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mber One Star Instructor Master Baek RAW novel - Chapter 438
437화. 배우면 되지
“이번 사파 회합에서, 둘 다 설득하는 게 어떻습니까?”
“…….”
녹림수사는 잠시 말없이 백수룡을 바라봤다
볼수록 신기한 사내였다.
분명 절세의 검객이자 협객이라고 들었는데, 어째 그의 앞에 있는 것은 미래가 촉망되는 젊은 산적이었다.
“대답하기 전에 우선 한 가지는 확실히 하도록 하지요. 방금 저희가 수결한 계약서는, 사실상 저희 동맹의 증거라고 생각해도 되겠습니까?”
“물론입니다.”
두 사람은 사업에 관한 이야기만 나누었을 뿐, 동맹에 관한 이야기는 일절 나누지 않았다.
어차피 서로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수결한 계약서를 나누어 가진 순간, 그들은 운명공동체가 된 것이나 다름없다는 것을.
즉, 이제부터 녹의수사와 그의 휘하에 있는 녹림은 백수룡의 동맹이었다.
녹의수사가 굳이 그 점을 한 번 더 짚고 넘어간 것은 확실하게 하기 위해서였다.
고개를 끄덕인 녹의수사가 말했다.
“알겠습니다. 방금 말씀하신 ‘설득’이 두 채주를 말로 잘 설득하자는 이야기는 아니겠지요?”
“말이 통하는 자들입니까?”
“……그랬으면 녹림이 여러 세력으로 분열되지도 않았을 겁니다.”
녹의수사의 한숨에, 백수룡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은근한 목소리로 녹의수사에게 제안했다.
“이번 사파 회합에서, 녹림의 세력을 하나로 통합했으면 합니다.”
“…….”
녹의수사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그는 목소리를 낮추며 말했다.
“그들을 제거하자는 말씀입니까?”
“말이 정말 안 통한다면요.”
백수룡의 표정은 덤덤했지만, 그 눈빛은 진지했다. 그 순간 녹의수사는 온몸에 소름이 끼치는 것을 느꼈다. 눈앞의 사내는 진심이었다.
“……불가합니다.”
“어째서요?”
호문채와 거령채.
현 시점에서 염라채와 함께 녹림을 삼분하고 있는 세력의 두령들.
각각의 무공도 만만치 않거니와, 따르는 부하들의 충성심도 높았다.
“단순히 힘으로 해결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회합에서 그들을 해쳤다간, 녹림끼리 전쟁이 일어날 겁니다.”
산적이라고 무시받는 녹림이긴 해도, 녹림칠십이채의 윗줄에 오랫동안 이름을 올린 산채들은 나름의 전통과 규율이 존재한다.
즉, 회합에서 녹의수사가 거령채와 호문채주를 제거한다고 해도, 두 세력을 흡수하는 것은 쉽지 않으리란 이야기였다.
최악의 경우에는 두 세력이 똘똘 뭉쳐서 염라채와 전쟁을 벌일 수도 있었다. 그렇게 되면 녹림은 어마어마한 피를 흘릴 것이다.
“청룡신협께서 도와주신다면 두 채주를 제거하는 것은 어렵지 않겠지요. 하지만 그 뒷감당은 온전히 저희가 해야 합니다. 죄송하지만 결코 동의할 수 없는 제안입니다.”
“으음…….”
생각보다 강한 녹의수사의 반대에, 백수룡도 난감한 표정이 되었다.
‘이 정도로 반대할 줄은 몰랐는데.’
물론 녹림의 사정을 누구보다 잘 아는 것은 녹의수사일 터였다.
그가 이렇게까지 반대한다면, 백수룡도 채주들을 ‘설득’하는 것은 다시 고려해 볼 수밖에 없었다.
백수룡은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예전에 맹사부가 녹림을 통일할 땐, 그냥 찾아가서 제일 강한 놈을 몇 대 쥐어박으면 끝났다고 했는데…….”
녹의수사가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백수룡을 바라봤다.
“수십 년 전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바로 그것이 저들의 명분이기도 합니다.”
“명분이라니요?”
“거령채주와 호문채주. 둘 다 자신이 녹림투왕의 후계자라고 주장합니다.”
그 이야기를 들은 백수룡은 불쾌한 소리를 들었다는 듯 눈썹을 꿈틀거렸다.
“어디서 되도 않는 헛소리를. 대체 무슨 자격으로 후계자를 자처합니까?”
“거령채주와 호문채주는 녹림투왕의 무공을 일부 익혔습니다. 둘 다 전대 채주로부터 전수받은 것이지요. 그들은…….”
들어 보니 둘 다 전대 채주의 자식으로, 부친으로부터 녹림투왕의 무공을 전수받았다고 한다.
백수룡은 두 전대 채주들의 정체를 알 것 같았다.
‘수련이 힘들다고 도망친 놈들이 산채를 하나씩 차지한 거였군. 그런 주제에 이제 와서 후계자 행세를 해?’
뿌드득…….
백수룡은 조용히 이를 갈았다.
그가 아는 맹사부는 무공을 가르치는 데 인색한 사람이 아니었다.
다만, 가르치는 데 서툴렀을 뿐.
녹림에 있을 때도 제자를 키우려 했지만, 인내심이 부족한 산적들은 전부 스승에게서 도망쳤다.
-제자 말이냐? 몇 놈 가르쳐 보긴 했다만, 결국 다 도망치던데. 고작 뼈 좀 부러졌다고 엄살이나 부리고…….
물론 그의 방식은 거칠고 힘들었다.
하지만 맹호악은 도망친 제자들을 억지로 붙잡아 오지 않았다.
사지근맥을 끊고 단전을 폐하는 대부분의 문파들에 비하면, 그것은 너무나 관대한 처사였다.
지금 녹림에 맹사부의 무공이 조금이나마 명맥을 이어오는 것도 그 덕분이었다.
‘헌데 제자였다는 놈들은 녹림을 분열시켜서 각자 왕 노릇을 해?’
백수룡이 화가 난 이유는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그가 저도 모르게 내뿜은 진득한 살기에, 녹의수사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괜찮으십니까?”
“죄송합니다.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들으니 저도 모르게 그만.”
백수룡은 천천히 심호흡을 하며 살기를 갈무리했다. 그리고 녹의수사를 똑바로 바라봤다.
“지금부터 제가 말씀드릴 이야기는 꼭 비밀로 지켜 주셨으면 합니다.”
“물론입니다.”
녹의수사도 자세를 고쳐앉으며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백수룡은 적지 않게 고민했으나, 앞으로 뜻을 함께하기로 한 이상 녹의수사에게는 말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했다.
“녹림투왕이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진 이유를 아십니까?”
“……그 누구도 진상을 알지 못합니다.”
꿀꺽.
녹의수사는 마른침을 삼키며 백수룡을 바라봤다.
지금부터 그의 입에서 나올 이야기는, 오랫동안 의문이었던 녹림투왕의 실종과 얽힌 비사였기에.
“맹사부는…….”
천하의 모든 산을 제집처럼 여기며 돌아다니던 녹림투왕.
그가 갑자기 실종된 후, 그 이유에 대해 온갖 소문이 분분했다.
스스로 모습을 감추었다는 소문부터, 은거기인에게 패해 죽었다는 이야기, 신비지처에서 신선을 만나 등선했다는 허무맹랑한 소문까지.
수십 년이 지난 지금은 녹림도에서나 간간이 이야깃거리가 될 뿐이었다.
그리고 지금.
“……부하들에게 배신을 당했습니다. 형제라고 믿었던 자들이 준 술에는 극독이 들어 있었고, 초대받은 잔치에는 혈교의 고수들이 함정을 파고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몇 겹의 술법이 몸을 옭아맸고, 진법이 펼쳐져 빠져나갈 수도 없었지요. 그 배신자들 중에 옛 제자들이 있었습니다.”
“……!!”
세상에 남긴 유일한 직전제자의 입에서 그 진상이 밝혀졌다.
백수룡은 착 가라앉은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제 생각에는 거령채와 호문채. 그들 중에 배신자가 있을 확률이 높습니다. 둘 중 하나, 어쩌면 둘 다일 수도 있고요.”
“……그 이름을 알고 계십니까?”
백수룡은 고개를 저었다.
아쉽게도 맹사부에게 직접 이름을 듣지는 못했다.
평소에는 그렇게나 수다쟁이였으면서, 그런 부분은 이상하게 고집을 부려 말하지 않았으니까.
-힘들다고 도망친 놈들이 찾아와서 죄송하다고 술을 따라 주는데, 표정은 겁을 잔뜩 먹어서는 그걸 또 안 받을 수는 없지 뭐냐. 으하하하! 그냥 속아 넘어가 버렸지!
-……그게 지금 웃으면서 할 이야기요?
-그럼 뭐 울기라도 할까? 어차피 독은 내게 아무런 영향도 주지 못했다. 마지막으로 주는 술 한잔 받지 못할 이유는 없었지.
-그럼 뭐가 문제였던 거요?
-글쎄다. 놈들이 나를 바라보던 눈빛에 속이 참 쓰리더구나. 그래서 반응이 좀 늦었는지도 모르지.
-…….
녹림투왕에게 직접 가르침을 받은 전대 채주들은 둘 다 죽었다고 했다.
하지만 그 자식들은 아비에게 산채를 이어받아 호의호식하고 있었다.
어쩌면 수십 년 전 녹림투왕을 배신한 대가로 얻게 된 자리를 말이다.
“그게 사실이라면, 저 역시 그자들을 용서할 수 없습니다.”
녹의수사의 눈에서 흉흉한 살기가 맴돌았다.
그러나 그는 애써 냉정을 되찾으려고 애쓰며 말을 이었다.
“……하지만, 확실한 증거가 없는 한 그자들을 함부로 배신자로 몰아갈 수는 없습니다.”
언젠가는 진실을 알아내기 위해서라도 대면해야 할 자들.
하지만 녹의수사는 그때가 지금은 아니라 말하고 있었다.
그가 무슨 걱정을 하는지 아는 백수룡은 고개를 끄덕였다.
“복수심에 눈이 멀어 일을 그르치진 않을 테니, 안심하셔도 됩니다.”
“……감사합니다.”
백수룡이 배신자를 확신한다고 해도, 증거가 없는 한 결국 추측에 불과했다.
‘이번 회담에서 증거를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지.’
나름대로 조사는 해 볼 생각이었다.
그러다 문득 의아한 생각이 든 백수룡이 녹의수사에게 물었다.
“녹의수사께선 왜 녹림투왕의 후계자라고 주장하지 않으십니까? 저를 제외하면 실제로 맹사부의 무공을 가장 많이 이었을 텐데요. 정파무림의 시선 때문입니까?”
“……꼭 그 이유 때문만은 아닙니다.”
녹의수사는 씁쓸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제 무공은 세간에 알려진 녹림투왕의 무공과는 많이 다릅니다.”
“어떻게요?”
“설명하는 것보다는 직접 보시는 편이 빠를 겁니다.”
두 사람은 밖으로 나와, 다시 한번 녹림투왕의 바위가 있는 봉우리로 올라갔다.
평평한 땅에 선 녹의수사는 천천히 자신의 무공을 시연하기 시작했다. 녹림투왕의 바위 앞이었다.
후우웅! 후우웅!
두 손바닥을 펼치고 부드럽게 원을 그리는 팔의 움직임. 끊임없이 원을 그리며 몸을 움직이는 동안, 바닥에서 떠오른 먼지가 그 결을 따라 허공을 유영했다.
‘맹사부의 무공이 맞군.’
백수룡은 그 모습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흔히 녹림투왕의 무공이 패도적인 무공이라고만 알려져 있지만, 맹사부는 누구보다 몸을 잘 쓰는 사람이었다.
직선적이고 패도적인 움직임은 물론이고, 부드럽게 원을 그리는 움직임 역시 그의 무공에 녹아 있었다.
그 모든 것을 집대성한 것이 녹림십팔식인데, 녹의수사가 익힌 것은 정립되기 전의 부드러움에 집중된 무공이었다.
“후우우…….”
시연을 끝낸 녹의수사는 호흡을 정리하더니, 다소 긴장한 표정으로 백수룡을 바라봤다.
“보시니 어떻습니까?”
“맹사부의 무공이 확실합니다. 그리고 왜 어렵다고 말씀하셨는지도 알겠군요. 직선적이고 패도적인 부분이 거의 빠져 있습니다.”
백수룡의 정확한 지적에, 녹의수사가 씁쓸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제 무공은 녹림투왕의 것이라고 주장하기엔 너무 부드럽지요. 그래서 이 바위를 함께 공개할까도 생각해 봤습니다만…….”
녹의수사는 녹림투왕이라 적힌 바위를 쓰다듬으며 말을 이었다.
“그러고 싶진 않았습니다. 저만의 추억으로 남기고 싶은 욕심에.”
“잘하셨습니다. 이런 바위만으로는 아무것도 증명할 수 없으니까요.”
대부분의 산적들은 녹의수사의 무공을 보고 태극권 류의 무공을 생각하지, 녹림투왕의 무공을 떠올리지는 않을 것이다. 바위는 큰 의미가 없었다.
‘아쉽군. 녹의수사가 맹사부의 후계자로 인정받을 수 있다면, 명분을 이쪽으로 크게 가져올 수 있을 텐데…… 잠깐만.’
생각에 잠겨 있던 백수룡의 표정이 확 밝아졌다.
“그럼 배우면 되지.”
“예?”
백수룡은 의아해하는 녹의수사에게 성큼성큼 다가갔다. 그리고 허락도 없이 몸을 마구 더듬기 시작했다.
“왜, 왜 이러십니까?”
녹의수사가 당황해서 몸을 빼려고 했으나, 작정하고 덤벼드는 무림십존의 손길을 거부할 방법은 없었다.
그렇게 녹의수사의 몸을 주무르기를 한참.
백수룡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기본기는 확실하게 잡혀 있으니, 사파 회합에 가는 동안에 어느 정도 속성으로 배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뭘 배운다는 말입니까?”
“맹호투(猛虎鬪). 녹림투왕의 성명절기 말입니다.”
“예?”
녹의수사는 자신이 잘못 들은 줄 알고 눈만 계속 깜빡거렸다.