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mber One Star Instructor Master Baek RAW novel - Chapter 437
436화. 이번 회합에서
그날 밤.
일일 녹림 체험을 끝내고 돌아온 백수룡은 녹의수사를 찾아갔다.
“이야기 들었습니다. 아주 대단한 ‘설득’을 하셨다고요?”
큰길에서 있었던 일을 이미 전해 들었는지, 녹의수사는 백수룡이 방에 들어오자마자 입가에 짓은 미소를 띠었다.
백수룡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혹시 비꼬시는 겁니까?”
“그럴 리가요. 진심으로 말씀드리는 겁니다. 잘하셨습니다.”
한 소리 들을 줄 알았던 백수룡은 예상 밖의 칭찬에 어리둥절한 표정이 되었다.
“저한테 맞고 기절한 놈이 무당의 속자제자라고 하던데, 그것 때문에 나중에 귀찮아지시는 건 아닙니까?”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한 번씩 본보기를 보여 주지 않으면 더 귀찮아집니다.”
녹의수사의 입가에 맺힌 미소는 오히려 더 짙어졌다.
“게다가 평소 무시하던 산적에게 큰 망신을 당했으니, 부끄러워서라도 숨기려고 할 겁니다. 그자가 죽었다면 모를까. 무당파에서 이 일을 문제 삼을 일은 없습니다. 하지만…….”
녹의수사는 잠시 말을 멈추고, 녹림의 옷을 제 것처럼 소화하는 백수룡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허리춤에 찬 거치도에는 오늘 생긴 것으로 보이는 얼룩이 있었다.
“같이 있던 상단의 일꾼들을 통해 소문이 조금씩 퍼지는 것은 어쩔 수 없겠지요. 염라채의 신입이 정파의 고수를 일초지적으로 때려눕혔다더라. 그거면 충분합니다. 주변의 상단들과 표국에 퍼져서, 염라채에 대한 두려움을 키울 겁니다.”
녹의수사는 그 자리에 없었음에도 모든 상황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 이용할지도 이미 염두에 두고 있었다.
백수룡은 그의 심계에 감탄하며 물었다.
“거기까지 예상하고 제게 녹림 체험을 권유하신 거였군요?”
녹의수사는 어깨를 으쓱였다. 그러곤 솔직하게 대답했다.
“오늘 상단 하나가 큰길을 지나갈 거란 사실은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청룡신협이라면 사람을 쉽게 죽이지 않으리라 생각했지요. 그래도 설마, 침 뱉은 거치도로 머리통을 후려칠 거라곤 예상 못했습니다.”
“……착하고 순진한 산적들밖에 없는 줄 알고 걱정했는데, 채주님이 계시니 걱정 안 해도 되겠습니다.”
“하하. 저희를 걱정해 주시는 분은 처음 봅니다.”
장난스럽게 웃은 녹의수사는 책상 위에 있던 서류들을 옆으로 치웠다. 사파 회합에 참가하기 위해서 급하게 먼저 처리한 일들이었다.
그 어마어마한 양을 본 백수룡은 동병상련의 마음을 느끼며 맞은편에 앉았다.
녹의수사가 은근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래서…… 직접 경험해 보시니 어떠셨습니까?”
“사업이 상당히 체계적이더군요.”
백수룡의 말에 녹의수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표정에서 스스로가 이룩한 성과에 대한 자부심이 느껴졌다.
“저희는 장강산을 관리하고 산을 오가는 사람들에게 편의를 제공합니다. 그리고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받습니다. 결코 갈취당한다고 느끼지 않도록 신경 씁니다.”
녹림을 구파일방 못지않은 대방파로 만드는 숙원.
녹림투왕에게서 시작되었으나, 녹의수사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그 숙원을 이뤄 나가고자 했다.
백수룡은 자신이 보고 느낀 것을 솔직하게 말했다.
“중간 길과 작은 길이 상당히 인상적이었습니다. 길을 지나는 사람들이 염라채와 친구처럼 허물없이 어울리던데. 의도하신 겁니까?”
녹의수사는 알아주어 기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염라채라는 이름은 힘없는 양민들에게는 친근해도 괜찮습니다. 오히려 안전하다고 느껴지는 편이 손님을 많이 끌어올 수 있으니 유리하지요. 중간 길과 작은 길을 먼저 보여 드린 이유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무기를 들고 큰길을 지나려는 손님들에게는 아니다.
그들에게 염라채는 이름 그대로 염라대왕 같은 존재여야 한다.
“큰길을 넘는 자들은 대부분 무력을 갖춘 자들입니다. 언제든지 칼을 뽑아 휘두를 수 있는 자들이지요. 필요한 순간에는 싸워야 길을 지킬 수 있습니다.”
만약 큰길에서 염라채가 약한 모습을 보인다면, 다른 세력이 장강산을 넘볼 것이고, 표국과 상단은 통행세를 후려치거나 내지 않으려고 할 것이다.
녹의수사의 말에서 그의 신념과 고민이 느껴졌다.
‘맹사부. 솔직히 이쪽이 사부보다 더 나은 것 같소.’
과거 녹림투왕은 녹림의 세력을 하나로 만드는 데는 성공했지만, 이후에 구체적인 계획을 실행하지는 못했다.
실제로 구파일방을 비롯한 정파의 명문들은 많은 사업체를 굴리고, 속가를 운영해 세력을 확장시켰다.
그에 반해 녹림은 길을 가로막고 통행세를 받는 것에 그쳐 있었다. 대부분의 출신 성분이 못 배우고 가난한 자들인 탓이었다.
-어려운 건 밑에 있는 똑똑한 놈들이 알아서 하겠지. 하여튼 여기서 나가면 기필코 녹림을 대방파로 만들 거다!
녹의수사는 맹사부가 그토록 찾던 똑똑한 사람이었다.
백수룡은 조심스럽게 말문을 열었다.
“오늘 염라채의 영업장을 둘러보면서 떠오른 사업 계획이 몇 가지 있는데, 말씀드려도 괜찮겠습니까?”
“오히려 제가 부탁드리고 싶군요. 편히 말씀해 주십시오.”
녹의수사가 눈을 반짝이며 백수룡 쪽으로 몸을 기울였다.
그는 오랜만에 시야가 비슷한 사람을 만나서인지 무척 기뻐 보였다.
“작은 길에서 한 노파를 만났습니다. 만두 맛이 일품이더군요. 그때 든 생각인데…….”
백수룡은 노파를 만난 이야기를 시작으로 염라채가 사업을 확장할 수 있는 방법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길목에 휴게소를 만들어 간단한 음식을 팔면 어떻습니까? 이후 신뢰를 쌓는다면 숙박업으로도 확장이 가능할 겁니다.”
“빠르게 산을 넘어야 하는 경우나 체력이 부족해 산을 넘기 힘든 경우, 염라채에서 추가비용을 받고 가마나 인력거를 동원해 산 너머로 데려다주는 운송업도 수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호랑이나 곰, 멧돼지 등 짐승들을 대비해 함께 길을 건너주는 방법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이때 생필품이나 등산용품의 판매를 유도할 수 있을 것 같은데…….”
“…….”
처음에는 가벼운 흥미로 듣기 시작하던 녹의수사가 점점 눈을 크게 뜨더니, 백수룡의 이야기가 끝났을 때쯤엔 의심스러운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무례한 질문일 수도 있습니다만, 혹 부친께서 녹림에 몸을 담으신 적이 있으십니까?”
백무흔이 비록 청룡학관의 전설적인 망나니이긴 했지만, 그래도 녹림과는 인연이 없었다.
‘……없겠지?’
문득 백무흔과 매약빙이 산채 하나를 털어먹는 모습이 상상됐지만, 백수룡은 고개를 저어 잡생각을 털어냈다.
“스승님께 들었습니다. 누구보다 녹림에 대해 고민을 많이 하신 분이니까요.”
“허……!”
실제로 백수룡은 전생에 녹림투왕에게 많은 이야기를 들었고, 이런저런 대화를 나눈 적도 많았다.
방금 녹의수사에게 말한 계획들도 대부분은 그때 대화를 나누며 떠올렸던 것들이었다.
혈교를 탈출한 후, 맹사부를 따라 녹림으로 가면 어떨까 고민할 때 반쯤 농담 삼아 나눴던 이야기들.
-으하하! 애송아. 넌 천재다! 앞으로 네가 녹림의 지낭이다!
-……강호의 앞날이 어둡군.
잔뜩 흥분하던 얼굴의 맹사부와, 그 옆방에서 탄식하던 광마 사부의 모습을 떠올린 백수룡은 피식 웃었다.
“하지만 한 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녹의수사의 말이었다. 그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백수룡을 바라봤다.
“말씀해 주신 내용들을 저도 생각해 보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몇 가지는 실제로 비슷하게 시행하고 있지요. 하지만 문제는…….”
“물건을 댈 상단이 없을 겁니다. 보부상 몇몇과 거래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으니까요.”
“……맞습니다.”
녹의수사는 침중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결국 백수룡이 낸 계획들의 핵심은, 장강산을 오가는 이들을 상대로 장사를 해서 이문을 남기자는 것이었다.
그러려면 꾸준히 물건을 대야 하는데, 규모가 있는 상단과의 거래는 필수였다.
녹의수사가 작게 한숨을 쉬며 말했다.
“하지만 어느 상단이 저희와 거래를 하려고 하겠습니까.”
천하십대상단은 대부분 구파일방이나 오대세가 중 한 곳과 깊게 연관되어 있으며, 그보다 규모가 작은 상단들은 사파와 거래를 하려고 하지 않는다.
기본적으로 신뢰가 부족하기 때문이었다.
큰 위험을 감수하고 녹림과 거래를 틀 상단을 찾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저도 백방으로 알아보고 있습니다만, 지금까지는 별다른 소득은…….”
“백룡상단이라고. 강서 남창에 기반을 둔 중소 규모의 상단이 하나 있습니다.”
“……예?”
“아직 규모는 그리 크지 않지만, 성장 가능성이 크고 거기 총관이 일을 잘합니다. 금룡상단과 인맥도 있고요. 슬슬 다른 지방으로도 상권을 개척하려고 준비 중이었는데, 마침 잘됐네요.”
“설마…… 지금 제가 생각하는 것이 맞습니까?”
백수룡은 굳은 표정으로 묻는 녹의수사를 향해 씩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염라채와 백룡상단이 장기적인 계약을 맺었으면 합니다. 저희는 물건을 공급하고, 염라채는 그것을 산을 오가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파는 겁니다.”
“…….”
녹의수사는 잠시 말이 없었다.
워낙에 갑작스러운 제안이기도 했고, 손익을 신중하게 계산해야 했던 것이다.
“한 가지 여쭙겠습니다. 저야 이 자리에서 답을 드릴 수 있지만, 백룡상단의 의사는 선생님께서 마음대로 결정하셔도 되는 겁니까?”
“물론입니다. 제 상단인데요.”
“……허. 이름을 듣고 혹시나 했습니다만…….”
녹의수사는 허탈하게 웃었다.
겉으로 티는 내지 않았지만, 그는 청룡신협이 녹림투왕의 제자라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만큼이나 놀란 상태였다.
‘단순히 녹림투왕으로부터 이어진 인연이 아니라…… 세상에 다시 없을 귀인일지도 모르겠구나.’
그러나 녹의수사는 갑자기 찾아온 행운을 덥석 붙잡지 않았다.
단순히 염라채의 이득만이 아니라, 혹시나 귀인이 될 사람에게 폐를 끼치진 않을까 저어해서였다.
“저희와 거래를 튼 것이 알려진다면, 백룡상단은 다른 상단들로부터 심한 견제를 받을 겁니다. 그래도 괜찮겠습니까?”
녹림과 거래하는 상단.
상인들이 아무리 돈을 좇아 불구덩이에도 뛰어들 수 있는 자들이라지만, 공공연하게 그런 소문이 나는 것은 다른 문제였다.
그러나 백수룡에겐 계획이 있었다.
“그 부분은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혈교와 정파무림의 전쟁이 시작되면, 천하의 정세가 완전히 바뀔 것이다.
구파일방과 오대세가는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전쟁의 전면에 나설 것이며, 그들의 후원을 받는 천하십대상단도 바빠질 수밖에 없었다.
전쟁이 끝난 후엔, 천하십대상단의 이름 중 몇 개는 바뀔지도 모를 일.
이때 녹림에 유통망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사용하기에 따라 엄청난 무기가 될 수도 있었다.
‘처음부터 염라채와 거래를 할 계획은 없었지만…….’
직접 염라채를 둘러본 이후 생각이 바뀌었다.
백수룡은 이곳에 충분히 투자할 가치가 있다고 판단했다.
그리고 염라채와의 거래가 성공적으로 이루어진다면, 그 휘하에 있는 산채들과도 차례대로 계약을 맺어 유통망을 점점 넓혀 나갈 계획이었다.
“염라채는 밑져야 본전이니, 저를 한번 믿어 보시죠.”
맞는 말이었다. 염라채로서는 손해볼 것이 없었다.
과감하게 투자를 하는 쪽은 백룡상단.
결국 고민을 끝낸 녹의수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백룡상단과 거래를 하겠습니다.”
두 사람은 그 자리에서 계약서를 작성해 수결했다.
훗날 역사적인 날로 기록될 거래가 성사되는 순간이었다.
“앞으로의 사업 계획에 대해 몇 가지 의견을 드려도 되겠습니까?”
“물론입니다. 고견을 주십시오.”
이후에도 두 사람은 한 시진이 넘도록 대화를 나눴다.
녹의수사는 생각이 깊고 신중했다.
한 번씩 통찰이 번뜩이는 말로 백수룡을 놀라게 했다. 분명 관직에 나갔어도 크게 될 사람이었다.
백수룡은 그와 대화를 나누며 생각했다.
‘맹사부 옆에 녹의수사 같은 사람이 한 명만 있었어도…….’
녹림의 역사가 바뀌는 것은 물론이고, 부하들에게 배신당해 뇌옥에 갇히는 일도 없지 않았을까.
백수룡은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염라채처럼 안정적인 수입원을 확보한다면, 앞으로 녹림은 제대로 된 문파를 형태를 갖출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모든 산채가 이런 방식에 동의하진 않을 겁니다.”
“……맞는 말씀입니다.”
녹의수사도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천하에 흩어져 있는 산채의 숫자만 수백을 넘으며, 그중 제대로 된 세력을 갖춘 곳만 추려도 수십을 헤아린다.
녹림칠십이채(綠林七十二寨)라 불리는 이름 있는 산채들.
그들은 과거 녹림투왕 맹호악에 의해 녹림맹이라는 이름으로 통일되었으나, 지금은 크게 세 개의 세력으로 분열되었다.
“제 영향력이 미치는 산채는 이십여 개에 불과합니다.”
염라채는 녹림 삼대 세력 중에서 하나를 대표할 뿐이었다.
호문채와 거령채.
다른 두 세력의 휘하에 있는 산채들에는 그의 영향력이 미치지 못했다.
“호문채, 거령채. 두 곳의 멍청한 두령들은 여전히 죽이고 약탈하는 것이 녹림의 미덕이라 생각하지요.”
녹의수사의 표정에서 두 채주에 대한 강한 적개심이 느껴졌다.
그는 십대악인으로 악명을 떨치며 현재 녹림왕에 가깝다는 평가를 받고 있지만, 그렇다고 다른 두 세력을 압도할 정도는 아니었다.
백수룡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이곳에 오기 전에 녹림의 세력 구도에 대해 조사해 봤으니까.
“그래서 말인데.”
호문채주와 거령채주.
둘 다 염라채와 비견될 정도로 큰 세력을 자랑하며, 양민을 죽이는 데 거침이 없는 말종들이었다.
“이번 사파 회합에서, 둘 다 설득하는 게 어떻습니까?”
‘설득’이라는 단어를 강조하면서, 백수룡은 허리춤에 매달려 있는 거치도의 손잡이를 툭툭 두드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