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mber One Star Instructor Master Baek RAW novel - Chapter 427
426화. 기억나요
백수룡은 아버지의 졸업장을 받는 것이 그리 어렵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사 학년 교과 과정을 모두 이수했다면, 별다른 결격 사유가 없는 한 졸업생으로 인정받을 수 있을 테니까.
‘생활기록부에 졸업으로 적혀 있는지, 그것만 확실히 확인하면 돼.’
그러나 백수룡의 예상과 달리, 부자는 교무처에 도착하자마자 난관에 봉착했다.
삼십 년 전에 졸업한 학생의 생기부를 확인해 보고 싶다는 말에, 교무처 직원이 난색을 표했다.
“너무 오래된 기록이라 여기선 확인할 수가 없습니다. 교무처에는 오 년 전 기록까지만 보관하도록 되어 있어서…….”
“그럼 생기부가 없다는 말입니까? 그게 말이 돼요?”
“수, 수룡아. 그냥 가자. 괜히 교무처 직원분들 성가시게 하지 말고.”
백무흔이 민망함에 아들의 소매를 잡아당겼으나, 그의 아들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아버지는 가만히 계세요. 선생님. 정말 기록이 없단 말씀입니까? 이거 청룡학관의 미래에도 굉장히 중요한 문제거든요?”
“……내 졸업장과 학관의 미래가 무슨 상관이 있지?”
“아버지는 가만히 계시라니까요.”
“…….”
딱히 인상을 쓰거나 기세를 끌어올린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무림십존으로 명성을 떨치는 청룡신협의 은근한 시선은, 그것만으로도 상당한 압박이 되었다.
교무처 직원은 식은땀을 삐질 흘리며 대답했다.
“그게……. 아마 문서고에는 보관돼 있을지도 모릅니다. 옛날 기록물은 전부 그곳에 보관하니까요.”
문서고는 기록물을 보관하는 창고였다.
청룡학관의 역사 전체가 그곳에 기록돼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방대한 양의 기록물이 쌓여 있는 창고.
‘그럼 그렇지.’
딱 보니 문서고에서 옛날 자료를 찾아오기가 성가셔서 대충 돌려보내려고 한 모양.
백수룡은 싱긋 웃으며 교무처 직원을 압박했다.
“다행이네요. 여기서 얌전히 기다릴 테니, 찾아서 가져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아버지. 이분께 호패 좀 건네드리세요.”
문서고에 아무리 많은 자료가 보관돼 있다 한들, 평소에 잘 정리해 두기만 했다면 찾는 것이 어렵지는 않을 터.
조금만 수고하면 될 일을 귀찮다고 그냥 돌려보내려 한 교무처 직원이 괘씸했지만, 백수룡은 그 이상 따지고 들지는 않았다.
그런데 단순히 그런 문제가 아니었다.
“사실은…… 문서고에 문제가 좀 있습니다.”
“문제라니요?”
안절부절못하던 교무처 직원은 결국 솔직하게 말했다.
“얼마 전 살막에게 공격당했을 때, 외부의 충격으로 문서고에 있는 선반들이 넘어져서 서류가 전부 뒤섞였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문서고가 난장판입니다.”
“아니 무슨…….”
교무처 직원이 백수룡을 돌려보내려 한 이유는 단순히 귀찮아서가 아니라, 문서고에서 옛날 기록을 찾는 것이 거의 불가능한 상태이기 때문이었다.
“남궁수 그 자식이 또!”
그날 밤 청룡학관에서 살수들과 싸운 사람이 남궁수 혼자는 아니었지만, 일단 남궁수로 몰아가는 백수룡이었다.
“저희도 지금 밀린 업무가 많아서 문서고 정리는 다음 달로 미뤄 둔 상태입니다. 현재로서는 교무처 직원 전부가 달라붙어도 몇 날 며칠을 밤을 새워야 할지……. 급한 일이 아니시면 나중에 찾아 드려도 괜찮을지요?”
사정을 좀 봐달라고 부탁하는 교무처 직원의 안쓰러운 표정에, 백수룡은 결국 한숨을 쉴 수밖에 없었다.
“그럼 한 가지만 여쭤보고 싶은데, 생기부에서 졸업 사실이 확인되면 졸업장을 재발급받는 데 문제는 없습니까?”
“예! 생기부에서 졸업 사실만 확인되면, 졸업장을 다시 발급해 드리는 데 아무 문제도 없습니다!”
“흐음…….”
백수룡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교무처에서는 한 달 후에 백무흔의 생기부를 찾아 주겠다고 했지만, 그때는 너무 늦는다.
만약 ‘어떠한 결격 사유’ 때문에 아버지가 졸업이 아니라 퇴학이나 휴학으로 처리돼 있다면, 그때는 천무제고 뭐고 못 나가게 되니까.
“다른 사람이면 모르겠는데, 전적이 화려했던 망나니라 영 불안하단 말이지…….”
“아들아. 그런 혼잣말은 아버지가 옆에 없을 때 하지 않으련?”
생각을 정리한 백수룡이 교무처 직원에게 말했다.
“어쩔 수 없네요. 그럼 저희가 직접 찾아보겠습니다. 그 정도는 괜찮겠죠?”
누구 부탁인데 거절할까.
교무처 직원은 안도한 얼굴로 문서고의 열쇠를 건네주었다.
“예. 여기 있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백수룡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창고가 어질러져 있어 봤자 얼마나 어질러져 있겠나 하고.
하지만, 문서고에 도착해 잠겨 있던 문을 연 순간.
“……남궁수. 너 내가 가만 안 둔다.”
“……이걸 꼭 찾아야겠냐?”
부자는 똑같은 표정으로 난장판이 된 창고 내부를 바라봤다.
* * *
“교무처 놈들. 이런 일을 미뤄 놔?”
“너무 그러지 마라. 그쪽도 일이 밀려서 바빠 보이던데.”
“아니, 청룡학관에서 지들만 바빠요? 밤을 새워서라도 정리를 해 놨어야 할 것 아냐. 나 같았으면 이 꼴 두고는 절대 퇴근 못 해.”
“내 아들이 어쩌다가 이런 일 중독자가 되었는지…….”
두 사람은 투덜거리면서도 손은 바쁘게 움직였다.
바닥에 어질러진 기록물을 일일이 확인한 후, 종류별로 분류하고, 차곡차곡 정리하는 작업은 무척 지루했다.
설령 천하제일의 고수라고 해도 남들보다 속도가 빠를 뿐, 일일이 직접 확인해 봐야 하는 건 똑같았다.
물론 무공이 뛰어나면 어느 정도의 편법을 쓸 수는 있었다.
촤라라라라라락!
백무흔은 허공에 떠다니는 수많은 종이들을 보곤, 황당하다는 얼굴로 자신의 아들을 바라봤다.
“너 치사하게 혼자만 허공섭물을 써?”
“지금까지 안 익히고 뭐 하셨어요?”
“……내가 억울해서라도 익히고 말 테다.”
“요령 가르쳐 드려요? 회풍검법의 구결을 응용하면 금방 가능할 것 같은데.”
그래도 부자가 두런두런 대화를 나누면서 하는 일이라, 창고를 정리하는 시간이 심심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너 여기서 이러고 있어도 되는 게냐?”
백무흔이 불쑥 물었다.
안 그래도 청룡학관에서 가장 바쁘기로 유명한 아들이기에, 괜한 곳에 시간을 낭비하게 하는 것 같아 신경이 쓰였다.
“오늘은 수업도 없어요. 그리고 여길 오자고 한 건 전데, 아버지한테 맡기고 갈 수는 없잖아요.”
백수룡은 사방에 떠 있는 기록물을 빠르게 눈으로 훑으며 어깨를 으쓱했다.
“바쁘면 먼저 가 보거라. 나도 슬슬 익숙해졌으니, 혼자서도 해가 지기 전에 찾을 수 있을 것 같구나.”
촤라라라락…….
아들보다 숫자는 훨씬 적지만, 백무흔의 앞에도 서류들이 둥실둥실 떠올라 산들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그 모습에 이번에는 백수룡이 입을 떡 벌렸다.
“그걸 왜 벌써 익혀요?”
“음? 네가 아까 요령을 가르쳐 줬잖으냐.”
“아니, 그래도 그렇지……. 어이가 없네, 진짜.”
백수룡은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아버지를 바라봤다.
그의 재능이 뛰어나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제는 볼 때마다 사람을 놀라게 했다.
‘그전에는 대체 마음고생이 얼마나 심했던 거야?’
금세 허공섭물에 익숙해진 백무흔이 허공에 대고 부드럽게 손을 휘젓자, 청룡학관의 역사가 기록된 서류들이 촤라라락 넘어갔다.
“그래서, 마음에 드는 여인은 없고?”
“……이렇게 갑자기?”
“네가 용모가 부족한 것도 아니고, 직업도 번듯하고, 주변에 여인이 없는 것도 아니니 하는 말이다. 당장 근처에만 해도…….”
백무흔은 은근슬쩍 아들의 속마음을 떠보려 했으나, 그의 아들은 철벽으로 일관했다.
“할아버지랑 똑같은 말을 하시네요. 당장은 관심 없어요.”
그 반응에 백무흔이 작게 혀를 찼다.
“너, 얼굴 잘 물려받았다고 그렇게 방심하는 것 아니다. 연애도 해 봐야 늘지, 정작 마음에 드는 여인이 나타났을 때 숙맥처럼 굴었다가 놓치면 평생 후회하려고.”
“와, 본인 자랑과 아들한테 잔소리를 동시에 하시네?”
“이게 어른의 연륜이란 것이지.”
부자는 창고를 정리하며 시시콜콜한 대화를 나눴다.
백무흔에게 아들이 무림십존이란 것은 큰 의미가 없었다.
그저 밥은 잘 먹는지, 일은 너무 많이 하지 않는지, 직장생활은 잘하는지, 만나는 여인은 없는지. 그런 것들이 훨씬 더 중요했다.
“……네가 건강해지는 것이 평생의 소원이었는데, 정작 건강해지니 이상하게 섭섭하지 뭐냐. 이젠 늙은 애비가 필요하지도 않아 보이고…….”
“외로우시면 새장가 드시는 건 어때요? 어머니도 이제 허락해 주실 것 같은데.”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해라.”
“정색할 것까지야…….”
조용한 창고에는 대화를 나누는 두 사람의 목소리와, 종이가 촤라락 넘어가는 소리뿐이었다.
백무흔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이러고 있으니, 문득 옛날 생각이 나는구나.”
“……옛날 생각이요?”
백무흔은 오래된 서류 하나를 손으로 직접 넘기며 말했다.
스륵.
“네가 어렸을 때 말이다. 책 읽어 주는 것을 참 좋아했지. 특히 종이 넘기는 소리가 좋다며, 잠이 들 때까지 이렇게 종이 넘기는 소리를 듣다가 잠들곤 했다.”
“…….”
스륵. 스륵.
백수룡은 눈을 감고 가만히 아버지가 종이를 넘기는 소리를 들었다. 종이가 마찰하는 소리에 마음이 편안해지는 기분이었다.
“그러다 잠이 든 줄 알고 내가 손을 멈추면, 네가 졸린 눈을 뜨며 칭얼거렸지. 더 읽어 달라고 말이다. 하하. 너는 기억 못 하겠지만…….”
“기억나요.”
종이를 넘기던 손이 멈췄다.
백무흔은 놀란 표정으로 아들을 돌아보며 물었다.
“……기억이 난다고?”
“예. 조금씩.”
백수룡은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다섯 살이었나. 종이 넘기는 소리가 듣기 좋다고 아버지 따라 하다가 종이에 손가락을 베였잖아요. 그때 아버지가 얼마나 무섭게 혼을 냈는지, 울다가 딸꾹질까지 했는데.”
“너……. 정말 기억하는구나.”
백무흔은 흔들리는 눈빛으로 아들을 바라봤다.
아들이 죽다 살아난 후, 전생의 기억을 떠올렸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 전생이 어찌나 강렬했는지 아들의 성격이 바뀌고, 그 전의 기억을 대부분 잊어버렸던 것도.
그런데.
“하나둘 기억이 돌아오고 있어요. 아직 완전하지는 않지만……. 요즘엔 어린 시절 기억도 종종 나요.”
“하하! 그거 정말 잘됐구나! 잘됐어!”
백수룡은 기뻐하는 아버지를 보며 어린 시절의 기억들을 떠올렸다.
지금보다 훨씬 젊은 아버지의 얼굴.
자신의 작은 손을 잡아 주며 밤새 옆에 있어 주고, 책을 읽어 주던, 자상하고 수심 깊은 얼굴을 기억했다.
“혹시 또 기억나는 건 없느냐? 네가 일곱 살 때 이불에 오줌을 쌌던 기억이라든가…….”
“어디서 날조를 해요?!”
“하하! 그건 아직 기억이 안 나는 모양이구나!”
백무흔은 장난기 가득한 얼굴로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그리고 잠시 후, 두 사람은 문서고 구석에서 오래된 생기부 하나를 찾아냈다.
“이건……!”
“찾았어요?”
백수룡이 가까이 다가오며 묻자, 백무흔은 묘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찾기는 찾았는데. 내 것은 아니구나.”
“그럼 누구…….”
“약빙의 생활기록부다.”
“정말요?”
어머니의 생활기록부라는 말에 백수룡의 눈이 서류로 향했다.
스르륵 빠르게 읽어 내려간 그의 시선이 멈춘 곳은 이었다.
성격이 활달하고 매사에 의욕적이나, 다른 교우들과 충돌이 잦음.
다양한 동아리 활동과 학관 행사에 관심이 많으나, 수업 출석률은 저조하며 무단이탈이 빈번함.
그러나 성적은 뛰어난 학생으로, 집중적인 지도 편달이 이루어진다면 훗날 장래가 기대됨.
“세상에…….”
“하하하! 그 말괄량이가 여기에 있었구나.”
백무흔은 매약빙의 생활기록부를 한참 동안 들여다보았다.
그 시간 동안, 그의 입가에는 미소가 가실 줄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