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mber One Star Instructor Master Baek RAW novel - Chapter 430
429화. 가정방문 (2)-뜻밖의 만남
“왜 화를 내? 하여간 성질머리하고는.”
사무실에서 빠져나온 백수룡은 작게 투덜거렸다. 옷 위로 희미하게 흐르는 전류를 손으로 툭툭 털어 내면서.
캬앗…….
은호가 백수룡의 품 안에서 겁먹은 얼굴로 고개만 빼꼼 내밀었다.
벼락이 튀는 남궁수의 기세가 어찌나 살벌했던지, 본능적으로 가장 안전한 곳으로 숨어들었다가 이제야 고개를 내민 것이다.
백수룡은 움츠러든 은호의 머리를 슥슥 긁어 주며 말했다.
“그 녀석 성격이 원래 좀 지랄 맞으니까 이해해라. 솔직히 나니까 사무실도 같이 써 주지. 다른 선생이었으면 어림도 없었어.”
[네가 남에게 할 말은 아닌 듯한데…….]머릿속에서 창룡신검의 황당해하는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백수룡은 애써 무시했다.
지금이 무척 바쁜 시기라는 것은 백수룡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천무제만큼 더 중요한 일.’이라는 것은 조금도 과장이 아니었다. 사실 그보다 더 중요한 일일 수도 있었다.
“할 수만 있다면 몸을 두 개로 나누고 싶지만, 그럴 수도 없으니 어쩌겠어.”
백수룡은 낮게 한숨을 쉬었다.
천하제일고수도 몸을 두 개로 나눌 수는 없다.
그러니 몸 하나를 최대한 열심히 움직이는 수밖에.
[회합 장소가 벌써 결정되다니……. 생각보다 훨씬 더 빠르구나.]‘사파가 정파보다 나은 몇 안 되는 장점이지. 결정하면 바로 움직이는 거.’
결국 사파 회합이 성사되었다.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사파의 거두들은 구파일방처럼 늦장을 부리지 않았다. 악인곡에서 회합을 제안하자 마치 기다렸던 것처럼 여러 세력들 사이에 전서응이 오가고, 순식간에 회합 장소가 결정되었다.
백수룡이 벽안귀에게 연락을 받은 것이 바로 어제였다.
‘형산에서 모인다 이거지.’
중원오악 중 남악.
이제는 사라져 이름밖에 남지 않았지만, 한때는 구파일방과 비견될 만한 세력을 이루었던 형산파가 자리했던 명산.
현재는 그 누구의 영역도 아닌 형산에, 사파의 거두들이 은밀하게 모여 회합을 가질 예정이었다.
그리고 백수룡은 그들보다 한발 빨리 움직일 계획이었다.
‘회합이 열리기 전에, 먼저 녹의수사를 만나서 아군으로 끌어들여야 해.’
지금으로서는 사파 회합의 결과가 어떻게 될지 짐작할 수 없었다.
최악의 경우는 사파 세력이 연합해 혈교와 같은 편에 서는 것.
물론 악인곡은 거기서 제외되겠지만, 회합의 흐름이 정사대전으로 흘러간다면 훗날 커질 피해는 걷잡을 수 없게 될 것이다.
[그럼 그렇게 사실대로 말하고 오면 될 것을.]‘악인곡 소속으로 사파 회합에 참석하고 온다는 거? 아니면 가정방문할 곳이 산적소굴이라는 거?’
[너라면 충분히 돌려서 말할 수 있었을 것이다.]건물 밖으로 나온 백수룡은 피식 웃으며 검파를 툭툭 두드렸다.
“돌려서 말 안 해도 대충 예상하고 있을걸. 생각보다 눈치가 빠른 녀석이니까.”
백수룡이 한동안 청룡학관을 비우더라도, 천무제 준비는 차질없이 진행될 것이다.
청룡신협이 없더라도 청룡학관에는 남궁수가 있고, 매극렴이 있으며, 노군상이 있다. 또한 많은 강사들이, 재능 있는 학생들이 있었다.
살막과의 싸움을 지켜보면서, 백수룡은 주변 사람들을 전보다 더 믿고 의지하게 되었다.
이제는 꽤 먼 곳을 홀가분하게 다녀올 수 있을 정도로 말이다.
“오늘따라 날씨 한번 좋군.”
백수룡은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봤다.
구름 한 점 없이 청명한 하늘. 먼 길을 떠나기에 딱 좋은 날씨였다.
제자들에게는 전날 밤에 잠시 어디 좀 다녀오겠다고 말해두었고, 매극렴과 백무흔에게는 짧게 서찰을 남겼다.
직접 말했다가는 또 이것저것 싸 주겠다고 한동안 붙잡힐 것이 뻔했으니까. 그 두 사람에겐 백수룡이 무림십존이라는 인식 자체가 없었다.
두 사람의 잔소리를 상상한 백수룡은 몸을 부르르 떨었다.
“……최대한 빨리 갔다 와야겠어. 늦을수록 더 혼날 테니까.”
콰앙!
백수룡이 바닥을 박찬 순간, 그의 신형은 순식간에 작은 점이 되어 사라졌다.
* * *
정강산(井岡山).
강서에서 호남으로 향하는 길목에 위치한 산으로, 깎아지른 듯한 절벽으로 둘러싸여 있어 지형이 험하기로 유명했다.
이 정강산의 주인은 염라채다.
녹림칠십이채 중에서도 세 손가락에 꼽힐 만큼 강력한 세력인 데다, 그 두령은 십대악인 중 하나로 악명이 높은 녹의수사 주표.
때문에 정강산 일대에서 염라채는 그 이름처럼 염라대왕으로 통했다. 어떤 상단이든 표국이든 정강산을 ‘무사히’ 지나가려면 통행세를 내야만 했다.
그리고 방금, 정강산의 초입에 백수룡이 도착했다.
캬아앙!
정강산에 도착하자마자 은호는 백수룡의 품에서 폴짝 뛰어내렸다. 도시에 있을 때보다 몇 배는 신이 난 모습이었다.
“자, 여기서부터 길 안내 좀 부탁하자. 수혁이랑 함께 지냈던 곳. 기억하지?”
캬아앗!
은호는 자기만 믿으라는 듯 고개를 끄덕인 후, 놀라운 속도로 산길을 타고 올랐다.
백수룡은 그 뒤를 따라 여유롭게 경공을 펼쳐 따라갔다.
-염라채가 어디 있냐고요?
청룡학관에서 출발하기 전.
염라채로 가는 길을 묻는 백수룡에게, 야수혁은 자신이 직접 설명하는 것보다 이쪽이 빠르다며 은호를 건네주었다.
-털뭉치가 알아요. 방학 때 저랑 같이 다녀왔으니까.
-딱 한 번 갔던 곳인데 제대로 기억하고 있겠어?
-괜히 영물이 아니더라고요. 열흘도 안 돼서 그 험한 정강산 일대를 다 들쑤시고 다니다가 산채로 돌아올 정도였으니까, 길 정도는 진즉 외웠을걸요.
백수룡이 굳이 은호를 데려온 이유였다.
녀석은 산속에서 그 어떤 산적이나 사냥꾼보다 뛰어난 길잡이였다.
하지만 아직 새끼답게 집중력이 떨어진다는 단점이 있었다.
크르르…… 캬앙!
도중에 마주친 짐승들이 작고 하얀 맹수의 으르렁거림에 깜짝 놀라서 줄행랑을 쳤다.
본능적으로 그 뒤꽁무니를 쫓아가려던 은호는 갑자기 허공에 떠서 버둥거렸다.
어느새 다가온 백수룡이 은호의 뒷덜미를 잡아 들어 올린 것이다.
“이 녀석아. 사냥놀이는 나중에 하고, 길부터 안내하지?”
끼이잉…….
은호는 백수룡의 손에 잡혀 바동거리더니, 이내 알았다는 듯 부루퉁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다시 바닥에 내려주자 이번에는 얌전히 일직선으로 산을 올랐다.
[신령한 산이구나.]우우웅!
창룡신검도 자연의 기운이 풍부한 산에 와서 그런지 기분이 좋은 모양이었다.
백수룡도 험난한 산세를 둘러보며 감탄했다.
고강한 무인인 그에게는 가벼운 산행이었지만, 정강산은 그야말로 천혜의 요새였다.
“그러고 보니…… 예전에 맹사부한테서도 정강산에 대해 들은 적이 있어.”
직접 산에 오르니, 문득 오래전에 맹사부가 해 주었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뭣도 모르는 놈들은 오악(五嶽)이 최고라고 떠들지만, 천하에 그에 못지않은 명산이 여럿 있다. 정강산이 그런 곳 중에 하나지. 경치도 죽여주고, 자연지기가 풍부하기로도 오악에 못지않다. 산 좋고 물 좋으니 거기서 나고 자란 고기도 맛이 끝내주지. 흐. 이거 또 침 고이네. 예전에 몇 달이나 눌러앉아서 지냈던 곳인데…….
-맹사부는 장강에 빠져도 입만 동동 뜰 거요. 수다 떠는 게 지겹지도 않소?
-입이 심심한데 어쩌라는 거냐. 조용히 할 테니 고기반찬이나 좀 더 주든가!
-그 연세에는 고기보다 풀이 더 좋소. 자, 여기 푸성귀 좀 더 드리리다.
-풀떼기는 싫다고 이놈아!
기인(奇人).
맹호악은 네 명의 사부들 중에서도 그 말이 가장 어울리는 사람이었다.
특이하게도 그는 하나의 산채에 계속 머무르지 않았다.
천하의 산이란 산은 모두 자기 집처럼 누비고 다녔던 녹림(綠林)의 왕.
맹호악이 머무는 곳이 곧 녹림투왕의 산채였다.
-……역마살이 낀 팔자로군.
광마 사부는 맹사부의 방랑벽을 한마디로 일축했지만 말이다.
그리고 녹림투왕 이후, 그 어떤 녹림의 호걸도 왕(王)을 자처하지 못했다.
그만큼 압도적인 무공과 존재감을 가진 고수가 나타나지 않았고, 이후 녹림칠십이채는 몇 개의 커다란 세력으로 분열했다.
그래서 더, 백수룡은 야수혁의 양부를 한번 만나 보고 싶었다.
‘녹의수사 주표. 최근 수십 년 동안, 녹림왕에 가장 근접한 사내라지.’
흥미가 생길 수밖에 없었다.
그가 녹림에서 큰 영향력을 가진 고수일 뿐만 아니라, 녹림투왕의 원대한 꿈을 기억하고 있는 유일한 제자로서도 말이다.
-언젠가 녹림을 구파일방 못지않은 대방파로 만들 것이다!
“……곧 만나 보면 알겠지.”
녹의수사에 대해 강호에 떠도는 소문들, 그리고 야수혁에게 들은 이야기만으로 상대를 판단할 생각은 없었다.
“그런데 너, 제대로 가고 있는 거 맞아?”
캬아앙!
은호를 따라서 계속 위로 올라가고 있기는 한데, 아무리 둘러봐도 산채 비슷한 것도 보이지 않았다. 인기척도 마찬가지로 느껴지지 않았다.
주변은 깎아지른 듯한 절벽과 돌뿐이었다. 염라채의 산적들이 전부 절정고수가 아닌 한, 이런 곳에 본거지를 만들지는 못할 것 같았다.
스스스슷…….
설상가상으로 주변에 짙은 안개마저 자욱하게 차올랐다.
[자연지기가 뭉쳐서 스스로 만들어 낸 안개라니. 흔치 않은 일인데…….]“주변에 영물이라도 숨어 있는 건가?”
[그런 것 같지는 않구나. 단순히 기가 한곳에 오래 고여서 생긴 현상이다. 진법에 조예가 있지 않으면 빠져나가기 힘들 듯한데…….]그렇다면 딱히 조심할 필요는 없겠군.
중얼거린 백수룡은 안개를 향해 일직선으로 주먹을 내질렀다.
화아아아악!
일권에 태풍이 몰아쳤다. 안개가 사방으로 흩어지며 쾌청한 하늘이 드러났다. 마침 절벽의 끝이 보였다.
휘익!
백수룡은 훌쩍 뛰어올라 이름 모를 봉우리 위에 사뿐히 내려섰다. 그리고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스읍……. 하아아―”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정강산의 풍경에 절로 호연지기가 샘솟았다. 아무래도 이곳이 가장 높은 봉우리인 듯했다. 백수룡은 잠시 자연을 감상했다.
“좋구나.”
캬앙!
그런데 먼저 올라간 은호가 백수룡의 바짓단을 옆으로 잡아끌었다.
“음? 왜 그러냐?”
백수룡이 은호를 따라 옆으로 몸을 돌렸을 때, 거대한 바위가 보였다. 그리고 일순간 몸이 굳었다.
“이건…….”
綠
林
鬪
王
거대한 바위에 한 글자 한 글자 새겨진 큼지막한 별호.
좋게 봐 줘도 투박하다고밖에 말할 수 없는 필체였지만, 그것을 뛰어넘는 압도적인 기백이 생생히 전해졌다.
“하하…….”
백수룡은 놀랍고도 반가운 마음에 그만 헛웃음을 흘렸다.
바위에 새겨진 녹림투왕(綠林鬪王)이라는 네 글자.
저것은 분명, 아주 오래전에 맹사부가 새긴 것이리라.
“……이런 곳에도 흔적을 남기셨소?”
과연 기인이었다.
천하의 산들을 제집처럼 드나들며, 온갖 신비지처(神? 地處)에 자신의 흔적을 남긴 사내.
백수룡은 스승이 세상에 남긴 흔적을 보며 그와의 추억을 떠올렸다.
-애송아. 갈 곳이 없으면 날 따라서 녹림으로 가는 건 어떠냐?
-……생각 좀 해 보겠소.
-광마야. 가문에서 안 받아 주면 녹림으로 오는 건 어떠냐?
-헛소리를.
-대형. 아들이랑 같이 녹림에 오지 않겠소? 평생 수발 받으면서 편하게 살게 해 드리리다.
-허허. 자네는 지치지도 않나.
-막내야……. 아니다. 너는 정인이랑 만나서 둘이 알콩달콩 백년해로해라. 차마 너한테는 오라 못 하겠다.
-…….
다들 시큰둥한 반응이었으나, 맹사부는 끈질기게도 모두를 녹림으로 데려가려고 했다.
한 번은 장난삼아 천하통일이라도 할 계획이냐고 묻자, 맹사부는 별 희한한 소리를 한다는 표정으로 이렇게 말했다.
-뭔 소리냐? 그냥 가족처럼 모여서 같이 살면 좋을 것 같아서 하는 말이지.
-……그렇게 진지하게 대답하면 내가 뭐가 되오?
피식.
잠시 감상에 젖어 있던 백수룡은 바위 뒤편을 향해 말했다.
“언제까지 숨어 계실 생각이신지?”
“……놀랍군.”
바위의 뒤편에서 한 사내가 걸어 나왔다.
수염을 기른 중년인이었다.
키가 크고 훤칠한 몸은 날렵해 보였고, 서늘하면서도 깊은 눈빛은 마주하는 사람을 위축되게 만드는 기운을 품고 있었다.
그러나 백수룡을 대하는 중년인의 태도는 결코 사납지 않고 오히려 정중했다.
“일부러 숨은 것은 아닙니다. 이곳에 다른 사람이 올라온 것이 삼십 년 만에 처음이라 저도 모르게 그만.”
중년인은 천천히 걸어왔다. 단순한 걸음에 격조와 기품이 느껴졌다. 바람에 나부끼는 녹의장포가 풍경과 무척이나 잘 어울려, 무지렁이 촌부들은 사내를 산의 신선이라고 착각할 듯했다.
캬앙!
은호가 그에게 다가가 발치에 치댔다. 중년인은 익숙한 듯 은호를 안아 들어 머리를 쓸어 주었다.
“이 녀석. 오랜만이구나.”
“잘못 찾아온 줄 알았는데, 그 녀석이 길 안내를 제대로 했군요.”
“이토록 빨리 오실 줄은 몰랐습니다. 손님 맞이할 준비가 되지 않은 것은 양해해 주십시오.”
“갑자기 찾아온 불청객을 환영해 주셔서 감사할 따름입니다.”
뜻밖의 만남이었으나, 두 사람은 마치 서로 알던 사이인 것처럼 자연스럽게 인사를 나누었다.
녹의수사 주표.
백수룡은 그를 따라 염라채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