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mber One Star Instructor Master Baek RAW novel - Chapter 418
417화. 공동전인
“그놈. 단전을 다쳐서 내공을 못 쓴다며?”
혈교의 금지(禁地) 중 하나인 만큼, 옛 서고 앞에는 그곳을 지키는 무인들이 있었다. 그들은 처음에는 이십칠호를 비웃었다.
“한때는 혈룡대에 있었을 정도로 뛰어난 고수였다던데. 하루아침에 병신이 됐다더군.”
“어쩌다가?”
“그것까진 잘 모르겠고. 하여튼, 교주님께서 불쌍히 여기셨는지 옛 서고에 출입하도록 허락해 주신 모양이야.”
무인들은 옛 서고로 들어간 이십칠호를 두고 수군거렸다.
“그래 봤자 며칠이나 가겠어? 저 안에 있는 것이라곤 만들다 만 마공서랑 해괴한 이야기가 적힌 종이들뿐인데.”
“닷새면 반쯤 미쳐서 괴성을 지르며 뛰쳐나올걸.”
“닷새씩이나? 난 사흘이면 도망친다에 걸지.”
그러나 사흘, 닷새, 이레가 지나고, 한 달이 지나도 이십칠호는 늘 똑같은 시간에 옛 서고를 방문해서 같은 시간에 돌아갔다.
처음에는 그를 비웃었던 무인들도 시간이 지나자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
“……집념 하나는 인정해야겠군.”
“독종도 저런 독종이 없어.”
이십칠호 전에도 옛 서고를 방문한 고수들은 많았다.
하지만 그들 중 눈에 띌 만한 성취를 이룬 자는 단 한 명도 없었다.
그렇게 옛 서고를 찾는 이는 점점 드물어졌고, 지난 십 년은 거의 방치되다시피 했다.
옛 서고를 지키는 무인들은 나중에는 안쓰럽다는 표정으로 이십칠호를 지켜봤다.
“이 정도나 찾아봤으면, 포기할 때도 된 것 같은데.”
“저것 말곤 할 수 있는 게 없으니 저러겠지.”
“어쩌면 이미 미쳤을지도 몰라. 눈빛이 어찌나 섬뜩하던지.”
“저자라면 결국에 뭐라도 얻어 갈지도…….”
지금까지 옛 서고를 방문했던 자들은 모두 뛰어난 고수였다. 애초에 교주에게 인정받을 만한 고수가 아니라면 이곳에 들어올 자격을 얻기가 거의 불가능했다.
그에 비하면, 이십칠호는 옛 서고에 출입했던 자들 중에서 가장 약하고 초라한 무인이었다.
때문에 이십칠호는 누구보다도 간절했다.
그는 지하 뇌옥에 다녀오는 시간을 제외한 모든 시간을 옛 서고에서 보냈다.
‘내가 봐도 지독하군.’
백수룡은 전생의 자신을 지켜보며, 마음속으로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지금도 청룡학관에서 일 중독자 소리를 듣기는 하지만, 저 때는 그야말로 하루하루 수명을 갈아 넣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짜악!
피곤해서 졸음이 쏟아질 때마다, 이십칠호는 스스로 뺨을 때려가며 정신을 차렸다. 붉게 충혈된 눈으로 옛 서고에 있는 모든 서적을 독파했다.
‘……과로사 안 한 게 기적이군.’
그 모습을 제삼자의 시점으로 지켜보면서, 백수룡은 왜 주변 사람들이 자신이 일을 못 하도록 막았는지 알 것도 같았다.
‘하지만 덕분에…… 생각지도 못한 수확을 얻었지.’
백수룡은 어차피 곧 얻게 될 역천신공에는 관심이 없었다.
오히려 그는 잿밥에 관심이 더 많았다.
망가진 단전을 고칠 방법을 찾기 위해 독파했던, 옛 서고의 수많은 서적들.
‘음. 이건 무극검에 어느 정도 적용해 볼 수 있겠어.’
‘원강이한테 도움이 되겠는걸. 잘 활용하면 수라혈천도의 살기를 조절할 수 있겠어.’
‘하! 빙공을 이런 식으로도 쓸 수 있다고? 연구해 볼 가치가…….’
혈교의 절세고수들이 말년에 창안한 무공서들.
비록 대부분이 실패작이라는 평가를 받아 옛 서고에 처박혔지만, 분명 일정 부분에는 그들의 심득이 남겨져 있었다.
‘당시에는 그 가치를 제대로 깨닫지 못했지만…….’
과거에는 빠르게 읽고 넘겼던 내용들을, 높아진 경지에서 다시 읽고 곱씹을 수 있다면?
비록 자신의 의지대로 몸을 움직일 수는 없었지만, 끊임없이 생각하고 고민할 시간은 많았다. 스스로의 무공을 천천히 돌아보고 점검할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였다.
그래서 이제는 확신할 수 있었다.
‘혈마는 일부러 날 이곳으로 보냈어.’
-운이 좋다면, 그곳에서 네가 원하는 것을 찾을 수도 있겠지.
백수룡은 그리 말하던 혈마의 웃음을 떠올렸다.
이 당시에는 절대자의 변덕으로 얻은 천재일우의 기회라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혈마는 의도적으로 자신에게 역천신공을 익힐 기회를 주었다.
즉흥적인 판단이었는지, 아니면 먼 미래까지 내다본 거대한 계획의 일부였는지는 확실치 않지만…….
‘순순히 이용당할 생각은 없어. 혈마여. 내게 기연을 준 걸 후회하게 해 주마.’
이십칠호가 서고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백수룡은 자신의 안에서 무공에 대한 이해와 깊이가 더해지고 단단해짐을 느꼈다.
그렇게 옛 서고에 드나든 지 석 달째 되던 날.
이십칠호는 서책 중 하나를 읽다가 이상함을 느꼈다.
“……이 부분만 필체가 달라.”
옛 서고에 있는 서책 대부분을 읽었기에 눈치챌 수 있었던 단서.
지금 읽고 있는 서책의 중간중간, 다른 필체가 눈에 띄었다.
여기까지는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었다.
무공서에 주석을 다는 일은 꽤나 흔했으니까.
하지만 그 필체를 다른 서적에서도 본 적이 있다면?
“분명 다른 서적에도…….”
이십칠호는 석 달간 정리해 둔 서고에서 서책들을 일일이 꺼내 확인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찾아낸 것이 총 네 권이었다.
같은 필체로 적힌 글자의 순서를 바꿔 가며 조합해 보자, 이내 하나의 단어가 완성되었다.
‘드디어 찾았군.’
“역천(逆天)……!”
이십칠호는 급히 자신의 입을 틀어막았다. 혹시나 누가 듣기라도 하면 큰일이니까.
잠을 거의 못 자 충혈된 눈에서 눈알이 튀어나올 듯했다.
혈교의 교주들만이 익힐 수 있는 절세신공이 어째서 옛 서고에 남겨져 있단 말인가?
“하, 하하…….”
이십칠호는 웃는 것도, 우는 것도 아닌 괴상한 표정이 되었다.
그가 찾으려 한 것은 망가진 단전을 고치거나 대체할 방법이었지, 천하제일의 신공이 아니었다.
막말로 절세신공은 최근에 네 가지나 배우고 있었다.
“……초대가 남긴 건가?”
그러나 잠시 후, 네 권의 책을 대조해 가며 역천신공의 비급을 읽어가던 이십칠호의 동공이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흔들렸다.
-몸 안에 가득한 탁기를 모아 작은 내단을 만드니, 이로써 역천신공의 일성(一成)의 경지에 도달했다 말할 수 있다.
단전에 기를 모으는 것이 아니라, 몸 안의 탁기를 모아서 내단으로 만드는 방식.
천음절맥이었던 초대 혈마가 창안한 역천신공은, 입문부터가 다른 무공들과는 궤를 달리하는 무공이었다.
“이런 방식이라면…….”
단전이 망가진 몸과 천음절맥은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었다.
단전이 망가지고 기혈이 상하면서, 이십칠호의 몸 안에도 탁기가 잔뜩 쌓여 있었으니까.
즉, 역천신공이라면 자신도 익힐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는 의미.
이십칠호는 비급을 전부 외우자마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지금 당장이라도 역천신공을 익히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다. 하지만 초인적인 인내심을 발휘했다.
여기선 안 된다.
역천신공이라는 사실을 들키는 순간, 단순히 죽는 것 정도로 끝나지 않을 테니까.
아무도 오지 않고, 조금의 기운도 밖으로 새어 나가지 않을 만큼 폐쇄된 공간이 필요했다.
마침 그는 적당한 곳을 한 군데 알고 있었다.
“뇌옥.”
중얼거림과 동시에 곧바로 몸을 돌려 옛 서고를 나섰다.
“음? 벌써 가나?”
“웬일이야?”
옛 서고 앞을 지키는 무인들이 오늘은 왜 이렇게 빨리 가냐고 묻자, 이십칠호는 씩 웃으며 말했다.
“더 이상 여기 있을 필요가 없어졌거든.”
그 석 달은 이십칠호는 물론이고, 백수룡에게도 충분히 유익한 시간이었다.
* * *
“애송아. 뭐 좋은 일이라도 있냐? 들어오면서부터 재수 없게 히죽거리는구나.”
덩치에 안 어울리게 눈치가 빠른 맹사부였다. 그는 이십칠호를 보자마자 그렇게 물었다.
“그런 게 있소.”
“호오. 설마 여자냐?”
맹사부가 징그럽게 웃으며 새끼손가락을 까딱거리자, 그 옆방에서 혀를 차는 소리가 들려왔다.
“누가 천박한 산적 아니랄까 봐.”
광마 사부였다. 평소에는 점잖은 편인 그는 맹사부의 언행을 무척이나 거슬려 했다.
그리고 맹사부는 그런 광마 사부를 놀리는 걸 누구보다 좋아했다.
“흐흐. 부끄럽냐? 하긴, 무공에 미쳐서 평생 여자 손 한번 못 잡아 본 샌님은 여자 얘기만 나와도 얼굴이 빨개지겠지.”
“닥쳐라! 누가 손 한번 못 잡아 봤다는…….”
“호오. 언제? 누구랑?”
“네놈 따위에게 할 만한 이야기가 아니다.”
두 사부는 이때부터 틈만 나면 으르렁거렸다.
이십칠호는 그들에게 조용히 해 줄 것을 부탁했다.
“미안한데, 집중 좀 하게 조용히 해 주시오. 지금부터 아주 중요한 일을 할 예정이거든.”
“중요한 일이라니?”
“어떤?”
사부들의 시선에, 이십칠호는 득의양양하게 웃으며 말했다.
“내공을 되찾을 방법을 찾았소.”
“……!”
“……!”
맹사부와 광마사부뿐만이 아니라, 각자 방에서 조용히 쉬고 있던 검존과 빙월신녀도 철창 쪽으로 다가왔다.
“그게 가능한 일이더냐?”
“해 보면 알겠지.”
이십칠호는 피식 웃더니 그대로 바닥에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그리고 오는 길에 약당에 먼저 들러 챙겨 온 영약을 품에서 꺼냈다.
마뇌에게 보고를 올려야겠지만, 지하 뇌옥에 있는 자들에게 사용했다고 말하면 그만이었다.
“……성공한다면, 우리의 탈출 계획도 한층 쉬워질 거요.”
영약을 꿀꺽 삼킨 이십칠호는 눈을 감고 몸 안에 들어온 약력에 집중했다. 그리고 역천신공의 구결대로 기운을 인도했다.
몸 안에 쌓인 탁기가 약력(藥力)에 달라붙기 시작했다. 그렇게 시작된 운기조식. 해로운 기운이 기경팔맥을 타고 돌아다니는데 통증이 없을 리 없었다. 이십칠호의 표정이 일그러지고 목에 핏대가 불거졌다.
“애송이 너! 대체 뭘 하는 거냐!”
“당장 멈춰라!”
“주화입마의 징조이거늘…….”
“어째서……!”
사부들이 하나같이 그만두라고 말렸으나 이십칠호는 멈추지 않았다.
꽉 다문 잇새로 신음이 새어 나오고, 몸에서는 식은땀이 줄줄 흘러내렸다. 하지만 분명 기운이 제대로 움직이고 있었다.
다른 심법으로는 아무리 운기를 해도 기운이 단전에 쌓이지 못하고 흩어질 뿐이지만, 역천신공은 달랐다.
몸 안에 쌓인 탁기를 모아서 내단으로 만든다. 끔찍한 고통을 동반하지만, 한번 길을 뚫어놓으면 이후로는 내단이 스스로 몸 안의 탁기를 흡수하며 덩치를 불려 나간다.
그야말로 천하에서 가장 괴이(怪異)한 무공인 것이다.
“후우우우…….”
이십칠호는 긴 숨을 토해내며 눈을 떴다.
몸 안에 자리 잡은 작은 내단의 존재감을 느끼면서였다.
번-쩍!
그의 눈에서 붉은 광망이 터져 나왔다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역천신공 일성의 경지에 도달했다는 증거였다.
절세고수 네 사람이 그 모습을 얼빠진 표정으로 바라봤다.
“……광마야. 내가 지금 뭘 본 거냐?”
“내게 묻지 마라. 모르겠으니까.”
“그 무공, 혈마의 무공이 아닌가?”
“말도 안 돼…….”
자리에서 일어난 이십칠호는 사부들을 둘러봤다.
얼굴에 의문이 가득한 그들에게, 그는 지난 옛 서고에서 있었던 일을 설명했다.
“그곳에 역천신공이 있었소.”
““……!!””
네 사람과는 이미 한배를 탄 몸이었다. 이들에게는 숨길 이유가 없었다.
멍하니 이야기를 듣고 있던 맹사부가 눈을 빛내며 말했다.
“그러니까…… 네가 내공을 쓸 수 있게 되었다, 이거지?”
역천신공을 익힌 것도 놀랍지만, 더 중요한 것은 내공을 쓸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그 말은 즉, 다른 무공들도 제대로 펼칠 수 있게 되었다는 뜻이었다. 그 말을 이해한 다른 사부들도 눈을 빛냈다.
앞으로 구 년.
천하에서 손에 꼽히는 절세고수 스승이 이 자리에 넷이나 있고.
제자 또한 스승들에 못지않은 오성과 자질을 지니고 있었다. 아니, 어떤 면에서는 오히려 더 뛰어났다.
광마 헌원후가 묘한 열망이 느껴지는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네가 역천신공뿐만 아니라, 우리들의 무공까지 섭렵할 수 있다면…….”
훗날 혈교를 탈출하는 일이 훨씬 더 쉬워질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뿐만 아니라, 혈교는 역사상 최악의 적을 맞이하게 되리라.
“좋다! 더 이상 반쪽짜리가 아닌, 진짜 녹림십팔식을 전수해 주마!”
“……수라혈천도 또한.”
“무극검은 어려운 무공이지만, 너라면 충분히 배울 수 있을 것이다.”
“빙백신공은 못 익힐 거야. 하지만 일부는 응용할 수 있겠지.”
그들 모두에겐 이곳에서 반드시 탈출해야 할 이유가 있었다. 또한 혈교에 대한 사무친 원한이 있었다.
사부들은 한마음 한뜻으로 말했다.
““너를 천하제일고수로 만들어 주마.””
이십칠호가 네 사부의 진정한 공동전인이 된 순간이었다. 그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최선을 다해서 배우겠소. 꼭 이 빌어먹을 지옥에서 함께 탈출합시다.”
그로부터 며칠 후.
네 사부의 무공을 전수받을 아이들이 선별되었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