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mber One Star Instructor Master Baek RAW novel - Chapter 421
420화. 후회하느냐?
끼익…….
낡은 경첩이 곧 떨어질 것처럼 삐걱대는 소리를 냈다.
십 년 동안 단 한 번도 교체하지 않아, 녹이 잔뜩 슬어 버린 경첩.
이곳에서 지내며 녹슨 경첩 따위에 신경을 써 본 적은 없었는데.
“……떨어지기 전에 교체해야겠군.”
오늘따라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시선이 머문 이유는 무엇일까.
이십칠호는 녹슨 경첩을 잠시 바라본 후, 천천히 문을 밀고 안으로 들어갔다.
끼이이익…….
녹슨 경첩이 내는 힘겨운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고, 이내 숙소 내부의 삭막한 전경이 눈에 들어왔다.
몇 개의 전각과 연무장.
낡고 지저분한 수련용 도구들.
그리고 감정을 잃어버린 눈동자들이 이십칠호를 맞이했다.
“오셨습니까.”
대련 중이던 제자들은 간단한 목례만 취한 후 다시 싸우기 시작했다.
내공을 사용하지 않는 대련인데도 실전처럼 살기가 가득했다. 칼날이 피부를 스쳐 핏방울이 튀고, 돌처럼 묵직한 주먹과 발로 상대의 급소를 노렸다.
제자들의 얼굴에서 앳된 모습은 더 이상 찾아볼 수 없었다. 오랜 세월 풍파를 겪은 바위 같은 청년들만이 있을 뿐. 그들의 몸에 새겨진 흉터들은 태어날 때부터 있었던 것처럼 자연스러웠다.
“훈련 중지.”
교관의 나직한 말 한마디에 흉흉하던 싸움이 즉시 멈췄다. 십 년간 반복해 온 교육의 효과였다.
돌아서서 이십칠호를 바라보는 눈동자에는 의문조차 보이지 않는다.
그저 다음 명령을 기다릴 뿐.
“오늘은 이야기나 좀 하지.”
“……?”
이십칠호는 숙소에 있는 유일한 정자를 향해 걸어갔다. 제자들은 군말없이 스승의 뒤를 따라갔다.
“앉아라.”
이십칠호는 자리에 일렬로 앉은 제자들을 한 명씩 바라봤다.
십 년은 긴 시간이었다.
강제로 맺어진 사제지간에 감정을 덧붙이지 않으려 노력했지만, 도저히 그럴 수가 없었을 만큼.
분노. 증오. 원망. 질투. 자괴감.
기대. 걱정. 기쁨. 희열. 성취감.
한 번도 겉으로 드러내지는 않았지만, 이십칠호는 제자들을 가르치며 여러 가지 감정들을 느꼈다.
철혈의 교관이라 불렸지만, 그 역시 인간이었다. 살아남기 위해 불필요한 감정들을 억눌러 왔을 뿐.
그리고 뇌옥에서 사부들과 함께 보낸 시간 또한, 제자들에 대한 감정에도 점점 영향을 끼쳤다.
-떠나기 전에 할 말이 있다면 전하란 말이다! 찝찝하게 못 했다가 나중에 후회하지 말고!
“…….”
무슨 말을 해야 할까.
이십칠호는 쉽게 말문을 열지 못했다.
며칠 후, 그는 사부들과 함께 혈교를 탈출할 생각이었다.
운이 좋다면 여기 있는 제자들과 마주치지 않겠지만, 운이 나쁘다면 싸우게 될 것이다.
……각오는 하고 있었다.
“십 년. 너희가 이곳에 온 지 벌써 그렇게 되었군.”
““예.””
네 명이 한 명처럼 대답했다. 목소리에 고저가 없고, 표정은 무기물 같았다. 어딘가 모르게 스승을 닮아 있었다.
“너희는 운이 없었다. 하필이면 많은 교관들 중에 나를 만났으니.”
“…….”
뜬금없는 이야기였다.
그러나 제자들은 의문을 표하거나 질문하지 않았다. 교관이 허락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사실 본교로 흘러들어온 아이들이 대부분 그렇다. 운이 조금 좋으면 장로의 눈에 띄어 무공을 전수받고, 운이 나쁘면 하급 무사로 전전하다가 객사하지. 하지만 내 생각에 최악은…….”
잠시 말을 멈춘 이십칠호는 숙소의 대문을 바라봤다.
들어올 때 제대로 닫지 않은 것인지, 바람이 불어올 때마다 힘겹게 삐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십칠호는 다시 고개를 돌려 제자들을 바라봤다.
“너희들이다. 본교에서 가장 운이 나쁜 무인들을 꼽으라면, 나는 주저하지 않고 너희라 말할 거다.”
“…….”
“…….”
“…….”
다른 셋은 침묵하는데, 일호만이 유일하게 눈썹을 찌푸리며 질문을 던졌다.
“교관님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갑자기 왜 그런 말을 하십니까?”
그 말에 이십칠호는 큭큭 웃더니, 긴 숨을 후욱- 하고 불었다. 독한 주향이 퍼져 나왔다.
“오는 길에 술을 마셨거든.”
“…….”
지하 뇌옥을 나와 숙소로 오기 전.
이십칠호는 독주를 구해 한 병을 완전히 비웠다.
그러나 조금도 취하지 않았다.
차라리 취했다면 더 솔직하게 말할 수 있었을 텐데.
품에서 술병을 꺼낸 이십칠호는 제자들 앞에서 홀짝거리기 시작했다.
“이상한가? 하긴, 너희들 앞에서 술을 마신 적은 없었지.”
“…….”
이십칠호는 피식피식 웃었다.
사부들 앞에서는 종종 웃곤 했는데, 제자들 앞에서는 괴상하게 일그러진 표정이 되었다.
“……저희를 시험하시는 겁니까?”
일호가 경계하는 눈빛으로 물었다.
그는 이십칠호가 가르친 제자들 중에서도 가장 뛰어났다.
검을 쥐기 위해 태어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대단한 재능.
정파에서 태어났으면 서른이 되기도 전에 검왕(劍王)이라 칭송받았을 것이다.
“시험이냐고?”
그만큼 자존심도 가장 세고, 가장 많이 대들었던 제자였다.
선했던 눈망울은 날카로운 눈매로 변했고, 일자로 굳게 다문 입술과 얼굴에 남은 수많은 자상이 녀석이 지나온 시간을 대변했다.
위지천과 헌원강이 성격을 반씩 섞으면 저런 모습일까.
‘위지천, 헌원강이 누구지?’
이십칠호는 문득 든 의문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나 곧 잡생각을 털어 버렸다.
별로 중요한 것은 아닐 테니까.
“그냥 단순한 질문이다. 지금부터 내가 묻는 말에, 솔직하게 대답하면 된다.”
“……예.”
일호가 눈을 내리깔며 대답했다. 다른 제자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빠르게 눈빛을 주고받았다.
지난 십 년 동안, 그들은 수시로 충성심을 시험받았다.
이십칠호는 단순한 질문이라고 했지만, 제자들은 그 말을 믿지 않았다.
“나를 원망하나?”
““…….””
순간 무거운 침묵이 내려앉았다.
그것은 지금까지 제자들이 받아 온 충성심의 증명과는 전혀 다른 종류의 질문이었다.
“대답해라. 나를 원망하냐고 물었다.”
“……아닙니다.”
일호가 간신히 대답했다. 다른 제자들도 한 박자 늦게 아니라고 대답했다.
그 어설픈 반응들에 이십칠호는 큭큭 웃었다.
“솔직하게 말해도 좋다. 교주님의 은혜에 대고 맹세코, 오늘 일로 너희에게 불이익은 없을 거다.”
제자들은 여전히 무표정하게 스승을 바라봤다.
원망하냐고?
지난 십 년 동안 스승이 그들에게 한 짓은 그런 단순한 말로 표현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저마다 수십, 수백 번은 죽을 뻔했다.
어린 시절의 끔찍한 기억들은 절대로 지워지지 않을 것이다.
“……원망하지 않습니다.”
일호는 이를 꽉 악물고, 스승의 눈을 똑바로 마주 봤다.
감정이 말살된 줄 알았던 청년의 눈에서 순간 분노가 일렁였지만, 이내 잠잠해졌다. 놀라울 정도로 빠르게 감정을 진정시켰다.
이십칠호는 그 눈을 빤히 들여다보며 물었다.
“정말인가?”
“……교관님 덕분에 저희는 교주님을 보필할 수 있을 만큼 강해졌습니다. 그분께서 폐관을 깨고 나오시면, 저희는 그분의 앞에 서서 본교의 영광을 위해 싸울 것입니다. 그러니 원망 같은 하찮은 감정은 없습니다.”
그 대답에 다른 제자들의 표정도 점차 안정되어 갔다.
십 년간 행해진 마뇌의 세뇌는 지독했다.
어떤 말로도 혈마에 대한 충성심은 절대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 그건 눈빛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설득은 불가능하다.’
이십칠호는 그 사실을 다시 한번 뼈저리게 깨달았다.
만약 조금이라도 흔들리는 모습을 보였다면……. 하고 싶은 말이 있었는데.
정말로 하고 싶었던 말은 삼키고, 이십칠호는 거짓말을 했다.
“그래? 잘됐군.”
“…….”
제자들은 대답하지 않았다.
지금껏 이십칠호에게 당한 수많은 모욕과 학대를 생각하면, 저런 뻔뻔한 반응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네놈들은 곧 교주님을 보필하게 되겠지. 어려서부터 절세신공을 익혔고, 십 년 전부터 점찍어 두셨으니까. 나같은 병신은 바라보기도 힘들 만큼 높은 위치로 올라가겠지.”
이십칠호는 큭큭 웃었다.
주향을 풍기며 지껄이는 그의 모습은, 술에 취해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는 실패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너희가 조금이라도 은혜를 안다면 교주님께 나에 대해서 잘 말씀드려라. 원망하지 않는다고 했지? 십 년 동안 너희를 키워 준 게 누구인지 잊지 말도록.”
“…….”
제자들의 눈동자에 희미한 경멸이 어렸다.
이십칠호는 그것으로 만족했다.
그는 며칠 후면 사부들과 함께 혈교를 탈출할 것이다.
‘그렇다면 차라리.’
끝까지 최악의 인간으로 남는 편이 나을 것이다.
만약 다시 만난다 해도……. 서로에게 칼날을 겨누는 데 주저함이 없는 편이 나을 테니까.
쨍그랑!
“이젠 대답도 제대로 안 하는군. 꼴도 보기 싫으니 전부 처소로 들어가라!”
“…….”
술병을 바닥에 던진 이십칠호가 버럭 소리를 지르자, 고개를 숙인 제자들이 각자 처소로 들어갔다.
이십칠호는 혼자 남아서 멍하니 하늘을 바라봤다.
끼익…….
끼이익…….
불어오는 바람 탓에 대문의 녹슨 경첩이 힘겹게 삐걱이며 신음했다.
“이제 와서 바꾸기엔……. 늦어도 너무 늦었지.”
이십칠호는 두 손으로 마른세수를 했다.
그는 조금도 취하지 않았다.
차라리 취했으면 좋으련만, 평생 매 순간 긴장하고 살아온 몸은 취기를 허락하지 않았다.
“빌어먹을…….”
이십칠호가 일그러진 얼굴로 욕설을 내뱉을 때였다.
“후회하느냐?”
일순간 시간이 멈추고, 세상이 온통 붉게 물들었다.
이십칠호는 놀란 표정으로 주위를 둘러봤다.
“무, 무슨…….”
모든 것이 정지했다.
방으로 들어가던 제자들의 뒷모습이 그대로 멈췄고, 허공에 떠 있는 먼지들도 움직이지 않았다.
오직 자신만이 말하고 움직일 수 있는 가운데, 방금 전의 목소리가 다시금 들려왔다.
“후회하느냐? 이 운명을?”
혈마였다.
대체 언제 나타났는지, 혈마가 눈앞에 그림같은 자태로 서 있었다.
“교, 교주님.”
이십칠호는 저도 모르게 무릎을 꿇었다.
천적을 만난 짐승처럼 부들부들 몸을 떨었다.
“네 운명이 참으로 가엽구나.”
혈마가 다가와 이십칠호에게 손을 뻗었다.
무언가에 홀린 듯, 이십칠호는 그 손을 바라봤다.
“바꿀 수 있다면? 다시 선택할 수 있다면?”
“무슨 말씀이신지…….”
“너는 이미 그 방법을 알고 있다. 거부하지 마라. 역천의 힘을. 그것이 너를 운명으로부터 자유롭게 하리라.”
“아…….”
이십칠호의 입술이 멍하니 벌어졌다.
사람을 홀리는 달콤한 목소리와 새빨간 보석안.
그 유혹을 견디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다.
어찌하여 지존께 불경한 마음을 품었던가.
이토록 자비로운 손길을 뻗어 주셨는데, 왜 도망칠 생각 따위를 했던가.
이십칠호는 천천히 손을 뻗었다.
혈마의 손가락과 그의 손가락이 거의 맞닿기 직전.
“……교주시여. 한 말씀만 드려도 되겠습니까?”
“허락하노라.”
혈마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 순간, 이십칠호가 그의 손을 강하게 쳐냈다.
짜악!
“지랄하지 마십시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이십칠호의 눈동자가 혈마와 똑같이 새빨갛게 물들어 있었다.
그는 더 이상 이십칠호가 아니었다.
백수룡이 형형한 눈빛으로 혈마를 쏘아보며 말했다.
“내 전생에 이딴 기억은 없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