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mber One Star Instructor Master Baek RAW novel - Chapter 413
412화. 차라리 고문을 해라
“너……!”
백무흔은 성큼 다가와 두 손으로 백수룡의 어깨를 움켜쥐었다.
“내 이럴 줄 알았다. 뭐? 괜찮아? 이젠 다 나았어? 어딜 애비를 속이려고 들어! 일곱 살 때부터 안 아프다고 거짓말하던 버릇을 아직도 못 고쳤더냐!”
보기 드물게 화가 난 백무흔의 모습에, 백수룡도 당황할 정도였다.
“아, 아버지. 진정 좀 하세요.”
“내가 지금 진정하게 생겼느냐! 아들이 죽어 가고 있다는 말을 들었는데-!”
내공이 담긴 목소리가 쩌렁쩌렁하게 울려 퍼졌다.
그 목소리가 어찌나 컸는지, 건물 안에 있는 사무실의 문이 열리고 고개를 빼꼼 내민 사람들이 놀란 표정으로 부자를 바라봤다.
“백수룡 선생님이 죽어 간다고?”
“에이, 말도 안 돼…….”
“하지만 방금 그렇게 말하지 않았어요?”
옆에서 함께 듣고 있던 공손영도 심각하게 굳은 표정이었고, 남궁수에게 혼나고 있던 헌원강은 넋이 나간 표정으로 문 앞에 서 있었다.
“서, 선생님……?”
남궁수 역시 무시무시한 눈빛으로 백수룡을 노려보고 있었다.
“……본인 몸도 제대로 돌보지 않고 그렇게 일을 한 건가.”
자신에게 쏟아지는 많은 시선에, 백수룡은 억울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니, 나 멀쩡하다니까?”
“모두 진정하십시오.”
이 모든 일의 원흉이라고 할 수 있는 생사신의의 제자, 자현만이 유일하게 덤덤한 표정이었다.
그녀가 백무흔을 제지했다.
“가족분께서 흥분하시면 환자분에게 좋을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아니, 누구보고 환자라는…….”
“죄송합니다. 그래서 제 아들이 지금 어떤 상태입니까?”
백무흔은 즉시 자현이 시키는 대로 물러나며 공손한 태도로 물었다.
병약한 아내와 아들 때문에, 지금껏 의원들을 수도 없이 만나본 백무흔이었다.
그는 자현이 뛰어난 명의라는 것을 한눈에 알아보았다.
“……우선 자리를 옮기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이곳에서 할 만큼 가벼운 이야기는 아닌 듯합니다.”
주변을 둘러본 자현이 작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러자 주변인들의 표정이 더욱 심각해졌다.
대체 얼마나 심각하면 저런 말을 한단 말인가?
백수룡만 황당할 따름이었다.
‘내 몸 상태가 그렇게 안 좋다고?’
결국, 백수룡은 아버지에게 끌려가듯 백룡장으로 돌아가야 했다. 미처 자리조차 제대로 정리하지 못하고 말이다.
* * *
방 안에는 백무흔과 자현, 공손영이 함께 있었다.
그리고 백수룡은 이부자리에 얌전히 누워 있었다.
‘미치겠군.’
물론 자의는 아니었다. 방으로 들어오자마자 침의로 갈아입고 이불에 눕게 된 것은, 전적으로 아버지의 서슬 퍼런 눈빛 때문이었다.
“답답한데…….”
“어허! 얌전히 있지 못하겠느냐!”
백수룡이 이불을 은근슬쩍 걷어내려 하자, 백무흔은 눈을 부라리며 이불을 다시 목 아래까지 끌어올렸다.
그 사이 자현은 백수룡의 안색을 살피고, 입 안을 확인했다. 눈꺼풀을 뒤집어 보기도 하고, 머리카락을 몇 가닥 뽑아 면밀히 살피기도 했다.
툭툭.
뿐만 아니라 처음 보는 도구로 백수룡의 몸을 여기저기 두드려 보고 소리를 들었다. 조심스럽게 혈도를 짚어 보기도 여러 번이었다.
‘뛰어난 의원이긴 한 것 같군.’
신중하다 못해 경건하기까지 한 그녀의 진찰에, 백수룡도 함부로 불만을 표시하지 못하고 얌전히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후우…….”
진찰을 마친 자현이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는 걱정 가득한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두 사람에게, 백수룡의 몸 상태에 대해 설명했다.
“거듭된 무리로 신체에 피로가 중첩되었습니다. 어찌 보면 흔한 증상이지만, 이렇게까지 심한 경우는 저도 처음 보았습니다.”
방 안의 모두가 자현의 말을 경청하고 있었다. 백수룡도 떨떠름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봤다.
“평범한 사람은 무리했을 때 충분히 휴식을 취하면서 피로를 풉니다. 허나 무인들은 다르지요. 운기조식으로 몸 안에 기를 순환시켜 피로를 회복하고, 추궁과혈 등으로 뭉친 근육과 상한 혈도를 낫게 합니다. 허나 그 방법이 만능은 아닙니다. 인위적으로 회복이 빨라지도록 도울 뿐…….”
자현은 그러면서 백수룡을 빤히 보았다. 질책하는 듯한 시선이었다.
“청룡신협께선 대단한 고수라고 들었습니다. 앞서 말한 방법들에 누구보다 능통하시겠지요.”
“그야…….”
백수룡은 고개를 끄덕였다.
운기조식을 통해서 내상과 피로를 회복하고, 녹림십팔식으로 뭉친 근육을 부드럽게 풀어 준다.
그렇게만 해도 백수룡은 피로를 거의 느끼지 못했다.
이 정도야 다들 하는 것 아닌가?
“묻겠습니다. 하루에 한 시진은 제대로 주무시고 계십니까?”
“음…….”
백수룡은 제대로 대답을 하지 않았다.
그의 수면 시간은 하루에 한 시진, 길어 봤자 두 시진을 넘지 않았다.
무인이 아무리 철인이라고 해도, 백수룡은 그 정도가 너무 심했던 것이다.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자현이 작게 한숨을 쉬었다.
“몸을 이토록 함부로 사용하시면, 천하제일고수라고 해도 쓰러집니다. 하물며…… 본인도 아시겠지만, 청룡신협의 체질은 굉장히 희귀한 체질입니다.”
“수룡아.”
백무흔이 아들의 손을 꼭 잡았다. 아들의 체질이 불치병에 가깝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었다.
‘왜 생사신의를 찾나 했더니…….’
공손영 또한 설마 이런 이야기를 들을 줄은 몰랐는지, 백수룡을 바라보는 표정이 몹시 안타까웠다.
“저도 스승님께 듣기만 했지, 실제로 이 체질을 가진 분을 만난 것은 처음입니다.”
자현은 믿기 힘들다는 표정으로 백수룡을 바라보고 있었다. 잘못 진찰한 것이 아닐까 싶어 몇 번이나 확인해 봤지만, 확실했다.
청룡신협은 천음절맥이었다.
“분명 천…….”
[듣는 귀가 너무 많습니다.]백수룡의 전음에 자현은 입을 다물었다.
다행히 그녀는 눈치껏 말을 바꿔 주었다.
“……천하에 드문, 매우 특별한 체질입니다.”
“고칠 방법은 없는 겁니까?”
백무흔은 간절한 표정으로 자현을 바라봤다.
그는 아들이 어릴 때부터 명의라고 불리는 의원들을 수없이 찾아다녔다.
하지만 대부분은 치료는커녕, 몸이 허약한 이유조차 알아내지 못했다.
이번에도 그럴 거라고 무의식적으로 체념하고 있는데…….
자현이 조금 고민하다가 대답했다.
“방법이 없지는 않습니다.”
“……!!”
이 말에는 백무흔뿐만 아니라 백수룡도 놀랐다.
한 번의 진찰로 천음절맥을 알아낸 것도 놀라운데, 치료 방법까지 알고 있다니.
‘괜히 생사신의의 제자가 아니군.’
“저, 저, 정말로…….”
백무흔이 제대로 말을 잇지 못하는 가운데, 자현이 먼저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
“하지만 쉽지는 않습니다. 체질을 바꾸기 위해서는 많은 준비가 필요하고, 그렇다고 해도 성공한다는 확신은 드리기 어렵습니다. 저도 해 본 적은 없기 때문에…….”
“가능성이 있다는 말만으로도 충분합니다!”
백무흔은 자현에게 절이라도 할 기세였다.
그녀가 부담스러워하지만 않았다면 하고도 남았을 것이다.
“아버지. 진정 좀 하세요.”
백수룡은 아버지를 진정시키며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작게 한숨을 내쉰 후, 바깥에 대고 말했다.
“너희들도 정신 사나우니까 가만히 좀 있어라.”
““……!!””
방 밖에서 서성이며 대화를 엿듣던 제자들이 움찔했다. 나름 자기들끼리 조심한다고 한 모양인데, 백수룡에게 들키지 않을 리 없었다.
“서, 선생님…….”
“많이 아프신 거 아니죠?”
“저희가 도와드릴 거 없어요?”
“우린 그것도 모르고…….”
“죄송해요…….”
몇몇은 거의 울먹이고 있었다.
백수룡은 한숨을 푹 내쉬며 제자들을 안심시켰다.
“방금 못 들었어? 의원님이 치료할 방법이 있다잖아.”
그러나 백수룡이 겨우 제자들을 진정시켰을 무렵, 뒤늦게 소식을 들은 매극렴이 백룡장으로 쳐들어왔다.
“수룡이 네 이놈-!”
“하, 할아버님?”
벌컥!
방문이 부서질 듯 열리고, 매극렴이 숨이 넘어갈 듯 씩씩거리는 모습으로 서 있었다.
본인도 아직 환자이면서, 매극렴은 검을 지팡이 삼아 절뚝거리며 백룡장까지 서둘러 온 듯했다. 가까이 다가온 그가 손주의 얼굴을 두 손으로 붙잡고 안색을 살폈다.
“갑자기 피를 흘리며 쓰러졌다면서! 괜찮은 게냐!”
“대체 소문이 어떻게 난 거야…….”
백수룡은 매극렴에게 상황을 설명하느라 또 진땀을 빼야 했다.
“그래서, 고칠 수 있다는 말입니까?”
모두의 간절한 눈빛에, 자현은 난감한 표정이 되었다. 의원으로서 차마 거짓말은 할 수 없었다.
“최선을 다해 볼 것입니다. 하지만 확신은 드릴 수가…….”
“제가 확실하게 고치는 방법을 압니다.”
백수룡의 말에 모두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를 바라봤다.
“그래서 생사신의를 찾으려고 한 거니까요.”
한숨을 내쉰 백수룡은 생사신의를 찾고 있었던 이유를 모두에게 설명했다.
‘이렇게까지 일이 커질 줄은 몰랐군.’
혹시나 혈교의 귀에 들어갈까 봐 ‘천음절맥’이라는 구체적인 단어는 언급하지 않았지만, 백수룡은 자신의 몸 상태에 대해서 제법 자세히 설명했다.
자연스럽게 자현이 생사신의의 제자라는 사실도 밝혀졌는데, 그녀가 전설적인 의원의 제자라고 하자 다들 안심하는 기색이었다.
“다행이다…….”
“난 또 큰일 나는 줄…….”
“그럼 그렇지. 선생님이 죽을 리가 없잖아.”
“의원님! 빨리 치료해 주세요!”
어느새 방으로 들어와서 안도한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제자들의 모습에, 백수룡은 피식 웃었다.
그리고 자현을 돌아보며 말했다.
“의원님. 전 준비가 돼 있습니다. 대법을 알려 드릴 테니 지금 당장이라도…….”
“안 됩니다.”
자현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그녀는 의아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에게 이유를 설명했다.
“우선 원기를 회복하지 못하면 몸이 대법을 견디지 못할 것입니다. 지금 상태로 대법을 받는 것은 의원으로서 용납할 수 없습니다.”
“아니, 그건…….”
“청룡신협께서는 적어도 칠 일은 꼼짝 말고 쉬셔야 합니다.”
“칠 일이나요? 그냥 하루 정도만…….”
백수룡이 협상에 나서기도 전에, 주변 사람들이 격렬하게 의원의 편을 들고 나섰다.
“의원님 말씀대로 하거라!”
“한동안은 출근하지 말고 푹 쉬거라. 관주님께는 내가 말씀드릴 것이다.”
“저도 같은 생각이에요.”
천천히 다가오는 어른들의 눈빛도 심상치 않은데, 제자들은 한술 더 떴다.
“방금 들었어? 칠 일 쉬라는데 하루만 쉬겠다는 거?”
“일 중독도 저 정도면 불치병이야…….”
“일단 꽁꽁 묶어 두자. 아무것도 못 하게.”
헌원강을 필두로 한 제자들의 광기 어린 눈빛에, 백수룡은 당황한 표정으로 주위를 둘러봤다.
“잠깐, 잠깐만! 이럴 필요까진 없잖아? 칠 일이나 쉬면 일은 어쩌고? 하루, 아니 이틀만 푹 쉬면 충분히…….”
“하루 같은 소리 하네! 잡아!”
이 순간, 백수룡의 편은 아무도 없었다.
* * *
백수룡의 완벽한 휴식을 위해, 철저한 감시와 강력한 제재가 시작되었다.
“너희는 절대로 이 녀석이 몰래 일을 하거나, 방에서 빠져나가지 못하게 감시해야 한다. 할 수 있겠느냐?”
““예!””
우렁차게 대답한 청룡오망은 곧바로 밀착감시를 시작했다.
청룡오망뿐만이 아니었다.
독고준, 당소소, 유이란, 목형우,
백수룡의 수업을 듣는 조장급 학생들이 찾아와 번갈아 가면서 백룡장 주변에 번을 서기 시작했다.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백수룡의 강사 동기들도 번갈아 가면서 찾아와 빈틈없는 감시망을 구축하고, 혹시 모를 탈주 사태에 대비했다.
악연호는 번을 서는 학생들이 방심하지 않도록 비장한 목소리로 경고했다.
“상대는 지독한 일 중독자 백수룡이다. 백룡장에 있는 모든 지필묵을 압수하고 서적을 불태워라!”
“불태웠다가는 후환이…….”
“그럼 땅에 묻어 버려!”
““예!””
그 꼴을 지켜보는 백수룡으로서는 어처구니가 없었다.
살막의 살수들을 막아 냈던 전력이 왜 고스란히 자신을 감시하고 있는 거지?
설상가상으로…….
“넌 왜 남의 방에다가 멋대로 술법을 펼치고 난리야!”
허락 없이 방 밖으로 한 발자국이라도 나가면 경보가 울리는 술법이 방 전체에 펼쳐진 것이다.
물론 창룡신검의 짓이었다.
물론 얌전히 있을 백수룡이 아니었다.
몇 차례의 탈출 시도와 지필묵을 이불 밑에 숨기려는 시도가 있었다.
하지만 눈에 불을 켠 백무흔에게 전부 발각되고야 말았으니,
“이럴 시간이 없다니까요? 지금도 할 일이 산더미라니까!”
“됐고, 개방에서 보내온 보약이나 먹어 봐라. 냄새가 아주 구수하니 좋구나.”
도무지 말이 통하지 않았다.
백수룡은 하루하루 방 안에 쌓여 가는 보약을 바라보며 절규했다.
‘차라리 고문을 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