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mber One Star Instructor Master Baek RAW novel - Chapter 412
411화. 안 좋은 정도가 아니라
똑똑-
바깥에서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학생들의 고개가 동시에 홱 하고 돌아갔다. 하나같이 굳은 표정이었다.
현재 백룡장 대문에는 ‘한동안 손님을 받지 않겠다.’라는 벽보를 붙여 놓은 상태.
하지만 학생들의 표정이 굳은 건 단순히 그 이유 때문만은 아니었다.
‘기척이 전혀 없었는데…….’
‘대문 앞까지 올 때까지 아무도 몰랐다고?’
‘이 시간에 누가?’
청룡오망은 빠르게 눈빛을 주고받았다.
최근 살수들의 습격이 있었던 터라, 다들 평소보다 예민하게 주변을 경계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대문 앞에 누군가가 도착할 때까지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다는 것은, 상대가 그만큼 기척을 잘 숨겼다는 의미.
그리고 누구보다 기척을 잘 숨기는 자들이 바로 살수였다.
“……계십니까?”
낮고 조용한 여자의 목소리.
일단은 상대가 먼저 인기척을 냈다는 사실에 학생들은 다소 안도했다.
그렇다고 마음을 완전히 풀지는 않았다.
청룡오망 중 그나마 부상이 가장 적은 거상웅이 앞으로 나섰다.
“내가 가 보지.”
“저도 함께 가겠습니다.”
독고준이 거상웅 옆으로 따라붙었다.
다른 학생들도 언제든지 싸울 수 있도록 몸을 긴장시키며, 천천히 두 사람을 뒤따랐다.
대문 앞에 선 거상웅이 목소리를 높여 말했다.
“누구신지 이름과 용무를 밝혀 주십시오!”
문 너머의 상대는 잠시 머뭇거리는 듯하더니, 목소리를 낮춰 말했다.
“……청룡신협 백수룡 선생님을 찾아뵈러 왔습니다. 자세한 용무는 직접 뵙고 말씀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거상웅은 어림도 없다는 듯 코웃음을 쳤다.
얼마 전까지 비슷한 이유로 백룡장을 찾아오는 무인이 하루에도 몇 명은 되었다.
게다가 상대는 자신의 신분과 목적을 밝히지 않았다.
수상하기 짝이 없는 자를 안으로 들일 만큼 백룡장은 만만한 곳이 아니었다.
“현재 백룡장은 손님을 받지 않습니다! 죄송하지만 돌아가 주시기 바랍니다!”
거상웅은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주먹을 단단히 말아쥐며 말했다.
문 너머의 상대가 강제로 문을 열고 들어온다면 힘으로 쫓아낼 생각이었다.
물론 제정신인 사람이라면 무림십존의 집에 쳐들어올 생각은 못 하겠지만, 대비해 둬서 나쁠 것은 없었다.
잠시 후, 문 너머에서 곤란한 목소리로 중얼거리는 것이 들려왔다.
“아버지께서 서찰을 미리 보내셨을 텐데…….”
“서찰?”
고개를 갸웃거리던 거상웅은 지난밤 백수룡이 했던 말을 떠올렸다.
-나 없을 때 손님이 올지도 모른다. 혹시 이 이름을 말하고 찾아오면 예의를 갖춰서 안으로 모시고 바로 나한테 알려.
“……서찰을 보내셨다는 분의 함자가 어찌 되시는지?”
“공손 씨에 수(秀) 자를 쓰십니다.”
낮지만 부드러운 상대의 목소리에, 뒤에서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던 헌원강이 무언가를 떠올리곤 앞으로 나섰다.
“이 목소리는 설마……. 비켜 봐!”
거상웅과 독고준을 밀치고 앞으로 나선 헌원강은 누가 말릴 새도 없이 대문을 활짝 열어젖혔다.
대문 앞에는 담청색(淡靑色) 무복 차림의 여인이 서 있었다.
다소 날카로운 눈매에 또렷한 이목구비.
허리춤에는 한 자루 날렵한 검을 찼는데, 마주 선 순간 깊게 갈무리한 기도가 은은하게 느껴졌다.
“어……?”
과거의 기억과는 크게 달라진 상대의 분위기에 헌원강은 잠시 당황했으나, 이내 얼굴을 확인하곤 반가운 목소리로 외쳤다.
“흑영 누이!”
“흑영 누이라고요?”
거의 동시에 위지천도 강아지처럼 달려 나왔다.
흑영은 두 소년을 향해 부드럽게 웃어 주었다.
“둘 다 오랜만이야.”
그러나 두 소년은 반가운 마음이 반, 너무 많이 달라진 흑영의 분위기에 놀란 마음이 반인 얼굴로 그녀를 바라봤다.
“지, 진짜 흑영 누이 맞지?”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지셨네요…….”
둘 다 얼떨떨한 표정이었다.
과거 공손수의 호위로 백룡장에 방문했을 때와는 너무나 달라진 모습.
당시 흑영은 찔러도 피 한 방울 흘러나오지 않을 냉정한 호위무사였다. 지금처럼 웃는 모습은 상상도 하기 힘들 만큼.
“못 믿겠으면 인피면구인지 확인해 봐도 돼.”
흑영이 뒷짐을 지며 말했다.
그녀 역시 이곳에 도착하기 전에 살수들이 청룡학관을 공격했다는 소문을 들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급히 찾아왔으나, 직접 보니 다행히 둘 다 큰 부상은 없어 보였다.
‘진짜 확인해 봐야 하는 거 아냐?’
헌원강이 저도 모르게 흑영의 얼굴로 손을 뻗을 때였다.
찰싹!
어느새 다가왔는지, 쥘부채로 헌원강의 손을 쳐낸 여민이 대신 흑영에게 사과했다.
“손님한테 예의 없게 뭐 하는 짓이야? 죄송해요. 이미 아시겠지만 상식하고는 거리가 먼 녀석이라.”
“괜찮습니다.”
흑영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추억에 잠긴 표정으로 백룡장 안을 바라봤다.
그녀가 공손수와 함께 이곳에서 지낸 시간은 불과 한 달에 불과했지만, 그 하루하루가 전부 소중한 추억이 되어 있었다.
‘그때랑은 많이 달라졌지만.’
내부 구조도 조금은 바뀐 듯했고, 처음 보는 얼굴들이 여럿 보였다. 백룡장은 전보다 훨씬 활기차 보였다.
흑영은 저도 모르게 미소를 지으며 헌원강에게 물었다.
“이제 들어가도 될까?”
뒤늦게 정신을 차린 헌원강이 흑영을 안으로 안내했다.
“어, 당연하지! 들어와! 다들 긴장 풀어! 나랑 잘 아는 사이야!”
“원강아. 네가 제일 긴장한 것 같은데…….”
그런데 흑영은 혼자서 온 것이 아니었다.
그녀의 뒤쪽에는 단아한 분위기의 여인이 조용히 서 있었는데, 한눈에 보아도 범상치 않은 분위기가 흘렀다.
위지천이 흑영에게 물었다.
“함께 오신 분은 누구세요?”
흑영이 짓궂게 웃으며 대답해 주었다.
“너희 선생님이 계속 찾고 있었던 사람.”
“……?”
사박.
흑영을 따라 백룡장의 대문을 넘어온 여인이, 부드럽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청룡신협께선 안에 계신가요?”
그녀가 바로 공손수가 말한, 백수룡을 만나러 온 손님이었다.
* * *
“아니, 그쪽 거리는 무관 차리기에는 별로라니까요?”
“돈이 부족한 걸 어쩌란 말이냐. 장인어른이 어찌나 검소하게 사셨던지, 물가도 제대로 모르시더구나.”
백무흔은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무관을 차리겠다는 계획은 처음부터 쉽지 않았다.
장원 하나 빌리는 값만 해도 상상을 초월했는데, 돈이 거기에만 들어가는 것도 아니었다. 주변에 있는 무관들의 텃세는 아직 시작되지도 않았다.
“……그래서 말인데. 너 돈 좀 있냐?”
“언제는 아들한테 신세 지기 싫다면서요?”
“흠흠. 그땐 그때고…….”
백무흔이 민망한 표정으로 차를 홀짝일 때였다.
“대화 중에 죄송합니다만.”
싸늘한 목소리에 부자의 고개가 동시에 돌아갔다.
서류에 집중하고 있던 남궁수가 고개를 들어 그들을 노려보고 있었다.
“부자간의 담소를 꼭, 제 사무실에서 나누셔야겠습니까?”
남궁수가 금안을 번뜩이자, 마치 그 안에서 벼락이 튀는 듯했다.
보통 사람은 저 눈을 마주치기만 해도 오금이 저려서 도망칠 테지만, 상대는 백수룡과 그의 아버지였다.
“허허. 미안하구려. 내 목소리가 좀 컸지요?”
남궁수의 사무실 한쪽에는 손님 응접용 탁상과 의자가 있었고, 지금 그곳에는 백수룡과 백무흔이 마주 앉아 있었다.
남궁수는 저것을 진작 치워 버리지 않은 것을 후회했다.
“금방 갈 테니 노여워하지 마시오. 헌데 수룡이에게 듣기로는 공동사무실이라 마음껏 있어도 된다고 하던데…….”
‘공동사무실’이라는 말에 남궁수가 백수룡을 죽일 듯 노려봤으나, 백수룡은 그 시선을 슬쩍 외면할 뿐이었다.
“누가 제 사무실을 박살을 내버려서 말이에요. 다 수리하기 전까지는 어쩔 수 없이 여길 같이 쓰는 중이에요.”
“저런. 그 누군가 때문에 불편이 이만저만이 아니겠구나.”
“그렇죠. 사무실에 아버지를 초대해서 차 한잔 대접도 못 하고…….”
“나는 괜찮다. 늙은 애비는 나가서 찬바람이나 쐬고 있을 테니, 일 보려무나.”
양심을 쿡쿡 찌르는 말에, 남궁수의 무표정이 미묘하게 일그러졌다.
‘부자가 아주 쌍으로…….’
한숨을 내쉰 남궁수는 미적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백무흔에게 마음에도 없는 말을 했다.
“……나가시라는 말이 아니었습니다. 다만 목소리를 조금만 줄여 주셨으면 합니다.”
“허허. 알겠소. 내 더 이상 신경 쓰지 않게 조용히 하리다!”
그러나 사무실이 조용해지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선생님!”
사무실 문을 벌컥 열어젖히며 헌원강이 쳐들어온 것이다.
“선생님! 선생님! 손님 데려왔어요! 할배가 말한 손님 있잖아요! 지금 복도 밖에……!”
평소에도 생각보다 행동이 먼저인 헌원강이긴 했지만, 오늘따라 흥분했는지 장소를 가리지 않았다.
물론 그 대가는 컸다.
“원강아. 너 곧 남궁수한테 구워질 것 같은데?”
“예?”
“헌원강 학생. 이리로 오도록.”
“……!!”
남궁수의 스산한 목소리에, 뒤늦게 사색이 된 헌원강이 그 앞으로 불려갔다.
“대체 밖에 누가 왔길래 그래?”
더 이상 남궁수에게 민폐를 끼치고 싶지 않았기에, 백수룡은 사무실 문을 열고 복도로 나왔다.
손님이 온다는 소식이야 알고 있었지만, 그 정체는 지금도 모르고 있었다.
“어?”
백수룡은 저쪽에서 걸어오는, 익숙하면서도 낯선 얼굴을 발견하곤 눈을 동그랗게 떴다.
“흑영!”
“오랜만입니다.”
놀라기는 백수룡도 제자들과 마찬가지였다.
마지막에 보았을 때와 그녀의 인상이 너무나 달라져 있었으니까.
‘분위기가 전혀 다른 사람 같군. 무공도 상당히 강해졌고.’
원래 고도의 살수훈련을 받은 흑영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살수의 느낌은 많이 사라지고, 제대로 된 무공을 익힌 흔적이 보였다. 그것도 상당히 강한 무공이었다.
“이게 얼마 만이야? 어르신이 말한 사람이 너였어?”
“한 가지 정정해 드리면, 저는 더 이상 흑영이 아닙니다.”
“음?”
그녀는 씩 웃더니, 포권을 취하며 정식으로 자신의 이름을 소개했다.
“처음 인사드리겠습니다. 공손영이라고 합니다.”
“……!!”
깜짝 놀란 백수룡이 눈을 부릅뜨더니, 이내 환한 미소를 지었다.
공손영.
그 이름의 의미를 어찌 모르겠는가.
공손수가 그녀를 정식으로 양녀로 들였다는 의미였다.
“하하! 이런 반가운 소식을 왜 이제야 전하는 거야?”
어쩐지 공손수가 보낸 서찰에 흑영에 대한 이야기가 거의 없더라니.
직접 만나서 회포를 풀고 이야기를 나누라고 아낀 모양이었다.
공손영이 웃으며 말했다.
“저도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많지만……. 그전에 함께 온 손님을 소개해 드리는 게 먼저일 것 같네요.”
흑영이 한 걸음 옆으로 비켜서자, 조용히 뒤따라온 여인이 앞으로 나서며 고아하게 포권을 취했다.
“자현이라 합니다. 스승님께 보은패를 회수해 오라는 명을 받아, 청룡신협을 찾아뵙게 되었습니다.”
“백수룡입니다. 보은패라고 하시면 누구의……?”
백수룡도 마주 포권을 취하면서도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자현.
한 번도 들어 보지 못한 이름이었다. 강호에 명성을 떨친 고수는 아니라는 소리였다.
무공을 상당한 수준으로 익힌 것 같았는데, 묘하게도 무인 특유의 기질이 느껴지지 않았다.
‘보통 사람은 아닌 것 같은데…….’
[생사신의께서 저의 스승님이 되십니다.]그 순간 들려온 전음에 백수룡의 눈이 부릅떠졌다.
‘생사신의의 제자라고?’
그가 지금까지 생사신의를 얼마나 찾았던가.
체질을 완전히 바꾸기 위해, 천음절맥을 천음신맥으로 변화시켜 불안정한 역천신공의 기운을 안정시키기 위해.
그 대법에 반드시 필요한 것이 신선의 경지에 이른 의원이었다.
“……보은패를 회수한다는 말씀, 설마 그냥 돌려달라는 이야기는 아니겠지요?”
“청룡신협께서 스승님을 찾고 계신다는 건 어르신께 들었습니다. 아마도 보은패가 필요할 만한 부탁을 하시려는 것이겠지요.”
자현이 말하는 ‘어르신’은 승상 공손수였다. 주변의 듣는 귀를 생각해 에둘러 표현한 것이다.
백수룡은 부정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그분을 만나면 보은패를 드리며 부탁드릴 일이 있습니다.”
“스승님께서도 그럴 거라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제게 보은패를 회수해 오라 말씀하셨지요.”
그 말은 즉, 자현이 생사신의를 대신하여 보은패를 사용할 만한 부탁을 들어주겠다는 이야기였다.
백수룡이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이런 말씀을 드려 죄송하지만, 그냥 믿고 부탁드리기엔…….”
뒷말을 하지 않아도 충분히 알아들었을 것이다.
당신에게 생사신의만큼의 능력이 있냐는 의미였다.
“물론 제 능력은 스승님에 비하면 미치지 못합니다. 하지만.”
자현은 결코 기분 나빠 하지도, 자만하지도 않는 잔잔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청룡신협께서 바라시는 것이 무엇이든, 의원이 필요한 일이라면 이루어 드릴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만약 제 능력으로 불가능한 일이라면, 보은패는 받아가지 않을 것입니다.”
그 말에 백수룡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기야 반드시 생사신의여야 할 필요는 없었다.
공손수가 직접 소개해 준 사람이니 신분은 확실할 것이고, 확실히 능력도 비범해 보였다.
‘입도 무거워 보이고.’
백수룡은 자현과 조금 더 대화를 나눠 보기로 했다.
“자세한 건 여기서 말씀드릴 내용은 아닌 것 같습니다. 자리를 옮기시죠.”
그때, 자현이 백수룡의 안색을 살피며 말했다.
“안색이 무척 안 좋으십니다. 괜찮으시면, 잠시 진맥을 해 봐도 되겠습니까?”
“예, 뭐……. 알겠습니다.”
고개를 끄덕인 백수룡은 손목을 맡겼다.
호기심도 조금 생겼다. 진맥만으로 자현이 어디까지 알아낼 수 있을지도 궁금했던 것이다.
그런데, 그 짧은 시간에 자현의 표정이 심각해지는 것이 아닌가.
“어찌 이 지경이 될 때까지…….”
백수룡이 떨떠름한 표정으로 물었다.
“요즘 좀 피곤할 일이 많긴 했는데. 많이 안 좋습니까?”
자현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백수룡을 바라보는 얼굴이 마치 귀신을 보는 듯했다.
“안 좋은 정도가 아닙니다. 어떻게 이런 몸으로……. 지금까지 살아 계신 것이 기적입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백수룡은 뒤에서 무언가가 깨지는 소리를 들었다.
쨍그랑!
백무흔이 들고 있던 찻잔이 바닥에 떨어지며 난 소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