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mber One Star Instructor Master Baek RAW novel - Chapter 405
404화. 처음이자 마지막
“하하하…….”
부러진 코가 덜렁거렸다. 눈알은 하나가 터졌고, 이빨은 반 이상 부러졌다.
도무지 누군지 알아볼 수 없는 목불인견의 형상.
그럼에도 천살은 웃고 있었다. 몹시 기괴한 미소였다.
“이거 참……. 너무하시네요. 살수 훈련을 받을 때도 얼굴이 이렇게까지 뭉개진 적은 없었는데…….”
발음이 줄줄 새고, 말할 때마다 입에서 피가 흘러나왔다. 그럼에도 천살은 말하기를 멈추지 않았다.
그는 백수룡을 올려보며 물었다.
“화는 좀 풀리셨습니까?”
팔다리가 불가능한 각도로 꺾인 터라 몸을 일으킬 수조차 없었다.
짓밟혀 반쯤 뭉개진 벌레처럼 비참한 모습.
허나 그를 내려보는 백수룡의 눈에선 일말의 동정심도 보이지 않았다.
“아직.”
무심하게 말하며, 살을 뚫고 튀어나온 정강이뼈를 지그시 밟았다.
“하, 하…….”
천살의 목에 핏대가 돋았다. 표정은 찌푸리지 않았으나, 천하제일의 살수라고 감각을 아예 못 느끼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범인(凡人)의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잘 견딜 뿐.
“……고통을 잘 다루시네요. 역시, 당신은 저와 닮은 점이 많습니다.”
“오랜만이라 강도 조절이 좀 어렵네.”
“하하. 전혀요. 당장 현역으로 뛰셔도 되겠는데요?”
“허세를 부리는 것치곤 아까부터 숨을 헐떡이는데. 많이 힘든가?”
“글쎄요. 아직은 버틸 만하군요.”
천살은 강했다.
살수로서의 의미가 아니라, 무인으로서도 전에 만난 장로들 못지않았다.
게다가 혈마가 남긴 술법까지 익혔다. 이 정도의 고수가 왜 살수 따위를 하는지 이해가 안 될 정도였다.
“심지어 더럽게 신중하기까지 하니, 널 끌어들이려면 연기를 해야 할 필요가 있겠더라고.”
“……하하. 그만 깜빡 속아 넘어가고 말았지 뭡니까.”
백수룡에게 손목을 잡히지 않았다면, 그 순간 손목을 타고 들어온 역천신공의 기운과 술법의 기운이 몸을 경직시키지 않았다면.
천살은 자신의 손목을 잘라서라도 도망쳤을 것이다. 하지만 백수룡은 그조차 예상하고 있었다.
“내가 말했지. 쉽게 죽이진 않을 거라고.”
적안으로 변한 백수룡의 눈은 차분했다. 그러나 그 안에는 차가운 분노가 깊게 가라앉아 있었다.
“널 어떻게 죽여야 할지 계속 고민해 봤는데 말이야.”
백수룡은 가장 먼저 천살의 얼굴을 짓이긴 후, 그다음에는 움직이지 못하도록 뼈를 마디마디 분질러 놓았다.
그러나 천살은 지금껏 비명 한 번 내지르지 않았다.
오히려 상대를 조롱하듯 입가에 비웃음을 띨 뿐이었다.
“무척 기대하고 있습니다. 설마 절 실망시키지는 않으시겠죠?”
천살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백수룡은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봤다.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나 해 주지.”
“……이렇게 갑자기요?”
흐릿한 빛을 뿌리는 초승달이 구름에 갇혔다 나오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핏물로 적신 듯한 적발이 바람에 나부꼈다.
“어느 날, 나는 전생의 기억을 떠올렸다.”
“꽤 흥미로운 시작이군요.”
천살의 눈이 반달을 그렸으나, 백수룡은 그 모습을 보지 않고 여전히 밤하늘에 흘러가는 구름만을 바라봤다.
“전생에 나는 혈교의 무공교관이었다. 혈교의 수많은 무공과 마공을 섭렵했지. 어떤 무공이든 한번 보면 파악할 수 있을 만큼 오성이 뛰어난 데다, 엄청난 독종이었다. 최고의 자리까지 올라가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어.”
천살은 킥킥 웃었다.
“하지만 단전을 다쳐 내공을 쓸 수 없었지. 교관으로서는 뛰어났지만, 무인으로서는 반쪽짜리에 불과했어. 보이지 않는 멸시와 천대는 일상이었다.”
천살의 눈동자가 살짝 흔들렸다.
“그러던 어느 날, 마뇌가 나를 불러 한 가지 임무를 맡기더군.”
천살은 처음으로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마뇌라니…….”
수십 년 전에 죽은 혈교의 장로가 언급되자, 긴가민가한 표정으로 백수룡을 바라보던 천살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임무는 이러했다. 혈교가 납치한 고수들의 무공을 알아내고, 교에서 준비한 아이들에게 가르쳐라. 마뇌가 데려간 뇌옥에는 네 명의 절세고수가 갇혀 있더군.”
백수룡이 잠시 말을 멈추자, 천살이 더 이상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물었다.
“……그들이 누구였습니까?”
밤하늘의 수많은 별들을 바라보는 백수룡의 입꼬리가 씁쓸하게 올라갔다. 그 안에 담긴 복잡한 감정을 천살은 읽지 못했다.
“녹림투왕, 광마, 검존, 빙월신녀.”
“……!!”
그러나 천살의 표정이 경악으로 물들기에는 충분했다.
방금 백수룡이 말한 네 명의 별호는, 혈교에서도 고위 인사가 아니면 절대로 알 수 없는 정보였다.
“나는 그들을 설득해 무공을 캐내고, 교에서 준비한 제자들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명령이니 해야 했지. 하지만 알고 있었어. 그 일이 끝나면, 혈교가 나를 토사구팽하리라는 것을 말이야.”
“설마, 설마 당신은…….”
누구에게도 고백할 수 없었던 전생의 비밀을, 백수룡은 자신을 죽이려 한 혈교의 살수에게 고백하고 있었다.
물론 모든 사실을 온전하게 전한 것은 아니었다.
“……그렇게, 나는 네 명의 절세고수와 함께 죽었다.”
이야기를 모두 끝낸 백수룡은 고개를 숙여 다시 천살을 바라봤다.
“혈교에도 내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나?”
반응은 생각보다 격렬했다.
“오십여 년 전 혈교를 무너뜨린 것이 바로 당신이었다니……!”
천살은 격정적인 감정을 숨기지 못하고 몸을 떨고 있었다. 전신의 고통도 잊은 것처럼 보였다.
“……황당한 이야기라서 안 믿을 줄 알았는데.”
“믿지 않을 이유가 없습니다. 이로써 모든 것이 설명되니까요. 당신의 무공, 혈교의 계획을 몇 번이나 분쇄할 수 있었던 이유. 하! 누구보다 교에 대해서 잘 아는 사내가 적이었으니 전부 들킬 수밖에……!”
천살은 엄청난 희열을 느끼고 있었다.
그는 백수룡이 지금 자신에게 한 이야기가 모두 진실이며, 지금껏 아무에게도 털어놓지 못했던 비밀이라는 사실에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혈마의 무공을 익혔다는 것.
그것은 가족에게도 함부로 말할 수 없는 비밀이었을 것이다.
주변 사람들까지 위험에 빠뜨릴 수 있기 때문에.
그래서 더 듣고 싶었다.
“저한테 왜 이런 이야기를 하시는 겁니까? 죽이기 전에 베푸는 동정입니까?”
“실망이군. 너라면 조금 더 상상력을 발휘할 줄 알았는데.”
백수룡이 혀를 차며 말하자, 그를 바라보는 천살의 미간이 가늘게 좁혀졌다.
어쩌면 이 사내는, 자신이 생각했던 것보다 더욱 흥미로운 사람일지도 모른다.
“지난 생에는 실패했지만, 이번에는 완벽하게 혈교를 없앨 거다. 흔적조차 없이 말살시켜서, 존재했다는 사실조차 믿기 힘들도록.”
백수룡이 내뿜고 있는 살기는 진짜였다.
천살조차 살면서 몇 번 느껴 보지 못했을 만큼 진득하고 소름 끼치는 살기.
“그래서 말인데.”
적발적안의 사내는 천하제일의 살수를 내려보며 서늘하게 웃었다.
“널 죽이는 대신, 내 밑에 거둘까 하는데.”
“하하, 하하하……. 지금 뭐라고 하셨습니까?”
천살은 어깨를 들썩이며 웃었다. 부러진 뼈가 몸 안에서 움직이고 있었지만, 통증 따위는 개의치 않았다.
그는 반쯤 넋이 나간 표정으로 백수룡의 이야기를 들었다.
“널 그냥 여기서 죽일 수도 있겠지. 하지만 그건 화풀이에 불과해. 하지만 내가 널 거둔다면, 천하에서 가장 날카로운 비수를 손에 넣게 되는 거지. 어떤 게 이득인지는 분명하잖아?”
“저보고 당신의 수하가 되라는 뜻입니까?”
스르륵.
백수룡은 허공섭물을 펼쳐 천살을 일으켜 세웠다. 그러곤 같은 눈높이로 마주 보며 말을 이었다.
“재미있지 않겠어?”
혈마안이 요사스럽게 빛났다. 광인인 천살을 공포에 질리게 할 수는 없었지만, 혈마안이 가진 공능은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지금까지 널 부려온 혈교의 고위 인사들을 찾아가서 하나씩 죽이는 거야.”
나른한 미소를 짓는 적발적안의 사내의 시선은, 바라보는 것만으로 사람을 홀린다는 요괴와 다름없는 힘을 지니고 있었다.
더욱이, 지금은 혈마의 손가락의 능력이 더해져 그 힘이 더욱 강해진 상황.
“그들이 왜 배신했냐고 묻거든 이렇게 대답해.”
과거, 백수룡이 혈마의 목소리에 유혹당해 힘을 받아들일 뻔했던 것처럼, 이번에는 백수룡의 목소리가 천살의 귓가를 희롱했다.
“혈마께서 내리신 명령을 이행했노라고.”
“아아, 아아아아……!”
그 말을 듣는 순간, 천살은 등줄기를 ?는 짜릿한 쾌감에 온 몸을 부르르 떨었다.
“넌 내가 싸워 본 적들 중에 가장 무서운 상대였다. 아마 전쟁이 시작되었다면, 혈교의 명령에 의해 수많은 고수를 암살했겠지.”
백수룡은 한 걸음 더 다가와, 천살의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
“허나 더 이상은 혈교에 있을 필요가 없다. 이제는 내 칼이 되어라.”
“당신은, 당신은……!”
천살의 눈에는 백수룡이 더 이상 사람으로 보이지 않았다.
혈마(血魔).
직접 본 적은 없지만, 눈앞에 있는 사내가 혈마가 아니라면, 감히 그 누가 마(魔)를 자처할 수 있단 말인가.
“혈마로서, 자신의 것을 멸하려는 것이군요……!”
완전히 바뀐 천살의 말투에, 백수룡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단전은 부수지 않았으니, 너라면 일 년도 안 돼서 완전히 회복할 수 있겠지.”
“반년이면 충분합니다.”
천살은 길게 고민하지 않았다.
살막의 살수로서 살아가는 삶은 더 이상 그에게 어떤 흥미를 주지 못했다.
눈앞에 있는 사내의 제안에 비하면 말이다.
“……이처럼 흥미로운 제안은 들어 본 적이 없습니다. 상상만 해도 몸이 떨리는군요. 좋습니다.”
털썩.
천살은 스스로 무릎을 꿇고, 고개를 조아렸다. 대부분의 뼈가 박살 나서 무척이나 힘겨웠지만, 이따위 고통은 차오르는 희열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천살은 떨리는 목소리로 새로운 주인에게 충성을 맹세했다.
“……충성을 바치겠습니다. 지금부터 당신을 섬기는 살수가 되겠습니다.”
“고개를 들어라.”
벅찬 마음으로 다시 고개를 든 순간, 천살은 보았다.
백수룡의 입가에 맺힌 조소를.
그가 터지려는 웃음을 간신히 참고 있는 것을 말이다.
“표정 한번 가관이군.”
“왜…….”
그 순간 백수룡이 천살을 지탱해 주던 허공섭물을 풀자, 겨우 중심을 잡았던 몸이 꼴사납게 옆으로 무너졌다.
“왜, 왜…….”
“아직도 상황 파악이 안 돼?”
황망한 표정으로 백수룡을 올려보던 천살의 얼굴이 점점 흉신악살처럼 일그러졌다.
“처음부터 날……. 기만한 겁니까?”
완벽한 조롱이자 기만이었다.
백수룡은 전생의 이야기를 꺼내 천살에게 자신의 정체를 밝히고, 천살이 자신에게 반드시 필요한 것처럼 연기했다.
그가 스스로 자신에게 굴종하도록 만들기 위해서.
“나만을 섬기는 살수라니. 조금 감동할 뻔했잖아?”
백수룡은 쓰러진 천살 앞에 쪼그려 앉았다. 입가에 명백한 비웃음을 띤 채로.
“장난 좀 쳐 본 건데, 이렇게 쉽게 무릎을 꿇을 줄은 몰랐네.”
그 어떤 고통에도 태연하던 천살의 얼굴이, 수치심과 모멸감으로 일그러지고 있었다. 비대한 자아에 커다란 상처를 ?纛?것이다.
뿌드득 이를 갈던 천살이 겨우 입을 열었다.
“……다시, 생각해 보십시오. 난 혈교 장로들의 목을 몇 개나 따올 수 있습니다. 애송이에 불과한 당신의 제자들보다 훨씬 쓸모가 있다는 말이야!”
뒤에 가서는 거의 비명에 가까웠지만, 백수룡은 여전히 그를 비웃을 뿐이었다.
“아니, 넌 내게 아무런 쓸모도 없어.”
“헛소리. 헛소리. 헛소리……!”
백수룡도 천살의 능력은 인정했다.
그러나 살인에 취한 미친놈일 뿐이었다
충성맹세도 지금 당장에 불과할 뿐, 언제든지 흥미를 잃으면 자신을 배신할 수 있는 인간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 사람들을 죽이려고 한 새끼랑 같이 일할 생각은 처음부터 없었어.”
“……반드시 후회할 겁니다. 혈마여. 지금이라도 다시 생각하십시오. 내가 당신의 칼이 된다면, 세상 누구라도…….”
퍼억!
걷어차인 천살의 몸이 벽으로 튕겨 나갔다.
벌레처럼 꿈틀거리는 그에게 걸어간 백수룡이 무심한 시선으로 그를 바라봤다.
“그토록 원한다면, 네 주인으로서 처음이자 마지막 명령을 내리지.”
마지막 발길질로 천살의 단전을 부쉈다. 내공이 흩어지기 시작하자 천살의 상태가 급속도로 악화되기 시작했다.
“그렇게 벌레처럼 꿈틀거리면서, 천천히 죽어 가도록.”
이내 백수룡의 눈에서 상대에 대한 흥미가 완전히 사라졌다. 그는 서서히 죽어 가는 천살을 두고 돌아섰다.
“아아……. 아아아아악……!”
천살은 분에 못 견뎌 몸을 뒤틀며 비명을 질렀다. 그러나 망가진 성대에서는 더 이상 제대로 된 비명도 흘러나오지 않았다.
그것은 분명 천살이 상상도 해 본 적 없는, 보잘 것 없는 죽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