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mber One Star Instructor Master Baek RAW novel - Chapter 414
413화. 시작하겠습니다
나흘이 흘렀다.
며칠 동안 얼마나 잘 먹고 잘 쉬었는지, 백수룡의 날렵했던 턱선이 다소 무뎌지고, 피부에는 윤기가 자르르 흘렀다.
“반찬 하나도 허투루 여기지 말고 꼭꼭 씹어 삼켜야 한다. 자, 이 하수오 무침도 먹어 보거라.”
매극렴은 흐뭇한 얼굴로 손자가 밥 먹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젓가락으로 손자의 밥그릇 위에 반찬이 비지 않도록 계속 이것저것 올려 주었다.
“……할아버님. 제가 알아서 챙겨 먹겠습니다.”
두 볼에 통통하게 살이 오른 백수룡이 난감한 표정으로 말했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외할아버지의 사랑은 잠시도 멈추는 법이 없었다.
“어허! 어른이 챙겨 주면 그냥 예, 하고 먹으면 될 것을!”
“……예…….”
백수룡은 할 말이 많은 얼굴이었지만, 차마 부상을 입은 외조부에게 뭐라고 하지는 못하고 주는 대로 받아먹었다.
“허허. 그래. 잘 먹는구나.”
매극렴은 아예 거처를 백룡장으로 잠시 옮겼다. 평소 같았으면 손자에게 신세를 지기 싫어 거절했겠지만, 백무흔이 환자 둘을 동시에 보기에도 그편이 편하다며 억지로 데려왔다.
-장인어른이 수룡이가 딴짓 못 하게 감시 좀 해 주십시오. 같이 밥도 먹고, 약도 챙겨 주시고요. 그래야 녀석도 멋대로 굴지 못할 것 아닙니까?
그 말에 못 이기는 척, 매극렴은 손자의 옆방에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매끼 식사와 약을 챙겨 주는 역할을 도맡았다.
“복스럽게 잘 먹으니 할애비는 먹지 않아도 배가 부르구나. 자, 이것도 먹어 보거라.”
“할아버님……. 저 진짜 더는 못 먹겠는데요…….”
“그래? 알겠다. 그럼 이것만 마저 먹자. 남궁 선생이 보내 준 푹 고아서 만든 닭요리다.”
“…….”
매극렴이 한쪽에 음식을 덮어 둔 보자기를 치우자, 큼직한 닭백숙이 먹음직스러운 자태로 누워 있었다.
백수룡은 그 요리를 보며 진지하게 생각했다.
‘내가 모르는 정파식 고문법인가?’
이미 입안에 욱여 넣은 음식만으로도 볼이 터질 것처럼 빵빵했다.
하지만 매극렴의 눈에는 터질 것 같은 손자의 볼이 도토리를 문 다람쥐처럼 복스럽고 어여뻐 보이는 모양이었다. 입가에 흐뭇한 미소가 떠나질 않는 걸 보면.
‘어휴…….’
저 모습을 보고 어떻게 먹기 싫다는 말을 하란 말인가. 백수룡은 결국 남궁수가 보냈다는 닭요리를 싹싹 비웠다. 그나마 이건 맛이라도 있어서 다행이었다.
식사는 끝났지만 백수룡의 고난은 끝나지 않았다.
밥상이 치워지자마자 탕약과 온갖 보약이 들어와 순식간에 약재 냄새가 방 안에 진동했다.
“자, 이제 탕약을 먹자꾸나.”
“제발 살려 주십시오…….”
“걱정할 것 없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너를 건강하게 만들 것이니!”
“아니, 그게 아니라…….”
‘이러다 과식으로 죽겠다고요!’
백룡장에는 여러 곳에서 보내온 보약과 몸에 좋다는 약재, 영약들이 쌓이고 있었다.
그중 대부분은 자현의 손에서 걸러졌지만, 그러고도 남은 양이 상당했다.
그리고 자현은 생사신의의 제자답게, 그 많은 약재들을 배합해 가장 효능이 뛰어난 탕약과 단약을 만들어 끼니마다 챙겨 먹으라고 처방했다.
“한입에 쭉 들이켜거라. 마지막 한 방울까지 남기지 말고. 옳지!”
“크으…….”
백수룡은 쓰디쓴 탕약을 마시며 인상을 찌푸렸다. 기다렸다는 듯 매극렴이 손자의 입안에 당과를 넣어 주곤 흐뭇하게 웃었다.
* * *
매일 하루 다섯 끼의 식사.
평범한 사람이라면 버티지 못하겠지만, 무인의 신진대사로 소화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오히려 점점 몸이 건강해지는 것이 체감될 정도였다. 자현이 처방한 약에는 소화제 효능까지 있는 듯했다.
‘확실히 몸 상태가 좋아지고 있어.’
인정할 것은 인정해야 했다.
백수룡은 평소 스스로의 몸 상태를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비록 최상의 상태는 아니더라도, 이 정도면 상당히 ‘양호’하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기준의 문제였다.
전생에서는 몸을 혹사시키는 것이 일상이었다. 늘 아득바득 노력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환경이었기에 ‘싸울 수 있을 정도만’ 되는 몸 상태에도 감지덕지였던 것이다.
또한 지금의 몸은 어려서부터 허약했다.
녹림십팔식으로 몸을 단련하고, 역천신공으로 천형(天刑)을 어느 정도 극복할 수 있게 된 이후에는 몸 상태가 전보다 좋아졌다.
하지만 ‘이전보다’ 좋아졌을 뿐이다.
백수룡의 몸 상태는 한 번도 최상이었던 적이 없었다.
그 상태로 강한 적들과 연달아 싸우고 제대로 휴식도 취하지 않은 채 무리를 했으니, 누적된 피로가 점점 쌓일 수밖에.
‘그런데 몸 상태가 나빠진 걸 체질과 역천신공 탓으로만 돌렸으니…….’
백수룡은 비로소 자신의 몸 상태를 객관적으로 알게 되었다. 의원의 처방대로 잘 쉬고 잘 먹으니, 나날이 몸 상태가 좋아지는 것이 느껴졌다.
심지어 처방을 내린 의원이 생사신의의 제자였으니, 그 자체로 기연이나 다름이 없었다.
물론 그와 별개로, 꼼짝도 않고 쉬기만 하니 좀이 쑤시는 것은 어쩔 수 없었지만.
“저, 관주님. 이 정도면 자택 근무 정도는 가능할 것 같은데……. 할아버님 좀 설득해 주시면 안 될까요?”
그래서 노군상이 병문안을 왔을 때 슬쩍 이야기를 꺼내 봤지만, 기다렸다는 듯 불호령이 떨어졌다.
“어림없는 소릴! 완전히 나을 때까지는 청룡학관에 발 디딜 생각도 하지 말게! 이건 관주로서의 명령일세!”
좀처럼 화내는 법이 없는 노군상에게 반 시진이나 야단을 맞았고, 그 소리를 듣고 온 매극렴과 백무흔에게 또 각각 한 시진씩 잔소리를 들었다.
‘마지막 희망은 남궁수뿐인가?’
남궁세가 비전의 영양식을 가지고 병문안을 온 남궁수에게, 백수룡은 전음까지 써 가며 부탁했다.
[넌 내 기분 알지? 지필묵이랑 내 자리에 있는 서류 좀 몰래 갖다 줘. 천무제가 석 달도 안 남았는데, 이러다 준비에 차질이라도 생기면…….]“자기 몸도 돌보지 않으면서, 누굴 가르칠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나?”
남궁수는 더 이상 듣지도 않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멀쩡한 모습을 확인했으니, 굳이 오래 있어야 할 이유가 없었다.
더구나 백수룡이 빠지면서 남궁수가 할 일은 더욱 많아진 상황이었다. 그가 서늘한 금안으로 백수룡을 노려보며 말했다.
“학사 일정이 중단된 때여서 다행인 줄 알도록. 중요한 시기에 이런 일이 발생했다면, 너로 인해 일정 전체에 큰 차질이 빚어질 뻔했다. 그런데도 전혀 반성하는 기미가 없군.”
“내가 일부러 다쳤냐? 무슨 말을 그렇게…….”
“헛소리 말고 근신하며 정양에 힘쓰도록. 네 일은 한동안 다른 강사들이 나눠서 할 거다.”
다른 강사들이 자신의 일을 나눠서 한다는 말에, 백수룡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다른 선생들을 못 믿는 건 아닌데, 그래도 내가 직접 하는 편이…….”
“내가 최종적으로 검토하지.”
“……쩝.”
반박을 일축한 남궁수는 가져온 행낭에서 조심스럽게 족자를 꺼냈다.
그것은 백수룡에게 무척 익숙한 그림, 신월빙백무였다.
“그건 왜 가져왔어?”
풍월화공이 술법을 걸어 둔 덕분에, 신월빙백무는 백수룡의 사무실이 부서지는 중에도 무사할 수 있었다.
이후에는 자연스럽게 남궁수의 사무실에 걸어 두고 있었는데, 사무실에 걸려 있던 그림을 남궁수가 챙겨온 것이다.
“사무실에 어울리지 않는 그림 탓에 미관을 해치더군.”
“뭔 소리야? 너도 이 그림 꽤 마음에 들어 했으면서.”
대답 대신 방안을 스윽 둘러본 남궁수는 적당한 벽에 신월빙백무를 걸었다. 그림 하나가 걸린 것만으로도 방 안의 분위기가 크게 변했다.
“……가능하면 네 사무실이 수리된 후에 복귀하도록.”
그러곤 더는 할 말이 없다는 듯, 남궁수는 몸을 돌려 나가 버렸다.
사흘은 충분히 먹을 양의 음식을 방 한쪽에 내려놓고서.
“계속 아프라는 거야 뭐야?”
백수룡은 그 뒷모습을 보며 황당하다는 표정을 짓더니, 고개를 돌려 벽에 걸린 신월빙백무를 바라봤다.
은사부가 자신을 보며 미소를 짓는 듯했다.
그 미소가 무척이나 짓궂게 느껴지는 것은 착각일까?
백수룡은 멋쩍은 듯 뺨을 긁적이며 변명하듯 중얼거렸다.
“예. 나도 압니다.”
남궁수가 자신을 걱정해서 저런 말을 했다는 것을.
아버지, 외조부, 강사 동기들, 제자들은 물론이고 많은 이들이 자신의 건강을 진심으로 걱정하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하지만 좀처럼 익숙하지가 않아서 말이오.”
다들 호들갑을 떨며 챙겨 주는 것이 괜히 민망하고 어색해서, 어린애처럼 투정을 부리고 어깃장을 몇 번이나 놓았다.
사부들이 이 모습을 봤으면 뭐라고 잔소리를 했을지 뻔히 예상됐다.
‘허세 좀 그만 부리고 얌전히 받아먹으라 했겠지.’
충분히 쉬고, 몸을 회복시켜야 한다는 것을 백수룡은 누구보다 뼈저리게 느끼고 있었다.
그것이 자신을 걱정해 주는 사람들에게 보답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는 것도.
‘사부들. 이번 생에는 내가 인복을 타고났나 보오.’
백수룡은 피식 웃었다.
그들을 위해서라도, 몸을 회복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이…….
“선생님! 식사하세요!”
드르륵!
문을 열고 한 상 가득 들어오는 음식들을 바라보며, 백수룡은 저도 모르게 한숨부터 쉬었다.
“……좀 과한 것도 사실이란 말이지.”
* * *
약속한 칠 일이 지나자, 다시 백수룡의 몸을 꼼꼼히 진찰한 자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쯤 하면 그럭저럭 대법을 받아들일 준비가 된 듯합니다.”
“……제가 그 말을 얼마나 기다렸는지 모를 겁니다.”
그동안 자현은 하루에 두 번씩 찾아와 백수룡을 진찰했다.
그녀는 백수룡의 몸에 침을 놓고, 뜸을 뜨고, 음식과 약을 처방하면서 원기를 회복시켰다.
어떻게 보면 그다지 특별할 것도 없었다.
생사신의의 제자라는 명성에 걸맞은 놀라운 침술도 보지 못했고, 신통한 약을 써서 단숨에 상태를 호전시키지도 않았다.
하지만 백수룡은 하루하루 몸 상태가 좋아지는 것을 느꼈고, 확신할 수 있었다.
자현은 신의(神醫)라는 이름이 아깝지 않은 뛰어난 의원이라는 것을.
백수룡은 기막을 펼쳐 소리가 새어 나가지 않도록 한 후 자현에게 물었다.
“제 비밀을 지켜 주시겠다고, 생사신의의 보은패에 대고 맹세해 주실 수 있습니까?”
방 안에는 두 사람뿐이었다.
자현이 있을 때는 항상 함께하던 매극렴과 백무흔도 밖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환자의 비밀을 지켜 주는 것은 의원의 당연한 의무입니다만, 원하신다면 맹세하도록 하겠습니다.”
자현은 기분 나빠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백수룡은 감사를 표하며 품 안에서 목함을 꺼냈다.
목함을 열자 반쯤 짓이겨진 혈마의 손가락, 그리고 독마가 남긴 독정이 가공할 기운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츠츠츠츳…….
두 마물(魔物)이 뿜어내는 사이한 기운에, 자현의 안색이 굳었다.
“마물이군요. 굉장히 다루기 까다로운 것이 둘이나…….”
칠 일간 단 한 번도 평정심을 잃지 않았던 자현의 눈동자에, 은은한 두려움이 비쳤다.
“제 대법에 필요한 물건입니다.”
우우우웅!
창룡신검이 펼친 술법이 마물들의 기운이 밖으로 나가는 것을 차단하고 있었다.
[계속 막는 것은 불가능하다. 길어야 반나절이 한계일 것이야.]‘그 정도면 충분할 거야.’
백수룡은 대법이 끝날 때까지, 방 안으로 누구도 들어오지 못하게 해 달라고 신신당부했다.
“이 대법은 단순히 천음절맥을 고치는 것에 그치지 않습니다. 절맥을 특정한 무공을 익히기에 가장 적합한 체질로 만드는 대법입니다. 죄송하지만 그 무공의 이름은 말씀드릴 수…….”
“궁금하지 않습니다. 저는 일개 의원일 뿐이니까요.”
자현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무림의 일에 관심을 두지 않는다는 말이었다.
“……감사합니다. 그럼 대법에 대해서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역천혈류대법(逆天血流大法).
백수룡이 역천신공으로 마물의 기운을 녹이는 동안, 경지에 이른 의원이 순서에 맞춰 정확한 깊이와 강도로 전신 혈도를 끊임없이 자극해야 했다.
바로 앞에서 역천신공의 기운을 견뎌야 하기에, 의술은 물론이고 무공까지 뛰어난 의원이 필요했다.
그 과정이 조금이라도 잘못된다면, 기껏 준비한 귀중한 재료들을 잃고, 백수룡은 심각한 내상을 입을 것이다.
“……이해했습니다.”
“그럼 바로 시작하겠습니다.”
백수룡은 상의를 탈의한 후,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꿀꺽.
독정을 한입에 삼키고, 혈마의 손가락을 손바닥 사이에 끼우고 합장하는 자세로 짓이겼다.
주르륵…….
손가락에서 흘러나온 핏물은 바닥으로 떨어지지 않고, 백수룡의 피부를 타고 전신으로 흘렀다. 그 모습이 마치 몸 위로 새로운 핏줄이 새겨지는 듯했다.
“후우우…….”
과거에는 이 대법이 단순히 체질을 바꾸는 것인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역천신공의 이해도가 높아지고, 혈마가 어떤 목적을 가지고 자결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백수룡은 이 대법 또한 하나의 안배가 아닐까 의심하게 되었다.
‘이참에 확인해 보면 되겠지.’
-다음에 또 오너라.
옥좌에 앉아 자신을 내려보며 말하던 혈마를 떠올렸다.
마치 모든 것을 알고 있는 절대자처럼 나른하고 권태로웠던 얼굴을.
‘다시 한번, 전생의 기억 속으로 들어간다.’
백수룡은 역천신공의 구결을 운기하기 시작했다. 과거의 자신이 일기장에 남겨 놓은 구결이 자연스럽게 기존의 것에 스며들었다.
그의 머리카락이 서서히 적발로 물들고, 핏빛 운무가 몸을 휘감았다.
콰콰콰……!
자현은 신중한 표정으로 백수룡의 몸에 금침을 놓기 시작했다. 침을 놓을 때마다 느껴지는 반발력이 상당해, 체력과 심력의 소모가 심했다. 그럼에도 그녀의 표정은 극히 평온했다.
‘부탁드리겠습니다.’
자현에게 눈인사를 전한 백수룡은 눈을 감았다.
그리고 천천히, 온몸에 탈력감을 느끼며, 무의식의 세계로 침잠했다.
다시 눈을 떴을 때, 그는 네 사부를 처음 만났던 뇌옥에 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