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mber One Star Instructor Master Baek RAW novel - Chapter 408
407화. 눌러앉겠다고요?
진의협의 장례식은 청룡학관에서 간소하게 치러졌다.
“……진의협 선생은 성실하고 겸손한 청년이었네.”
동료 강사들과 일부 학생들만이 참석한 가운데, 노군상이 추도사를 맡았다.
“신입 강사 면접을 보던 날이 기억나는군. 어떤 선생이 되고 싶냐는 질문에, 그는 진지한 표정으로 이렇게 대답했다네.”
노군상의 목소리가 잔잔하게 울려 퍼졌다.
장례식에 참석한 사람들은 조용히 그 이야기를 경청했다.
“부모님이 물려주신 의협(義俠)이라는 이름에 부끄럽지 않게, 늘 공명정대하게 학생들을 대할 것이며, 수업에 어려움을 겪는 학생들에게는 언제든 도움을 주는 선생이 되고 싶습니다.”
“……흐윽.”
진의협이 생전에 친하게 지냈던 강사들, 학생들이 하나둘 흐느끼기 시작했다.
특히나 진의협과 친했던 곽두용도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
그는 시신도 찾지 못한 채 덩그러니 놓여 있는 친우의 위패를 멍하니 바라봤다.
안타까운 표정으로 그를 바라본 노군상이 말을 이었다.
“나는 진의협 선생이 청룡학관의 미래가 될 것임을 의심한 적이 없네. 당장 특출한 무인이거나 뛰어난 강사는 아니었지만, 그런 청년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진가가 드러난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오래 담근 술처럼 말일세.”
“…….”
백수룡도 장례식에 참석했다.
그는 진의협과는 아무런 친분도 없었다.
청룡학관 내에서 오다가다 마주치면, 가볍게 목례만 하던 딱 그 정도의 관계.
늘 업무가 바빴고, 친우는 주변에 있는 동기들만으로도 충분했기에, 다른 강사들과는 굳이 친분을 만들지 않았다.
그럼에도 백수룡이 이 자리에 참석한 이유는 하나였다.
‘나 때문에 죽었으니까.’
결국 진의협이 죽은 것은 천살이 백수룡의 주변 인물들 중 누군가를 선택해 변장하기 위해서였고, 그건 조금 냉정하게 말하면 운이 나빴다고밖에 말할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 운이 나쁜 사람이 악연호나 명일오, 제갈소영일 수도 있었다. 곽두용처럼 그저 운이 좋아서 살아남은 경우도 있었다.
백수룡을 죽이기 위해 혈교가 움직이지 않았다면 결코 일어나지 않았을 일.
그래서, 백수룡은 진의협의 죽음에 책임감을 느꼈다.
‘미안하오.’
중원 최고의 살수 조직이라는 살막을 상대로, 백수룡은 그야말로 압도적인 승리를 이끌어냈다.
하지만 피해가 없을 수는 없었다.
청룡학관에서는 강사 진의협이 죽었으며, 강사들 여럿이 부상을 입었고, 학생들 중에서도 다친 아이들이 있었다.
천라지망을 이뤘던 무림맹과 개방, 갱생문에도 부상자들이 적지 않았다.
[자책하지 말거라. 네가 알지 못하는 곳에서 생긴 불가항력인 일이었다.]백수룡의 심정을 짐작한 창룡신검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위로했다. 백수룡은 씁쓸하게 웃으며 손가락으로 검파를 툭툭 두드렸다.
‘자책하진 않아. 그냥 좀…….’
죽은 동료의 장례식에 참석하는 일.
전생에서도 경험이 없지는 않았다. 오히려 당시에 훨씬 더 많은 죽음을 보았는데.
타인의 죽음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그 시절과 지금은 달랐다.
고작 한 명이 죽었다.
천살의 말대로, 이기적이라고 할 수 있는 수준의 작은 피해인데도.
‘기분이 더럽네.’
백수룡은 진의협의 위패를 바라봤다.
고향에 가족이 있다고 들었다.
부모님과 동생 셋.
진의협이 집안의 장남이었다고 하는데, 청룡학관에 입사한 후 마을의 모든 사람에게 음식을 돌렸을 정도로 부모의 자랑이었다고 한다.
‘명복을 빌겠소.’
복만춘을 통해서 가족들에게 따로 위로금을 보내고, 도움이 될 만한 것이 있다면 백룡상단에서 지원하라고 일러두었다. 얼마나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그 정도가 백수룡이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혹시 당신도 나처럼 환생하게 된다면, 그땐 원 없이 학생들을 가르칠 수 있길 바라겠소.’
백수룡이 잠시 실없는 상상을 하는 동안 장례식이 끝났다.
‘아니면, 다음엔 스승과 제자로 만나도 좋을 것 같군.’
사람들은 굳은 표정으로 하나둘 자리를 떠났다. 백수룡도 위패를 향해 가볍게 목례를 한 후 자리를 떠났다.
모두가 떠난 자리.
휘이이잉-
느닷없이 불어온 바람에, 밤나무로 만든 위패가 살짝 흔들리다가 다시 잠잠해졌다.
* * *
살막의 살수들이 청룡신협을 노리고 청룡학관에 잠입했으며, 지난밤 살수들과 싸움을 벌였다는 소문이 도시 전체에 퍼지기까지는 한나절이 채 걸리지 않았다.
당연히 도시 전체가 벌집을 들쑤신 것처럼 시끄러워졌다. 간밤에 무인들과 살수들의 싸움을 목격한 사람이 한둘이 아닌 탓이었다.
다행히 민간인들의 피해가 전무했으나, 살수 집단이 단체로 움직였다는 사실은 사람들을 불안에 떨게 하기에 충분했다.
천라지망을 펼치는 계획은 극비리에 진행되었으나, 싸움이 모두 끝났으니 무림맹에서도 정식으로 조사단을 파견하기로 했다.
그리하여 조사가 끝날 때까지, 청룡학관은 모든 수업을 중지하기로 했다. 다친 강사들과 놀란 학생들을 위한 조치이기도 했다.
백수룡은 장례식에 참석한 후 매극렴의 처소를 찾아갔다.
“할아버님. 몸은 좀 어떠세요?”
“……많이 좋아졌다.”
침상에 누운 매극렴은 한눈에 보아도 중환자의 모습이었다.
일살과 싸우다가 생긴 상처가 적지 않은 데다가, 내상 또한 깊었다.
의원에게 한동안은 꼼짝 말고 정양하라는 말을 들었지만, 매극렴은 손자 앞에서 애써 별것 아닌 척했다.
“사흘만 지나면 전처럼 움직일 수 있을 테니, 너무 걱정하지 말거라.”
“사흘이라니요? 어림도 없습니다.”
한쪽에서 탕약을 달이고 있던 백무흔이 딴지를 걸었다.
“의원이 열흘은 족히 정양하라고 했는데, 그게 언제 사흘로 바뀌었습니까?”
“끄응…….”
잔소리를 하며 다가온 백무흔은 깨끗한 무명천으로 매극렴의 환부를 닦아 내고, 익숙한 동작으로 고약을 척척 발랐다.
뿐만 아니라 직접 달인 탕약을 가져와서 일으켜 앉히고 먹는 것까지 도와주는데, 몇 년은 의원에서 일한 의녀처럼 손길이 섬세하고 능숙했다.
“……약이 쓰구나.”
“그럼 약이 쓰지 달겠습니까. 여기 당과 가져왔으니 드십시오.”
“고얀 놈이…….”
매극렴은 눈살을 찌푸리면서도 백무흔이 시키는 대로 순순히 따랐다.
백수룡은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그런 아버지를 바라봤다.
“간병을 뭐 이렇게 잘해요?”
“왜 잘하겠냐?”
백무흔은 매극렴을 다시 침상에 눕히고, 이불까지 잘 덮어 준 후에 아들을 돌아보며 물었다.
“의원이 꼼짝 말고 열흘은 쉬어야 한다고 했다. 그때까지 외할아버지는 내가 옆에 붙어서 감시할 테니 걱정하지 말거라.”
“고얀 놈…….”
“그래도 병수발 들어 드리니 개잡놈이라고는 안 하십니다?”
“안 불러 주니 아쉽더냐?”
백무흔은 장인어른의 퉁명스러운 반응에 피식 웃었다. 그러곤 고개를 돌려 아들의 안색을 살폈다.
장인어른만큼은 아니지만, 아들 또한 쉽지 않은 싸움을 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네 몸은 좀 어떠냐?”
“저야 뭐, 멀쩡하죠.”
백수룡이 어깨를 으쓱이며 대답하는데, 허리춤에서 창룡신검이 부르르 떨었다.
[거짓말은 좋지 않구나.]사실 백수룡의 몸 상태도 좋은 편은 아니었다.
오히려 나쁘다고 할 수 있었다.
비록 극히 일부였지만, 혈마의 손가락이 지닌 힘을 사용한 대가로 역천신공의 기운이 크게 날뛰었다.
다행히 창룡신검의 도움으로 술법을 펼쳐 크게 위험한 일은 없었지만, 만약 혼자서 술법을 제어하려 했다면 치명적인 내상을 입었을 것이다.
한마디로 겉만 멀쩡할 뿐, 몸속은 불안정하기 그지없는 상태였다.
‘굳이 말해서 뭐 해. 그런다고 방법이 있는 것도 아닌데.’
귓가에 창룡신검의 깊은 한숨이 들리는 듯했다.
진맥으로는 알 수 없는 부분이기에, 말하지 않는 한 다른 사람은 백수룡의 몸 상태를 알 도리가 없었다.
그러나 그의 아버지의 눈치가 보통이 아니었다.
“너, 역시…….”
백무흔은 눈을 가늘게 뜨고 아들의 표정을 살피더니, 수심이 어린 얼굴로 한숨을 쉬었다.
“안 되겠다. 아들 녀석이 걱정돼서 도저히 못 돌아가겠구나.”
“네?”
그 말의 의미를 이해하는 데 잠시 시간이 걸린 백수룡의 표정이 점점 미묘하게 일그러졌다.
“설마……. 여기에 눌러앉으시려고요?”
“말버릇하고는. 그래. 눌러앉을 생각이다.”
백무흔의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그 이유가 단순히 아들이 걱정되어서만은 아니었다.
“이대로 백무관으로 돌아가면, 나 때문에 그곳 사람들이 위험해질 수도 있지 않겠느냐.”
“……그 생각을 미처 못했네요.”
어쨌거나 백무흔은 혈교의 장로 중 하나를 죽였다.
앞으로 혈교가 그를 주목하게 될 확률이 높았다.
이런 상황에서 백무관으로 돌아간다면, 그 주변에 사람들까지 위험해질 수도 있다는 이야기였다.
“그러니 미련 없이 정리하고 떠난 것처럼 구는 게 낫지. 나중에 돌아가면 마을 사람들에게 한 소리 듣긴 하겠지만.”
“잘 생각하셨어요.”
고개를 끄덕인 백수룡이 말했다.
“백룡장에 빈방 많으니 편하게 쓰세요.”
그러나 오히려 백무흔이 고개를 저었다.
“됐다. 다 큰 아들놈 집에 얹혀살 생각은 없다. 지낼 곳은 내가 알아서 알아보마.”
“아버지 돈 많아요? 이 동네 집값이 보통 비싼 게 아닌데…….”
“내가 돈이 어디 있겠냐? 지금껏 아들놈 뒷바라지하는 데 다 써서 빈털터리다.”
양심을 쿡쿡 찌르는 말에 백수룡이 헛기침을 했다.
“흠흠. 아니, 돈도 없다면서 어떻게…….”
얌전히 누워 있던 매극렴이 부자간의 대화를 듣고 끼어들었다.
“내가 빌려주기로 했다.”
이제 보니 장인과 사위가 이미 이야기를 끝낸 모양이었다.
백수룡은 심란한 표정으로 자신의 아버지를 바라봤다.
나이가 반백 살인 양반인데, 물가에 내놓은 애처럼 불안한 이유는 뭘까.
“차라리 저한테 달라고 하시지. 장인어른한테 빌붙는 것보다는 아들한테 빌붙는 게 낫지 않겠어요?”
“너 진짜 한 대 맞고 싶으냐?”
백무흔이 탕약을 짜는 약대를 움켜쥐자, 백수룡이 움찔해서 상체를 슬쩍 뒤로 뺐다.
“내가 지금은 가진 게 없어도, 아직 아들놈한테 신세 질 정도는 아니다. 그리고 빌붙긴 누가 빌붙어? 일해서 다 갚을 계획이 있다.”
대체 왜 이런 일로 자존심을 세우는 것인지, 백수룡으로서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무슨 일이요?”
“십 년 넘게 해 온 일이 무공을 가르치는 것이니, 여기서도 작은 무관을 열 생각이다. 성인들을 대상으로 건강 증진을 위한 기초무공반을 열면 어떨까 하는데.”
“무관이라…….”
아버지가 청룡학관 근처에 무관을 연다니 백수룡은 기분이 조금 묘했다.
“……해서 말인데, 아들내미 좀 팔아먹어도 되겠냐?”
“저보고 가서 가르치라고요?”
“그건 아니고.”
힐긋 매극렴을 돌아본 백무흔이 목소리를 낮춰 속삭이듯 말했다.
“그냥 한두 번씩 와서 자세만 좀 봐주고 그러면 된다. 벽보에 청룡신협이 직접 지도해 준다고 써 붙여야 사람들이 관심을 보이지 않겠냐?”
“이놈이…… 가만히 듣자 하니 사기를 치려는구나!”
“자, 장인어른. 안 주무십니까?”
잠든 줄 알았던 매극렴이 도끼눈을 뜨고 백무흔을 노려보고 있었다.
“나이를 먹고 개과천선한 줄 알았더니, 네놈은 여전히 망나니 기질을 못 버렸구나!”
“사위이자 청룡학관 졸업생이 먹고살려고 아들 덕 좀 보겠다는데, 그게 그렇게 못마땅하십니까?”
“말은 똑바로 해야지, 네놈이 왜 청룡학관 졸업생이냐? 졸업하기 전에 내 딸을 데리고 야반도주를 하지 않았더냐!”
“……아니, 그래도 사 학년까지 다녔는데?”
“다녔는데에? 이런 개잡놈이 이제는 맞먹으려 드는구나!”
사이가 좀 좋아졌나 싶으면, 개와 원숭이처럼 다시 티격태격하는 두 사람.
“풉……. 푸하하하!”
그들의 유치하기 짝이 없는 말다툼을 지켜보던 백수룡이 결국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진의협의 장례식 때문에 다소 우울했던 감정이 한순간에 날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