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mber One Star Instructor Master Baek RAW novel - Chapter 428
427화. 늦었구나
부자는 먼지 쌓인 문서고에서 발견한 매약빙의 생활기록부를 함께 들여다보았다.
학창 시절의 매약빙은 어떤 학생이었을지, 웃음기 어린 백무흔의 목소리를 들으며 조금이나마 상상해 볼 수 있었다.
“하하! 담당 선생님이 누구였는지, 제대로 적어 놓으셨구나.”
“제가 보기엔 좀 억하심정이 있으셨던 거 같은데요?”
“이 정도면 굉장히 좋게 적어 주신 거다. 네 어머니가 얼마나 왈가닥이었냐면…….”
백무흔은 학창시절의 매약빙을 떠올리며 헛웃음을 지었다. 나지막한 목소리에 그리움이 묻어났다.
“조금이라도 불의를 보면 못 참아서 선배고 선생이고 들이받는 것은 예삿일이었다. 호기심이 많아서 동아리도 여러 곳에 가입하고, 그것도 부족하다면서 직접 만들기까지 했으니…….”
“어머니가 동아리도 만드셨어요?”
“지금도 그 이름이 남아 있더구나. 상승 검법 연구회라고. 약빙이 거기 초대 회장이다.”
“네?”
상검연이 어머니가 만든 동아리였다니.
백수룡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생기부를 자세히 살폈다.
부분에 ‘상승 검법 연구회 창설’이라고 적혀 있었다.
“검술이 뛰어나셨다는 얘기는 처음 듣는데.”
“누구 딸인데 검술이 약했겠냐?”
“하긴…….”
매극렴의 딸이 검술을 못한다는 게 오히려 이상한 일이었다.
“당시에 다른 검술 동아리가 있었는데, 어찌나 밥맛인지 사람을 가려서 받았다. 검이 아니라 가문, 재력, 외모를 기준으로 회원을 받았지. 네 어머니가 어떻게 했을 것 같으냐?”
예전이라면 모를까.
이제는 백수룡도 어머니의 행동을 대략이나마 추측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쳐들어가서 뒤집어 놨겠죠?”
“그 정도면 말도 안 했다. 그 검술 동아리 회장을 대머리로 만들어 버렸다. 검술로 내기를 해서 학생들이 보는 앞에서 머리를 싹 밀어 버렸지.”
“아니, 원강이 놈도 안 할 짓을…….”
입을 떡 벌리는 아들의 얼굴을 본 백무흔이 큭큭 웃었다.
“물론 이 애비도 그때 한 손 거들었다.”
“어련하셨겠어요…….”
“그뿐인 줄 아느냐? 약빙과 함께 있으면 시간이 어떻게 가는 줄 몰랐다. 장난을 꾸밀 때면 눈이 얼마나 반짝이는지, 또 무얼 하려는지 자꾸만 궁금해서……. 반하지 않을 수가 없는 여인이었어.”
“아버지 그런 표정은 도무지 익숙해지질 않는다니까요.”
백수룡은 팔뚝을 벅벅 긁으며 한숨을 쉬었다.
백무흔은 피식 웃더니, 생기부에 매약빙의 이름이 적힌 부분을 손가락으로 천천히 쓸어내렸다.
“그때 열아홉이었던 내가 이제는 쉰이 되었구려. 당신은 여전히 그 시절에 멈춰 있는데……. 가끔은…….”
좀 치사하다는 생각이 들지 뭐요.
나는 점점 늙어 가는데, 당신은 영원히 가장 아름다운 모습으로 내게 기억될 테니까.
“…….”
백무흔은 입안에 맴도는 말을 조용히 삼켰다.
옆에 있는 아들이 들으면 분명 낯간지러워할 것임을 알기 때문이었다.
그저 피식 웃어 버리곤 아들에게 말했다.
“나중에 약빙을 다시 만나면, 그때 오늘 본 걸로 잔뜩 골려 줘야겠다.”
“…….”
그리고 부드러운 손길로 생기부를 한번 쓸어내린 후, 연도별로 차곡차곡 쌓인 궤짝에 넣었다.
“더 보셔도 되는데. 아버지 생기부는 제가 찾을 테니까요.”
“됐다. 추억은 추억으로 남겨야지. 거의 다 정리한 것 같으니, 얼른 찾아서 돌아가자꾸나.”
시간이 갈수록 두 사람이 문서고의 기록물을 정리하는 속도가 빨라졌다.
촤라라라라락!
허공섭물을 사용해 창고를 정리하는 모습을 누군가가 보았다면, 그 말도 안 되는 고급 인력 낭비에 입을 떡하니 벌렸을 것이다.
그렇게 거의 정리가 끝나갈 때쯤, 백수룡은 창고 구석에서 아버지의 생기부를 찾아낼 수 있었다.
“찾은 것 같은데요? 어디 보자…….”
그런데 허공섭물로 생기부를 가까이 당겨온 백수룡이 그것을 들춰 보려고 하자, 백무흔이 슬쩍 손으로 가리는 것이 아닌가?
“그, 수룡아? 찾았으면 바로 교무처로 가져가면 되지 않겠냐?”
그러면서 슬쩍 낚아채려고 하는데, 그 순간 종이가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옆으로 빠져나갔다.
“무슨 소리예요? 졸업장을 받는 데 결격 사유가 없는지 제가 먼저 확인해 봐야죠.”
백무흔의 생기부를 손에 쥔 백수룡은 씩 웃으며 그것을 팔랑팔랑 흔들었다.
“너……!”
백무흔은 몹시 당황한 표정으로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애써 웃는 얼굴로 아들을 설득하려 했다.
이래서 어떻게든 먼저 찾으려고 했던 것인데…….
“하하. 그건 교무처 선생님들이 읽고 판단하실 일이 아닐까?”
“자기 아내 생기부는 실컷 읽어 놓고, 본인 건 못 보여 주시겠다?”
“이놈아! 약빙은 여기에 없으니 아들 앞에서 부끄러울 게 없지만, 나는 상황이 다르지!”
백수룡은 무슨 말인지 이해했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저도 여기에 아버지 없는 셈 칠게요.”
“당장 그거 내놔, 이놈아!”
파바바박!
잠시간 부자간의 금나수 대결이 펼쳐졌으나, 결국 무림십존의 높은 벽을 넘지 못한 백무흔의 패배로 끝났다.
“아들 키워 봤자 다 소용없다더니! 이제는 무공 좀 세졌다고 아비를 힘으로 핍박하는구나!”
백수룡은 원통해하는 아버지의 말을 귓등으로 흘리며 생기부를 파라락 넘겼다.
“어디 보자. 음주. 소동. 싸움. 관아에 체포된 것만 열두 번? 불순이성교제 적발이 삼십…….”
백수룡이 고개를 들고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바라보자, 청룡학관의 전설적인 망나니는 차마 그 시선을 마주하지 못하고 고개를 돌렸다.
“크흠. 그 불순이성교제는 전부 약빙과 만날 때 걸린 거다.”
“어머니랑 삼 학년 때 만났다고 하지 않았어요? 여긴 일 학년 때부터 그랬다고 적혀 있는데?”
“…….”
“하여간 아버지. 이러고도 할아버지한테 살아남은 게 용하네요.”
백수룡의 시선은 으로 향했다.
거기에는 감정을 꾹꾹 눌러 담은 익숙한 필체가 적혀 있었다.
음주가무를 무척이나 좋아하며, 가는 곳마다 온갖 사건 사고가 끊이질 않으니 훗날 강호에 나가 객사할까 우려됨.
검에 매우 뛰어난 자질을 지녔으나, 천성이 게으르고 힘든 것을 싫어하여 본인이 원할 때만 수련을 하려는 경향이 있음.
졸업 전까지 반드시 집중적인 교정, 교화가 필요함.
허나 날이 갈수록 잠행술과 도주 실력이 늘어나니, 훗날 양상군자가 되지는 않을까 심히 우려됨.
그래도 그 부분만 개선된다면, 장래가 무척 촉망되는 학생임은 분명함.
-담당 강사 매극렴
“……아주 악담을 해 놓으셨구나.”
아들의 어깨너머로 함께 그 내용을 읽은 백무흔이 부끄러움에 얼굴을 가리며 한숨을 쉬었다.
“푸흡…….”
반면, 백수룡은 머릿속에서 도망치는 아버지와 그 뒤를 쫓는 외할아버지의 모습이 떠올라 그만 눈물이 찔끔 나올 정도로 웃었다.
“푸하하하!”
* * *
“졸업장 발급에 문제는 없을 것 같습니다.”
교무처 직원의 말에 두 사람은 동시에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생활기록부에 적힌 행적이 워낙에 화려했던 터라, 혹시나 졸업이 안 되면 어쩌나 걱정했던 것이다.
교무처 직원도 그 부분을 확인하느라 시간이 걸렸다고 말했다.
“사실 벌점이 많아서 아슬아슬했는데……. 다행히 삼 학년 때 천무제 용봉비무 사강에 올라가서 받으신 상점으로 대부분 상쇄가 됐습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하하. 이럴 줄 알았으면 우승까지 해 버릴 걸 그랬군. 그랬으면 교무처 선생님도 덜 고생하셨을 텐데.”
어느새 여유를 되찾은 백무흔의 넉살에, 그 아들이 옆에서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말했다.
“걱정 마세요. 곧 예전의 아쉬움을 달랠 기회가 있을 테니까.”
“음? 그게 무슨 소리냐?”
“나중에 보시면 알아요.”
“괜히 또 불안하게…….”
잠시 기다리자, 교무처 직원이 족자로 된 졸업장 양식을 가져왔다. 졸업장 아래에 청룡학관의 직인이 선명하게 찍혀 있었다.
“여기 직인 옆에 관주님의 수결을 받으시면, 그때부터 청룡학관 졸업장으로 효력을 갖추게 됩니다.”
“……감사합니다.”
백무흔은 묘한 감흥을 느끼며 족자를 받아 들었다. 옆에서 아들이 그의 소매를 잡아끌지 않았다면, 한참이고 멍하니 서서 들여다보았을 것이다.
“아버지. 말 나온 김에 바로 관주님께 가요.”
“그래…….”
두 사람은 교무처를 나서서 곧바로 관주실로 향했다.
“관주님. 저 백수룡입니다.”
문 앞에서 기척을 내자, 잠시 후 안에서 노군상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들어오게나.”
두 사람은 함께 관주실로 들어갔다.
노군상은 혼자가 아니었다.
먼저 온 손님이 응접용 탁자에서 노군상과 마주 앉아 차를 마시고 있었다. 그 손님은 두 사람에게도 무척 익숙한 사람이었다.
“장인어른?”
“개…… 사위?”
백무흔은 눈을 가늘게 뜨고 매극렴을 흘겨봤다. 오기 전에 문서고에서 자신의 생기부에 적혀 있던 내용이 떠오른 탓이었다.
“예. 개사위 왔습니다. 천성이 게으르고 수련하기 싫어했던, 양상군자가 될까 걱정하셨던 놈이 왔습니다.”
“……갑자기 무슨 소리냐?”
“생각해 보면 결국 장인어른 딸을 훔쳐 달아났으니, 우려하신 대로 되긴 했습니다만…….”
“이놈이 실성을 했나?”
백무흔은 아들의 옆구리를 쿡쿡 찔렀다.
“두 분이 얘기 중이신 것 같은데. 나중에 다시 오는 게 나을 것 같구나.”
그러자 노군상이 허허 웃더니 괜찮다며 두 사람에게 가까이 오라고 했다.
“중요한 이야기는 방금 다 끝났네. 검치가 계속 거절을 해서 난감하긴 하네만.”
“관주님께서 자꾸만 감당하기 어려운 말씀을 하시니…….”
매극렴은 곤란한 표정을 짓더니, 화제를 돌리고 싶은지 사위와 손자에게 물었다.
“너희 둘이 이곳에는 무슨 일이더냐?”
“관주님께 졸업장의 수결을 부탁드리려고요.”
“……졸업장?”
노군상이 고개를 갸웃거리자, 백수룡이 다가가 교무처에서 받아온 아버지의 졸업장을 보여주며 사정을 설명했다.
이야기를 들은 노군상은 흥미로운 표정으로 백무흔을 바라봤고, 매극렴은 ‘뭐 이런 뻔뻔한 놈이 다 있나.’ 하는 표정으로 사위를 바라봤다.
“크흠…….”
백무흔은 민망한 듯 고개를 돌리고 헛기침을 했다.
매극렴이 코웃음을 치며 그 모습을 바라봤다.
“네놈도 부끄러움이 뭔지는 아는 모양이구나.”
“설마 장인어른이 계실 줄은 몰랐습니다. 그리고 제가 받자고 한 거 아닙니다. 수룡이가 자꾸만 받으러 가자고 해서…….”
“…….”
“그런데, 화 안 내십니까?”
차마 장인어른과 눈을 마주치지 못하던 백무흔이 매극렴을 힐긋 바라보자, 매극렴은 차를 마시고 있었다.
“화를 낼 건 또 무어란 말이냐. 졸업장을 받을 자격이 된다면 받아야지. 네놈이 사 년간 청룡학관에 다녔다는 것은 누구보다 내가 잘 안다.”
“…….”
“쯧. 그런 표정으로 보지 마라. 다 늙은 사내놈이 비 맞은 강아지처럼…….”
매극렴은 못마땅한 듯 혀를 차더니, 백무흔에게서 고개를 홱 돌려 창가를 바라봤다.
노군상은 그런 두 사람을 보며 흐뭇하게 웃더니, 백수룡에게 졸업장을 건네받았다.
“그거 이리 주게나.”
붓을 든 노군상은 일필휘지로 졸업장에 수결했다.
그리고 내공으로 바람을 불어오게 해 그것을 말린 후, 자리에서 일어났다.
“잘 되었군. 마침 견본으로 온 것이 있었는데. 백수룡 선생. 내 자리에 가면 왼쪽 첫 번째 서랍을 열어 보게. 뭘 가져와야 할지는 보면 바로 알 게야.”
“아, 예.”
노군상이 똑바로 걸어와 백무흔을 마주 보자, 부드러움 속에 관주로서의 위엄이 자연스럽게 묻어났다.
“백무흔 학생.”
“……예.”
“내 비록 백무흔 학생의 학창 시절을 지켜보진 못하였으나, 이토록 장성하여 훌륭한 무인이 된 것이 내 일처럼 기쁘다네. 또한 최근 살막의 위협에서 청룡학관을 위해 목숨을 걸어준 것에 모두를 대표하여 고마움을 전하네.”
“당연히 나서야 할 일이었습니다.”
백무흔은 진지한 표정으로 그렇게 대답했다.
아들의 부탁이 아니었어도.
장인어른이 위험에 처하지 않았어도.
그는 청룡학관을 위해 기꺼이 검을 들었을 것이다.
“위 학생은 청룡학관에서 사 년 동안 성실하게 교과 과정을 이수하였으며, 이에 본 관주는 졸업을 인정한다.”
졸업증을 읽은 노군상은 고개를 들어 백무흔을 바라봤다. 그리고 빙긋 웃으며 그것을 졸업생에게 건넸다.
“졸업 축하하네.”
“……감사합니다.”
백무흔이 두 손으로 공손히 졸업장을 건네받는데, 옆에서 백수룡이 무언가를 함께 건네주었다.
“졸업 축하드려요.”
푸른 비단으로 만든 전낭(錢囊)이었다. 한가운데에 금색 수실로 용(龍)이 새겨진 물건이었다.
“이건 왜……?”
“올해 졸업생들에게 주는 졸업 선물이라네. 자네가 가장 먼저 받게 되는군.”
백무흔이 얼떨떨한 표정으로 전낭을 살피며 말했다.
“제가 이걸 받아도 될지…….”
노군상은 망설이는 백무흔의 손에 전낭을 꼭 쥐여 주며, 부드럽게 웃었다.
“언제 어디에서도 청룡학관 졸업생이라는 자부심을 잊지 말게나.”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잊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잊지 않을 것입니다.”
백무흔은 고개를 끄덕이고 졸업장과 졸업 선물을 소중히 품 안에 갈무리했다.
“……흥.”
그때까지도 매극렴은 사위를 바라보지 않고 창가만 바라보고 있었다.
하지만 방 안에 있는 세 사람 모두 알고 있었다.
“……많이도 늦었구나.”
그의 입가에 맺힌 것은 분명 미소라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