었다.
“뭐, 직접 물어보면 알겠죠.”
그는 옆에 놓아 두었던 비파를 들었다. 가볍게 현을 튕기자 지잉- 하고 맑은소리가 울려 퍼졌다.
“커허억…….”
귀에서 피를 흘리며 제 앞으로 쓰러진 살수를 바라보며, 천살은 빙긋 웃었다.
“이렇게 되었으니, 저도 슬슬 움직여야겠습니다.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야 선생님이 놀라시려나…….”
“왜, 왜 저를…….”
살수는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천살을 바라봤다.
왜 자신을 죽이려는 것인가?
이곳에 꼬리를 달고 와서?
설령 그렇다고 해도, 밖에 무인들이 몰려왔으니 한 명이라도 전력이 더 필요한 상황인데…….
그러나 천살의 대답은 그가 상상치도 못했던 것이었다.
“말동무를 제대로 안 해 주지 않았습니까.”
“미친……!”
콰아앙!
문이 박살 나고 천장이 무너지며, 수십 명의 무인이 안으로 들이닥쳤다.
“무기를 버리고 투항하라!”
“모두 암기와 독을 조심하시오!”
살수들의 공격을 각오하고 일제히 안으로 돌입한 무림맹, 개방, 관의 고수들.
그러나 그들은 한발 늦었다.
“……살수는?”
그곳에는 눈을 부릅뜬 부호의 시신과, 귀에서 피를 흘리며 죽은 살수의 시신, 그리고 줄이 끊어진 비파만이 덩그러니 버려져 있었다.
* * *
우드득!
살수의 목이 불가능한 각도로 꺾였다.
저항하려는 듯 움찔거리던 팔다리가 축 늘어지고 나서야, 노군상은 시체를 옆으로 내던졌다.
“곽 선생. 어디 다친 곳은 없나?”
“……괘, 괜찮습니다.”
곽두용은 마른침을 꿀꺽 삼키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굳은 표정으로 주변을 둘러봤다.
팔다리가 꺾이고 목이 부러진 살수 셋이 바닥에 널브러져 있었다. 모두 노군상의 작품이었다.
“이게 다 무슨…….”
방금 전, 곽두용은 갑자기 나타난 살수에게 공격을 받았다.
노군상이 제때 나타나 도와주었기에 망정이지, 아니었으면 크게 곤욕을 치렀을 것이다.
“갑자기 왜 살수가…….”
곽두용의 당연한 의문에, 노군상은 덤덤한 표정으로 대답해 주었다.
“살막의 살수들이 청룡학관을 노리고 있네.”
“사, 살막이라니요?”
곽두용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천하에서 제일 유명한 살수 집단의 이름을 어찌 모르겠는가.
하지만 갑자기 살막이 청룡학관을 노린다는 말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살막이 왜 저희를 노린단 말입니까?”
“일단 따라오게. 자세한 이야기는 가면서 해 줄 테니.”
“아, 알겠습니다.”
곽두용은 얼떨떨해하면서도 노군상을 따라나섰다.
그리고 놀라운 광경을 보게 되었다.
또 다른 살수의 공격에 대비해 기감을 활짝 열자, 청룡학관 곳곳에서 충돌이 일어나는 것이 느껴진 것이다.
콰르르릉!
학관 한쪽에서 벼락이 내리쳤다. 그 모습에 곽두용이 입을 떡 벌리는데, 노군상은 오히려 안심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저긴 남궁수 선생이 있으니 걱정 안 해도 되겠군. 우린 이쪽으로 가세나.”
“이게 대체…….”
노군상은 간략하게 현재 상황을 설명해 주었다.
혈교가 살막에 백수룡의 제거를 의뢰했으며, 적지 않은 숫자의 살수들이 청룡학관과 도시로 숨어들었다는 것.
심지어 청룡학관 강사로 변장한 살수마저 있었다는 것.
그 살수의 정체는 곽두용을 경악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지, 진의협 선생이 살수였다는 말입니까? 대체 언제부터요?”
“적어도 어제부터는 확실하네.”
“저, 전 그것도 모르고 그자와 함께 술을 마셨는데…….”
곽두용은 몸을 부르르 떨었다.
어젯밤 내내 옆에 있는 사람이 살수인 줄도 모르고 고주망태가 되도록 음주를 했으니, 뒤늦게 오싹한 기분이 드는 것도 당연했다.
노군상이 그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누구도 그자가 사라지기 전까진 살수라는 사실을 알지 못했네.”
“그럼 진짜 진의협 선생은…….”
“죽었겠지. 어쩌면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꽤 오래전에.”
잠시 무거운 침묵이 내려앉았다.
곽두용의 몸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갑자기 알게 된 살막의 습격, 자신과 친했던 진의협이 죽었다는 것, 그 살수와 바로 어제까지 호형호제했다는 사실이 커다란 충격을 전해 준 듯했다.
노군상은 안타까운 표정으로 그를 바라봤다.
“미리 말해 주지 못한 것은 미안하게 되었네. 백수룡 선생을 대신해 변명을 하자면, 몇 명을 제외하고는 누구도 믿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고 하더군.”
“……그 믿을 수 있는 몇 명 안에 저는 못 들어간 거군요.”
“너무 섭섭해하지 말게나. 이 기회에 살막을 일망타진할 것이야. 이미 천라지망이 펼쳐져 살수들을 색출하고 있으니.”
꿀꺽 마른침을 삼킨 곽두용이 물었다.
“학생들은요?”
“다른 선생들이 보호하고 있네. 우리도 지금 그쪽으로 가는 중이고.”
곽두용의 안색을 살핀 노군상은 그가 살수들과 싸우기 힘든 상태라고 판단했다.
“정 힘들면, 자네는 나가서 무림맹에 몸을 의탁하겠나?”
“저는…….”
그 순간, 어둠 속에서 살수가 노군상을 노리고 튀어 나왔다.
휘익!
그러나 노군상은 기다렸다는 듯 살수의 팔목을 잡아 비틀었다. 거의 동시에 곽두용의 도가 살수의 목을 날려 버렸다.
촤아악!
살수의 머리가 바닥을 뒹굴었다. 노군상은 조금 놀란 표정으로 곽두용을 바라봤다.
“……자네?”
“저, 저도 청룡학관 강사입니다. 학생들이 위험한데 가만히 있을 순 없습니다.”
곽두용은 이를 악물었다.
비록 몸은 여전히 떨고 있었지만, 그 눈빛만은 굳건했다.
“훌륭한 마음가짐일세. 자네를 다시 보게 되는군.”
“사람의 본성이란, 위기의 순간에 나오기 마련이니까요. 저 곽두용은 그런 사람입니다.”
“허허. 그런가?”
본인이 하기에는 조금 낯간지러운 말이 아닌가라는 생각에, 노군상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청룡학관에 살수들이 잠입해 있을지 모르는 상황에서, 저런 사소한 말투에 신경 쓸 시간은 없었다.
“따라오게. 아직 살수들이 학관에 남아 있을지 모르니 경계를 늦추지 말고.”
“알겠습니다.”
고개를 끄덕인 곽두용은 노군상을 따라다니며 놀란 학생들을 진정시키고, 청룡학관에 남아 있을지 모르는 살수들을 색출하는 일을 도왔다.
그렇게 두 사람이 함께 다니던 도중, 곽두용이 지나가듯 자연스럽게 물었다.
“그런데, 백수룡 선생은 어디 있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